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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레피슈를 어루만지는 류디트의 손길-

 

"아무리 그래도 처음 본 사람들한테 주인님과 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괜찮을거야. 오히려 지금쯤 눈을 반짝이면서 너랑 로리미엘 얘기를 듣고 있을걸?"

 

멜레피슈의 침대에 걸터앉은 류디트는 도리어 제가 주인인 양 멜레피슈를 자신의 앞에 세워두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끼리 한 말은 절대비밀이 원칙이거든. 혹여나 누구 하나가 한마디 앗 하는 순간 다같이 가버리는거야.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멜레피슈의 꼬물거리는 입술은 불안을 말하지 못해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류디트는 그런 멜레피슈를 올려본다.

 

"애초에 다른 사람들한테 알려질까 불안하면 내 눈에도 띄면 안되는거 아니야?"

"그것도 그렇지만..."

"어차피 현실감도 없는 이야기니까 클럽에서 나오면 무슨 소설 얘기인 것 마냥 생각하게 될거야. 그리고 다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애들이거든"

 

현실감 없는 이야기, 멜레피슈의 머릿속에선 둘의 관계를 알고있는 유일한 외부인인 류디트도 가끔씩은 저들이 서로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들의 감정에 진지한 추측을 가미해보려해도 고개를 가로젓게 되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있지는 않았지만 마냥 긍정인 감정도 아니었다.

디키너나 디올리제는 자신과 비슷한 아이들이었다. 1살 연상인 디올리제와 자신과 동갑인 디키너 모두 몸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사랑과 연애를 꿈꾸고 있었으니까. 곧있으면 혼담이 오갈 나이, 셋은 채도낮은 붉은색에는 관심이 없었다. 선명한 분홍색, 자신이 소녀라는 것을 알게 해줄 선명한 분홍색을 꿈꾸고 있었다. 그리고 류디트의 눈에 그런 분홍에 가장 가까운 것이 로리미엘이었다.

달콤하고 풋풋한 향기를 풍기는 남자, 아마 자기 혼자서 만들어낸 아로마는 아닐 것이다. 그 옆에서 무겁고 진한 향기를 깔아주는 존재와의 융합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아로마를 맡으며 류디트가 느낀 감정은 부러움도 선망도 아니었다.

 

"샘나네, 뭔가"

"네?"

"아냐...하여튼 걱정하지 마, 그것보다 내가 확인하고싶은게 좀 있는데"

 

류디트는 끼고있던 장갑을 벗어 침대 옆에 내려다놓는다. 오묘한 미소를 짓고있는 류디트를 보며 떠오르는 한 단어, 영악

 

"벗어봐"

 

멜레피슈는 제대로 못 들었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물론 똑똑히 들었다. 단지 그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 무슨 뜻인지..."

"옷 벗으라구. 몰라?"

"그, 갑자기 그렇게 말하셔도..."

 

류디트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기보다 키도 작고 어린 여자인데도 행동과 걸음걸이에서 나오는 기품, 그리고 그 기품속의 위엄이 멜레피슈를 겁박한다.

 

"원하면 내가 벗겨줄 수도 있는데, 나 벗기는거던 입히는거던 많이 해봤어"

"이유를 듣고싶습니다"

"꼭 그렇게 답답하게 해야해?"

"주인님의 명령도 아닌데, 제가 들어야 할 이유도 없으니까요"

 

멜레피슈도 나름대로 세게 나가지만 류디트의 미소는 더더욱 속 모를 정도로 깊어져간다. 자기보다 키가 큰 류디트를 그대로 감싸안는다. 가슴과 가슴이 문대어진다. 고개를 들어 그녀의 귀에 자신의 숨을 전달한다. 아찔하고 찌릿한 감각이 멜레피슈의 전신을 감싼다.

 

"한참 애기같아보이는 동생을 어른으로 만든 아가씨를...나도 즐겨보고싶어서 그렇지"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흐드러지는 멜레피슈와 다르게 멜레피슈는 뻣뻣한 막대기처럼 서있었다.

 

"왜, 나 이런 것도 잘하는데...내가 아가씨들 몇 명을 만나봤을 거 같아? 여왕폐하부터 시녀, 귀족 아가씨, 하인, 안주인...내가 궁안에서 만나 본 여자만 몇 천은 될걸?"

 

류디트는 숨을 참고있는 멜레피슈를 그대로 끌어당긴다. 침대에 걸터앉은 멜레피슈가 그대로 류디트에게 끌려들어간다. 자기보다 8살이나 많은데도 어쩔 줄 몰라하는 반응에 류디트는 콧소리까지 내 어가며 웃기 시작한다.

 

"호호홋, 농담이야. 농담"

"네?"

"내가 말했잖아, 네 옷차림에도 신경써야한다고. 그걸 좀 보고싶었거든"

 

아찔하고 심각한 제안을 받은 뒤여서 그런걸까. 류디트가 벗으라 요구한 이유가 정상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왜, 아쉬워?"

"아닙니다"

 

멜레피슈는 태연한 척을 하며 흰 캡을 벗고, 에이프런의 끈을 풀고, 검은 원피스를 벗는다. 속옷이 그대로 드러나는 부끄러운 차림에 멜레피슈는 조금 머뭇거리며 몸을 꼰다. 류디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피스와 에이프런을 펼쳐본다.

 

"옷은 아직 안샀구나?"

"네, 작업복은 편한 쪽이 좋으니까요"

"편한 건 좋지만 너무 수수해, 한 20년전에나 입었을 옷이라고 이건"

"그렇지만..."

 

메이드복에 유행이 있기라도 한 걸까. 멜레피슈는 류디트의 말 뜻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에이프런은 어깨랑 가슴쪽에 프릴 들어간거로, 그리고 캡도 비슷한 디자인으로 준비해봐. 페티코트에도 자수 좀 새겨넣고, 혼자해도 괜찮지만 요즘은 예쁘게 넣어서 나오는 것도 많으니까. 원피스도 마음 같아선 소매를 좀 키운 걸 써보고싶은데...뭐 혼자 일해야하니까. 그건 어쩔 수 없겠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대한 품평을 마친 류디트는 일어나 그녀에게 손짓한다. 뒤를 돌라는 신호에 멜레피슈는 류디트에게 자신의 등을 내어보인다. 류디트는 자신의 양 손으로 멜레피슈의 허리를 감싸쥐어본다. 예상못한 손길에 류디트의 몸에 열이 달아오른다.

 

"코르셋은 안하네?"

"불편하기도 하고, 관리하기도 어려워서요"

"나도 취향은 아니야"

 

한때는 코르셋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도 있지만 요즘은 시들해지고 있었다. 증기혁명 이후에 사람들의 활동이 늘어나면서 다소 가볍고 편안한, 그러면서도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복장들이 요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20여년 전만 해도 류디트같은 귀족이 지금의 그녀같은 복장을 입고 있었으면 아마 잠이나 자러 가는 줄 알았을 것이다.

 

"조금 아쉽긴 하네, 몸매는 끝내주는데"

 

허리를 타고 골반까지 내려가는 손의 간격이 점점 벌어진다. 드로어즈와 엉덩이 사이의 공간을 눌러보자 부드러운 살덩이가 만져진다. 골반 양쪽을 쥐고있던 손이 점점 앞뒤를 향한다. 드로어즈에 숨겨져있는 다리 사이를 손으로 꾹 눌러본다. 입술을 꽉 깨무는 멜레피슈는 화도 못내고 부끄러움을 티내지도 못하는 상황에 눈만 꾹 감는다.

 

"내 동생을 녹여먹은 것 치곤 너무 처녀 티내는거 아니야?"

"저도 익숙한 건 아니어서..."

"처녀는 내가 처녀인데 그 쪽이 더 쑥맥이면 어떡해?"

 

킥킥거리는 웃음과 함께 손을 뗀다.

 

"다른 속옷은 모르지만 스타킹은 바꾸는 게 좋겠다. 어차피 볼 사람도 없겠다 색깔 들어간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이제 입어, 반응이 그러니까 놀려먹기에도 미안하다"

 

류디트는 그녀의 원피스를 건네어준다. 새빨개진 얼굴의 멜레피슈가 허둥대며 옷을 입는다.

 

"장갑은?"

"없습니다"

"이거 써"

 

멜레피슈는 자신의 장갑을 멜레피슈에게 건네준다. 사용감은 있었지만 얼핏 봐도 고급스러워보이는 장갑에 손사래를 치며 거절한다.

 

"써, 그냥. 집 안에선 주인이 있으니까 쓰면 안되겠지만, 밖에 나갈 땐 꼭 써"

"그래도 이런 귀한걸..."

"귀하니까 쓰라는거야"

 

어떻게든 자신의 손에 쥐어줄 걸 안 멜레피슈는 결국 양 손으로 장갑을 받아든다.

 

"왜 제 옷차림에 그렇게 신경쓰시는 겁니까?"

 

멜레피슈는 요 며칠간 혼자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꾸며봐야 주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데, 그녀는 왜 몰래 자기를 만나러와서까지 옷차림에 대한 조언과 훈수를 하는걸까? 도리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류디트는 갸웃거리면서도 설명을 시작한다.

 

"간단하잖아. 로리미엘이 고급에 익숙해져야하니까"

"주인님이요?"

"사용인 유니폼 하나에도 고급과 저급이 나뉘는데, 내 동생을 저급 근처에 두고싶지는 않거든. 너는 마음도 꽤 착하고 성격도 좋긴 한데 로리미엘을 옆에 두기엔 너무 수수해보인단 말이지"

 

알 듯 말 듯한 이야기지만 최소한 나쁜 뜻을 갖고 하는 말이 아니란 건 알 수 있었다. 고급이라, 그런 것에 눈 돌릴 틈 없이 살아오던 멜레피슈에게 새로운 충격이 전해진다.

 

"열흘 뒤에 다시 올거야. 그때도 지금이랑 같은 모습이면..."

 

영악한 웃음과 함께 사선으로 천장을 올려다본 류디트의 입꼬리가 점점 올라간다. 멜레피슈는 웃고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오싹함을 느낀다.

 

"로리미엘 앞에서 너를 벗겨먹을까...아니면 네 앞에서 로리미엘을 벗겨먹을까?"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이럴 땐 좀 받아주면 어디가 덧나니?"

 

성적인 흥분에 거리를 두며 살아온 멜레피슈는 류디트의 음란함을 장난치며 받아줄 성격은 못되었다. 진심은 아니었지만 어느쪽이던 꽤 볼만한 장면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궁금한 것이 있는데. 여쭤봐도 됩니까?"

"물론"

"왜 그렇게까지 도련님을 상류사회로 데려가시려는 겁니까?"

"내가 아끼는 동생이니까"

 

요 며칠 봐온 류디트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연심은 아니지만 진지한 마음으로 로리미엘을 동정하기도,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막내끼리의 인연 같은 것일까. 멜레피슈는 류디트가 그녀를 친동생마냥 여긴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멜레피슈가 한 질문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다.

 

"뭔가, 추측이지만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아서요"

 

미소가 조금 굳은 류디트는 멜레피슈를 빤히 바라본다. 단단한 안경알 너머로 보이는 눈빛엔 자신의 속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숨겨져있었다. 마냥 숫처녀같아보이지만 몸에 관한 걸 빼면 자신보다 훨씬 어른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다음 번에 왔을 때, 옷차림이 맘에 들면 말해줄게"

 

류디트도 평생의 비밀마냥 숨길 생각은 없었다. 다음번에 멜레피슈를 만나러 올 땐 셀비티 꽃바구니라도 하나 들고와야겠다 생각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안그래보이는데 나한테 관심이 많네"

"아뇨, 그...드탱 가문에 대해 아십니까?"

 

류디트는 상황에도 분위기에도 어울리지 않는 생뚱맞은 질문에 고개를 까딱인다.

 

"드탱 바울란 주공? 그 꼰대 군인 아저씨 집안? 알지. 왜?"

"그 집안에 관한 이야기 같은 거...아무거나 상관 없습니다"

"글쎄? 그렇게 다이나믹한 집안은 아니야. 대대로 군인 출신 집안이고, 옛날에나 하던 추적 사냥을 좋아하고...딱 아저씨들끼리 어울릴 취향이지. 사냥이니 규율이니 그런거 따지는 양반이니까 별 일은 없었는데"

"그렇다면 그 집안의 장남에 대해서는요?"

 

얘가 왜 이럴까 싶으면서도 이렇게까지 무언가를 궁금해하던 적이 없었던 멜레피슈의 호기심어린 눈빛에 류디트는 자신이 알고 있는 걸 죄다 흘려보기 시작한다.

 

"드탱 뤼비올라. 나보다 세 살 많았던가? 어릴적엔 해외에 있었다고 해. 몇 년 전에 돌아왔는데...솔직히 내 타입은 아니지만 얼굴도 샤프한게 꽤 봐줄만 했지, 무뚝뚝해도 매너있지. 사교계에 발을 들이니까 남자고 여자고 초대장이 아주 쏟아져들어갔다더라. 원래라면 거절하는 건 예의에 어긋나는데 오죽 바빴으면 거절편지를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이해를 해줬겠어?...이건 비밀인데, 기아티드 오빠랑 이야기 했을 때 자기 메이드한테 자기 필체를 가르쳐서 가짜 편지를 쓰게 한 적도 있대...주공이랑은 다르게 속은 꽤 재밌는 사람 같아...근데 왜 이 사람에 대해 궁금해하는거야?"

"며칠 전에 주인님 옷을 맞추러 갔는데. 거기서 뵈었어요. 그래서 뭐 하시는 분인가 궁금해서"

"내 동생 울리면 너 가만 안둔다"

"그런 감정은 아닙니다"

 

류디트는 피식 웃어보인다. 멜레피슈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 세리가 한 말은 잘 지어낸 거짓말인 듯 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그 사람이랑 메이드가 뭔가 이상한 관계였다는 소문 같은거 그렇게 신경쓰지는 마. 그 정도도 각오 못했으면 애초에 로리미엘이랑 그런 관계가 됐으면 안되는거였잖아?"

 

자신을 격려하는 류디트의 말이 세리의 결백을 증명해낸다. 정말로 그를 만나봐야 하는걸까. 어디있을지도 모를 세리를 위해서인지, 다른 감정 때문인지 멜레피슈는 확신할 수 없었다.


참아 내 안의 GL백합마


뭐했다고 벌써 20편이냐

사실 길어봐야 안보는거 알면서도 끊을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