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편 https://arca.live/b/lovelove/34692604

2편 https://arca.live/b/lovelove/3475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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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편 https://arca.live/b/lovelove/34969069


*제목만 이렇지 이거 순애 맞아요 고어 학대 강간 일절 안 나올 거에요


"아, 생각해 보니 동네를 산책하거나 한적한 곳에 가는 건 되겠다."


"괜찮아요. 저 때문에 곤란해지면 어쩌려고.."


"걱정 마. 그 정도는 문제 없어."


루이가 걱정하는 설아 앞에서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너 우리가 쓰는 글자 배워볼래? 일단 배워 두면 책도 볼 수 있고.. 하여튼 유용할 거야."


"제가 까막눈이라서.. 가능할까요?"


"생각보다 많이 어렵진 않을 거야. 내가 도와줄게.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최근 들어 집에 혼자 있는 게 심심했던 루이는 일자리를 구하는 걸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설아를 돌봐야 하니 관두기로 했다.


"고맙습니다. 저.. 루이 님."


우물쭈물하던 설아가 대뜸 잠옷 소매를 걷고 팔뚝을 내밀었다.


"항상 도움만 받는데.. 제 피라도 드실래요?"


루이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괜찮아.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그리고 자기 몸은 소중히 여겨야지."


어렸을 때부터 학대받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설아는 자존감이 많이 낮았다.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진심으로 눈앞의 뱀파이어에게 피를 바치려고 했다.


"나도 이제 사람 피는 안 먹으려고. 특별히 몸에 좋은 것도 아니니까.."


인간의 피 중에서도 특히 별미로 손꼽히는 것은 젊은 여자의 피였다. 설아의 몸에서는 항상 달콤한 향기가 풍겨왔다. 그녀의 피는 틀림없이 환상적인 맛일 터였지만, 루이는 그저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야수가 아니었다. 그녀의 피를 먹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저 때문에 그럴 필요 없어요. 이렇게 챙겨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걸요."


루이는 단지 동정심 때문에 이러는 것이 아니였다. 방금도 느꼈지만, 설아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행복해졌다. 그녀와 가까워질수록, 그녀가 변하는 모습을 볼수록 더 많은 것들을 해 주고 싶었다.


"너.. 내가 무서워서 그래?"


설아가 고개를 저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루이가 정말 무서웠던 그녀였지만, 이틀 동안 함께 있으며 그의 진심을 알게 된 이제는 오히려 든든하기까지 했다. 역설적으로 설아를 이렇게 만든 원흉인 그녀의 아빠는 키도 땅딸막한 데다 설아 본인이 봐도 착하고 순하게 생겼었다. 그녀는 역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새삼 맞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루이는 저녁까지 설아에게 글자를 가르쳐 주었다. 아직 많이 부족하긴 했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과 루이, 그리고 몇 가지 사물의 이름 정도는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잘 먹었습니다. 루이 님은 그것만 먹으면 안 질리세요?""


루이는 하루 두 끼 이상 닭가슴살과 바나나를 꾸준히 먹었다. 집에만 있으면 살이 찔 것을 우려해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는 먹을 만해. 나 운동 좀 하고 있을게."


베란다로 나간 루이가 척 봐도 엄청나게 무거워 보이는 아령 두 개를 들고 왔다. 거실 구석에 놓여진 벤치에 앉은 루이가 그대로 아령 하나를 쥔 왼팔을 올렸다 내렸다 하기 시작했다.


"..그거 얼마나 무거운 거에요?"


"이거? 150kg."


설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150kg이면 그녀의 체중의 세 배가 넘는 무게였다. 루이의 몸매는 적당히 탄탄하고 근육이 잡혀 있긴 했지만, 그만한 무게를 쉽게 들 만큼 근육이 많아 보이진 않았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다가간 설아가 바닥에 놓여진 아령 하나를 들어올리려 해 봤지만, 당연하게도 아령은 그 자리에서 단 1mm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린 근육이랑 골격 구조부터가 인간과 다르거든. 나도 운동을 썩 잘하진 못해. 자기 관리용이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루이는 아무 어려움 없이 아령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그렇게 실내자전거를 타고, 팔굽혀펴기를 한 손가락으로 하는 등 온갖 운동을 3시간 동안 하고 나서야 루이는 샤워를 하러 욕실로 들어갔다.


한편 그러는 동안 공부에 재미가 들린 설아는 낮에 배웠던 단어들을 꾸준히 복습하고 있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공부를 하고 싶어했지만, 워낙 바쁘기도 하고 가르쳐 줄 사람이 없는 탓에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저.. 루이 님."


"굳이 님 자 안 붙여도 돼. 나이 차도 얼마 안 나는데.."


"몇 살이신데요?"


"아, 말 안 해줬구나. 27살."


"생각보다 나이 많으시구나.. 동안이시네요."


수명이 몇백 살은 족히 되는 뱀파이어였기에, 루이는 외모만 언뜻 봐선 대학생 정도로 보였다.


"동.. 안? 뭐. 너희 기준에선 그럴지도.. 어쨌든 루이 님이라고 안 불러도 돼."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루이.. 오빠?"


여자에게서 오빠 소리를 듣는 건 실로 오랫만이었다. 루이가 약간이지만 얼굴에 홍조를 띄웠다.


"그냥 루이라고 해도 되고..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존칭도 쓸 필요 없어."


결국 그날 루이의 호칭은 '루이 오빠'로 정해졌다. 나이가 8살이나 더 많은데 오빠를 꼭 붙어야 한다는 게 설아의 논지였다.


다음날 아침 설아와 루이는 지난번처럼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8시경.."


바로 그때, 바닷가에서 30대 정도로 추정되는 인간 남성의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들려왔다. 루이의 낯빛이 심각할 정도로 어두워졌다.


"실수로 물에 빠진 걸까요...?"


"안타깝게도 누군가 시체를 유기했을 가능성이 더 커. 인간 살해가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지만.."


과거보다는 인간의 권리, 즉 인권이 개선된 탓에 인간을 살해한다면 최소 2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졌다. 때문에 구타, 강간 등의 사유로 실수든 고의든 인간을 죽인 뱀파이어들은 시체를 불에 태우거나 바다에 버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말을 들은 설아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럼 제 친구들도 혹시.."


설아와 함께 잡혀 온 친구들은 그녀보다는 상태가 괜찮았던 탓에 전부 누군가에게 팔려갔다.


"전부 여자라고 했지? 젊은 여자는.. 그렇고 그런 용도로 인기가 많아. 연약하고 다루기 쉬운 데다 피도 맛있으니까."


설아의 눈시울이 또다시 붉어졌다. 그토록 힘든 시절을 버텼던 원동력인 친구들이 뱀파이어의 노리개 신세가 되었다고 상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 미안하다. 내가 대신 사과할게."


"아니에요. 오빠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울먹이던 설아가 루이 옆으로 다가오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오른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아 주었다. 처음에는 흠칫 놀라던 설아도 희미하게 웃음지으며 루이의 커다란 손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안심해. 난 너한테, 아니 어떤 인간에게도 함부로 손대지 않을 거야."


"저도 알아요. 오빠한텐 항상 위로만 받네요.  아빠도 이랬으면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