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트웬티 파이브즈 결성!:

https://arca.live/b/lovelove/43770902

발렌타인 데이 썰:

https://arca.live/b/lovelove/45304603

어느 비 오는 날 당직 썰:

https://arca.live/b/lovelove/47124623

오순도순 추억여행 썰:

https://arca.live/b/lovelove/47688930? 

벚꽃놀이 + 토익 외출 썰:

https://arca.live/b/lovelove/48099412


지난 이야기:

대충 벚꽃놀이 하고(현생) 토익셤 픽업 핑계로 둘이 같이 놀러다녔다는 내용(과거). 끗.


또 한달만에 쓰게 됐네! 어린이날이 껴서 일처리가 좀 딜레이 된게 있어가지구 이번 주말은 내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작업했던거 같아 


시발


요즘 들어서 드는 생각인데, 나 스스로가 뛰어난 인재라고는 생각하진 않지만 평균 이상은 하는거 같아.

그게 아니면 내 파견지 사람들이 싹다 병신이거나 아하하핳


요즘엔 순챈에서 추천받은 스파팸 보고 있는데 너무 재밌더라 ㅎㅎ 살짝 옛날에 본 몬타나 존스 느낌두 나구 

이번에 적어볼 얘기는 여태 이야기들 중 가장 최신거야. 말년 병장 때 이야기거든. 전역 딱 3주 앞두고 ㅋㅋ

요때는 기억이 가장 선명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말년이다 보니 부대 사람들 대하는 여유가 있던 시기라 많이 느긋해져 있었던거 같아!

 

-

마지막 단결활동이었어.


준비 다 끝났을 때 나는 적당히 구석 자리로 가려는데 후임 아가들이 자꾸 중앙에서 같이 먹자고 해서 좀 짜증났었음 ㅋㅋ; 

라떼는 하늘같은 병장한텐 말도 못걸었는데 말이야.

근데 다행이도 이젠 진짜 일심동체인 루다 누나가 슬쩍 오더니 나랑 우리 소대로 자대배치 받은지 딱 10일째인 애 데리고 구석자리로 데려가주더라. 노익장들이 신병 교육 해주겠다는 핑계 대면서.

으음... 케쟝 콘


암튼 우리도 간부들도 다 편한 활동복, 트레이닝복 차림이었고 화기애애 하게 분위기 무르익어 갔음. 그리고 장기자랑이랑 겜 몇판 하면서 절정에 달하니까 행보관이 시기적절하게 술 풀더라. 루다도 차 안가져왔다고 맥주 몇캔 까기도 하고, 원랜 인당 소주1병 맥주 2캔 지켰어야 했는데 루다가 슬쩍 소주병 교체 신공해서 진짜 물마시듯이 퍼마시면서 우리 테이블은 분위기 넘모 조와짐 ㅋㅋㅋ


고기 구운 철판에 볶음밥 해먹는다는데 좀 분위기가 프리해져서 나랑 루다는 단결 자리에서 나와서 막사 옥상에 올라가서 바람 쐬기로 해씀

보라색 저녁 노을이 슬슬 사라지고 있을 시간이라 분위기가 있더라.

연병장에는 다른 중대 아저씨들이 축구랑 풋살하는 소리가 아련아련 올라오고, 저 멀리 산쪽 도로에는 시내로 들어갔다 나오는 차들이 빼꼼빼꼼 보이구.


내가 이제 너랑도 마지막 단결활동이네 하고 슬쩍 운을 떼니까 누나도 그러네. 시간 너무 빠르다. 하면서 서로 평소보다 좀 더 깊은 얘길 나눴음

그러다보니 서로 언제 좋아하게 됐는지로 주제가 넘어가게 된거야.

그래도 우리끼리 나름 단둘이 스무스하게 암묵적인 애정행각(?)은 마구 벌였어도 이렇게 막 직접적인 말로 고백 한적은 없었는데, 역시 알코올이 만드는 파워가 있긴 한가봐.


난 솔직하게 거의 처음 보자마자 관심 갔다고 말해줬어. 단둘이 면담 하고 그러면서 끌렸으니까

근데 누나는 그게 아니었나봐. 얘는~ 너 그러다가 밖에 나가면 여우들한테 코 꿰인다?이러면서 자긴 일평생 단 한번도 금사빠 된 적 없다고 자랑스러워하더라ㅋㅋ;  그러면서 하는 말이


맞춰봐

뭘?

지금 내가 손가락 몇~개 숨기고 있을까요?

또 루다식 저세상 화법 하네;

아 너한테 반한 이유 몇개일거 같냐고 ㅋㅋㅋ


이래가지고 자신있게 발가락 포함해서 스무개? 이랬다가 네 얼굴이 고수님 급이었으면 그랬을지도? 라는 말 듣고 좀 내상입음

암튼 업다운 해서 세개인거 맞췄어. 내가 와 세개나? 해주니까 왠지 모르게 뿌듯해하더라. 뭔데 기분 좋아보이냐 갑자기 하고 물어보니

"네가 날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널 세배는 더 좋아하니까."


곧 민간인 되니까 노리미트로 마구 걸어오더라. 어 아니다 평소에도 걍 이런 사람임.

진짜 귀여움의 화신이라 해도 부족한 그런 고맙고 예쁜 사람.


암튼 다음은 루다가 나한테 말해준 반한 이유 세개:


1. 주임원사한테 질낮은 농담 들은것 위로해준거

내가 일병 1호봉 개쫨찌 불침번 서는 날이었어. 루다가 당직이었는데, 루다는 불침번 애를 행정반에 불러서 당직병이랑 셋이서 같이 간식도 나눠먹고 수다도 떠는 평소 성격대로 편한 당직사관이었음. 그런데 당시 나는 개짬찌라 혹시라도 당직사령한테 들키면 어떡하지? 하고 가시방석이여가지구 먹는둥 마는둥 하고선 다시 불침번 자리로 나왔음. 그땐 루다도 그러는 날 붙잡진 않았고


근데 아니나 다를까 전투화 소리가 들려서 뒤돌아 보니까 간부가 올라오는거야. 근데 당직사령은 아니고 늙다리 주임원사였음. 이 양반 군번이 들리기로는 80번대 였나... 대대장 짬도 씹어먹는 우리 대대 최고의 포식자였음. 내 경례는 잘 받아줬는데 문제는 행정반에 들어가서 도통 나올 생각을 안하드라


늙탱이 영감 대체 뭐하노 내도 기 빨린다 하고 슬쩍 들여다보는데 의자 끌고와서 루다랑 마주보고 앉아서 호구조사하고 있더라. 

나이는 몇이냐 남자친구는 있냐 김루다 중사 요즘 애들 답지 않게 성실하고 참 예쁘다 결혼은 언제할 생각이냐 요즘 애 키우기 힘들다는데 그래도 나라에서 지원 많이해준다 등등등




물론 이정도 느낌은 아니었는데 했던말 하고 또 하고 그쪽 주제로 집요하게 물어봐서 보는 내가 다 불쾌 했었음.

저 나이대 양반들 패시브라고 생각해도 그때나 지금이나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거잖아.


불침번 철수하고 누워서 자려는데 계속 그 생각이 떠나지 않더라.

그땐 나도 내가 왜 그랬던건지 딱히 생각을 안했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누나를 많이 좋아해서 그랬던거 같애.


그날 아침 일과 시작하고 당직 철수하려는 누나가 나한테 오늘 정찰병 일과 할꺼 이것저것 당부하면서 누구보다 빠르게 칼퇴 가려는데

내가 주차장에 이어진 출입문까지 배웅하면서 레몬맛 사탕 손에 쥐어주곤 이렇게 말했대.


"루 중사님. 이거 드시면서 퇴근하세요.

어제 주임원사님이 별로 좋은 소리는 안하시던데, 먹으시면 기분 좀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서."


1년 전이라 난 솔직히 기억 잘안났음 루다 피셜임 ㅋㅋ

일단 누나야 엄청 좋아하면서 받아갔어 자긴 기분 안나빴다 뭘 이런걸 준비했어~ 하면서.


이게 나도 그렇게 인상깊었던 일은 아니라서 일기장 들춰보니까 

'오늘 새벽 불침번 3번초. ㅈㅇㅇㅅ 리젠. 루중사랑 xx상병이 있는 행정반에서 진짜 오질나게 버로우 박더라. 개피곤해서 벽에 기대고 싶었는데 좆같다. 도대체 평소엔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오밤중에도 도움 안되는 새끼 수준. 루중사님께 묘하게 기분 나쁜 말들 늘여놔서 내가 다 미안해지더라. 아침에 레몬맛 사탕을 건네줬다. 힘내세요.'


일케 딱 두줄 적혀있던데 얜 그게 마음에 남았었나봐.

자긴 그때 당직 서느라 피곤하기도 하고, 사실 몇달 뒤면 삼십줄이기도 하고 까마득한 상급자한테 일방적으로 그런 말 들어서 무척 기분이 안좋았었대.

근데 부하한테 약한 모습 보이긴 싫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한거였는데, 속으로는 부대 돌아가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까까머리 애가 위로라고 해주니까 신기하게도 마음이 괜찮아졌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긴 나한테 사탕 받은거 아직도 포장지를 갖고 있다드라. 자기 다이어리에 끼어놨다고.

이때 또 사랑스러움 +1000 포인트 상승해서 껴안아주고 싶은거 꾹꾹 참음



2.

사탕 이벤트가 있기 전에는 '나랑 나이대도 비슷한 편이라 말 잘통하고, 일 열심히 하고, 신병답지 않게 침착하니 좀 지켜보고 분대장 시키면 잘할지도 모르는 아이' 정도였는데 사탕 받고 나선 다른 선임 애들 보다도 눈에 더 갔다고 하더라.

자기야 뭐 예쁘니까 선물 많이 받긴 하는데 그런식으로 병사한테 위로 받은건 처음이었다고


달달허니 잘 듣고 있다가 이때 표정 개정색 하고 '진심임? 와 얼척없네.' 했다가 꼬집당함 ㅋㅋㅋㅋㅋ


둘째는 누나의 이상형이랑 약간 관련된 거드라.

당시 중머장이 요즘 부대 내 분위기 흉흉하니(사실 이 적폐 부대 흉흉하지 않은적이 없었다 복무하는 내내) 분위기 풀어주는겸 마니또 이벤트를 벌였음. 근데 간부를 곁들인

뭔 얼어죽을 마니또야 하면서 다들 걍 대충 뽑고 병사들끼리만 서로 좀 챙기고 병사-간부나 간부-병사 사이에서는 진짜 개냉랭하게 아무것도 안오갔는데

나는 이름표 꺼내보니까 루다 이름이 떡 하니 나오더라고


병사야 px에서 냉동이나 사주면 만사 ok이지만 아니 맘대로 외출도 못하는 병사가 간부쉐리한테 뭘 주겠어

나야 물론 루다 많이 좋아하기는 했는데... 밖이었으면 적당히 싼 악세사리라도 사줄텐데 ㄹㅇ 줄게 없어서 걍 비타민 음료나 책상에 올려놓기로 햇다.


햇는데 에 근데 막상 또 그거만 주려니까 내 존심(?)이 허락하지 않더라 


대한의 마지막 휴머니스트 박순수, 단 한번이라도 설령 마음에 없는 여인이라도 선물을 주고 받음에 있어 가벼이 여긴적이 없거늘...

고민하다가 힘이 될만한 글귀라도 적어주자고 생각이 닿더라.

직장 생활은 좆같은거고 군대는 더 그러니까 응원 받으면 그래도 아무리 병사한테 받은거라지만 기분 필 쏘 굿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


그때 적은게 요거야. 나름 예쁘게 쓰려고 일기장에 프로토타입이 많이 적어놨었으 ㅋㅋ


사람의 삶은 시가 아닐까요

운율이 있고 높낮이가 있고 시작과 끝이 있네요. 


그러니 루다 중사님의 군인으로서의 삶도 아름다운 시일게 분명해요.

왜냐면 당신께선 이미 아름다운 사람이니까.

이렇게 만나서, 루다 중사님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 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겨울에는 더 친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년엔 더 웃어주세요.

감사합니다.


루다가 가끔 자기 취향 말할 때 좋아하는 사람 1순위가 말 잘하는 재밌는 사람이고 2순위가 책 많이 읽은 똑똑한 사람이었어

자기 부족한걸 채워줄 사람 만나야한다고 ㅋㅋ;


이거 받고선 말 그대로 날아가듯이 기뻤고 준 사람이 (이게 간부일리는 없으니까)병사인데도 잠깐이지만 얼굴 화끈거리고 심장이 콩닥콩닥 거렸대 ㅋㅋㅋ  대체 누가 준걸까 일주일 내내 진짜 호두 굴리면서 열심히 추리를 했다고

나중에 마니또 이벤트 정산때 나인건 못맞추고 다른 선임 지목하긴 했지만...


내 한평생 누군가에게 이런 글 같은거 잘 써본적은 없거든? 좀 오글거리잖아

근데 루다가 많이 좋아해줬고 이번에 말하기 전에도 종종 말한적 있어서 나도 학창시절때 쪽지접기 있잖아? 그거 기억 더듬어서 예토전생시켜서 당직일 때 읽고 힘내라고 많이 써서 건네줬었어. 그것들도 안버리고 한보따리 조그만 상자에 넣어놨다고 하더라. 


3.

마지막건 내가 따로 말해줄게 없어! 왜냐면 이미 설명한 거거든 


발렌타인 데이 썰:

https://arca.live/b/lovelove/45304603


요거 보믄 됨! 난 이게 처음으루 나올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지막이더라. 

사탕 + 편지 콤보로 내가 얘 좋아하나? 그냥 호감이 좀 많이 가는 사람일 뿐인건가? 였는데 생일 선물 받고선 좋아하는 자기자신 보고 '내가 순수를 많이 좋아하고 있구나' 알게됐다고.


박순수 입덕부정기... 를 겪고 있었는데 득도하고 그때부턴 걍 쿨하게 솔직담백하게 대하자고 마음먹었었대.

이 누나가 좀 너무 많이 솔직하게 대해서 나는 거의 리드도 못해보고 괜히 혼자서 존나 오랫동안 쭈그러진채로 있던 부작용이 있지만? 뭐 좋은게 좋은거니까?


서로 다 털어놓구 우리 루다 문학소녀였네 왜 진작에 안털어놨었어 꿀잼인데 하고 놀리니까 자긴 취한거다, 오늘 집 가서 자면 싹다 잊을거다 그러니까 브로도 잊어라 이러더라 ㅋㅋㅋㅋ 루다 매력포인트가 이런거임 평소엔 완전 호쾌 대장부 여걸인데 가끔씩 예상 못한곳에서 부끄러워 하는거.


-

이야 쓰다보니 벌써 새벽 한시가 됐네

그런데 이런 썰들 풀면서 옛날 일기장도 뒤져보고, 누나랑 추억이 있는 물건들 있으면 한번 체크해보고 그러니까 나도 썰 푸는거 자체가 재밌더라.

순붕이들 재밌게 읽었다면 고맙고, 다음 일주일도 힘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