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알약 따위가 나를 발정시킬 수 있단 말이냐?" 



나는 움츠러들었다. 너무나 거침없는 한 마디다. 그러나 내 앞에 있는 이가 누구인지를 감안한다면 전혀 놀랍지 않은 일이었다.


지지 않는 태양.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자. 용과 천사의 피를 동시에 물려받은 제국의 절대자. 황제.



"폐하. 말씀을 조심해 주소서. 폐하께선 온 제국의 정점이자 얼굴과도 같은 분. 제국의 어버이께서 하는 양을 보고 백성들이 동요할까 걱정입니다."



그 말대로였다. 황제를 살아있는 신으로 모시는 제국의 신민들이 방금 그 말을 들으면 얼마나 까무러치겠나.  



"하. 거 까다롭구나. 네 말대로 본녀가 이 제국의 정점이다. 감히 누가 본녀를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겠는가? 본녀의 언행을 평하기 전에 너 자신의 것부터 판가름하는 것이 옳다."



황제가 투덜대듯 말했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황궁의 수많은 장식들보다도 밝게 빛났는데, 나는 무심결에 그 색이 장미꽃이 가장 아름다울 때 피어내는 빛깔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황공합니다. 하나, 저는 오직 제국에 대한 충심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쓰디쓴 약이 건강에 좋다는 격언을 생각해 주소서."



나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동작은 절도있게, 그러나 비굴하지 않도록. 이 세계로 떨어진 이래 제국의 신하로 지내는 동안 나를 늘 지탱해온 습관은 지금도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제국이 곧 본녀며, 본녀가 곧 제국이로다. 네가 제국을 진정 걱정한다면, 본녀를 이렇게 실망시켜야 쓰겠느냐?



"송구합니다."



"그놈의 송구, 황공. 이제 지겹지도 않더냐? 10년 째 비슷한 말만 듣는 본녀의 입장도 생각하거라."



"시정하겠습니다."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옮기거라. 다른 일은 그리 빠릿빠릿하게 처리하면서, 어찌 황제의 명에는 이리도 굼뜬가?"



황제는 옥좌에 앉아 오른손으로 알약을 매만지는 채로 나와 눈을 맞췄다. 세로로 찢어진 황제의 동공이 내 눈을 넘어 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것만 같다. 



"알겠습니다. 폐하. 허나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약인줄 아뢰오. 속히 그것부터 처리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아무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말을 받았다. 침묵은 좋지 않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빠르게 말하는 게 정답은 아니다. 자연스럽게. 찔리는 게 없는 것처럼.  



"고얀 놈. 말 돌리기 하나는 제국에서 네놈이 제일이다. 그래, 이게 멸망한 왕국에서 만들어 낸 최후의 발악이다 이거냐?"



잘 넘어간 것 같다. 다행이다.



"예. 암흑계의 악마를 통해 얻어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나이다. 제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그 누구도 발정시키며, 복용 후 성관계를 가지지 않을 경우 복용자의 영혼을 소멸시키는 약이라 하였습니다. 게다가 더욱 악질인 것은, 관계를 해도 복용자의 영혼을 관계를 가진 상대방에게로 종속시킨다는 점입니다."



"흐음..."



황제는 손가락 사이로 알약을 굴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게, 어릴 적부터 보아온 그녀의 못된 버릇이 또 다시 나오려는 것 같았다. 못된 장난기. 매번 죽어나가는 것은 나를 비롯한 충신들 뿐이었다.



"대법관."



황제가 어딘가 장난기가 서린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왜 바로 앞에 있는 나를 다시 부른단 말인가. 불안하다.



"예. 황제 폐하."



황제가 졸곧 손에서 놀리던 알약을 엄지손가락과 검지손가락으로 잡았다. 제발. 별 일 없겠지?



"본녀 믿지?"



"예?"



말릴 새도 없이, 황제는 알약을 입가로 옮기더니 이내 꿀꺽- 하고 삼켜버렸다.



"이제 누군가는 본녀를 책임져야겠군."



원글


씻팔 개꼴리네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