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년 전 갑작스레 미궁이 생성된 이후로, 미궁 속 마석, 고문서 등은 많은 사람들과 이종족에게 기회의 땅으로 알려졌다.


"꺄악!"


"이봐, 지금 몸에 달고 있는 것들만 준다면 죽이진 않겠다. 그래도 목은 붙어있는게 낫지 않겠어?"


하지만 그 누구도 보지 않는 미궁 속에선, 어떠한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갑자기 떨어진 몬스터에게 잘근잘근 씹힌다거나, 그 이상도 얼마든지.


"형님, 이거 값이 깨나 될 것 같은데 저희가 잡을 수 있을까요?"


"걱정 할 필요 없다. 엊그제부터 감시를 붙여놨었는데, 기껏해야 7등급 수준이다. 


후환이 없기 때문에 약탈도 비일비재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죽이거나 약탈을 하기 전 위장을 하는 정도.


"괜히 나대지만 말고 잘 붙잡아둬라."


"그래도 얼굴은 반반한데, 일단 다 뺏고 재미 좀 봐도 되겠습니까?"


"맘대로."


타앗.


약탈자 무리가 일제히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오늘 날 잡았다!"

"저 장비 봐라, 하나에 5천 마르크는 하겠는데?"


대부분은 그녀의 장비를 탐냈고, 누군가는 그녀의 몸을 탐냈다.


'...하 X발. 이래서 약탈자 사냥은 하는게 아니었는데. 그놈의 돈만 아니면. 일단 녹음은 다 했고..'



약탈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약탈은 돈이 된다. 미궁에서 온종일 몬스터를 잡는 건 고되지만, 사람 한 명을 죽이는 게 몬스터 수십마리를 잡는 것 보다 많은 전리품을 챙길 수 있다. 


한 번 이런 쾌감을 느낀 약탈자들은, 더이상 몬스터를 사냥하지 않는다. 사람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럼 이제...'


반격하기 위한 영창을 하는 도중, 그녀는 갑자기 울린 땅과 소리에 깜짝 놀랐다.


"이봐 인간! 약한 인간을 여럿이서 괴롭히는 건 못된 짓이다!"


어딘가에서 어떤 거인이 뛰어내렸다.


"뭐야 이 X끼는?"

"걸어다니는 보물상자가 제발로 기어들어왔네!"


바바리안.

그 2m쯤 되는 것 같은 커다란 체구의 거인은 아마도 바바리안이다. 하지만 바바리안은 지능이 통상적으로 낮은 편이며, 약탈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종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간과했다.


채앵, 푹, 푸욱.


막다른 길에서, 육체 하나만큼은 강력한 바바리안이 사정없이 단도로 약탈자들을 찔렀다. 그녀 또한 마법을 시전해 보조 해 주었다.


"♤Do£o€¤◇¤[haste]"


"어라? 몸이 가벼워졌다! 고맙다!"


"♡S£o£DaKA[fireball]"


약탈자를 향해 작은 화염 구체가 적중했다.


"으아악!"


슥, 서걱, 푸욱-.


검을 휘두를 때 마다 약탈자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바바리안은 검을 휘두르다 바닥에 내려놓고,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놈을 패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봐!! 잠시만, 대화를..."

"흐아아아압!"


바바리안이 끼어들고, 전투는 빠르게 끝났다.


"죽었나, 인간?"

"그렇게 팼는데 죽지 않은게 더 이상하죠."

"살아 있다는 거냐?"

"...죽었어요."


그녀는 '바바리안에게는 말을 돌리지 말아야겠다...' 라며 내심 생각했다.


"그나저나 너같이 강한 바바리안이 왜 여기서 머물고 있던 건가요?"

"저들은 나쁜 인간이다. 저들이 몇일 전 내 배낭을 훔쳐가서 길을 잃었다! 게다가 날 죽이려고도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요?"

"그렇다..."


미궁은 길이 복잡해서, 특히 바바리안은 길 안내를 받거나 지도를 가지고 다녀야 했다. 미궁에 오랜 시간 머무를수록 피부가 썩어가며, 혼란을 느끼게 된다.


"네 이름이 뭔가 인간! 혼자 다니는 것 같은데 나랑 같이 가지 않겠나?"


"흐으음...잠시만 생각 좀 해볼게요."

"바바리안은 끈기가 좋으니 얼마든지 기다려 주겠다!"


그녀는 내심 고민했다.


'바바리안과...같이 다녀도 괜찮을까?'


바바리안이 걸어다니는 보물이라 불리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눈치를 잘 못 채며 거짓말도 철썩같이 믿는 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거짓말을 죄악으로 여기며, 성지에서도 무력만을 단련하기 때문에 대개 다른 종족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래도 오히려 바바리안이라면, 약탈자를 잘 유인할 수 있을거야, 잘 죽지도 않고.'


"좋아, 당분간은 같이 다녀줄게요."

"그럼 이제 동료인가, 고맙다 동료!"

"...."

"아 그나저나, 이름이 뭔가?"

"피에지."


그녀는 짧게 대답했다.


"나는 갤런트다. 잘 부탁한다, 피에지."


조금 불안하지만, 일단 동료가 되었다.


***


"어라? 혹시 그쪽도 탐사 중이신가? 형씨는 마석 많이 캐셨소?"

천연덕스럽지만, 뭔가 어색하게 말하며 한 탐험가가 갤런트에게 다가갔다. 

"반갑다 인간들! 이번에는 마석이 많이 나왔다."


바바리안의 솔직한 대답에, 탐험가들은 속으로 기뻐했다.


"혹시 마석을 좀만 나누어 줄 수 있소? 이 친구가 많이 다쳤는데, 포션을 만들 마석이 없소. 돌아가서 꼭 갚으리다."


"싫다! 이 마석을 돌아가서 다른 전사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그럼 어쩔 수 없구려. 대신 식사라도 한 끼 드릴테니, 그만큼만 주시오."


그들은 아쉬워하는 눈빛을 보였지만 다시 표정을 감추고 제안했다.


"밥! 좋다!" 짧게 대답했다.


바바리안은 온몸이 단단한 근육질이며, 종족 고유의 특성으로 인해 더욱 단단해 웬만한 사람은 바바리안을 죽이고 약탈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세간에 가장 많이 떠돌아다니는 방법은, 셈을 잘 못하는 것을 이용해 바가지를 씌우거나, 그들이 먹을 것에 정신이 팔린 사이 가방이나 보따리를 몰래 훔쳐가는 것이다.

그랬어야 할 터인데..

와구와구, 꺼어억.

"조금 더 없나? 돈은 주겠다."

"여...여기 있다."


겉보기에는 게걸스럽게 먹고 있지만, 계속 고개를 돌리며 경계하고 있다.


"왜 그리 고개를 돌리는 것이오?"

"미안하다, 누가 고기를 뺏어먹을 수도 있지 않나?"


뺏는다는 말에 조금 흠짓했지만, 한 마디 던지자 가만히 먹는 바바리안을 보고 탐험가들은 신호를 보냈다.


'슬슬 준비하자, 얘들아.'

'''넵!!'''


한 탐험가가 갤런트의 배낭을 가져가고, 탐험가 무리의 마법사가 공간 이동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때, 피에지가 갤런트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먹었다. 오늘 일은 잊지 않겠다!"

"아직 조금 남아있는데, 더 먹지 않는겐가?"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런데...내 배낭은 어디 있나? 혹시 훔쳐간 것인가? 너희들은 약탈자인가??"

"그건 오해...."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너희들은 나쁘다! 나의 배낭을 훔쳐가다니!!"

뒤이어 피에지가 블링크를 해제하며 등장했다.

"처음부터 노리고 접근해 온 거였군. 마법사, 준비는 아직인가?"

"지금부터 한 3분 정도..."


3분은 당황한 약탈자 무리를 모두 해치우기에 충분했다. 바바리안은 마법 공격엔 그다지 강하진 않지만, 마법사는 공간 이동 마법을 준비하면서 다른 마법을 시전할 수 없었기에, 마법사부터 해치운 후 다른 탐험가를 살해하였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한 후 미궁에서 빠져나왔다.


"미궁에서 이렇게 많은 마르크를 얻은 건 처음이다! 너는 천재인가 피에지?"

"갤런트 님이 연기를 잘 한 덕분이에요."

"그런데 이렇게 사람을 죽여도 되는 건가? 우리가 약탈을 했다고 의심받지는 않는 것인가?"

"얼마 전부터 이 마력 녹음기를 이용하고 약탈자만 죽이면,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법률이 개정되었어요."

"법률?"

"규칙이 바뀌었다는 거에요."


그녀는 본디 상인의 자녀로, 몇년 전 까지는 수준급의 마법을 배우며 자랐으나, 흔하다면 흔한 사업의 몰락으로 그녀는 어린 나이에 미궁에 들어갔다.


하지만 몬스터를 잡는 것 만으론 부채를 값을 수 없어, 마력 녹음기라는 물건을 사고 합법적으로 약탈자 사냥을 하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번 계획이 꽤나 좋았는데, 혹시 다음에도 같이...미궁에 들어갈 생각...없나요?"


약간 말을 더듬으며 그녀는 제안을 건냈다.


"물론이다, 피에지. 우리는 동료이지 않나!"


"...고마워요"


'이 바바리안은 무식하다기 보단 듬직하고, 얼굴도 생각보다...'


이 이후 몇달 정도 같이 탐사를 하며, 약탈자도 사냥하다 보니 어느새 마르크가 쌓였다. 빛은 모두 탕감하였고, 그녀의 표정에도 활력이 생겼다. 하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조금씩 들었던 감정은...점점 더 커져갔다.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람? 흐음...그래서. 연애 상담을 하고 싶다고?"


피에지는 유일한 옛 친구 코엘에게 찾아갔다.

"나는 아니고 내 친구 일인데... 좋아하는 남자가 있는데...그 남자가... 이종족, 바바리안이야. 근데...바바리안도 연애를...하나?"


"넌 옛날부터 맨날 집에 틀어박혀 책만 보더니, 이종족도 우리랑 다 똑같아. 뭐 무식하니 과격하니 이런건 다 옛말이고. 그나저나 바바리안은 25세 쯤 되면 성지에서 짝을 정해줘, 늦기전에 빨리 잡아라 피에지."


"아니 내가 아니라 내 친구!!"


"아 네~.믿어줄게. 믿고말고~"


피에지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빠르게 도망갔다.


'옛날부터 친구가 나말고 더 있었다고... 알아서 하려나? 조금 불안하네...책이라도 조금 보내줘야겠다. 그 바바리안이 누굴까...'


몇일 뒤


띵- 마력이 진동을 일으키며 귓가에 울렸다.


'누가 왔나..?'

철컥- 

그녀는 문을 열고 앞에 있던 갤런트와 조우했다.

"아침부터 여긴 무슨 일이에요? 그나저나 제가 집을 말했었나.."


"누가 이 책이랑 지도를 줬다. 대신 꼭 전해 달라고 했다!"


"일단 들어오세요."

그녀는 책을 건네받은 뒤, 갤런트를 집에 들이고 식사를 대접했다.


"피에지, 요리를 참 잘 한다! 고맙다."

"감사해요, 그나저나 갤런트 님은 나이가 몇인...가요?"

"저번에 말 안 했었나? 아마도...올해로 24세다!"

'휴, 아직 조금 남았네...'

"작게 말해서 잘 못 들었다! 다시 말해주라."

"아...아니에요 별 말 안했어요!"


식사를 먼저 마치곤 책을 하나하나 뜯어 보았다. 


'꼬리마저도 사랑스러운 나의 남편.'

'나의 커다란 야만인 친구.'

'전생에 연인이었던 엘프를 위해 환생했다.'

'수인 남자친구 뺏....' 바로 버렸다.


'얘는 왜 나에게 이걸 보냈지..? 들켰나? 설마? 그럴리가 없는데...'


어느새 내 뒤에서 갤런트가 책들을 보고 있었다.


"이건 무슨 책인가? 피에지."

"로맨스 소설이에요.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두근거리고, 보고도 바로 또 보고 싶은 그런 내용이 있는...책이에요."


"그런가? 나도 널 보면 두근거린다. 미궁에서 나오고도 또 보고 싶다. 나는 네가 좋다! 피에지."


갑작스런 그의 한마디에, 그녀는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으에?...어...으...아..."

"잘 못 들었나? 다시 말해주겠..."

"다 들었어요! 저...이만 나가...주세요!!"


그녀는 당황해서 말을 더듬으며 그를 내쫒듯이 밀어냈다. 잠시 후에, 자신의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과 후회가 밀려왔다.


'혹시 갤런트 님이 거절했다고 생각하고 가 버리면 어떡하지...그치만 바로 답하기엔 너무 부끄럽고... 아 그런데 다음에 얼굴을 어떻게...'


생각은 생각을 물고 늘어지며, 해가 떠오를 때 걱정과 애정도 같이 커져갔다.






+후반부부터 갑작스레 생각나서 역순으로 짜봤는데...아마도 많이 이상할 것 같은...

그래서그런지 순애물을 써 보려 했는데 판타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아무튼 여기까지 봐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