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진짜 공식 전개였어도 뭔가 색다른 형태로 재밌었을 것 같음


나이 먹고 피폐해져서 옛날의 귀욤귀욤한 맛 대신 느와르물에나 나올 법한 어른이 되어버린 아냐쨩


차 타고 가다가 담배 펴서 운전수가 냄새 밴다고 뭐라 하니까 싸늘한 표정으로 "입 닥쳐, 기사 양반. 내 알 바 아냐"라고 꽂아버리고


자기 어릴 때처럼 스파이 얘기하면서 와쿠와쿠하는 어린애들 보고 속으로 "재미 없더라......스파이 짓거리."라고 중얼거리고


유년기의 우상이었던 스파이 TV 프로그램을 보고는 피식 씁쓸한 냉소를 흘리면서 "나도 참......"이라고 혼잣말하고


무표정한 낯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면서 어린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주던 엄마와 아빠를 조용히 추억하고


그러다 붙잡은 적을 심문하면서 대답이 늦으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씩 꺾어버리고


뒷세계의 동료들과 시체를 공구리치면서 아무런 감흥도 없는 차가운 얼굴, 생기 없는 동태 눈깔로 시멘트에 담기는 송장을 응시하는


나중에 성장한 베키랑 만나서 대담할 때도 분위기가 영 아슬아슬한 거지


"헤에, 아냐쨩. 그야 우리가 어릴 때 친구기는 했지만, 비즈니스의 세계는 냉정하잖아? 내가 아냐쨩을 도와주면, 아냐쨩은 날 위해 뭘 해줄 수 있을까?"라는 식


나중에는 과거 회상 씬도 나오면서 아냐가 어떻게 그런 최강의 스파이로 성장했는지가 밝혀지는 거지


스승 격인 피오나한테 맹훈련 받으면서 "버텨라! 부모님의 원수를 갚아야지!"라는 말을 듣고 


지쳐 쓰러질 것 같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으며 "동국! 서국! 둘 다 부숴버릴 거야!!"라고 이를 바득바득 가는 어린 아냐의 모습도 나오고


절대로 공부하기 싫어하던 애가 복수라는 일념 하나로 코피를 쏟으면서까지 스파이 지식을 흡수하고


보다 못한 프랑키가 좀 쉬엄쉬엄하라고 하니까 불꽃 튀는 눈빛으로 "못 쉬어! 지금 멈추면 아냐는 이미 죽은 거야!"라며 거부하고


그렇게 결국 피오나 아래에서 자기 부모님 못지 않은 최강의 스파이로 성장한 아냐


다만 명확한 소속을 지니고 평화를 위해 암약했던 부모님과는 달리


아냐는 복수를 위해 동국이고 서국이고 전부 불태워 버릴 거라는 일념만으로 움직이는


이런 느와르식 피폐 전개로 갔어도 은근히 꿀잼일 듯?



그러다 성장한 다미안 만나서 "많이 변했네, 숏다리"라는 말 들으니까 피식 웃으며 담뱃불 붙이면서 "네가 더 변했어, 도련님"이라고 받아치고


전쟁을 일으키려는 스파이 VS 동국을 지키려는 정치인의 구도로 계속 대립하지만


점차 여러모로 부딪히고 교류하게 되면서 진작에 죽여버린 줄 알았던 감정들이 점점 되살아나기 시작하고


다미안도 아냐도, 유년기의 추억에 묻어버린 줄만 알았던 사랑을 서로에게 느끼면서


언제나 동태눈처럼 생기 없이 냉랭했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는


결국은 복수심마저 옅어지니까 아냐도 갈등하면서 부모님 사진을 붙잡고 "나 어떡해야 돼......?"라며 눈물을 흘리고


다미안도 "정신차려! 저건 스파이다! 전쟁을 일으키려는 악마야!"라고 스스로를 다그치지만 차마 아냐를 잊을 수 없고


그러다 결국은 부상을 입은 아냐를 다미안이 발견해서 권총으로 겨누는 구도까지 나오는 거임


아냐가 피식 웃으며 "도련님 손에 죽는 것도 나쁘지 않아. 넌 동국을 지켜야 하잖아? 얼른 쏴."라고 말하지만


다미안은 머뭇거리고 또 머뭇거리다 결국 쏘지 못한 채 자기 집으로 데려와서 치료를 해주고


"왜 날 구했어?"라고 묻는 아냐에게 "나도 몰라."라고 퉁명스럽게 응수하지만


이어서 "그래도......네가 다치는 꼴을 보기는 싫어"라고 고백 아닌 고백을 날리고


아냐는 멍하니 다미안을 응시하다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아련히 "그렇구나......" 중얼거리는


이렇게 각자의 입장 때문에 서로를 인정할 수도, 그렇다고 갈라설 수도 없는 애틋한 사랑


이런 연출로 순애 찍으면 존나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