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ovelove/34692604


*이거 순애 맞아요 고어 학대 강간 일절 안 나올 거에요



전날 깊은 잠에 들었던 설아는 꽤 늦은 시간에 일어났다. 하루아침에 친구들과 이별하여 낯선 세상에 온 것을 감안하면 신기한 일이었다. 행여 주인에게 혼날까 봐 이부지리를 반듯하게 개 놓은 설아가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나름 작은 걸로 골랐는데도 루이의 옷은 너무나 컸지만, 감촉도 좋고 따뜻해서 싫지는 않았다. 어제 하루 종일 구부정하게 있느라 아팠던 허리도 많이 좋아져 있었다. 그때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루이가 거실로 나왔다.


"일어났네? 잘 잤어?"


"아,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나도 지금 일어났어. 어제 일이 있어서 좀 늦게 잤더니.."


식탁에 앉은 설아의 눈 앞에 어제 먹었던 것과 같은, 김이 나는 수프가 있었다


"저기.. 이거 맛있었어?"


인간과 뱀파이어의 입맛은 완전히 달랐기에, 루이는 인터넷에서 본 레시피대로 만든 수프가 그녀의 입에 맞을지 알 수 없었다. 설아가 사실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고맙습니다."


"진짜? 다행이네, 인간에게 줄 음식은 처음 만들어 봤거든."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온 루이가 컵 하나를 꺼냈다. 컵 안으로 떨어지는 비릿한 향의 붉은 액체를 본 설아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저거 설마..'


뒤늦게 그녀의 시선을 눈치챈 루이가 황급히 말했다.


"이, 이건 소 피야. 네가 생각하는 그거 아니야."


사실 냉장고 안에는 예전에 사 놓은 인간의 피도 있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간 앞에서 그걸 먹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사육되며 죽을 때까지 피가 뽑힐 뻔한 인간을 실제로 보니 먹기엔 조금 거북한 마음도 들었다.


"뱀파이어가.. 소 피도 먹어요?"


그녀와 친구들은 뱀파이어들은 무조건 사람 피만 먹는다고 여태껏 알고 있었다.


"인간이 아니더라도 소, 돼지, 말처럼 적당히 큰 포유동물의 피라면 대부분 먹을 수 있어. 꼭 피만 먹는 것도 아니고."


루이가 그녀에게 텅 빈 팩에 쓰여진 글씨를 보여주었다.


"봐, 여기 소 피라고... .맞다."


그는 인간과 자신들의 문자가 다르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설아는 갸우뚱거리며 글씨를 쳐다보기만 했다.


"저, 저기.. "


"너흰 이거 못 읽지.. 미안, 깜빡했어."


잠깐의 소동이 끝나고, 설아가 루이의 눈치를 보면서 수프를 먹기 시작했다. 이미 피 한 컵으로 식사를 마친 루이가 그녀를 의식해 자리를 비켜주었다,


"천천히 먹어. 체하겠다."


루이는 자신이 그녀를 이렇게 대한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분명 고작 인간 여자, 그것도 본인이 산 여자를 배려해 줄 이유는 없었다. 아마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송곳니로 거칠게 물고 마음껏 피를 빨아도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자신보다 한참 작고 여리고, 생김새도 뱀파이어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 그런 짓을 하기엔 어쩐지 미안했다.


'하긴, 양심적으로 저 녀셕을 배려하지 않을 이유도 딱히 없으니까.. 이왕 데려왔으니 좀 친절하게 대해주면 서로 나쁠 건 없겠지?' 


한편 설아는 밥을 먹으면서 저 신기한 뱀파이어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설마.. 방금 내가 자꾸 쳐다봐서 안으로 들어간 거야?'


어제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불쌍해 보였다고.. 했지? 진짜로 해코지할 마음이 없나? 아니, 정신 차려. 내가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할지 모르잖아.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녀는 끊임없이 수프를 먹고 있었다. 


'근데 이거.. 너무 맛있다. 얼마만에 배부르게 먹는 건지.. 이따가 꼭 고맙다고 해야겠다.'


그녀가 식사를 마치자 멀찍이서 지켜보던 루이가 다가왔다. 


"잘 먹었습니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괜찮아. 넌 들어가서 쉬어. 내 침대에 누워 있어도 되고."


"당신은 제 주인님이시잖아요. 시키시는 대로 다 할게요."


예상과 달리 루이는 어떻게든 잘 보이려고 애쓰는 그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난 하인은 필요없으니까 잘 보이려고 할 필요 없어. 주인님이라 할 필요도 없고. 그리고.. 어차피 설거지는 얘가 알아서 해 줄 거야."


루이가 주방에 있는 식기세척기를 가리켰다.


"이건 식기세척기라는 건데, 이렇게 그릇이랑 숟가락을 안에 넣으면.. 말 그대로 자동으로 세척해 주는 기계야."


"우와..."


"됐지? 넌 들어가서 쉬어. 그리고.. 당분간은 같이 지낼 텐데, 이름 정도는 알려줄 수 있어?


"서, 설아라고 해요.."


"난 루이야. 앞으로 잘 부탁해."


"아, 네.."


"맞다. 너 옷부터 사야겠네. 지금 속옷 안 입고 있지?"


어제 그녀가 입던 속옷은 너무 더러운 탓에 빨아야만 했다, 루이의 팬티는 그녀가 입기에는 너무 컸고, 브래지어가 있을 리 만무하니 입을 옷이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설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루이가 베란다로 나가 보니 그녀의 속옷은 다 말라 있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나.. 어제 씻길 때 알몸도 봤구나. 거기다 속옷까지.. 하...'


어쩐지 변태가 된 기분이었다. 자기 집에 여자가 있다는 게 세삼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여... 여기, 깨끗하게 빨았으니까 일단 그거 입고 있어."


설아 쪽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필이면 어제 만난 남자, 그것도 뱀파이어에게 다 헤진 속옷을 보여 준 그녀는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루이가 인터넷으로 그녀의 속옷을 주문했다. 어제 시장 주인이 그녀의 키와 허리 둘레 등을 알려준 탓에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원래 인간 여자들은 너처럼 작은 거야?"


여성 뱀파이어는 대부분 키가 190cm 이상일 정도로 장신이었다. 반면 설아의 키는 157cm에 불과하여 아동용 옷을 주문해야 할 정도였다.


"제가 조금 작은 편이긴 해요.."


"그래? 뭐라하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진 마. 그냥 궁금해서.."


알면 알수록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들과 다르면서 같고, 멀면서도 가까운 존재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