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동안이나 한심하게 그녀의 품에 안겨 울다가 지쳐, 현재 우리 둘은
근처 벤치에 앉아있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무념무상인 상태로
앉아있다보니, 하늘은 어느새
검은색만 띄게 되었으며 시간은
휴대폰으로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지속될줄 알았던 침묵은 곧 깨졌다



"그래서, 이젠 뚝 그치셨나요?"

"..응. 나야 상관없지만.. 넌 아직까지
 집에 안들어도 괜찮아?"

"아까 아버지께 늦게 들어간다고 문자를
 드렸으니 괜찮아요, 뭐 여기서 더 늦으면
 부모님도 걱정하실지 모르니 슬슬 
 가봐야겠지만.."

"그렇네.. 슬슬 가봐야지..
 아, 오늘일 말인데..미안.."

"딱히 부끄러워 하실필요는 없답니다?
 누구든 간에 울고싶을 때에는 참지말고  
 울어야하는게 맞다고 생각해요. 애써 버티면
 마음만 썩어버릴테니까."

"..."


"그리고, 전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고맙단 말이
 더 듣기좋아요"


"그래, 고맙다.
  ...항상 해왔던 생각인데 넌 말야, 사람 속을
 잘 읽는거 같단말이지"



"하하..그냥 당신은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기 쉽거든요"


난 스스로가 무표정하다 생각했고, 분명
다른 사람들도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텐데,
넌.. 알수 있는거야?


"그리고..말하는 김에 하는 부탁인데,
 제 이름은 '넌', '너' 가 아니에요
 수연(粹然).  이게 제 이름이죠.
 얼굴튼지도 꽤 된것같은데, 아직도
 이름으로 불러주신 적이 없으니
 꽤 속상하다고요?"


그녀의 얼굴은 속상한 사람치고는
꽤 나긋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이름으로 부른적이 있었나?
아마 없던 것 같다
그날 이후로 사람들에게 정을 붙이는 것
자체가 싫어져서, 나는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지
않게됐다

..하지만 내 본심을 다 들어내버린 너라면.
괜찮지 않을까



"알았어, 수연아"



"와~ 박수!! 드디어 불러주셨네요!
 상으로 머리라도 쓰다듬어 드릴까요?"


그놈의 차도녀 속성은 어디다 갖다버린걸까.

익살맞은 목소리에 박수치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내 머리를 그 가느다란 손으로 마구 휘젓는다.

이런 너의 모습은 나만 알고있는 거겠지?
학교의 애들이나 선생님들이 현재
니 모습을 보면 아주 기겁할거야..


"수연아"

"네?

내 이기적인 욕심이란걸 알면서도,
그녀에게 속마음을 더 털어놓고 싶어졌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 살면서
누구한테도 이런 얘기를 꺼내지못할 것 같기에.

"내 얘기, 더 들어줄수있어?"


"물론이죠."


..다행히
기다렸다는듯이 환하게 답해주는 그녀였다



"난 농구선수가 꿈이였어.농구도 좋아하겠다,
 국대에 들어가서, 어엿한 선수가
 되고싶었거든. 그래서, 엄-청
 노력했다? 그러더니 주변도 나한테는
 소질이 있다고 말해줬어.. 신체적으로도
 재능으로도 뛰어나다고.
 무지 높은 꿈같았어도 해볼만 했던거야.  
 그때는 부모님도 날 밀어줬지"



"그런데 어째서.."



"1년 반 전쯤."


"그때부터 바뀌어버렸어. 내가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때, 두살 아래인 동생녀석이
 막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갑자기
 주변이 떠들석해지더라?
 평범해 보였던 애가, 갑자기 천재성이
 드러나 버렸다나 뭐라나.
 잠재능력같은게 원래부터 있긴 했었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 그 두각이
 드러난거야. 심지어 한두개만 잘하는게
 아니라, 지가 손에 잡히는 분야는 다 월클로
 해쳐먹을 정도로."


"...."


"그러니, 어떻게 됐겠어?그뒤로 엄마나
 아빠나 날 무시했어. 꾸짖거나 잔소리같은건
 일절 하지 않았지만, 차라리 그런게
 낫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고.
 말그대로 없는 사람 취급했거든.
 그 뒤론 학원 지원도 끊어버리지 뭐야

 그거에 대해 뭐라 말하면 항상 집 형편이
 금전적으로 좋지 못하니 동생에게 더
 신경써주고 싶다니, 힘들겠지만 참아달라니,
 그리고 미안하지만 꿈을 접고 가업을 이어주면
 안되겠냐고만 말했어. 정말 눈 앞이
 깜깜해진다는게 뭔 소린지 그때 알겠더라"


 "그것도 개같지만.. 집안이 가난하다는 주제에,  
  내가  먹고 싶거나 배우고 싶은 악기라도  
  생기면, 돈때문에 안된다고 하면서. 동생이
  뭐 먹고싶다하면 값비싼거라도 거뜬히
  사 먹이지 뭐야"



"...당신이, 가여워요. 무슨 잘못을 저지른것도
 아닌데, 어째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건지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당신은 이렇게.."


"응, 이렇게 됐지. 살기 싫더라고?
 나보다 훨씬 상위호환이 있어서, 그냥
 내꿈은 버리라하면서 나에 대해 관심도 없고
 동생만 신경써주는데, 뭐가 하고싶겠어?
 
꿈 마저 물건너가버렸는데, 뭐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도저히 감이 안오더라.
난 그게 오직 유일한 꿈이였단 말야"



"..전 당신을 처음 볼때,아무 기운없이
 흘러가는대로 살아 인생을 버리는 양아치라는
 생각을 했죠. 하지만, 지금은 알아요.
 당신은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상처받았을 뿐인 사람이란걸."


"이제라도 알아줬으니 다행ㅇ.."


"솔직히, 제가 당신의 꿈을 이뤄드릴수
 있을지는 잘 모릅니다.
 꿈을 강제로 잃어버린 당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건 가혹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같이 삶의 의미를 찾아드려도 될까요?"


...



이제 알것같다

너는 우연히 이 학교에 와서, 우연히
내 짝궁이 되서 어쩌다가 친해져버린, 그런
가벼운 인연이 아니였다



넌.

너는.


나를 되살리기 위해

필연적으로 내려온 기적이였어 -





"..이런 나라도 괜찮다면, 얼마든지"


분위기는 서로 사귄거라도 된거 같지만, 딱히
고백같은건 아니였다

지금 그녀에게 진짜로 고백한다면, 어쩌면
받아주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그녀가 날 이렇게까지 보살피는거와
별개로 , 연애대상으로 보는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어서 고백은 하지 않았다


혹시나 거절당하면, 나는
그날부로 삶을 버틸수 없을테니까 -



그러니
현재 이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지내는것도,
충분히 고마운 마음이다


"그럼.. 이걸로 약속,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구요? 저도, 힘좀 써볼테니"

시간도 벌써 9시가 되버려,
슬슬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나를 보고 기쁜듯이 말했다


"아, 그리고"


아직 더 할말이 있는걸까?


"좀 전에 말했던데로, 앞으로 일찍 
 일어나주세요, 제가 마중나올테니."


"하지만.."


"제가 도시락을 싸드리면 해결되는
 문제, 맞죠?"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녀가 날 위해
도시락을 싸준다고?


"그런 바보같은 표정짓지마요. 저도
 요리는 좀 하니까.  아니면...집밥이
 더 맛있으셔서 그러시는 건가요?"



"아니아니, 절대 그런거 아냐!"



먹어도 기쁘지도 않은,
그저 배만 채우는 집의 아침식사따위
아무 감흥도 없다


그녀의 요리실력은 잘모르겠지만

그녀가 날 위해 직접해준 것이라면
맛이 좋든 안좋든간에 기꺼이 다
먹을 수 있겠지.

그 왜, 요리는 정성이라잖아?


"그래주면 엄청 고맙지. 하지만 너가
 힘들텐데.. 나 때문에 괜히 고생만
 시키는것 같다고."


"그정도론 끄떡없거든요- 바보
 그럼 내일봐요. 얼굴이 하도 울어서
 퉁퉁부었는데 집가서 세수도 좀 하시고"


"쪽팔리게 꼭 그런말까지 해야 돼?"



-

거의 한밤중에 집에 왔지만,
부모님도 왔냐고만 하시고 왜 늦었는지는
물어보시지도 않으셨다

..애초에 기대도 안해서 상관없지만.



"뭐야뭐야, 오빠 오늘은 되게 늦게
 들어왔네? 이렇게나 밖이 어두운데..
 무슨일 있었어?"

"그냥 오늘은 좀 늦게까지 신나게 놀았어"

"에엥.. 신나게 논 사람치고는 몰골이
 운 사람같은데? 아닌가? 그러고보니
 평소의 뚱한 표정은 어디가고 그렇게
 실실 웃고있어?"



이래서 눈치빠른 꼬맹이는 싫다니까



"왜? 사람이 웃는 날도 있는거지 ~"


"대체 슬픈일이 있던건지 기쁜일이
 있었던건지.. 아무튼, 냄비에 카레끓인거
 남아있으니 씻고 와서 먹어"


"눼~눼"






카레고 자시고 모르겠고,
머릿속에선 내일만 기다려졌다







-


이런 글 별로 보거나 기다리는 사람은 없겠지만
첫 소설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1일 1글이
습관화 된건지는 몰라도, 시험공부 잠시 냅두고
이런 새벽에 써서 올려본다



모두 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