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왜 떨떠름한 표정이야?"


머리를 말리면서 물어보았다. 청바지에 얇은 셔츠를 입고, 오리털 패딩을 하나 걸치고 나가기로 했는데... 얘 얼굴은 또 왜 이래. 내가 가는 게 싫은가?


"걱정 되어서 그러죠. 돌아오는 길이 어둡기도 하고..."


가로등 다 켜져있고 대로변에서 한 블럭밖에 안 들어온 위치인데요.


"너도 내 집 주소 알았으니까 나도 네 집 주소 알고 싶어서. 나중에 나 속상하게 하면 벨튀도 하고."


"벨튀..."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이가 없긴 하겠지. 이 나이 먹고 벨튀 할 정도로 동심을 지키고 있지도 않았으니까.


"왜? 내가 집에 가면 곤란해?"


"아뇨. 집이 좀 더러운거 빼면 상관없어요. 누가... 있을 것도 아니고."


하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전 여자친구라는 그 사람이 드나들었겠지. 아니면 내가 그런 곳에 발을 들이는 게 싫은 건가? 그 여자 흔적이 많이 남아있으니까?


"너는 시키지도 않은 집 청소까지 해줬잖아. 청소 해야하면 나도 도와주지 뭐."


"아니 청소는 제가 할 수 있으니까..."


"아니면..."


오리털 패딩을 잠시 벗어두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손을 잡고, 몸을 기댄 뒤 가슴에 얼굴을 대고 빤히 올려다 보았다.


"너랑 조금이라도 더 붙어 있고 싶어서 그래."


와 부끄러워 한다. 얼굴 빨개졌어. 고개 돌린다. 귀여워라.


"... 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


반응이 재미있고 이게 진심이기도 해서 말을 할 타이밍을 조금 놓쳤다. 그래도 막 어색해지지는 않았으니까 다행이겠지.


"나도 선배랑 더 같이 있고 싶어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양 팔로 나를 감싸안았다. 약간의 땀 냄새와 내가 쓰는 바디워시의 냄새가 진하게 난다는 것이 기분 좋았다.


"하지만 옷도 없고... 너도 집에서 할 일도 있으니까. 가야하잖아?"


내 욕심 때문에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더 편하게 해주어서 나를 잊지 못하게 하고 싶었다.


"그렇긴 하죠. 곧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 다음에 올 때는 좀 더 길게 있을게요."


"응. 갈아입을 옷이랑 속옷이랑 가지고 와도 돼."


거의 동거하는 것 같이 되긴 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예 방을 하나로 합치는 것도 낫지 않을까? 여기 전세긴 하지만 가격도 만만치 않고... 아니 이건 너무 앞서간 것 같다.


잠깐 안겨있다가 패딩을 입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12월 중순이 지나 한겨울의 날씨는 자연스럽게 몸을 움츠러들게 만들었다.


"추위 많이 타요?"


"아... 응. 대구 출신이라."


여름에 30도 밑으로 떨어지는 날이 그다지 없는, 한국에서 제일 더운 곳이니까. 수면양말이라는 것을 서울 와서 처음 사봤었다.


"선배 써요."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목에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 주었다. 회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며 무늬를 만들고 있는, 조금 까끌한 감촉의 목도리였다.


"항상 보면 선배 목도리는 안 하고 다니더라고요. 목에 장신구를 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까 겨울마다 감기를 달고 살지."


다정하게 목도리를 메어주며 그렇게 말했다. 나도 감기 걸린게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하고 있니. 신기해라.


목도리가 목을 스칠 때 마다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목도리가 꼬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정돈해주는 그의 손이 닿을 때 마다 온 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목도리가 목 앞에서 매듭을 짓고 그의 손이 떨어졌을 때에는, 이미 몸이 뜨거워져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목도리를 매어주고 1층의 건물 문을 열고 거리로 나왔다. 그의 뒤를 쫓아가며 멍하니 뒷모습만 보았다. 날이 어두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이 근처가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 나는 안중에도 없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거리를 살피고 있었다.


"있잖아."


"네?"


왠지 내가 직접적으로 말하려고 하니까 부끄럽네. 밖이라 그런가.


"잠깐만. 얼굴에 뭐 묻었다. 좀 숙여봐."


그렇게 말했더니 머뭇거리면서 허리를 숙여 얼굴을 내 앞에 가져다 대었다. 그래, 내가 키가 작은 게 죄지. 


그러고도 까치발을 들고,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이걸로 마음이 좀 채워질 줄 알았는데 그걸로 부족했나보다. 양 손으로 목을 잡고 당겨서 긴 키스를 했다.


추위로 굳어졌던 온 몸의 긴장이 풀렸다. 오히려 엘리베이터 앞보다 훨씬 더 추운 상황일텐데도 가슴 속이 터지는 것 같아서, 내 입 안에서 느껴지는 그의 체온이 너무나 좋아서, 온 몸에 불이 붙은 것 처럼 달아 올랐다. 그도 싫지 않은 건지 처음에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이내 한 쪽 무릎을 꿇고 높이를 맞춰주었다. 그의 손이 내게 메어진 목도리 위쪽의 뒷 머리에 닿았다. 한갈래로 땋아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그는 다정하지만 끈기있게 내 입을 탐했다.


"잘생김이 묻었어..."


한참 후에 떨어진 것은 이쪽 골목으로 차가 들어오며 라이트가 비춰진 후 였다. 밝은 빛이 정신을 들게 하고, 멋쩍고 부끄러워서 그렇게 변명했다.


"응? 나 잘 생겼어요?"


"응..."


눈썹은 짙은 편이고, 적당히 큰눈에약간 긴 눈꼬리. 그리고 오똑한 코와 약간 도톰하고 푹신한 입술이 정말 내 취향이었다. 그리고 그 감촉과 피부가 정말 중독성 있었다. 얘는 왜 자기가 잘 생겼다는걸 모를까.


"고마워요. 선배도 엄청 예뻐요."


"고마워. 갈까?"


손을 잡았다. 밤 길이 어둡지만 그의 손은 따뜻했고, 옷 주머니 안에 있던 기자재는 까칠했지만 익숙했다. 물론 어두운 길로 갈 필요도 없고, 그럴 일도 없겠지만 이렇게 같이 있으면 어디로 가든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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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은 괜찮으려나. 어쨌든 여기에서 많이 힐링받고 간다... 요즘 회사다 뭐다 해서 정말 시달리는데, 그나마 여기 보면서 힐링하고 있어. 정말 고마워.


글 쓰는 것 중에 군데군데 뜯어서 힐링 할 수 있게 일조하려고 함...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음.


이하는 광고.


https://novelpia.com/novel/32298

- 차가운 심장에 불꽃이 쏟아질 때. 순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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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와 그의 사이는. 성인 + 순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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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녀의 여행길. 판타지.


p.s : 내 필체가 심하게 여성향이라는 피드백을 받아서 혼란스러운 중. 혹시 마음에 들면 맞는지 아닌지 확인 부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