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대전 유성구에서 안정나씨 묘역을 이장하다 여러번이나 접힌 편지 두 통이 발견됨.


이 편지의 내용은 1490년에 함경도 경성 지방에서 군관으로 복무중이던 나신걸(羅臣傑, 1461∼1524)이란 인물이 자신의 부인 신창 맹씨(新昌孟氏)에게 보내는 한글편지로 현재까지 


이 편지는 1490년 함경도에서 군관으로 복무중이던 나신걸(羅臣傑, 1461∼1524)이란 인물이 자신의 부인 신창 맹씨(新昌孟氏)에게 한글로 써서 보내는 편지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편지이기도 함.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지 고작 45년만에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과 하급군관이던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쓴 것을 통해 이미 한글이 남녀노소를 가리지않고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되었음을 시사함.


편지들의 내용은 한 통은 부인과 가족들의 얼굴을 보러 가고 싶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가지못해 서럽다는 내용이, 다른 한 통에는 집안일에 대한 걱정섞인 조언들과 함께 부인에게 보낼 화장품과 바늘을 같이 보내고 부인이 생각나 울었다는 달달함이 넘치는 편지임.


2016년부터 대전시립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며 현존하는 한글 편지들중 가장 오래된 편지임. 내용은 현대어로 번역하면 다음과 같음.


안부를 그지없이 수없이 하네. 집에 가 어머님이랑 아기랑 다 반갑게 보고 가고자 하다가 장수가 혼자 가시며 날 못 가게 하시니 못 가서 못 다녀가네. 이런 민망하고 서러운 일이 어디에 있을꼬? 군관 자리에 된 후에는 내 마음대로 가지도 못하는 것일세.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을 구태여 가면 병조(兵曹)에서 회덕골로 사람을 보내 잡아다가 귀양 보낸다 하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꼬? 아니 가려 하다가 못하여 영안도(永安道) 경성(鏡城) 군관이 되어 가네.


내 낡은 칼과 겹철릭을 보내소. 거기는 가면 가는 흰 베와 명주가 흔하고 무명이 아주 귀하니 관원이 다 무명옷을 입는다고 하네. 무명 겹철릭과 무명 홑철릭을 입을까 하네. 반드시 많이 하여 설을 쇠지 말고 경성으로 단단히 하여 들여보내소. 옷을 못 미처 지을 것 같거든 가는 무명을 많이 보내소. 두 녘 끝에 토시를 둘러 보내소. 무명옷이 있으면 거기인들 옷이야 못하여 입을까? 민망하여 하네. (중략)


또 논밭은 다 소작(小作) 주고 농사짓지 마소. 또 내 다른 철릭 보내소. 안에나 입게. 또 봇논(洑) 모래 든 데에 가래질하여 소작 주고 절대로 종의 말 듣고 농사짓지 마소. 또 내 헌 비단 철릭을 기새(인명)에게 주소. 기새 옷을 복경(인명)이 입혀 가네. 또 가래질할 때 기새 보고 도우라 하소. 논 가래질을 다하고 순원이(인명) 놓아 버리소. 부리지 마소. 구디(인명) 데려다 이르소. 영동에 가서 아뢰어 우리 논 있는 곁에서 경성 군관이 내월 열흘께 들어오니 거기 가서 알아 함께 내 옷 가져 들어오라 하소. 또 반드시 영동에 가서 물어 그 군관과 함께 들어오라 하소. 그 군관의 이름이 이현종이라 하는 바이니 또 내 삼베 철릭이랑 모시 철릭이라 성한 것으로 가리어 다 보내소. 또 분하고 바늘 여섯을 사서 보내네. 집에 가 못 다녀가니 이런 민망한 일이 어디에 있을고, 울고 가네. 어머니와 아기를 모시고 다 잘 계시소. 내년 가을에 나오고자 하네. (중략)


회덕 온양댁 가인(家人)께 올림. 편지 벌써 자세히 즉시 다 받았소. 빨리 보내소.



참고자료


사실 역지챈에 올렸던건데 순애챈에도 어울릴거 같은 이야기라 가져와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