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야에 올리는 미야후지의 훈훈한 결혼식 에서 이어집니다.


"아마다 씨, 요시카랑 잠깐 장을 봐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은 쓰지 않는 빈 방을 배정받아서 쉬고 있던 윌리엄의 앞에, 미야후지의 어머니인 미야후지 사야카가 나타나 차를 건내주며 말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윌리엄은 다른 말 없이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고. 사야카는 윌리엄의 물음에 식사 준비를 위해 필요한 식재료와 커피나 차, 과자같은 몇몇 기호품, 그리고 잔돈은 윌리엄과 미야후지가 장을 보면서 필요한 걸 사오고, 점심은 시내에서 먹고 오라고 말했다. 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고, 차를 다 마신 뒤 나갈 준비를 했다.


날이 쌀쌀하다며 꼭 겉옷을 입고갈 것을 사야카는 추천했고, 윌리엄은 그에 따라 방에 마련되어 있던 옷장을 열어 자신의 유일하다 싶이한 겉옷인 리베리온 해병대 제1전차대대의 전차병 자켓을 꺼냈다. 미야후지의 권유로 그녀를 따라 후소 돌아오는 배 안에서 돌려받았던, 후소를 떠날 때 그녀에게 건내주었던 바로 그 옷이었다. 윌리엄은 미야후지가 딱히 이 옷을 소중히 여겨주길 바란 것은 아니었고, 차라리 적당히 쓰다 버려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강했지만. 미야후지는 그러지 않고 정말 소중하게 보관하면서 그에게 돌려주었다. 돌려받을 당시에 윌리엄은 상당히 당황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자켓에는 여러모로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에.


미야후지가 가지고 있으면서 정말로 잘 보관해주었던 모양인지, 화약과 석유 냄새 외엔 딱히 다른 냄새가 나지 않았던 그의 겉옷에선 이젠 여자아이의 냄새라고 해야할지. 달콤하고 산뜻한 냄새가 섞여있는 것 같다고 윌리엄은 느꼈다. 그 이유가 윌리엄이 미야후지와 떨어져 있을 때 그녀가 그의 자켓을 품에 안고 가득 부비부비 문지르면서 한가득 냄새를 맡고 자신의 숨결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라는 것은 그는 모르고 있었다. 어쩌면 모르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었고 말이다.


아무튼, 준비를 마치고 현관에서 장화를 신고 있는 윌리엄의 뒤로 미야후지가 다가와 그의 옆에 앉았다. 미야후지는 그의 옆에서 신발을 신으면서, 슬쩍 그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윌리엄과 함께하는 것이라면 미야후지는 대부분 즐겁게 받아들이고 함께했다. 비록 윌리엄은 그런 미야후지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이 종종 쳐다보았지만, 요시카는 신경쓰지 않았고, 윌리엄도 그녀와 함께하는 것을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오늘은 단순한 장보기가 아니었다. 미야후지 요시카는 자신의 어머니가 윌리엄에게 장을 봐달라 요청하기 하루 전, 전날 저녁에 어머니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시카, 잠깐 시간되니?"


"아, 네 엄마. 왜 그러세요?"


전투 위치로써 연방군 소속의 스트라이크 위치스에 들어가 나름대로 고초를 겪으면서 군인 짬밥을 먹었다는 소리를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주위에서 들었던 요시카지만. 그녀의 꿈은 어디까지나 생명을 구하는 의사였다. 그리고 오늘도 다른 날들과 마찬가지로 놀 때는 윌리엄과 같이 꽁냥대면서 놀고, 공부할 때는 조용한 자기 방에서 집중해 공부하면서 의사로써의 꿈에 한 발자국씩 다가가고 있던 그녀였다. 그런 그녀에게 어머니인 사야카는 차를 가져오며 그녀에게 물었다.


"공부는 잘 돼가니?"


"후읍, 네. 브리타니아에 있을 때도 조금씩 공부를 해서, 크게 막히는 부분은 없어요. 설령 모르는 부분이 있어도, 아마다 씨가 옆에서 종종 가르쳐 주기도 하고요."


"어머, 아마다 씨는 의학에 대해서도 박식하니?"


"박식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야전에서는 의약품이나 보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 자주 있다면서. 기본적인 의학 지식을, 못해도 응급처치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면서 훈련소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조금 배우셨다고 해요."


"집안일부터 시작해서 작긴하다만 의학에 이르기까지, 정말 아마다 씨는 못하는 일이 없으시구나."


"정말 그렇네요. 게다가, 부하들도 엄청 잘 챙겨주셔요. 저번에 갈리아에서 일이 끝나고 다 같이 파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다들 아마다 씨를 엄청 좋아하시고 잔뜩 칭찬하시더라구요. 8소대 사람들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서로 엄청 좋아하고 챙겨주고 있다는 건 알았어요. 피가 이어진 친형제들처럼, 꼭 501부대 사람들처럼 서로 살갑게 대해주고 있었구요."


"후후, 아마다 씨를 정말로 좋아하는구나. 요시카는."


"네?!"


사야카의 말에 요시카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말을 흐렸다. 요시카는 부끄러움에 움츠러들면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 어째서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거에, 요오..."


그런 요키사의 모습에 사야카는 자신의 딸이 귀엽고, 또 벌써 이렇게나 자라서 사랑을 할 나이가 된 것에 왠지모를 뿌듯함을 느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후후, 하면서 웃는 그녀를 요시카는 뾰루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그런 그녀에게 사야카가 말했다.


"언제부터였니?"


"네?"


"아마다 씨를 좋아하게 된 거 말이야."


"에? 아, 저, 그게..."


요시카는 사야카의 말에 제대로 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도 않았다. 이미 그녀 스스로가 윌리엄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은 일전에 샬롯 E. 예거와의 대화에서 깨달았기 때문이었고, 동시에 그걸 알아차린 이상 거짓으로라도 자신이 윌리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솔직한 모습이 미야후지 요시카의 사랑스러운 점이라는 걸 그녀 스스로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그게, 그그, 그러니까...!"


"항구에서? 그것도 아니면, 처음 만났을 때 한 눈에 반해버렸니?"


"그, 그럴 리 없잖아요...!"


"어머, 그래? 아빠랑 엄마는 그랬거든."


"우우..."


어른의 여유로움이라는 것 때문일까.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는 채로 말하는 자신의 어머니가 요시카는 오늘따라 얄밉게 느껴졌다. 몸 안에 감돌고 있는 이 뜨거운 공기를 빼내지 않으면 터질 것만 같다고 요시카는 느꼈고, 결국 서서히 어머니에게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 그러니까요... 아마다 씨랑은-"


요시카는 결국 전부 털어놨다. 윌리엄과의 첫 만남과, 자신이 브리타니아로 떠날 수 있게 다독여준 일부터, 갈리아에서 자신을 구해줬던 일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자신이 처음에는 그를 보고서 지금은 볼 수 없는 아버지를 떠올려 호감을 가졌다는 것과, 나중에는 윌리엄 아마다라는 거칠게 보이지만, 섬세한 면을 가지고 있는 남자 그 자체에게 점점 마음을 느꼈던 것을. 모조리 털어놓았다. 이에 요시카는 왠지 이 상황을 낯설지 않다고 느꼈고 말이다.


"아마다 씨를 보면 아빠가 떠올랐어요... 하지만, 아마다 씨에 대해서 더 알고 싶어서. 물어보고, 가까이 가고, 이야기를 나누면... 점점, 윌리엄 아마다라는 남자가... 그 사람이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계속... 머리에 떠오르는 거에요. 거칠어보이는 것모습이랑은 다르게, 꽤나 섬세하고 남을 배려해주는데다가. 상냥하지만, 동시에 강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는 그 모습이 멋있다고 느꼈어요... 물론, 그 우직하다는 점이 안 좋은쪽으로 흘러갈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런 아마다 씨를, 전 좋아하게 되버린 거에요..."


"...어머나, 로맨틱해라. 엄마도 오랜만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구나."


"저, 정말! 엄마가 말하라고 해놓고선 그게 뭐에요!"


"후후후, 미안미안. 벌써 요시카도 그런 나이가 되버려서 조금 옛날 생각이 났단다."


"옛날 생각...?"


"음, 네 아빠랑 처음 만났을 무렵의 일..."


"아... 엄마, 그건..."


요시카의 아버지이자, 사야카의 남편. 미야후지 이치로의 사망과 부재는 가족 전체에 있어서 또 한 번의 아물지 않는 흉터로 남아있었다. 그렇기에 요시카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다가 상처를 받진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에 그녀를 말리려 했다. 특히나, 요시카 이상으로 그녀의 할머니인 아키모토 요시코와 어머니인 미야후지 사야카가 받은 충격은 컸다. 사망소식을 처음 접한 후, 한동안 진료소를 운영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런 두 사람이 폐인이 되지 않고 그나마 재기해서 계속 진료소를 이어나가고, 딸에게 사랑을 주며 키워나간 것은 요시카가 두 사람의 곁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야카에게 있어서는 남편이 남겨준 하나뿐인 딸이자, 요시코에게 있어서는 하나 밖에 없는 손녀. 두 사람의 유일한 희망이었기에.


"괜찮단다. 비록, 브리타니아에서 그가 죽었다는 사실만 다시 확인했지만. 그래도, 요시카 네가 이렇게 살아돌아왔으니까. 게다가, 언제까지고 그 이를 망령으로 둘 수는 없지 않니. 돌아올 수 없다면, 이젠 보내줘야 되겠지..."


"...엄마..."


아련한 눈빛으로 방 한쪽을 바라보는 사야카의 눈에선, 아직 어제일처럼 선명하게 미야후지 이치로의 모습이 남아있음을 요시카는 볼 수 있었다. 요시카도 아버지가 많이 그리웠고, 그 때문에 아버지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던 윌리엄에게 끌렸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요시카는 그저 슬퍼하기만 하진 않았다. 그가 생전에 원했던, 그리고 요시카 본인도 입버릇처럼 말하는 '모두를 지킨다' 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요시카는 날았다. 비록, 그 모습을 윌리엄은 좋게 볼 수 없었지만. 적어도, 과거에 사로잡혀 있지만은 않았으니까.


"...네 아빠는, 꽤나 많이 고통스러워했단다."


"네? 아빠가요? 무슨 병 같은 거에 시달리신 거에요?"


"아니, 몸이 아니라. 마음이. 늘, 마음이 고통받고, 괴로워하고 있었어. 네가 태어난 날, 널 품에 안아들고는. 널 안을 자격이 자신에겐 없다고 울어버리기도 했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요?"


"...『시대의 눈물』이란다, 요시카. 시대의 파도에 휩쓸린 사람들의, 시대의 눈물... 너만큼은, 그 눈물을 보이지 말아다오."


사야카는 그렇게 말하고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이 물에 젖은 눈빛을 지었으나, 이내 고개를 저어 미소로 요시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내일 아마다 씨랑 데이트하고 오렴."


"네, 네!? 어, 어떻게요?"


"너랑 같이 장보러 가달라고 슬쩍 말해놓을테니까, 가서 장 보면서. 둘이서 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아마다 씨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또 너한테 푹 빠지도록 돌격해보렴."


"아, 아마다 씨가 그런 거에 넘어올가요...? 아마다 씨, 엄청 목석같던데...!"


'물론, 사랑스럽다고 말해주시긴 했지만!'


"걱정마렴, 우리 딸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운 걸? 그런 여자애가 좋아한다면서 돌격해오는데, 세상에 어떤 남자분이 그걸 거절할 수 있겠니. 거기다 요시카,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의 좋은 점 뿐만 아니라, 단점이라든지, 아픈 점도 모두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서로 보듬어가야 한단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듯이, 서로 다른 점이 있고, 안 좋은 점이 보여도. 사랑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줘야 돼.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면 절대 안돼. 그걸 기억하렴."


"...네, 엄마!"


그리고 현재. 사야카의 뒷공작(?)으로 데이트를 하러 갈 명분을 얻게된 요시카는. 한껏 힘을 줘서 나름대로 꾸며보았다. 강아지가 귀를 눕힌 것만 같은 그 특유의 머리는 더욱 신경써서 빗질을 했고. 옷도 주름하나 잡히지 않게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치마도 평소보다 조금 짧게, 도발하듯이. 그러면서도 너무 티나지는 않는 걸로 입었고. 또래 애들이 쓰는 향수도 뿌려서 튀지는 않으면서도 좋은 향기가 나도록 했다. 누가봐도 밀회를 위해 나가는 여자아이의 모습이었다.


"그럼, 갈까?"


"네!"


먼저 장화를 신고서 현관에서 서서 기다리고 있던 윌리엄이 신발을 신은 요시카에게 말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윌리엄의 지프에 몸을 실은 채로 장을 보러 시내로 나갔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미야후지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손을 흔들며 미소로 배웅해주었다.


"두 사람 다! 잘 다녀와요!"


-


오전 10시 반. 시내는 한창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최근에 유입된 외국산 자동차들이 빵빵 거리면서 지나가고 있었고. 그 옆으로 사람들 또한 지나가고 있었다. 가게의 점원들은 사람들을 맞으려 분주하게 움직이고, 한시간 뒤에 있을 점심시간에 맞춰서 음식점도 문을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윌리엄과 미야후지가 탄 지프가 지나가, 적당한 곳에 차를 댄 뒤. 두 사람은 장보기라는 이름의 데이트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우선 사야카가 부탁한 식재료와 기호품 등을 먼저 사려 야채가게, 생선가게과 잡화점을 먼저 찾았다. 둘 모두 요시카가 평소에 자주 이용하던 가게가 있었기에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야채가게 앞에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내자, 평소 요시카와 안면을 텄던 가게 사장님이 나와서 기쁜 얼굴로 두 사람을 맞이해주었다.


"어이쿠, 우리 요시카 꼬맹이 아니야? 브리타니아에서 며칠 전에 돌아왔다는데, 사실이었네!"


"안녕하세요, 사장님! 종이에 적힌 것들, 지금 있나요?"


"어디 줘봐. 으음, 마침 적당한 때에 왔네! 오늘은 질 좋은 무가 막 들어온 참이거든."


종이에 적힌 야채들을 진열대 위에서 손수 바구니에 담아주시는 사장님의 모습에, 미야후지는 윌리엄에게 여기 야채는 맛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윌리엄은 사장의 손짓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무를 담는 사장의 손목을 잡아 막아세웠다.


"아, 아마다 씨?"


"어잇, 형씨 지금 뭐하자는 거야?"


"그 무 말고, 옆에 있는 걸로 담아줘."


"뭐?"


"그 무, 파였잖아."


"어?"


윌리엄의 말에 야채가게의 사장은 손에 든 무를 살폈고, 이내 윌리엄의 말대로 무 한쪽이 파여서 상해있는 것을 보았다.


"어잇, 형씨 눈썰미 좋구만! 내가 야채가게를 10년이나 했는데 못 본걸 알아차리다니!"


"미야후지, 장바구니를."


"아, 네."


윌리엄의 말에 요시카는 다른 말 없이 순순히 장바구니를 넘겼고, 윌리엄은 장바구니를 들고 토마토 진열대 앞으로 갔다.


"토마토는 직접 골라담도록 하지. 그래도 괜찮겠나?"


"뭐, 별로 상관은 없다만..."


"그럼."


사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윌리엄은 종이봉지 하나를 꺼내들어 진열대 위에 한가득 올려져 있던 토마토를 하나씩 들어서 손목스냅으로 안에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거나 집어담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고 질 좋은 것들만을 골라서 봉투에 담고 있었다. 질이 안 좋다 싶으면, 손에서 놓고. 다른 것들로 담기를 반복하니, 어느새 종이봉투는 빨간 토마토들로 가득차서 불룩 튀어나와 있었다. 토마토를 한가득 담은 종이봉투를 장바구니에 넣은 윌리엄은, 뒤이어 감자와 당근 등. 야채들을 직접 가려서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우와, 선수다 선수. 형씨 야채 고를 줄 제대로 아는구만."


"아마다 씨한테는 놀랄 따름이에요."


그렇게 장바구니는 윌리엄이 가려낸 질 좋은 야채들로 가득찼고, 뒤이어 생선 가게에서도 윌리엄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좋은 생선을 집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자신 이상으로 식재료보는 눈이 뛰어난 윌리엄을 보고서 요시카는 왠지 자신감이 없어졌다.


"정말이지... 조금은 봐주세요. 이러면 제가 아마다 씨랑 같이 온 이유가 없잖아요."


"미안, 습관적으로... 어머니 일을 도울 때 몸이 익힌 거라서."


"아마다 씨, 다른 나라는 몰라도 후소에서 그러면 남자가 야마토 나데시코(현모양처)냐는 소리를 듣는다구요."


"...미안."


"...딱히, 그런 아마다 씨가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가 활약할 수 있는 순간을 주세요. 네?"


"...다음은 잡화점이었지. 난 두 분 취향을 모르니... 너에게 의지한다, 미야후지."


"헤헤! 네! 미야후지 요시카, 갑니다!"


윌리엄의 말에 미야후지는 기분 좋게 잡화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차라든지, 좋아하는 다과를 골라내 장바구니에 담았다. 확실히 가족이라 그런지 요시카는 두 사람의 취향을 잘 알고 사야될 것을 명백하게 인지했으며, 윌리엄은 그런 미야후지는 뒤에서 지켜보는 신세로 바뀌었다. 비단, 부탁받은 것들 외에, 개인적으로 사고 싶은 것들이라든지 윌리엄이 원하는 것은 없는지 물어보았고. 윌리엄은 이에 필요없다면서, 고개를 저었다.


부탁받은 것들을 전부 산 두 사람의 장바구니는 홀쭉하게 있었던 전과는 달리, 빵빵하게 불러져 있었다. 그 장바구니를 보자 왠지 모르게 흐뭇한 마음이 들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면서 고개를 돌렸다.


"미야후지-"

"아마다 씨-"


서로의 시선을 마주한 그 순간, 미야후지와 윌리엄은 말 없이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비록 미야후지 쪽이 눈에 띄게 홍조가 올라 있었지만, 윌리엄의 얼굴도 약간 상기되어 있음을 미야후지는 몰랐다.


"...저, 저어... 아마다 씨..."


"...뭐야."


"그, 슬슬 점심시간이잖아요. 그래서 같이-"


두 사람만의 오붓한 점심식사를 꿈꾸던 미야후지의 뒤쪽에서-


"어라, 소위랑 미야후지?"


"에? 이 목소리는..."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두 사람이 뒤로 고개를 돌리자 보인 것은-


"히지카타?"

"사카모토 씨?"

"대장님? 그리고 미야후지 양?"


사카모토 미오와, 그녀의 옆에 서 있던 히지카타 케이스케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