<나, 너 좋아해, 우리 사귈래?>

  에어컨 바람이 불었던가 열어놓은 문에서 바람이 불어왔던가. 2007년인가 2008년인가. 이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여름날 밤. 가족들과 거실에 모여 자고 있던 내 핸드폰에 왔던 문자 한 통.


  처음 그 아이를 신경쓰게 된 것은 2006년이었다. 학교 여자아이들 사이에서 편지를 주는 것이 유행이었나보다. 말은 섞어봤을까? 애초에 친하게 지냈던 기억조차 없던 아이에게서 편지를 하나 받았다. 일생을 통틀어 여자에게서 받은 최초이자 마지막 편지였을 것이다. 어떻게 받았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불쑥 내민 것을 받았고, 집에 가서 읽으란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집에 돌아가서 읽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문방구에서 팔던 피자 모양의 편지지와 피자곽 모양의 편지 봉투. 초등학교 5학년, 어렸던 아이의 손바닥에도 쏙 들어왔던 작은 편지였다. 내용은 보잘 것 없었으며, 어떻게 생각하면 어이없는 것이 적혀있었다.

  <안녕, 뎅쉰아. ← 위는 미안하구나.>

  초장부터 나를 등신이라고 불러제꼈고,

  <요즘 애들 사이에서 편지를 쓰는 게 유행인 모양이라. 써본다. 사실 네가 우리반에서 너를 두 번째로 좋아하거든.>

  얼핏 기억하기로 그 아이는 호준이라는 순한 인상의 아이랑 사귄다고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두 번째였다. 가장 좋아하는 것도 아닌, 두 번째로 좋아했던 아이.

  하지만 누군가에게 편지 한 통 받아보거나 관심 있다는 말 한마디 들어본 적 없었던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마음을 동하게 하기엔 충분했었다.


  <그래.>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면, 언제 한 번 옛날에 쓰던 검은색 슬라이드 핸드폰을 켜보리라. 유실된 기억 속에서 나는 아마 이렇게 대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타까운 점은, 당시에 막 핸드폰이 초중등 학생들에게 보급되었던 터라 서로에게 문자로 장난을 치는 것이 많았던 것이었다.

  <ㅋㅋㅋ 뻥이지롱.>

  그 아이의 문자 또한 그것의 일부였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당황하는 걸 즐기고, 대답을 듣고나면 거짓말이라고 둘러댔던 문자. 이로써 그 아이의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러나 나의 이야기는 끝낼 수 없었다.

  <사귀자.>

  문자를 보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 아이의 문자가 돌아왔다.

  <나 너 진짜 좋아해.>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냈다.

  <옛날부터 좋아했어.>

  2년 전부터 마음에 있었던 아이였다. 같은 중학교 바로 옆반, 자주 보던 사이였음에도 마음을 전하지 못했던 아이였다.
  <거짓말 아니야.>

  그 아이의 장난은 나의 방아쇠였다.

  <사귀자.>

  나는 돌아서지 않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