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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밤늦게까지 계속 결계 근처에서 머물렀다.

새벽이 다 되어서야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다는 모양이고, 이것저것 생각할 시간도 필요했다.


중간중간 밖에 나가서 마녀도 잡아오고, 주변의 마을도 둘러보기도 했다.

화이트채플은 조금 신기한 곳이었다. 마녀가 다른 곳보다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을을 하루 종일 둘러봐도 마녀 한명도 만날 수 없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기이할 정도였다.


오후가 되어가고, 점점 날이 어두워져가는 화이트채플의 사람들은 점점 이곳저곳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남 몰래 가방 안에 손을 넣어서 지니의 장갑과 케이씨의 검을 잡아볼려고 했지만, 그럴 필요도 없었다.

케이씨의 검을 잡기도 전에 지니의 장갑을 잡자마자, 이미 저들의 감정이 읽혀오고 있었던 것이다.


공포, 허무함, 좌절….

긍정적인 감정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감정은 그러한 것들이었다.


음, 이제 케이씨의 능력도 익숙해졌다는 증거일까.

가능하면 계속 써 왔기도 하고, 어려운 능력도 아니라서 익숙해지는 것이 더욱 빠른 느낌이다.

이제와서는 지니의 장갑은 보조의 의미가 강하고, 관찰만으로도 어느 정도 사람의 감정은 읽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이비씨와 함께 다닐 때와 달리, 혼자서 다니는 나를 노리는 사람들의 기척을 느껴서 뒤돌아보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가 있었다.

그 사람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바로 몸을 숨겼기에 얼굴을 오래 보지는 못했지만, 그 잠깐에 사이에 읽혀진 감정은 처음으로 본 감정이었지만, 마치 욕심에 가까웠다.


처음 읽어본 감정이지만, 왜인지 익숙한 그 감정에 본능적으로 공포와 거부감을 느낀 나는, 가능한 재빨리 골목 사이로 들어가 몸을 투명하게 해서 숨었다.


곧바로 지붕 위로 뛰어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곧이어 나를 따라온 남자가 내가 사라진 것을 보고 놀라서 찾는 것을 보고서, 나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남자였다.



결계는 일단 고아들이나 따로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지만, 이따금 다른 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들도 오기도 했다.

일부는 잠깐 쉬기 위해서, 일부는 도둑질을 하다가 숨기 위해서 등등 이유는 다양했다.


그들 중에서도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도 있었고, 경계하는 사람도 있었다.

도중에 나를 보고 이쁘다면서 과도하게 다가오는 사람도 있어서 당황했지만, 대장이 막아줘서 금방 넘어갈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를 경계하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는 악수를 하며 기억을 읽어봤지만(빠르게 보기 위해서 금요일 기억만 읽어봤다), 수색에 도움이 될 법한 기억은 많지 않았다.


알아낸 것이라고 하면 홍수가 있었을 때, 결계 속에서는 밖에 물이 빠지기만을 기다리며, 비상시를 위해 남겨둔 음식으로 겨우 살아왔다는 것 정도와 이따금 모리가 올 때마다 입구 쪽 물이 줄었다는 것 정도


그리고 금요일에 모리가 결계에 아침 일찍 왔다가 금방 나가고 나서부터 안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모리가 나가자 공포에 떨면서 결계 입구만을 보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부터 하나 둘 방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물론 그 기억 속에서 그녀의 모습은 조금도 볼 수 없었다. 약간의 어색함을 바탕으로 추정할 뿐이지.


누가 가져다 둔 것인지 모를 시계(크기와 품질을 보면, 에밀리아님이 가져다 두신 것 같지만, 확실하진 않으니까)에 의하면 아직 낮 12시도 안 된 시점이었다.



저녁 먹을 시간이 지나서 뭐라도 해보기 위해서 간단하게 요리를 해봤다.


대장의 방 안에 식재료 보관 방이 있었지만 대부분이 보존식이었고 보통은 주말에 에밀리아님이 가져다 준 돈과 모두가 번 돈을 모아서 그날 먹을 것을 사오거나 어디선가 훔쳐오는 것들로 배를 채운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도 처음이니까, 라는 생각에 조금 무리해서 할아버지에게 받은 용돈과 대장에게 부탁해서 받은 돈을 가지고 생선{1}과 기름 같은 것들을 조금 사서 내가 배운 요리들을 일부 해 줄 수 있었다.


다행히 냄비는 안에 있었고, 불은 내가 만들 수 있으니까. 조금 엉성했어도 나름 잘 만들 수 있었다.


그 덕분일까, 모두의 얼굴에서 웃음이 올라온 것을 보고 나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내게 와서 고맙다 라고 해주는데,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무언가 차오르는 듯한, 좋은 기분이었다.


다가와서 이름을 묻고, 근처에 함께 앉아서 실없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이야기 거리가 많지 않음에도 내 사소한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었다.


… 이 일을 하겠다고 해서 다행이었던 것일지도.



“야, 지금 시간 괜찮냐?”


새벽 1시쯤 되니, 대장이 먼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네, 아직 안 오신 분들도 있다고 하니 그 사람들만 마저 다 만나고 갈려고요.”


“그럼 잘 됐네, 잠깐 나가서 함께 그 아이들 좀 찾아오자. 야 클라라! 나 안 온 놈들 데리고 올 거니까. 어린 애들 좀 재워놔! 나 좀 다녀온다!”


다른 아이들에게 다녀온다고 한마디 툭 던지고서는 내 팔을 잡고 밖으로 나가는데, 보기보다 강한 힘에 나도 모르게 끌려서 결계 밖으로 함께 나가게 되었다.


“안 그래도 좀 늦는다고 생각했는데, 뭔가 이상한 건가요?”


“아무리 밤늦게까지 일해도 이 시간에는 다 돌아와.{2} 어느 정도는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는데, 아직까지 안 오는 것이면 뭔가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높거든. 어디 이상한 놈에게 잡혔거나, 어딘가 길을 잃었거나.”

“결계도 너무 시간이 늦으면 특별한 표식이 없으면 출입이 막혀버리니까, 이렇게 내가 직접 가야해. 너희 같이 특수한 능력이 있는 년들은 예외라는데, 정확한건 모르겠으니 묻지 말고.”


아직까지 안 온 사람은 3명이고, 3명 다 버몬드세이{3}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평소에도 이런 일은 예방하기 위해 지나가는 길이 정해져 있으니 한번 갔다가 오면서 흔적을 남긴 것이 있는지 확인해야하는 것이다.


밤이 되자 다시 기괴하고 음습한 장소로 변해버렸지만, 아직 미성년의 아이들 둘이 랜턴 하나의 빛을 의지하고 거리를 걸으면서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은 있어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없었다.

만에 하나를 위해 총을 꺼낸 것이 도움이 된 것인지, 옆에 대장이 유명인이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 절대로 총 때문이지. 총이 없었으면, 내가 있든 말든, 너 때문에 접근하는 놈들이 많았었을 걸.”


“역시 얕보이는 것일까요?”


“그런 것도 있고, 너 정도로 이쁘게 생긴 여자애가 좋은 옷 입고 이런 곳을 돌아다니는 것은 ‘나 잡아가서 먹어주세요’ 라고 하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마약쟁이들이 와서 이상한 짓 하고 그럴걸.”

“그러고보면 아침부터 계속 보고 있었는데, 그 가방 신기하네. 그런 거 나도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


“무한히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그러고보니 이런 곳에는 왜 온거야?”


“런던이요? 아니면 결계요?”


“둘 다.”


“런던은 관광차 왔어요. 제 발로 좀 더 멀리 더 많은 것을 보고 싶었거든요.”


“허, 먹고 살기 여유롭나보네, 놀러다닐 시간도 있고.”


“특정 조건만 만족하면,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있거든요.”


소피네 언니 가계가 먹고 살기 좋을 정도로 잘 되냐고 묻는다면… 뭐, 나름 잘된다. 역시 소원에 의한 것이니까, 안 될 이유는 딱히 없지.

그래도 마법소녀니까, 밥을 다른 사람보다 극히 조금만 먹어도… 아니, 안 먹어도 살 수 있으니까, 돈이 필요하다 싶으면 제일 먼저 식비부터 줄이고 있다.


생각해보면 내가 없으면 소피 언니는 밥을 안 드시고 계시겠지? 그래도 조금은 드셨으면 하는데….

맨날 나에게는 대충이라도 하루 3끼 챙겨 먹으라고 하면서 정작 본인은 잘 안 드신다.

어차피 나도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으면 기운도 없고 배고프니 매일 챙겨먹고 있다.


“그리고 결계…는 말이죠. 이전에 저는 메이드 였거든요.”


동경하던 마음에 남 몰래 숨어서 지켜만 보던 메이드의 인사를 간단하게 해주니 대장은 조금 당황해하는 듯했다.


“메이드? 네가? 성이 없다고 하길래 조금은 예상했지만, 그보다 너 몇 살인데 벌써 메이드야?”


“어렸을 때부터 거기서 일해서, 전 제가 몇 살인지도 몰라요.”


“허참, 아무리 봐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으로 밖에 안 보이는데.”


“운이 좋았죠.”


뭐, 처음 도망쳐 나올 때 까지만 해도, 몰꼴이 말이 아니었겠지.

마법소녀가 된 덕분인지, 지금은 그때의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외견에 흉터가 남는 것을 싫어하던 주인님 덕에, 흉터는 처음부터 없었고 말이다.

처음부터 상처를 입더라도 흉터가 안 남을 정도로만 상처를 입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필러 메이드님이 내 상처를 봐주시기도 했지만, 도중에 주인님에게 그 장면을 들키고 난 이후부터는 치료를 따로 받은 적이 없는데도 그렇다.


지금은 뭐, 변신 상태에서 옷은 처음에는 너무 어색했을 정도로 좋은 옷이니까.

변신을 풀 일이 없기도 했고, 변신을 풀었어도, 할아버지가 사주신 옷을 입고 있어서 별 차이는 없다.


“제가 정말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시절과 비슷하게, 어찌보면 더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최대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드리고 싶었어요.”


“…네가 선택한건가?”


“네, 제 의지로 선택했어요.”


“… 내가 오해했던 건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마지막 한 마디는 못 들은 척 해주었다.



오래된 넓은 다리를{4} 건너서 온 곳은 수 많은 공장들과 매연을 내뿜는 배들로 시끄러웠다.

버몬드세이는 밤이 되었는데도 매연으로 숨 쉬기 힘든 장소였다.

아직까지도 불이 켜져있는 공장도 있었지만, 음습한 기운이 여기저기 넘실거렸다.

거리에는 눈에 피로가 가득한 사람들이 겨우겨우 걸어다니고 있었다


도중에 벽에 기대고 자는 사람이 건물 안에서 나온 사람에게 혼나고 다시 어디론가 걸어갔다.


“여기까지 왔는데 별다른 흔적이 하나도 없다니. 조금 상황이 안 좋은걸.”


대장이 공장에 들어가서 물어본 결과, 아이들은 이미 한참 전에 퇴근했다고 했다.

도중에 어떤 일이로든 길을 벗어나게 되면 이들만 알아볼 수 있는 표식을 남기기로 했다는데, 그런 표식조차 하나도 없었다.


“쓰읍, 갑자기 어디선가 죽거나 사라지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오늘따라 찜찜하단 말이지. 아니 어디로 간거야?”


“일단 돌아가면서 이번에는 좀 더 꼼꼼하게 보도록 해요.”


“그래야겠지. 하 거참, 허튼 짓을 하거나 쉽게 끌려갈 놈들도 아닌데 이상하네, 여기까지 와줬는데, 돌아가보니 두 명 다 돌아와 있는 건 아니겠지?”


“… 두 명? 셋 아니었어요?”


“뭔 소리야? 처음에 둘이라고 이야기 안 해줬어?”


“분명 3명이라고 했던 것 같….”


… 설마.


“아악! 야! 팔 부서지겠다!”


“시간이 없어요! 꽉 붙잡으세요!”


“뭔 일인지 몰라도, 이 자세는 조금, 그리고 아니 뭔 여자애가 힘이 뭐익?! 아 씹 혀 씹었어! 좀 천천히 달려!”



“아~ 저 아이 말하는 건가.”

“어, 지금 버몬드세이에 있네.”

“귀찮아.”

“너도 참~ 피곤하게 산다. 나를 좀 본 받는 건 어때?”

“그래, 잘 가~ 적당히 응원하는 척 정도는 해줄게~.”








{1} 생선들은 증기기관을 수용한 원양어선의 등장으로 가격이 많이 내려갔다. ‘피시 앤 칩스’도 1870년대 생긴 음식이다.

{2} 법으로 18세 이하는 야간 노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3} 당시 이곳은 템스강을 따라 산업 공장과 부두 및 이민자 주택이 들어서면서 런던 최악의 슬럼가 중 하나로 불렸던 Jacob's Island라는 슬럼가가 이곳에 위치했으나 1860년대에 정리되어 1875년에는 이전의 모습은 완전히 사라졌었다.

{4} 런던 브릿지를 말하는 거다. 참고로 타워 브릿지는 다른 다리다. 우리가 잘 아는 도개교의 다리가 타워브릿지로, 1886년에 착공을 시작하여 1894년에서야 완공되었다. 즉, 아직 한창 짓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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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