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눈은 함께-

저녁이 될 때 까지 로리미엘이 돌아오지 않자 류디트는 떠났다. 날이 밝으면 바로 드탱의 저택과 본가로 사람을 보내겠다고 말하고는 분노와 당황에 휩싸인 발걸음을 남겼다. 멜레피슈는 그 날 잠을 잘 수 없었다. 하나 둘 불이 꺼져가는 먼 발치의 풍경을 바라보며 주인을 잃어버렸던 그 날을 떠올릴 뿐이었다. 자신의 주인은 어떻게 된 것일까. 세리는 어떻게 된 것일까. 정말로, 드탱 가문이 주인을 해코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초대장을 보낸 것일까. 모든 것이 추측과 망상에 불과했지만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 지금은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 날, 멜레피슈는 집과 방의 램프와 촛불을 끄지 않았다. 늦은 새벽에라도 자신의 주인이 돌아온다면 그를 맞이해야한다는 허황된 희망이 그녀를 무쓸모한 행위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똑 똑, 새벽 몇 시 쯤 되었을까. 주인의 방 안에 꺼진 촛불을 새로 갈아넣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집 안을 메운다. 설마, 설마하는 두근거리는 마음과 만에 하나라는 불안감이 그녀의 발을 재촉시켰다. 순간이나마 계단에서 미끄러질뻔한 그녀는 난간을 쥐고 다시 뛰어나가 문을 연다.

핏기없는 얼굴, 숨 한번에 뿜어져나오는 미약한 생명력, 은밭이 되어버린 풍경에 남은 발자국은 몇 번이나 잘못된 곳을 밟으며 비틀거렸다는 걸 알 수 있게 해주었다. 문이 열리고 자신을 맞이한 멜레피슈의 표정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그녀의 품에 안긴다. 그를 안는 가슴과 양 팔에 얼얼한 한기가 든다.

 

"메...메..."

"주인님, 말 하지 마세요. 괜찮아요. 주인님..."

 

멜레피슈는 그를 품에 안는다. 멜레피슈는 한기를 느꼈다. 얼음장을 끌어안아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로리미엘의 몸이 조금씩 녹을 때 마다, 파묻은 그의 입술이, 자신의 몸에 닿은 그의 손가락이 조금씩 꼼지락 거릴때마다. 로리미엘이 겪었을 고통과 서늘함이 그녀에게도 가슴을 찌르는 한기를 느끼게 했다.

로리미엘의 얼굴이 녹았을 때, 로리미엘은 조금 더 멜레피슈의 품 안으로 몸을 밀어넣는다. 어리광이나 응석같은 고차원적인 감성의 표현은 아니었다.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다. 자신이 움직일 때 마다 몸을 더듬어주는 손, 두근거리는 심장, 품 안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그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죽음의 강물 앞에 몸을 반 쯤 담구었던 그는 자신을 끌어당겨준 손의 모든 감각을 느끼고 싶어했다.

자신의 뺨 위로 느껴지는 따뜻한 감각, 멜레피슈의 얼굴을 타고 흐른 눈물이 로리미엘에게 아직 자신이 살아있음을, 자신이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덜덜 떨리던 입에 연분홍빛이 돌아오고 뻣뻣했던 몸이 축 늘어진다. 서로의 온기와 냉기를 맞바꾼 로리미엘은 온기를 담은 손으로 눈물에 푹 젖은 멜레피슈의 양 뺨을 손가락으로 훔친다. 미안하다 해야할까? 왜 안자고 있었냐고 해야할까? 할 말이 달리 떠오르지 않았다.

 

"고마워"

"죄송해요...주인님"

"아냐, 내 선택인 걸"

 

피곤과 오한에 절어있는 몸을 일으켜 테이블 앞에 걸터앉는다. 날이 가장 추울 새벽 3시 반, 평소라면 둘 모두 잠에 빠져있을 시간이었지만 그 날 만큼은 새근한 잠소리 대신 레인지에 물이 끓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라비니 꽃잎을 달인 차를 주인에게 내어준다.

 

"천천히 마시세요. 입술부터 적신다는 느낌으로"

 

로리미엘은 멜레피슈의 말 대로 찻잔을 입술에 가져다댄다. 너무 뜨거운 나머지 마시라고 해도 마실 수 없었기에 아주 조금만 입에 넣고 식혀가며 차를 마신다.

 

"뤼비올라씨 집에서 나오고 역으로 갔어. 역 근처에서 기다리던 세리랑 합류하고, 뤼비올라씨가 동행했어. 카리스뱅에 도착하기 직전에 세리가 있는 2등석 칸으로 갔어."

 

아직 머리를 감싼 추위가 빠져나오지 못했는지 로리미엘은 짧은 단문으로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역에서 내렸다는 이야기 이후 로리미엘은 다시 차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런데 2등석 안에 있던 세리가...세리가..."

 

세리의 모습을 떠올리던 로리미엘은 양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싸쥔다. 멜레피슈는 로리미엘이 흐느끼는 모습을 보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세리가 배에서 피를 흘리면서...쓰러져있었어..."

"세리가요?"

"누가 칼로 찔렀나봐...죽진 않았었고, 나는 당황해서 뤼비올라씨에게 뛰어갔는데...뤼비올라씨는 없어져있었고...그래서 세리의 방에 가서 역무원을 부르려고 했는데, 세리까지..."

"없어졌나요?"

 

로리미엘은 고개를 끄덕인다. 세리가 여자라고는 해도 얼뜨기 하나가 칼로 찌를만큼 유약한 여자는 아니었다. 멜레피슈는 눈을 질끈 감으며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카리스뱅 역에 도착했을 때 누가 뒤에서 날 붙잡았어"

"누구죠?"

"이름은 몰라, 녹색 머리를 뒤로 넘겨서 묶었고, 키는 멜리보단 작았지만 꽤 큰 편이었어...하여튼 그 사람이 여기서 내리라고 이야기했어. 그리고...그 사람이..."

 

로리미엘은 다시금 차를 마신다. 따뜻한 차가 속을 데우지만 떨리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뤼비올라씨와 바울란 주공이 날 죽이려한다고 이야기했어..."

 

드탱 바울란, 드탱 뤼비올라. 드탱. 멜레피슈는 드탱과 에띠 가문이 그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류디트의 가설을 떠올린다. 추측 뿐인 가설이었지만 자신의 주인이 이런 상황에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리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젠 단순한 가설이라 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주인 뿐 아니라 세리까지, 죽었다고 믿고싶지는 않았지만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그 사람 말대로 카리스뱅에서 내려서 여기까지 걸어왔어...조금 힘들어도 올 만 했는데 눈이 오는 바람에...밤 부터 날이 너무 추워졌어...보고싶었어...정말..."

 

한 나절이 넘는 긴 시간을 걸어오며 몸이 삐걱거릴 때 마다 멜레피슈를 보고싶다는 마음으로 발을 떼었다. 그 말을 끝으로 다시 눈물을 뚝 뚝 흘리는 로리미엘을 끌어안아준다. 점점 자신과 이 세상을 잇는 끈이 하나씩 사라지지만 아직 가장 굵은 끈은 끊어지지 않았다. 이 끈 만은 절대로 잃을 수 없었다. 손에 피가 날 만큼 끈을 세게 틀어쥔다. 절대, 절대로 잃을 수 없다는 마음을 담아 그를 안아준다.

 

"코코에..."

"응?"

"주인님이 봤던 녹색 머리의 여성은 코코에일거에요"

"아, 멜리랑 같이 교육받았다던?"

 

멜레피슈는 고개를 끄덕인다. 녹색 머리, 이마를 드러낸 채 뒤로 넘긴 머리, 속을 알 수 없는 검은 눈을 가진 아가씨, 로리미엘이 말한 인상과 키를 생각하면 그녀가 맞는 듯 했다.

 

"네, 지금은 퀴스띠브 아가씨의 메이드로 있다고 류디트 아가씨가 이야기해주셨어요"

"퀴스띠브씨의?"

"네, 우연인 것 같지만...그렇다고 하더라구요"

 

전날 밤에도 선잠만 자고 아직까지 깨어있던 탓일까, 머릿속에 무언가 선이 이어질 듯 말 듯 하다 끊어진다. 에띠, 코코에, 드탱, 뤼비올라, 퀴스띠브...단어들만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머리를 맑게 해주는 라비니차를 마셔도 정신은 점점 몽롱해져만간다.

 

"주인님, 피곤하시죠?"

"응...오늘은 멜리 침대에서 자도 될까?"

 

멜레피슈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류디트에게는 내일 아침 일찍이라도 이야기를 전해주자고 생각하고는 같은 침대에 몸을 뉘인다.

서로를 절대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소유욕에 잠을 자고있는 서로는 둘을 점점 강하게 끌어안는다. 답답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았다. 세계를 잃는 것 보다는 조금 답답한 것이 나았으니 말이다.

두 사람을 손에 쥐었던 시련은 악력을 줄이지 않았다. 도리어 이제서야 시작된 시련의 질주는 고삐를 틀어쥐고 거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우으...멜리?"

 

온 몸을 감싸는 한기, 둥실둥실 떠있는 기이한 감각에 로리미엘은 본능적으로 온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몸을 향한다. 푹신한 가슴에 얼굴을 비비던 로리미엘은 본능적으로 잠에 든 지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무거운 눈꺼풀을 뜨자 로리미엘은 오감을 통해 참혹함이란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어..."

 

흰 눈을 맞으며 자신의 집이 불타고있는, 검은 하늘에 새겨진 붉은 점을 바라보는 로리미엘은 제 발로 땅을 디뎠지만 그대로 풀썩 무릎을 꿇고 쓰러지고 만다. 어릴 적, 저 멀리서 불타고있던 저택도 이런 모습이었을까. 자신에게 남겨져있던, 민트라는 성 아래에 남겨진 마지막 유산이 불타고 있는 모습을 보며 로리미엘은 눈물을 흘리지도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세상에서 고립되었다는 공포, 넓은 프레미앙 왕국에서 자신이 자신임을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은 이제 단 하나 밖에 남지 않았다.

 

"도련님, 괜찮으세요?"

"타사씨?"

 

자신을 일으키는 멜레피슈의 옆으로 익숙한 여성이 걸어온다.

 

"타사씨가 밖에서 소리를 질러서 제가 일어났어요"

 

고맙다는 이야기를 해야하는 데, 눈 앞에서 피어나는 연기처럼 커져가는 상실감이 무어라 입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타사는 우울을 넘어선 어두움이 감싼 로리미엘의 표정을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다.

 

"타사씨, 부탁 한 가지만 드려도 될까요?"

"네?"

 

순수함이 가득했던 로리미엘의 눈에 들어찬 우울함을 바라본 타사는 덩달아 자신까지 슬퍼지려하고 있었다. 귀족임에도 오만하지 않고 항상 향긋한 차와 함께 순박한 미소를 보여주었던 로리미엘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멀리서 바라만보아도 좋았던 그의 모습이 어쩐지 불타는 집처럼 사라지고 있는것만 같았다.

 

"네, 도련님"

"정말로, 이것만은 타사씨만이 알고 계셔야해요. 타사씨까지 믿을 수 없게 되면..."

 

순수했던 그는 그렇게 사라지겠지. 타사는 로리미엘의 어깨를 붙잡으며 자신의 다집을 눈빛으로 전한다.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웃음을, 향기를, 마음을 맑게 해주었던 순수함을 지킬 수 있는 것이 자신 뿐이라면 그의 부탁이 무엇이라해도 들어줄 수 있었다.

 

"저희는 프랭비시로 떠날거에요. 그리고..."

 

로리미엘의 이야기를 들은 타사는 고개를 끄덕인다. 불타버린 집에서 증기기관과 수도가 터져 내부에 물이 차오르고 불이 꺼지는 모습을, 그리고 폐허가 된 모습을 보지 않은 채 로리미엘과 멜레피슈는 오솔길을 걸어내려온다. 아마, 이제 이 곳에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다. 이 세상에 자신이 민트 로리미엘이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장소따윈 없었다. 오로지, 자신과 손을 맞잡은 여성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 줄 유일한 존재였다. 로리미엘은 손에 감싼 온기마저 잃지 않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는다.


솔직히 이번 편은 내가 썼지만 졸라 구린거같다

내가 지금도 개씹초보지만 진짜 개씨발초보던 시절까지 포함하면 한 12년째 쓰고있는데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건전개는 진짜 뒤지게 못한다 싶음


아니 뭐 그렇다고 묘사를 잘하는 건 아니고

서사 묘사 대사중에 그나마 나은게 대사라고 생각은 하는데, 사실 그것도 대사빨 좋은 영화나 만화 보면 난 정말 개좆도 아니구나 싶어지고 막


창작은 고통의 연속이란 글이 올라왔는데

거의 일주일동안 아무도 관심 안주는 글을 매일 쓰면 그게 고통은 맞는거같긴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