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생일날 저녁, 교차로의 놀이터에서 만난 그녀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외국 영화 속 사람들 같은, 이질적인 생김새와 금발 머리.


동화책 속에서 본 악마들처럼 머리 위에 돋아난, 날카로운 뿔 두 개.


그녀는 내가 자신을 인식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듯이, 인사를 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달콤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무섭지 않니? 그림책에서 본 악마들과 비슷할 텐데."


나는 멍하니 그녀의 얼굴을 응시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예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두렵다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나의 대답을 들은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은 후, 차갑고 부드러운 손으로 내 고사리 같은 손을 맞잡았다.


그녀가 손을 떼자, 수십 개가 넘는 사탕과 초콜릿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나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겠니?"


"-----------"


"만약 친구가 된다면, 나는 네게 한없이 달콤한 인생을 줄 거야. 원하는 모든 것을 줄 거야. 그리고, 언젠가는.........나 자신도."


"------------"


"그렇지만, 대가 없는 헌신은 없는 법이지. 약속해 줘. 너 역시 동등한 친구로서,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주겠다고."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하자, 그녀는 거세게 나를 포옹했다.


엄마의 품보다 더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과 몽환적인 안개의 냄새에, 나는 그녀에게 안긴 채로 깊은 잠에 빠져 버렸다.



........



그 이후로, 그녀는 내가 곤란한 상황을 겪을 때마다 시야의 구석에서 나타났다.


가족과 친구들은 그녀를 내 상상 속 친구라고 생각했다.


열세 살 무렵까지 그녀의 존재를 믿는 것을 멈추지 않자, 그들은 나를 의사에게 데려갔다.


나는 의사의 진단에 따라 입원했지만, 일주일 만에 병원에서 나왔다.


그 의사가 교차로 근처의 열차 선로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을 들은 것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지난 이후였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있다면, 언제나 나를 부르렴. 나는 언제나 너만의 것이니까."



우산을 깜빡해 비를 맞으면서 집으로 가던 날, 


오른손에 검은 우산을 들고 나타난 그녀는 한없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



"누나는 어째서 외톨이인 거야? 친구, 없어?"


"푸흡!!"



그녀는 목에 아이스크림이 걸린 것처럼, 한참 동안 마구 기침을 하다가 간신히 그것을 뱉어낸다.


가까스로 호흡을 다듬은 그녀는, 억지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시 나를 응시한다.



"일부러 사람들에게 모습을 숨기는 거야."


"왜?"


"누나의 진짜 얼굴을 보면, 다들 무서운 일을 겪거든. 특히 어른들은."


"어떤 무서운 일을 겪는다는 거야?"


"........."



그녀는 대답 대신, 말없이 두 갈래로 갈라진 길고 유연한 혀로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핥았다.



"사람 친구를 못 사귀면, 같은 악마들과 친하게 지내면 되지 않아?"


"악마들 사이에서도, 누나는 외톨이란다. 정말로 슬픈 일이지."


"어째서? 누나, 약한 거야?"


"아니. 어느 쪽이냐고 물어본다면 강한 쪽이야. 왕도, 왕비도, 군대도, 감히 나를 깔보지는 못하니까. 외톨이인 이유는......글쎄, 인과응보라고 해야 하나......."


"인과응보? 누나, 뭔가 나쁜 짓이라도 한 거야?"



그녀의 입가가, 내가 귀여워서 견디지 못하겠다는 듯이 위쪽으로 벌어진다.


차갑고 부드러운 손이, 나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흐트러지게 만든다.



"아! 하지 마! 머리 헝클어뜨리면 엄마한테 혼난다고!"


"벌이야. 고작 꼬마 주제에, 누나의 상처를 마음대로 헤집으려고 한 것에 대한 벌이니까."


"칫. 비겁하게.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물어보면서. 좋아하는 여자아이나, 시험 문제 같은 쪽팔리는 것까지 다 들었잖아."


"그 대신 네가 원하는 대로 전부 다 해줬으니까. 정말, 악마보다 더 욕심이 많은 꼬맹이라니까. 그런 주제에 볼따구는 이렇게......"


"으으흑!?"



두 개의 손이, 무자비하게 양쪽 볼을 마구 주무르고 잡아 당기기 시작한다.



"......아아, 말캉말캉하고 따뜻한데, 보들보들해서 최고야. 다시 천국에 돌아갈 수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하아아........."


"누, 누놔아.....자, 잘모옷해....했.....어어......"


"아무것도 안 들려~ 아무것도 안 들려~ 나는 추악한 악마니까~ 사랑스러운 아이를 죽을 때까지 괴롭히고, 그 혈육의 품에서 빼앗아가도, 어쩔 수 없는 거야~"


"자, 장나안....치지.....마, 말거어어......."


"후후후. 네.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걸로~"



장난스러운 노래를 흥얼거리며 실컷 나의 뺨을 가지고 놀던 그녀는,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떼어냈다.


왠지 만져질 때마다 점점 더 탱글탱글해지고 말캉말캉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양쪽 볼이 아직도 내가 기억하는 모습인지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나 누나의 과거를 알고 싶니? 엉큼한 꼬마야? 벌써 이 풍만한 유방과 잘록한 허리, 고혹적인 엉덩이에 교접의 열망을 느낄 나이가 된 거야? 꺄악~ 상상만 해도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아~"


"몰라. 기분 나빠서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흐응,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안 궁금한 거니? 너는 호기심이 왕성한 아이인데? 정말로?"


"............"



부정할 수 없었다.


알고 싶었다. 그녀가 누구인지.


그녀와의 대화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원하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는 주제에, 온갖 더러운 수법을 동원해 결국 내 입으로 직접 말하게 만든다.



".......더 알고 싶어. 누나를."


"..........그래. 말해줄게. 뭐, 수위가 너무 강해서 아직은 멀었지만, 창세기에 나온 부분까지는 말해도 괜찮겠지."


"결국 아직도 어린애처럼 깔보고 있잖아. 나도 이제 알 건 다 안다고. 야, 야한 것들도 많이 보고......."


"......"


"뭘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거야? 기분 나쁘게."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로 나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진다.


묘한 표정을 지으며 교차로를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고개를 돌린 그녀는, 가볍게 지나치듯이 중얼거린다.



"......았구나"


"뭐?"


"역시 닮았구나. 그 남자를."


".........."


"예전에 난, 친구들을 위해 한 남자에게 사과를 먹였어."


"사과를?"


"그 이후로, 모두가 나를 두려워하고 꺼리기 시작했어. 나의 친구들이자, 그 일을 권유했던 녀석들도."


"뭐야. 그딴 더러운 놈들이랑 사귈 바엔 차라리 외톨이로 사는 편이 훨씬 낫지 않아?"



생각보다 재미없는 이야기에 툴툴거리자, 그녀는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내 얼굴을 마주 보기 시작한다.



"글쎄, 어쩌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네."




.........






순진한 꼬마와 어딘가 비틀린 아날로그 호러틱 악마 누나.


짤은 AI로 만들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