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비는 향 곁을 떠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국제저승사자협회 동양지부 소속 저승사자 이산입니다. 당신을 인도하게 되어 기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오, 뭐야! 나 죽었어?"

"어제 투신했잖아요. 그것도 모른단 말입니까?"

"아 그랬나? 근데 난 누구야?"

"당신같은 사람은 처음이네요. 보통은 기억을 잃지는 않는데.."


이산은 상부의 명령을 받고 직무수행을 위해 잠시 이승으로 내려왔다.

기억을 잃은 사람에 대한 메뉴얼은 없어 허둥대고 있었다.


"뭐야. 저승사자한테도 메뉴얼이 있나봐?"

"그럼요. 당연히 있죠. 근데 기억을 잃은 사람에 대한 메뉴얼은 없네요.."

"그냥 갑시다!"

".."


이산은 좀 아니꼬웠지만, 일단 진행하기로 하였다.


"가면서 얘기좀 나눌까요?"


이산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그리고선 알수 없는 주문을 외우더니, 벚꽃길로 순간이동했다.


"여기가 어딘지 기억나십니까?"

"아...가물가물한데."


앞을 걷다보니 홀로그램처럼 되어있는 것이 있었다.

"이것이 당신 7살때의 모습입니다. 부모님과 함께 벚꽃놀이를 왔을때죠."


홀로그램 속의 그는 웃고 있었다.


"이곳에선 많은 사람이 만나고 헤어집니다. 만나는 만큼 죽는 사람도 많죠."

"그래서 지금 뭐하는거에요?"

"생전 기억 회상이요."


또다시 순간이동을 하였다.

이번에는 학교였다.


"당신의 초등학교 입학식입니다. 부모님께서 당신 걱정을 꽤나 많이 했어요."

"내가 왜? 뭐 어때서?"

"친구들이랑 잘 어울리지 못해서요."


그녀는 호주머니에서 메모지 한장을 꺼냈다.

"당신은..17살. 남성. 이름은 이수민. 수민씨?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투신하시다니.."

"뭐 어때서. 그때 죽든 나중에 죽든 결국 다 같은거 아냐?"

"하하..물론 요즘에 자살한 학생분들이 늘어가고는 있지만 그런분들 보면 참 안타까워요."


다시 순간이동해서,


"당신 중2때의 모습니다. 첫 성적표를 받고 옥상에 올라와서 흐느끼고있죠."

"몇점이야?"

"알려드리면 절 때릴지도 몰라요. 가장 잘본 과목이 과학. 20점이네요."

"씨발."

"당신..이때 투신자살을 검색했죠?"

"응. 나 기억이 되돌아오는거같아."


"그럼 다음 장면으로..."


그녀는 다음 회상으로 넘기려 했으나, 어째선지 넘겨지지 않았다.


"..17살?"

"17살!"


순간 당황하였지만, 금방 원인을 찾을수 있었다.


"아, 회상은 극단적인 기억만 보여줍니다. 극단적으로 슬펐거나, 극단적으로 기뻤거나... 중2 이후로는 MSG없는 삶을 사셨네요."

"뭐야. 재미없게. 나 다시 한번 살아볼래. 안ㄷ.."

"안됩니다."


이산은 낫을 들이밀며 과민하게 반응했다.


"근데말이죠."

"응?"

"..."


"잘생긴사람이 왜 평생 모쏠아다였나요?"

"씨발새끼야!!!!"

이산의 뺨에 주먹이 날아왔지만, 그녀는 능숙하게 피했다.


"진심이에요.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아마 저승 상층부 마케팅 부서에 조만간 불려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저승사자로 정식 스카우트 될수도 있겠네요."

이산은 아쉽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간단한 메모를 하여 넘겼다.


"이게 뭐야?"

"저승의 장비관리처 전화번호입니다. 언젠가 이곳의 도움이 필요할지도 몰라요."

"으응...일단 받아는 둘게."


그녀가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 할일은 여기까지입니다. 행운이 함께하길."



*****




"시발..여기가 어디야.."

이산이 순간이동 시켜준 곳은, 어느 음산한 공동묘지였다.

뿌연 안개가 짙게 깔려 앞은 잘 보이지 않았고, 음산한 기운이 체온마저 떨어뜨릴 지경이었다.


"게 누구냐!"

"꺄아아악!!!!"

그는 누군가가 자신을 찾는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뒤도안보고 뛰기 시작했다.


"도망가봤자 내 관할이다!"


이내 투명한 그물이 그를 건져 올렸다.


"흐어어엉 살려주세요ㅠㅠㅠㅠ 저 도둑 아니에요ㅠㅠㅠ 아니 그 이상한 저승사자새끼가..."

"닥쳐봐."


그는 바로 깨달을수 있었다.

무의식의 공포에 둔갑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그의 눈앞에는 키 167쯤 되는 미인이 한명 서있었다.

게다가 목소리도 좋았다.


"오. 마케팅부에서 좋아할만한 아이네."

"그, 그그그, 그래서 저 마케팅부에다 팔거에요?"

"아니. 너 내꺼해라. 어떤새끼가와도 니는 안줄거야."

"엣, 에? 앙? 하지만.."

"하지만 뭐."

"아 아니에요.."


분명 미인이었다.

미인이었지만 알수없는 기운이 그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대체 무슨 기운일까.


"아 미안, 자기소개 안했네. 나는 마루라고해. 아직 20살밖에 안됐어. 애인도 없구~?"

"저는 17살이고, 이수민이에요. 애인은..없습니다."


마루의 자기소개에서 유독 애인이 없다는 부분이 강조된것 같다.


"애인이 없다니 뭔소리야? 니 애인은 방금부터 나였는데?"

"저는 당신같은 사람하고 연애하기 싫어요!!!!"


순간 분위기가 싸해졌다.


".."

".."


"뭐라고?"

"앗, 저 그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허.허! 상상력 풍부한 새끼네 이거."

"하.하."


그녀의 은근했던 압박이 점점 거세지는 와중에, 어디선가 굉음이 울렸다.


"아이..씻ㅍ..아니지. 에이씨..벌써 마케팅부서놈들 온거야?"

어째 욕을 하면서도 그를 의식한 느낌이다.


"잠깐만. 뭔가 좀 느낌이 안좋은데?"

"무슨일이에요..?"


"야, 나도 모르겠다. 튀어!"


그녀가 엄청난 스피드로 그물 안에서 그를 건져올려 등에 업은뒤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속도는 매우 빨랐다. 거의 자동차 수준이었다.


"제기랄! 저승사자놈들이 뭘 저질렀어!"

"당신도 저승사자 아니에요?"

"아니야!"


엄청나게 큰 괴물이 그와 그녀를 뒤쫓고 있었다.

도저히 인간의 힘이라곤 설명 불가능한 속도로 도망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따라잡히는 느낌이었다.


"하아아앗!!"

그녀가 뒤를 돌아보더니, 거대한 괴물에게 큰 화염구를 발사했다.


"우와.."

등에 엽혀있는 그는 솔직한 감상만을 입에 담았다.

"이쁘다.."


그녀의 화염구는 괴물의 이마에 적중했고, 괴물은 신음을 내며 쓰러졌다.


"휴우..이거 어쩔거야.. 내 관할지역.."


다시 되돌아본 공동묘지는 전쟁통마냥 흙이 뒤집어져있고, 비석이 쓰러져 있는 등 난리였다.


"저승사자새끼들...."

"그래서 당신은 저승사자 아니면 뭐에요?"

"하..나도 저승소속은 맞아. 날 이승의 직업에 비유하자면 장의사랄까? 죽고나서 영혼이 빠져나가지 못한 육체를 처리해. 그래서 다 일일이 묻고 기도해주는데, 이런 나의 소중한 땅이.."

"아.."

"미안. 너 나랑 같이 어디좀 가자."

"어딜요?"

"니알빠 아님~"


***



그렇게 그가 마루와 함께 온곳은, 저승사자 동양지부 본협회였다.


"당신들 이거 어쩔거야!!!!!! 내땅 어쩔거냐고!!!!! 씨발새끼들이 할줄아는게 똥만드는것밖에없어요!"

"하..그러게 애초에 결계를 쳐놨으면.."

"병신새끼야 귀 안판지 523년지났냐? 안개껴서 잠깐 결계 풀었다고 몇번을말해!!"

"애초에 거기는 영혼응집물이 자주 돌아다니는.."

"씨발 그게 느그 저승사자들 직무유기해서 만들어지는거잖아.."


마루는 누군가에게 열심히 욕설을 하며 따졌지만, 도통 통하질 않았다.


"아. 수민아. 너가 감사처에 찌른다고 협박좀 해줘라, 웅?"

"네. 알겠어요."


사실 그녀, 마루가 하는 일은 좋은 일인데다가 여러 영혼이 묻힌 장소인데 그런 장소가 더럽혀진것은 그로써도 많이 화가 나는 일이었다.


"저기.."

"네?"

"그..땅이요.."

"네."

"복구 안해주면..감사처에 찌른다!!"

"예. 찔러보세요."


***


결국 아무런 수확도 없이 그냥 돌아올수밖에 없었다.


"영혼 응집물이라는건 뭐에요?"

"아, 가끔 생기는거야. 저승사자들이 죽은사람들 영혼 제대로 인도 안해주면 그게 뭉쳐서 생겨나는거지. 증오, 분노, 애증, 파괴욕망... 온갖 불길한 감정으로 가득차있어서 위험해."

"꽤 위험하네요."

"그렇지. 근데 내 수준에서는 잘 처리할수 있는데..한번 쳐들어오면 땅을 다 망쳐서 문제야."


그녀가 그에게 목장갑 하나와 삽을 던져줬다.

"같이 일할까?"

"네에?"

"간단해. 같이 하자."






대략 7시간쯤 걸려 그들은 땅을 원상복구 해놓았다.

사실상 수민은 옆에서 구경만 하는 수준으로 많이 못했지만, 그래도 도왔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잠좀 잘래?"

"네..너무 졸려요."

"그래. 따라와."


그가 마루를 따라간곳엔 복층 주택이 있었다.

"와. 집 좋다."

"거기 1층 침실중에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자고 있어."


끼이익-


문이 열리자, 묘지보다는 훨씬 따뜻한 기운이 그를 감쌌다.


벽난로에선 장작이 타고있었고, 온 집안에 달콤한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는 아무 방이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운좋게 헤메지 않고 바로 침실을 찾을수 있었다.


'침실...'


분명 그가 오기 전까지는 마루가 혼자 살았을테지만 침대는 마루의 몸집에 비해 많이 컸다.


"으, 더워."


갑자기 온도가 바뀌어서 그런지 급작스레 더워지기 시작했다.


"잠이나 잘까."


그는 상의를 벗어던지고 이불속에 들어갔다,


아까 집안에 올때 맡아졌던 달콤한 향기가 이불에서 났다.


'...푹신해.'


베게에 얼굴을 묻고 크게 한번 숨을 들이마셨다.

상큼한 샴푸 향이 난다.


"하아.."


그렇게 그는 행복하게 잠들었다.







"어딨어? 수민? 자기야?"


그는 자기를 찾는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집에 들어올때는 해만큼은 떠있었지만, 지금은 해도 지고 어두컴컴했다.


"자기야?"

마루가 그를 찾아 방으로 들어와 불을 켰다.


그는 마침 이불을 걷어내고 상의를 탈의한 채로 앉아있었고, 막 일어난 터라 그의 그곳은 발기되어 있었다.


"...자기?"



-to be continu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