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八十九



아스카가 현관을 뛰쳐나가고 그 뒤에 바로 신지가 뒤쫓아 나갈 때까지 아마도 10초도 차이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엘리베이터 문은 닫히고 말았다. 당황하여 계단을 뛰어 내려갔지만 건물에서 나왔을 때 아스카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스카의 빠른 몸놀림에는 혀를 내두른다.



기억을 되살리기까지 몇 초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분명히 지난번에 아스카는 편의점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신지는 편의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편의점에 도착해 보니 그 안에 눈에 익은 뒷모습은 없었다.



적어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쪽으로는 가지 않았을 것이라고 신지는 생각한다.

레오타드에 티셔츠만 입고 있다는 옷차림이다.

더군다나 그녀는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것이다.



신지는 뇌세포를 최대한으로 가동시켜 아스카가 들를 만한 장소를 생각한다.



호라키 양네 집……일 리는 없나.

호라키 양은 지금 우리집에 와 있으니까.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 주변은 집을 옮긴 사람들이 많아서 인적이 드문 곳이 많단 말이지.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잠금장치로 잠겨 있어서 빈집 안으로는 못 들어가지만…….



하지만 도무지 찾아내지 못할 곳에는 있지 않을 것이다, 라고 신지는 생각한다.

그렇게 말하면 아스카는 절대로 부정할 것이다.

하지만…….

찾으려고 해도 찾지 못하는 곳은 무의식적으로 피하고 있을 것이 분명해.

그녀도 훈련에 돌아가야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

더군다나 아스카는 총명하니까.

아까 우리가 지적했던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쯤은 완전히 이해하고 있을 거야.



이대로, 그저 스스로 돌아가지는 못해.

그렇기 때문에 계기를…… 무의식적으로라도 바라고 있는 것이 분명해.

누군가가 찾아내 주기를 바라고 있을 거야…….

……그것은 내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몇십 초 후, 신지는 한 방향을 향해 발걸음을 돌리고 달려가기 시작한다.

아스카가 있을 그 장소를 향하여…….



九十



몇 분 후, 신지는 목적한 장소에 도착한다.

아스카는 있을까?

입구에서 반 걸음 발을 내디뎌 주위를 둘러본다.



……있다.



카츠라기 댁에서 몇백 미터쯤 떨어진 장소.

한적한 주택가 속의 조그만 공원…….

예전 같았으면 아이들의 목소리가 가득했을 이 장소도 최근의 계속되는 전투에 어린 아이들이 있는 가정은 피난을 가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어서…… 인기척이 드문, 쓸쓸한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그 한가운데.

2개의 그네 중 가까운 쪽에 있는 하나.

거기에 아스카가 앉아 있었다.



신지는 천천히 그곳을 향해 걸어간다.

처음에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던 아스카는 신지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이윽고 시야 끝에 신지의 신발이 들어오고……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아스카."



신지는 아스카에게 말을 걸었다.

아스카는 신지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노골적으로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려 버린다.

신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스카 앞까지 오더니…… 그대로 지나쳐서 안쪽의 그네에 앉았다.

끼익……

녹슬어 있는 그네의 줄이 희미하게 삐걱거리는 작은 소리를 낸다.



그대로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몇 분의 시간을 보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스카였다.

"……무슨 말이라도 하지 그래?"

퉁명스럽게 말하는 말에 신지는 대답하지 않는다.

……막상 여기까지 오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일부러 쫓아와서…… 날 비웃으러 왔다 이거야?"

내뱉듯이 투덜거린다.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뭘 하러 온 건데?"

"아니…… 그게, 쫓아가야지 라고 생각해서……"

"동정하는 거야?"

흥 하고 자조하듯이 아스카가 웃는다.

"……말해 두겠지만 말이야, 난 나쁘지 않다구. 적어도 내 춤은 완벽했어."

"……그래."

"문제가 있다면 네 춤이야. 내가 완벽하게 춤추고 있다구? 신지가 더 잘 추게 되면 그걸로 완벽하잖아!"

"………"

"난…… 완벽하다구……!"



잠시 시간을 두고 신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완벽한 인간 같은 건, 없어."

"……뭐라고?"

낮게 깔린 목소리로 아스카가 노려본다.

"완벽한 인간이 훌륭하다고 생각해?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뭐…… 완벽한 인간을 만난 적이 없으니 실제로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신지."

"아스카…… 좀 더 어깨에 힘을 빼라구."

"!"

아스카는 놀란 듯이 신지의 얼굴을 보고…… 직후에 신지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나한테 지시할 셈이야!?"

"지시라니…… 다만 아스카도 알고 있잖아? 모두가 무슨 말을 했던 건지."

"………"

"아스카…… 그 누구라 해도 계속 고집만 부려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거라구. 나만 해도 시도 때도 없이 실수를 저질러서는 미사토 씨에게 놀림 당하고 있고 말이야."

"너랑 나랑 비교해도 소용없잖아!"

"그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아스카, 모든 점에 있어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 좋아. 그런 거, 피곤하잖아?"

"난 최고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구!"

아스카는 거칠게 일어난다.

그네가 철커덩! 하고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이미 시간은 흘러…… 어느새 하늘은 저녁노을에 물들어 있다.

그 새빨간 저녁노을을 등지고…… 아스카는 우뚝 서서 신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난, 최고가 아니면, 안 된단 말이야……!!"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러나 굳은 결심을 담아 아스카의 목소리가 신지의 귀에 들려왔다.



신지는 아스카를 그저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뗀다.

그네에 앉은 채…… 앞을 응시하고 있다.

"……예전에……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여자애가 있었어."

신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는…… 아스카랑 아주 닮았었어.

아름답고…… 총명하고.

무엇을 해도 훌륭했지.

그녀는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거야.



하지만…… 그녀는 아스카처럼 최고인 것에 집착했었어.

자신에게는 그것밖에 없다,

그것 이외에 자신이 살아 있을 의미 따위는 없다, 라고 말이야…….



그래서 실제로 계속 최고의 위치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렇게 쉽게 되는 게 아니잖아?

그녀는 인정할 수가 없었어.

다른 사람에게 추월 당했을 때.

그리고 따라잡을 수가 없었을 때.



사람은 그것만으로 살고 있는 게 아니야.

최고여야만 한다면…… 보통 사람은 살아갈 수조차 없을 거라구.

하지만 모두들 불행해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어?

최고일 필요 같은 건 없는 거야.

자신에게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훌륭한 일인 거지.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정적이 서서히 내려앉았다.

신지는 앞을 본 채.

아스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아스카는 그저 노려보듯이…… 신지의 옆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신지가 갑작스럽게 시작한 옛날 이야기를 아스카는 몹시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꿉친구?

옛날에 알던 사이?

어쩌면 애인이라든지 그런 거?



어차피 나와는 달라.

입장이 다르다구.



……난 최고로 있을 수밖에 없어.

그 외에는 있을 수 없다구!



……그것은 결국…… 신지가 말하는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아스카는 알지 못한다.

아스카는 신지의 시시한 옛날 이야기를 그만두게 하려고 반 걸음만 앞으로 내디뎠다.

그러나…….



신지가 또다시 입을 연다.



"하지만…… 그녀는 알지 못했어.

게다가…… 그 시절의 난 그런 건 모르고 있었지.

무엇보다도…… 그녀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어…….

……알려고도 하지 않았어.



그녀는 결국 망가져 버린 거야.

그리고 난 그것을 그저 보고만 있었을 뿐이었지.



그녀는 모든 것을 거절하며…… 죽어 버렸어.

내가 보는, 앞에서……"



신지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은 그 붉은 호숫가…….



신지의 말을 아스카는 꼼짝하지 않고 듣고 있었다.

그저 신지의 옆얼굴을 바라본 채…….

그 표정에서 그녀의 생각을 살펴낼 수는 없다.



그러나 반 걸음 내디뎠던 다리는 멈춰 있었다.

옛날 이야기를 그만두게 하고자 열려고 했던 입도 다물어져 있었다.



신지는 그저 앞을 응시하고 있다.

그 시선 끝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

아무 것도, 없다.



신지가 또다시 입을 연다.

"아스카…… 난…… 두 번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난…… 바보였기 때문에……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어.

그녀의 마음이 모든 것을 거절할 정도로…….



그녀를 구하고 싶었어.

그녀에게는 죽어야만 할 이유 같은 건 아무 것도 없었어.



내가…… 죽인 거야…….



아스카…… 난, 너를 구하고 싶어.

또다시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그만두겠다고……

……결심한 거야……"



신지의 눈에서 딱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나왔다.

단 한 방울…….



떨어져 가는 그 한 방울의 눈물을 아스카는 눈으로 쫓는다.

그 눈물은 지면에 떨어져서 땅에 스며들어 갔다.



이 정도밖에 울지 못한다는 말인가……

신지는 마음속으로 자신을 비웃었다.

그녀를 위해…… 흘릴 눈물도……

단 한 방울의 가치밖에 없다는 말인가?



그러나 아스카는 신지의 눈물의 무거움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느꼈다, 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한 방울의 눈물은……

지금의 자신으로서는 흘리지 못하는 눈물.



무거운,

눈물.



……그렇게 쉽게 납득할 수는 없다.

네 그렇습니까, 하고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을 순식간에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성격이리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그녀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아스카를 구하고 싶다는 신지의 바람.

당사자인 아스카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 무슨 오만한, 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아스카의 지금까지의 인생은 반드시 행복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굳어지게 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면……

신지의 인생도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것.

……그것이 그녀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가 된 것인지도 몰랐다.



아스카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한 가닥만큼…… 아주 희미하고 작은 금.

그것이 그녀의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의 마음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굳어져 버린 그녀의 마음을 새롭게 태어나게 만드는 금.



그 맨처음의 한 가닥이……



그녀의 마음속에 새겨져 있었다.



아스카는 눈앞의 소년을 본다.

자신을 위협하는 증오할 존재임이 분명한 소년.

그러나 그는 지금은 등을 구부리고 앉아 있다.



그것을 보고도 그녀는 「꼴 좋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그렇게 비웃었을 텐데.

소년은 진심이었다.

유일하게 지금, 자신이 알 수 있는 것.

단지 그것뿐.

소년은……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자신을 구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는 마음속으로 웃었다.

이 무슨 건방진.

너에게 그런 말을 들을 만큼 타락하지는 않았다구.



그러나 그 말과는 달리 자신의 등에 바람이 부는 초원의 모습을 느끼고 있었다.

하늘까지도 펼쳐지는, 끝없이 맑은 파란 하늘을 느끼고 있었다.

온몸을 씻어내는 듯한 은총의 비를 느끼고 있었다.



그녀의 인생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구한다

나를

구한다

나를.



건방진.

하지만, 나쁘지 않아.

건방진.

그럼, 왜 되풀이하고 있지?



건방진.



그럼, 어째서 기분이 좋은 거지?



"눈물…… 닦으라구."

퉁명스럽게 아스카가 말한다.

"어…… 아, 미안."

아스카에게 지적 받고 당황하며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다.



"미안……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 버렸네."

신지가 말한다.

"그러게."

옆을 보며 아스카가 대답한다.

신지는 쓴웃음지었다.

"정말이지…… 꼴사납기 그지 없어."

"응…… 미안."

"사과하지 말라구."

아스카의 말에 신지는 고개를 든다.



"이번만이야."



"어?"

"또 울거나 하면, 성가시니까…… 이번만 시키는대로 해 주겠어.

내가 더 잘 출 수 있다는 건 너도 알고 있는 것 같으니까 말이야."

"……아스카."

"자아!"

척! 하고 아스카는 신지의 코끝에 검지를 들이댄다.

"언제까지나 짜증스런 얼굴 하고 있지 마! 그래서는 마치 내가 널 괴롭혀서 울게 만든 것 같잖아!"



다 말하고 나서 아스카는 빙글 몸을 돌려 신지에게 등을 보이고…… 그리고 걸어가기 시작한다.

"얼른 가자구, 신지."

신지는 아스카의 뒷모습을 응시하고 있었다.

신지의 위치에서 그녀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말은 확실하게 전보다도 어느 정도 누그러져 있었다.

"난 소오류·아스카·랑그레이……

이런 데서 꾸물거리면서 제자리 걸음 하고 있을 수 없어."



그 말은, 분명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九十一



두 사람이 카츠라기 댁에 돌아왔을 때는 아스카가 집을 뛰쳐나가고 나서 이미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토우지·켄스케·히카리 세 사람은 이미 집으로 돌아갔다.

무리도 아니다. 시계 바늘은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카리 군!"

레이가 튕기듯이 일어나더니 현관을 향해 달려온다.

신지는 신발을 벗으면서 웃으며 한손을 들었다.

"늦어서 미안해, 아야나미."

"……으응."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그러면서도 신지가 웃고 있다는 것에 조금 안도한 듯이 레이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힐끗 뒤에 선 아스카를 본다.



아스카는 왠지 모르게 신지 뒤에 서서 신지가 신발을 다 벗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한 순간의 레이의 움직임.

언뜻 보기에 무표정인 것 같은 그 얼굴에 온갖 감정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다.



어머?

이런 얼굴도 하는구나, 이 여자…….



그대로 빤―히 아스카가 레이를 응시하자 당황한 듯이 레이는 시선을 뗀다.

……그러나 역시 다시 힐끔힐끔 아스카의 얼굴을 살핀다.



알기 쉬운 여자…….



아스카는 어이없다는 듯이 레이의 얼굴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신지는 뒤에 선 아스카의 얼굴이 보이고 있지 않다는 것도 있어서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한 채 신발을 다 벗더니 빠른 걸음으로 집 안으로 들어간다.

"……앗."

신지가 아니라 아스카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허를 찔리게 된 레이는 그대로 그 자리에 남겨졌다.



레이는 동요하고 있었다.

당연할 것이다.

현재 연적으로서(커다란 착각이지만) 자신을 위협하는 지위에 있는 여성과 신지가 두 시간 가까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온 두 사람은 뛰쳐나가기 직전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분위기가 부드러워 보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신지가 자신이 아니라 이…… 가슴 큰 여자를 선택하게 되기라도 했다가는 자신은 견딜 수 없다.



……라는 갈등을 한참 하던 중에 갑작스럽게 아스카와 둘이서 대치하게 되고 말았다.

레이로서는 보기 드물게 이 구도가 몹시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물어볼 수는 없다.



한편으로 아스카는 완전히 자연스러운 상태였다.

일시적인 것인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자신은 어깨의 힘이 빠져 있다고 생각한다.

……라는 상태에서 보니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바뀌어 가는 레이의 표정을 보고 있는 것도 꽤 재미있다.



후, 하고 아스카는 웃었다.

그리고 심술궂게 미소짓더니 레이 앞에 얼굴을 가까이 들이댔다.

"뭘 걱정하고 있는 거야, 너?"

"……나."

아스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레이는 미처 대처하지 못한다.

"날 걱정해 주고 있었던 거야?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심술궂게 말해 봤을 뿐이다.

그리고 여느 때의 레이라면 곧바로 「아니」라고 대답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레이는 미처 대답하지 못했다.

뭐라고 대답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지 미처 판단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아스카에게 있어서 새로운 발견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불쾌한 것은 아니었다.



"아스카! 연습하자!"

안쪽 방에서 신지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끄럽네 참, 지금 갈 테니까 기다리라구!"

아스카도 큰소리로 대답한다.

아무렇게나 신발을 벗어 던지더니 복도로 올라섰다.

그리고 레이 옆을 지나가면서 아스카가 레이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다.

"걱정 같은 거 할 필요 없어."



그대로 아스카는 거실을 향해 걸어가 버렸다.

현관에 남겨진 레이의 마음은 혼란에 빠져 버리기 직전이었다.

어떤 의미인 것인가?

어떤 의미로도 해석할 수가 있기에 오히려 의미를 전혀 알 수가 없다.

"저기, 아야나미! 이쪽으로 올래!"

신지의 목소리에 혼란스러운 채 허둥거리며 거실로 돌아갔다.



시간도 늦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한 번만 춤을 추기로 했다.

거실 중앙에서 포즈를 취하며 나란히 서는 신지와 아스카.

지켜보는 것은 걱정스러워 보이는 미사토, 싱글벙글거리는 카지, 언뜻 보기에 무표정한 레이, 전혀 흥미가 없어 보이는 펭펭이라는 멤버이다.



음악이 시작된다.



그리고 두 사람이 춤을 춘다.



처음에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던 미사토도 점점 눈을 크게 떴다.

카지는 웃고 있는 채.

레이도 언뜻 보기에 무표정한 채.

펭펭은 털을 고르고 있다.



그리고 음악이 끝났다.



"어때? 미사토."

수건으로 땀을 닦으면서 아스카가 가슴을 펴며 말한다.

"자, 잠깐만 기다려 봐……"

미사토가 손에 든 리모콘을 조작한다.

리모콘에 붉은 램프가 켜졌다.

"그러니까∼…… 88점……"



말하면서 미사토는 머뭇머뭇 아스카의 얼굴을 보았다.

아까 전 점수보다도 낮다.

그러나 아스카는 점수를 듣고도 웃고 있었다.



"알겠어? 신지…… 어차피 할 거라면 말이지, 이 감각으로 더 나아가 100점을 목표로 하는 거야."

"알았다구……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잖아……"

어깨를 움츠리고 한숨을 쉬는 신지.

그 모습을 보며 미사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아스카가 제대로 「이해」한 모양인걸.



"그럼 오늘은 이만 끝내기로 하자. 저녁 식사 준비를 할 테니까 두 사람 다 갈아입고 오렴."

"네."

"네∼에."

미사토의 말에 신지와 아스카가 대답한다.

아스카는 짐을 들더니 그대로 서둘러 욕실로 가 버렸다.



신지가 땀을 닦으면서 벽 쪽에 놓여 있던 짐을 향해 걸어간다.

그러자 미소를 지으며 카지가 곁으로 다가와 섰다.

"수고 많았다, 신지 군."

작은 목소리로 말을 건다.

"아아, 네……"

"과연 대단한걸."

"그, 그런가요?"

"……춤 얘기를 하는 게 아니야."

말하면서 카지는 가볍게 한쪽 눈을 감았다.

"저 공주님을 단 두 시간만에 회유할 줄은 몰랐다구."

"회유라니……"

신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카지도 가볍게 웃어 보인다.

"……어쨌든 간에, 이것으로 준비는 갖춰졌구나."

"그래요."

신지가 짧게 대답한다.



지난번에는 출격하기 전날까지 걸렸다.

그것은 아스카가 상대에게 맞춘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는 것도 있고, 자신이 춤을 못 추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출격까지 앞으로 만 이틀.

이 시점에서 지난번과 같은 레벨에 도달한 것이다.



결국 지난번보다도 잘 할 수 있었던 것일까?



신지는 마음속으로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받게 되는 압박감으로부터 하나 더 간신히 해방된 것이다.



……본인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온갖 중압감이 신지의 두 어깨를 덮쳐 누르고 있었다.

평범한 중학생이라면 절대로 짊어질 수가 없는 무거운 중압감을…….



그런 신지를 레이는 멀리서부터 걱정스러운 듯이 응시하고 있었다.



九十三



남은 이틀 동안은 매우 순조로웠다.

이미 합격 라인을 돌파한 두 사람이 더욱더 움직임을 갈고닦는다.

이것은 두 사람에게 있어서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러는 동안 레이는 반드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보고 있기만 하는 존재라는 것도 그렇다.

또한 신지와 아스카의 호흡이 맞춰져 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도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아무리 신지라 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할 리는 없어, 레이에게 자주 말을 걸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훈련을 소홀히 할 수는 없으며, 또한 훈련의 주안점이 「신지와 아스카의 유니존」이기 때문에 생각만큼 레이의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출격하기 전날.

마지막 춤을 97점으로 마쳤다.



"이야아∼ 이렇게까지 잘 하게 될 줄은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구우."

미사토가 감탄한 듯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에 관해서는 신지도 동감이다.

합격 라인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여기까지 점수를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스카는 「당연」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다.



마지막 춤이 끝났기 때문에 거실의 가구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 했지만, 어쩌다 보니 원형으로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녁 식사도 끝나고 내일 있을 출격을 대비하여 일찌김치 자기로 했을 무렵……

미사토의 입에서 한 가지 제안이 튀어나왔다.



"오늘 밤은 다같이 거실에서 자는 게 어떻겠니?"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라는 표정으로 미사토를 보는 아스카와 신지.

한편으로 레이의 마음은 이미 흥분하기 직전이었다.

이카리 군과…… 함께…… 잔다.

이 순간, 레이의 뇌리에 아스카의 존재는 없다.



"왜 또…… 갑자기."

신지가 반쯤 어이가 없어 놀란 듯이 말한다.

"자아, 자아, 괜찮으니까 괜찮으니까."

미사토는 가볍게 두 손을 들고 말하더니 그대로 덥썩 신지의 목덜미를 겨드랑이에 낀다.

"아야야야, 뭐예요 미사토 씨."

"자아, 자아, 괜찮으니까 괜찮으니까."

"아야야야야야."

신지의 목덜미를 잡은 채, 미사토는 자신의 방으로 질질 끌며 데리고 들어간다.

그리고 이윽고 신지의 「아야야야야」와 함께 미닫이문 너머로 사라졌다.



남겨진 아스카와 레이는 멍하니 닫힌 미닫이문을 응시하고 있다.



미닫이문을 닫은 미사토는 이윽고 신지를 놓아 주었다.

목을 어루만지며 신지가 투덜거린다.

"대체 뭐냐구요, 미사토 씨……"

"신짱 너, 레이가 어떤지 알고 있는 거니?"

스윽 하고 얼굴을 들이대며 신지에게 바싹 다가가는 미사토.

신지는 무심코 몇 걸음 뒤로 물러난다.

"아야나미가 어떻다니…… 그러니까∼"

"그 애, 지난 5일 동안 엄청나게 욕구 불만이 쌓여 있다구."

"아아…… 네에, 저기…… 뭐어."

깨닫지 못했을 리가 없다.

신지도 신경은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겠지?"

"어떻게 하면, 이라니…… 그게∼…… 어떻게 하는 거죠?"

미사토의 말에 신지가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신지도 미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던 참이다.

뭔가 좋은 방법이 있다면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

"조금쯤 서비스 해 줘도 괜찮지 않겠느냐는 거야."

"네? 응∼…… 조금 더 구체적으로……"

조심조심 말하는 신지의 등을 미사토가 때린다.

찰싸악!

"으헥."

"어머, 시원스러운 소리. ……가 아니라, 그 정도는 스스로 생각하라구."

"콜록콜록…… 아, 아니, 그렇게 말씀하셔도……"

"알겠니? 모처럼 한 자리에서 자게 해 주겠단 말이야. 할 일은 「하나」뿐이잖아?"

수상쩍은 빛을 띠기 시작하는 미사토의 눈동자.

신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한층 더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저…… 그러니까∼…… 아, 아스카도 있고…… 아하하하."

"그거야 조용하게 하면 모를 거 아니니!"

중학생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다.



(따, 따로따로 자자…… 역시)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신지는 결심했다.

"여, 역시 평소처럼 자기로 하죠! 저, 전 베개가 바뀌면 잠이 안 오거든요."
(역자 주: 枕が變わる(베개가 바뀌다). 평소 자던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자다, 라는 관용적인 표현)

"베개만 네 걸로 가져다 쓰면 되잖아!"

"그, 그,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말하면서 허리 뒤로 손을 돌려 드르륵 미닫이문을 연다.

"앗, 신짱! 잠깐 기다리라니까!"

"여, 여어, 두 사람 다! 역시 밤에는 따로따로……"

웃으면서 말하다 말고 신지의 말이 사라졌다.



거실 중앙에는 세 사람 몫의 이부자리가 깔끔하게 깔려 있었다.

그 위에 레이가 앉아서 이쪽을 보고 있다.

아스카는 뒤에 서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굳어 있는 신지의 어깨를 미사토가 가볍게 두드린다.

뒤돌아보는 신지를 보며 히죽 웃더니 귓가에서 속삭였다.

"……여자애가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의미, 알고 있겠지? 창피 주거나 하면 안 된당."



물론, 레이에게 있어서는 깊은 의미는 없었던 것이지만…….



그리고 물론, 미사토도 재미있어 하고 있을 뿐이었지만.



九十四



밤.



불이 꺼진 방에서 세 사람은 누워 있었다.

……참고로 창가에서부터 아스카·레이·신지라는 순서이다.

아스카는 태도가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도 있어서 나란히 누워서 자는 것 자체에는 커다란 거부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미닫이문 너머에는 미사토고 있고, 함께 잔다고 해도 레이도 있기 때문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신지 옆에서 자는 것은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를 사이에 두게 된 것이다.



……그리고 원래부터 신지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는 아스카는 곧바로 깊은 잠에 빠져 버리고 있었다.

조용한 숨소리가 들린다.



……그에 반해 전혀 잠들지 못하는 것이 신지이다.

미사토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아무리 정말로 그런 짓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쉽게는 잠들지 못한다.

레이에게 등을 돌리고 누워 있었지만, 그 등 뒤에서 자고 있을 레이를 생각하니 잠은 마냥 깨어만 간다.

그리고 레이.

레이는 눈을 거의 깜빡거리지도 않고 신지의 등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안 되겠어…… 잠이 안 와

흑흑거린다는 느낌으로 신지가 중얼거린다.

하여튼, 내일이 출격이라는 데 이런 것 때문에 수면부족에 빠져 버릴 줄이야……

예상치도 못한 복병이잖아, 하고 미사토를 저주한다.



굼실거리며 신지는 이불에서 기어 나왔다.

온몸이 더워서 땀을 흘리고 있다.

뒤돌아서 레이를 보니 눈을 감고 자고 있는 모양이다.

조금 안도하며…… 그러고 나서 일어난다.

(밤바람을 쐬야지……)

휘청거리며 자고 있는 두 사람의 발밑을 지나서 창문을 열었다.

솨아아……

부드러운 산들바람이 얇은 레이스 커튼을 흔든다.

신지는 그대로 베란다로 나가더니 난간에 몸을 기댔다.



구름이 살짝 끼었을 뿐이고 하늘에는 별이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짓궂게도 세컨드 임팩트가 일어나고 나서…… 수많은 산업은 퇴보하고 사람들의 수도 줄었다.

그렇게 때문에 대기는 맑아지고 도시의 불빛에 방해 받는 일 없이 밤하늘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걸……)

신지는 생각한다.

신지가 보고 있는 것은 하늘에 떠 있는 달이다.



신지는 달을 좋아했다.

어릴 적에는 그다지 그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틀림없이 달이 좋았다.



……그것은 레이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라고 신지는 자각하고 있었다.



신지의 눈앞에 느닷없이 컵이 내밀어졌다.

"와!"

가볍게 놀라며 신지는 뒤돌아본다.



그곳에는 잠옷 차림의 레이가 서 있었다.

한 손에 자신의 컵을 들고 다른 한 손에 든 컵을 내밀고 있다.

"아, 아야나미구나…… 깜짝 놀랐어."

가슴을 쓸어내리며 신지는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주스……"

"아, 미안, 고마워."

신지는 레이의 손에서 컵을 건네받는다.



입을 대니 그것은 오렌지 주스였다.



신지는 컵을 든 채 다시 난간에 기대서 달을 올려다보았다.

레이도 신지 옆에 선다.



신지의 마음은 아까까지에 비하면 상당히 차분해져 있었다.

밤바람 때문인지 별이 가득한 하늘 때문인지, 혹은 달 때문인지도 모른다.



산들바람이 신지의 앞머리를 흔든다.

그것은 마찬가지로 레이의 푸른 머리를 조용히 흔들었다.



달빛에 비춰지는 레이는 아름다웠다.

신지는 가만히 그 옆얼굴을 응시했다.



……넋을 빼앗기고 있었다.



"……이카리 군."

갑자기 레이가 중얼거렸다.

레이는 앞을 계속 보고 있다.

레이의 옆얼굴을 응시하던 중에 갑자기 이름을 불렸기 때문에 신지는 당황하여 시선을 뗐다.

"뭐, 뭔데? 아야나미."

말하면서 오렌지 주스를 홀짝거리며 마신다.



"……가슴이 큰 것과 작은 것과, 어느 쪽이 좋아?"

"푸웃!!"



신지는 입에 머금고 있던 주스를 있는 힘껏 내뿜어 버렸다.

입가를 닦으면서 당황하여 레이 쪽을 다시 돌아본다.

"뭐, 뭐, 뭐라구? 왜, 그런 걸……"

"……대답해 줘."

레이는 이쪽을 보고 있지 않다.

짧게 한마디 했을 뿐.



신지는 격렬하게 동요했다.

너무나도 예상을 뛰어넘은 질문이었다.

……적어도 대답을 준비해 둘 수 있을 만한 질문은, 아니다.



어……

어……

어, 어, 어어어?



뭐, 뭐가…… 무슨……

무슨 얘기지?



뭐……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 거야……



하지만 신지가 레이의 손을 보았을 때……

거짓말처럼 신지의 동요는 사라져 버렸다.



레이의 얼굴을 언뜻 보기에 무표정이라고 할까…… 단호한 표정으로 앞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 손은 작게 떨리고 있어서……

손에 든 컵 안에서 주스가 작게 물결치고 있었다.



레이에게 있어서 일생일대의 용기였다.

오늘 밤 물어봐야만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유는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계기를 잡지 못한 채…… 이불 속에서 계속 신지의 등을 응시하고 있었더니 갑자기 신지가 움직였다.

심장을 움켜잡히는 것만 같은 놀라움.

순간적으로 레이는 두 눈을 감았다.

신지는 일어나더니 그로부터 이불에서 기어 나가…… 그 후 베란다의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레이는 결심했다.

물어보자…… 이카리 군에게.

이대로 놔 둘 수는, 없다…….

조용히 고개를 들자 신지는 베란다에서 이쪽으로 등을 보이며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조용히 이불 속에서 나가더니 부엌으로 가서 컵에 오렌지 주스를 따른다.

그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면서 신지의 곁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신지는 레이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레이는 앞을 보고 있다.

달빛만이 두 사람을 비추고 있다…….



"……난."

신지가 입을 열었다.

레이의 어깨가 흠칫 하고 떨렸다.



"……아야나미가, 좋아."



레이는 눈을 크게 뜬 채…… 신지의 얼굴을 응시하고 있다.

신지는 쑥스러운 듯이 코끝을 긁는다.

"……이카리, 군……"

"……난 아야나미가, 좋아.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

"아야나미…… 어째서 그런 걸 물어본 거야?"

신지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머릿속으로만 되뇌고 있던 중에 반대로 신지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그랬기 때문에 허를 찔린 듯이…… 무심코 있는 그대로 생각하던 것을 입에 담았다.

"……내 가슴이 작으니까…… 이카리 군에게 미움 받는다, 고…… 생각해서……"



신지는 볼을 조금 붉혔다.

그다지 신지에게 익숙한 분야의 화제가 아니다.

그러나 레이는 진지하다…… 그것은 아까 떨리는 손을 보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말을 골라…… 레이의 불안을 떨쳐내도록 반쯤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저기…… 난 가슴 크기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

"……거짓말."

"……그러니까…… 저기, 그러니까 말이야, 아야나미를 좋아하는 건, 가슴 때문이 아닌 거니까…… 그게 원인이 되어서 싫어하게 될 일은 없는 거야."

"……가슴이 큰 것과 작은 것과, 어느 쪽이 좋아?"

"으…… 그게…… 딱히 어느 쪽이냐고 해도……"

거꾸로 심문 당하는 듯한 흐름이 되어 식은땀을 흘리는 신지.

실제로 신지에게 「가슴의 취향」 같은 것은 없다.

없다, 라고 할까…… 몹시 여폐가 있기는 하지만, 가슴이라면 뭐든지 좋다, 인 것이다.

아직 좀처럼 가슴을 본 적도 만진 적도 없는 남자 중학생이라면 이런 식의 생각은 결코 드물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는 신지는 이미 지난번 인생에서 레이와 아스카의 알몸을 보고, 레이의 가슴을 만지기도 했으며, 이번에도 레이의 알몸을 봤다.

더군다나 레이의 가슴의 감촉은(레이의 일방적인 압력에 의하여) 몇 번인가 경험했었다거나 하여 평균적인 남자 중학생보다는 경험이 풍부할지도 모르지만….

어느 쪽이든 간에 신지에게는 「가슴 크기」에 대한 취향 같은 것은 없었다.



"……저기…… 가슴 크기는, 별로…… 어느 쪽이라도."

"……그런 거야?"

"……그런, 거야."

레이는 아직 의아스러운 표정으로 신지의 얼굴을 보고 있다.



"아야나미…… 그…… 내가 한 말, 이해하고 있어?"



"……뭐가?"



"……저기…… 난, 아야나미를, 좋아한다고…… 말한 거라구."



잠시 동안의 공백의 시간을 사이에 두고……

이제서야 레이의 머릿속에서 회로가 정상적으로 연결되었다.



아야나미를, 좋아한다고…… 말한 거라구……

아야나미를, 좋아한다고…… 말한 거라구……

아야나미를, 좋아한다고…… 말한 거라구……



아야나미를, 좋아한다고…… 말한 거라구……



레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어져 갔다.

"앗…… 어, 아……"

의미불명의 말을 중얼거리며 레이는 확하고 얼굴을 숙여 버린다.



신지는 이제서야 차분해진 듯이 미소지었다.

"아아, 다행이야…… 왠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 당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거꾸로 두근거려 버렸지 뭐야."

"저기…… 미, 미안해."

"아니, 난데없이 미안해."

신지는 부드럽게 말을 이어 간다.



레이는 얼굴을 붉히며 눈을 내리깐 채…… 그러면서도 작은 목소리를 냈다.

"……나도…… 이카리 군이, 좋아……"



"……응."

신지는 레이의 몸을 조용히 끌어안았다.

레이는 한 순간 놀랐지만 그대로 몸의 힘을 빼고 신지의 가슴에 몸을 맡긴다.



"이카리 군이…… 좋아……"



레이는 신지의 품 속에서…… 다시 한 번, 중얼거렸다.



말로 표현함으로써…… 윤곽을 그리는 마음.

그러한 것이 이 세상에 있다고 한다면……

지금 두 사람이 나눈 말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까지…… 계속 좋아했다.

그리고…… 상대도 자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것이 현실이 된다.

꿈이, 환상이 아니라…… 손을 뻗으면 닿을 수가 있는 존재로서 이곳에 있다.

그렇다……

끌어안고 있는, 레이의 따스함.

끌어안고 있는, 신지의 따스함.

그것을 느끼고 있는, 마음의 따스함…….



쓸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워지면, 불안해진다.

사랑스러워지면, 괴로워진다.

그것은…… 결코 나눌 수가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하지만 그것이 기쁘다…….



레이는 신지를 올려다보았다.

신지도 레이를 내려다본다.

두 사람은 살며시 미소지으며……

눈을 감고 입을 맞추었다.



두 번째 키스.



맨 처음 키스는 그저 막연한 부드러움과 뭐라고 할 수 없는 쑥스러움이 있었을 뿐이었다.

두 번째 키스는 온몸이 상대의 따스함에 감싸여 갔다.



입술을 떼고 다시 한 번 상대의 눈을 본다.

이번에는 시선을 돌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레이는 다시 한 번 미소지었다.

……기뻤기 때문에.

……너무나도, 기뻤기 때문에…….



콩 하고 이마와 이마를 붙이며 두 사람은 웃었다.

"……바람이 불기 시작했네…… 들아갈까."

"……응."

신지는 레이의 몸을 놓더니 레이의 손을 가볍게 잡고…… 나란히 서서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함께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이불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은 채…….

"……잘 자, 아야나미."

"……잘 자, 이카리 군."



레이는 지난 6일 중에서 처음으로……

진심으로 푹 잠들 수가 있었던 것이었다.



九十五



두 사람이 잠드는 것을 느꼈을 무렵…… 아스카는 천천히 눈을 떴다.

후우…… 하고 한숨을 쉰다.



지금까지 연애 같은 것에 흥미를 가졌던 적은 없었다.

카지 씨도…… 동경했을 뿐이라고 스스로 알고 있다.



남자 따위는 바보일 뿐이고……

나한테는 필요없어.



하지만……



상반신을 일으키자 레이의 잠든 얼굴이 보인다.

행복해 보이는…… 천진난만한 옆얼굴.



이런 식으로…… 상대를 느낄 수 있는 것을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지금 나에게는 이런 상대는 필요없다.

전부 다 혼자서 할 수 있고…… 아무 것도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상대가 있는 생활도 분명,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한테도 이런 사람이 나타나는 때가 오려나아?

한숨을 쉬면서 아스카는 다시 한 번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없다면 없어도 괜찮지만 말이야……

옆을 돌아보니 베란다로부터 달이 보인다.

커다란, 달…….



그 사람도 이 달을, 어디선가 보고 있는 걸까아……?



그런, 종잡을 수 없는 생각을 하면서……

아스카는 잠들어 갔다.



九十六



미사토는 미닫이문 너머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



하여튼∼!

신짱!

모처럼 지혜를 전수해 주었다는데 말이야……

그대로 자 버리면 어쩌겠다는 거니!



뭘 하고 있는 걸까요, 이 사람은…….



九十七



다음 날 결전은 완승이라고 해도 좋았다.

신지와 아스카의 유니존은 완벽했다.

지난번에 잘 마무리하지 못했던 착지도 완벽하게 해 낸 것이다.

신지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아스카도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레이는 역시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신지와 아스카의 유니존에 따끔거리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동시에 안정된 감정도 자각하고 있었다.



지난 며칠 전까지의 어찌할 도리가 없던 감정과는 다르다.



이렇게 신지는 에바를 타고 아스카와 함께 싸우며…… 레이는 관제탑에서 모니터 너머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이 이어져 있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레이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음속에 있는 조그만…… 하지만 따뜻한 것.

……이것이, 유대……일지도 모른다.

레이는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