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https://arca.live/b/lovelove/34424719?category=%EC%B0%BD%EC%9E%91%EB%AC%BC&p=1

----------------------------------------------------------

갑작스러운 약속이었음에도,


너는 흔쾌히 수락했다.


우린 평소보다 좀 늦은 시간에 약속을 잡았다.


늘 만나던 오후 일곱 시가 아니라, 오후 열한 시.


우리가 이런 시간에 만나는 건 처음이였다.


적당한 저녁이 아니라.


꽤나 어둠이 내려앉은 깊은 밤.


"오빠, 여기요!"


너는 밝게 웃으며 크게 손을 흔들었다.


거리에 즐비한 20대들 중 네가 가장 반짝였다.


어둠 속에서 너는 더 빛난다.


밤에 보는 너는,


이상하게 더 예뻤다.




너는 바다를 보며 회를 먹자고 말했다.


서변공원에서 우린 돗자리를 깔고,


나란히 앉은 채 사온 회를 먹었다.


너는 이런 풍경을 보면서는 술을 마셔야 한다며,


소주도 두 병 싸들고 왔다.


그러나 나는 소주 한 잔만 마셔도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는 체질이였다.


너는 웃으며 혼자 잔을 비웠다.


나는 소주잔에 맥주를 담은 뒤,


다른 색깔의 잔끼리 부딪혀 너와 마셨다.


취기는 서서히 올랐다.


너는 술에 취했고,


나는 어쩌면 이 아름다운 분위기에 취한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시덥잖은 대화를 나눴다.


20대 초반의 남녀가 나눌만한, 그런 대화.


너의 이야기들은 듣기만 해도 좋았다.


너는 말하는 걸 좋아했고,


나는 듣는 걸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듣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그냥, 너라면 뭐든 다 좋았다.


너를 좋아했다.




술기운이 살짝 오른 너는,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다며 칵테일 바에 가자고 말했다.


술에 많이 취했는지


너는 수시로 활짝 웃으며 내게 달라붙었다.


헤실거리는 너를 보며


나는 괜찮겠느냐 물었다.


많이 취한 것 같아서,


너는 내게 가까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


"오빠, 나 사실 하나도 안 취했어요."


그 또렷한 목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왠지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렸다.


정말로 오랜만에 말이다.




나는 칵테일을 처음 마셔봤다.


"오빠, 커피 좋아하죠."


너는 매일 아침마다 내가 커피 마시는 걸 기억했다.


너는 피치 크러쉬를 주문했고, 내 것으로는 깔루아 밀크를 주문해줬다.


커피향 안에서 술냄새가 감추어져 있었다.


마실만 했다.


네가 시킨 칵테일은 예뻤다. 마치 너처럼


내가 이야기를 할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눈을 깜빡이며 나를 쳐다보는 너는.


오늘따라 더 예뻤다. 지나칠 정도로.




술기운이 올랐다.


너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들을 쏟아냈다.


취하지 않았다면서.


"나 오빠만 셋이에요. 우리 가족 중에 나랑 엄마만 여자라구요."


"오빠들, 다들 몸만 큰 애 같아요. 지들끼리만 놀고 맨날 나는 따돌리고...."


뭐가 그리 좋은 지,


너는 말하면서 계속 웃었다.


"그래서 오빠 보고 신기했어요."


"내가?"


"응, 어른 같았거든."


취한 척 하는건지,


아니면 정말로 취해버린 건지.


너는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말이 짧아졌다.


"그래서 좋았어. 오빠 어른 같아서."




너는 아이처럼 웃었다.


아마 내 울굴은 귀까지 벌겋게 달아올랐을거다,


너는 이렇게 갑작스럽게 다가오며,


당황해하는 내 반응을 즐거워했다.


그러던 와중,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순붕아, 아까 찍은 사진.'


사진 작가를 꿈꾸는 선배가 보내준 사진이었다.


내가 직접 찍은 프로필 사진보다 훨씬 나았다.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려는데,


"오빠. 이거 너무 귀엽게 나왔다."


너는 그 사진을 흘긋 보곤 자기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나는 네가 또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며,


너에게 사진을 보냈다.




너는 장난스레 웃으며,


네 휴대폰 배경화면을 보여주며 미소지었다.


"어때, 잘생겼지."


또 나를 놀리려 드는 것 같았다.


나도 이번엔 장난을 한 번 쳐보기로 했다.


"응, 잘생겼네."


어차피 네 성격이라면 대수롭지 않게 받아치겠지만,


그래도 한 번 너를 놀려보고 싶었다.


귀여워서.


"그 잘생긴 사람 누구야? 네 남자친구?"


약간 과감한 장난을 쳤다.


그리고 다가가는 것에 익숙한 너는,


"으, 응?"


누군가 다가오는 것엔 익숙하지 못한 것 같았다.


-----------------------------------------------------------

후편-https://arca.live/b/lovelove/34485985?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