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은 선선한 편에 속했다. 봄과 여름의 사이, 그 중간이었다. 휴일의 오후에 하린은 길거리를 걷고 있었다. 강 특유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이 곳은 한강 대교의 아래 편이었다. 하늘은 이미 붉게 물들은 채였다.

 저 멀리서 신나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강에서는 불꽃놀이가 있었다. 매년 초여름이면 열리는 행사였다. 그러나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오는 것은 엄두도 못 냈던 때가 있었고, 그런 것은 존재도 못했으며, 대학 입시로 바빴던 때도 있었다. 그 이후로도 그런 것에 관심은 없었다. 이번에 온 것은 약속 때문이다. 그 전에는 있지도 않았던 종류의 약속이었다.


"하린 오빠? 벌써 왔네요."

"방금 도착했어."


 하린은 도아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따라 손을 흔든 도아는 하린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뺨이 연하게 붉어진 상태였다. 도아의 표현방식은 그랬다. 몇몇만 아는 것으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특징적인 반응이었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도아의 얼굴은 붉어진다. 도아는 불꽃놀이를 좋아했다. 이곳에 나온 것도 도아의 부탁 때문이었다.


"자리는 잡아 놨어요. 1시간 뒤면 시작하니까, 빨리 가요. 밥은 거기 가서 사먹고요."


 하린은 도아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도아는 손을 잡은 채로 뛰었다. 불꽃놀이는 시작도 안 했는 데 들떴는 지 발걸음이 빨랐다. 부는 상쾌한 바람에 잡은 손이 덥지는 않았다. 그저 흥겹게 들뜬 분위기를 따라 갈 수가 있었다. 하린은 도아와 손을 잡고서 빠르게 뛰었다. 자주 있던 일이라 따라가는 것이 어렵지 않았는 데, 여름의 날이라는 것 마저 익숙했다. 여름 날에는 계절에 반항이라도 하듯 뛰어다녔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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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과 맞닿은 공원에는 사람이 많았다. 즐거운 음악이 곳곳에서 들렸다. 축제의 열기는 여름의 것보다도 더웠다. 하린은 여전히 도아와 손을 잡은 채로 걸었다.

 부는 바람에 가로수의 가지들이 흔들렸다. 싱그러운 잎사귀가 흩날리면서 다른 것들도 동시에 흩날렸다. 바로 옆에서는 청량한 향이 났는 데, 푸르면서도 청량한 여름의 향이었다. 새삼스럽게 여름이라는 것이 실감났다.

 그러나 아직 선선함은 가시지 않았다. 늦봄이면서 여름이었다. 그것을 초여름으로 불렀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음식 냄새가 퍼져나갔다. 행사가 있는 날에서는 온갖 푸드 트럭들이 몰려오는 것이 당연했다. 없을 음식이란 당연하게도 없었다.


"뭐 사먹을까?"

"큐브 스테이크 사먹는 건 어때요? 저 쪽에 있어요. 돈은 제가 낼 건데."

"맛있겠네. 근데 돈은 내가 낼..."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도아는 푸드 트럭의 앞에 서 있었다. 그러고서는 두 사람 분의 음식을 들고 왔다.


"받아요. 이건 오빠 꺼 에요."

"...돈은 내가 내려고 했는 데 벌써 갔다 왔네."

"오늘은 제가 살게요. 같이 와달라 해서 나온건데 이런 것도 안 하면 안 되잖아요."

"고마워."


 받아들은 음식에서는 김이 오르고 있었다. 도아의 뺨에 띈 홍조가 더 붉어졌다 옅어졌다. 조금은 더워졌다. 그러나 해가 져가면서 더위가 식었다. 해질녁의 두 손에는 이벤트로 얻은 인형들도 들려 있었다.

 해가 지평선 아래로 내려가면서 하늘이 어두워졌다. 하린과 도아는 공원에 앉아 있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처음으로 보는 불꽃놀이였다. 신나는 음악이 소리를 높였다.

 하린은 스테이크를 몇 개 집어 먹었다. 꽤 맛있었다. 그러나 평소보다 더 맛있었던 것은 옆에 도아가 있는 것 때문일 것이다. 편안함이 그 이유다. 도아와 있을 때에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낯 부끄러운 그런 말이 아니라 즐기는 것을 더 즐길 수 있었다는 뜻이다.

 도아는 하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풍선 다트로 얻은 인형을 뱅글뱅글 돌리고 있었다.


"하린 오빠, 오늘 좋았어요? 짧긴 하지만 그래도염."

"당연히, 좋았지."

"...다행이네요."


 도아는 계속 인형을 돌렸다. 그러다 한강을 바라봤다. 정 반대편을 바라보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행사의 열기는 달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도아의 홍조가 더 붉어졌다. 불꽇놀이를 정말로 좋아하구나라고 하린은 생각했다. 흥겨운 분위기는 공원 전체에 퍼졌다. 하늘은 까맣게 물들었다. 곧 불꽃놀이가 시작 될 시간이었다.


"카운트 다운! 10! 9! 8..."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몇 초가 지나면 불꽃놀이의 시작이다. 신나는 분위기는 정점을 찍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소리가 들렸다.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떠들고 있었다.

 하린은 옆을 돌아봤다. 들뜬 것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다. 그러나 도아는 들떠있지 않았다. 약간은 긴장한 채였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도아가 먼저 시선을 마주했다. 그럼에도 홍조는 여전히 띄워져 있었다. 아니 더욱 붉었다.


"...오빠, 내가 오빠 좋아한다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어, 어?"


 하린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붉은 색 홍조만이 눈 앞에서 어른거렸다. 그것은 과거면서도 현재였다. 도아가 앞에서 붉은 얼굴을 하고 있던 것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가 도아를 볼 때면. 언제나도.


"5! 4! 3..."


"저 오빠 좋아해요."


"1!"


 불꽃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초여름의 바람이 불었다.

 약간은 후덥지근한, 무언가 달아오르는 듯한.

 그런 바람이 불었다. 하린의 얼굴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러면서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하린은 도아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너무나도 더웠다. 초여름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더웠다.

 그러나 곧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천천히 찾아오는 초여름처럼, 그렇게.

 시작이라고 밖에 할 수 없겠지만, 분명히도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