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어두워지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집 청소가 끝났다. 창문을 다시 끼우고, 건조대에 침대 시트와 이블, 배게를 널고, 테이블을 다시 방 안으로 가져오고... 여러가지 중노동을 한 끝에 드디어 집이 좀 사람이 사는 것 처럼 개선되었다. 뭔가 후련하거나 보람되기 보다는 이제야 끝났다는 느낌이 강했다. 와, 내 원룸보다 작은 곳인데 저녁도 안 먹고 해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힘들었어. 차라리 이사를 다시 가는게 싸지 않을까.


"고생했어요. 고마워요 선배."


진호는 기특하게도 쓰레기 봉투를 내놓고 오면서 음료수를 사서 건네주었다. 나는 한겨울인데도 땀으로 흠뻑 젖은 옷을 펄럭거리며 음료수를 받았다.


"너도 고생했어. 눈 빨갛다. 울었어?"


별 이상한 여자에게 시달려서 이 고생을 하고 있다 보면 서러울 것 같긴 한데, 울 정도였어?


"선배도 빨개요. 소화기가 미세입자라 그런 것 같아요."


보안경을 쓰고 하려고 했었지만 계속 안경에 김이 서려서 그냥 벗고 했었다. 그 사이 분말이 눈에 들어간 걸까.


"근데 침대는... 시트가 없으니까 여기서 자는 건 무리려나? 괜찮겠어?"


"아, 바닥에서 자면 돼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 세탁소에서 가져온 건조된 빨랫감을 개키는 진호의 태도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이상한 애랑 사귀면서 계속 바닥에서 잤을텐데, 헤어진 이후에도 다시 바닥에서 자야하는 거잖아. 그냥 나한테 하루 더 재워달라고 부탁하면 될텐데. 나한테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라 표정을 잘 살필 수 없지만 딱히 좋은 표정은 아니겠지.


"일단 그 문제는 조금 이따가 생각해보기로 하고... 밥 어떻게 할까?"


창문에 달린 커튼을 내리며 말했다. 좀 씻어야 할 것 같네.


"선배 드시고 싶은 걸로 먹어요. 비싼걸로. 제가 살게요."


비싼 건 무슨... 며칠 전에 레스토랑 갔을 때도 돈 엄청 써놓고. 그리고 며칠동안 선배가 되어서 얻어먹기만 하고 사주지를 못한 것 같은데. 주문했던 보쌈은 다 상해서 버려야 했고...


"씻고... 옷 좀 빌려줘. 이번에는 내가 살게."


"아니에요. 제 집 청소하는데 선배가 와서 도와줬는데. 선배 없었으면 내일까지 해야 했을 거에요."


"그래도 너한테 얻어먹기만 했잖아."


그렇게 말하고 진호에게 등을 돌리고 티셔츠를 벗었다. 가슴이 콤플렉스라 보여주는게 좀 민망하네.


"저도 선배 먹..."


응? 왜 말하다 말아? 하고 뒤를 돌아보았더니 진호가 등 뒤로 나를 돌아보고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야한 농담으로 나 부끄럽게 하려고 했어?"


피식 웃으면서 진호를 보았는데, 얘 진짜 고장났나 싶을 정도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옷 떨어진다. 정신 차리렴.


"봐, 봐서 미안해요."


후다닥 앞을 보면서 옷을 정리하는 자세로 돌아간 진호가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아유 귀여워라.


"흐음."


맨날 자기만 부끄러워해서 샘통이 났나? 어쨌든 귀엽네. 귀까지 새빨개져서 당근 같아.


풀던 속옷을 마저 풀고 상체에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채로 앉은 진호의 뒤로 다가가서 목에 팔을 살짝 감았다. 깜짝 놀랐는지 어깨에 팔이 스치자 앉은 자리에서 살짝 위로 튀어올랐다. 


"고양이 같아."


그리고 몸을 기울여 그의 등에 몸을 밀착시키고 귓가에 바람을 넣었다. 혹시라도, 소화기 분진이 남아 있어서 잘 못 들을까봐. 와, 목이랑 귀 근처에 소름 돋았어. 귀여워라.


"보고 싶으면 봐도 돼."


몸이 한층 더 굳어졌다. 몸을 비틀어서 떼어놓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섣불리 움직이면 내가 다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몸부림에는 별 힘이 안 들어가 있었다.


"왜 그렇게 긴장했어?"


왼손만 살짝 풀고 목 선을 지나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한층 더 몸이 딱딱하게 경직되더니 빨랫감을 잡고 있던 손에서 티셔츠가 툭 떨어졌다. 그 사이 나는 손을 더 움직여서 그가 민감하게 느끼는 곳으로 도착했다. 어찌할 줄 모르겠는지 눈으로는 계속 좌우를 살피고, 몸의 모든 동작이 뻣뻣해졌다.


귀엽다고 하고 싶었는데 남자한테 그런 말 하면 반쯤 욕으로 받아들일수도 있으니까 일단 가만히 두었다. 대신 귀 아래 부분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네가 보는 건 기분 안 나빠."


그렇게 말하고 피식 웃으면서 떨어졌다. 진호는 내가 떨어지고 나서도 빨개진 귀가 잘 가라앉지 않았다.


"나 씻어도 돼?"


"네, 네. 그럼요."


대답이 굉장히 빠르게, 여러번 반복해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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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순애에 들어가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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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ovelpia.com/novel/56024 - 본문 내용은 앞으로 있을 전개 일부를 잘라내서 올렸습니다. 22금. 고수위 주의.

https://novelpia.com/novel/43093 - 몽환적인 판타지입니다. 주인공이 병풍이 되는... 신기한... 아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https://novelpia.com/novel/43092 - 근 미래 도시 판타지입니다. 폭력, 고어요소가 있습니다.


https://novelpia.com/novel/32298 - 완결난 로맨스 소설입니다. 순애입니다. 봐주세요. 공짜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