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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한가로운 헤네시스 공원의 분수 앞에서 리나와 마야, 아르미가 만났다. 좆목에 미친 일진들에게 집을 빼앗긴 둘, 그리고 10년 넘게 실직 중인 하나. 이들은 울적한 삶을 위로할 겸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오랜만에 힐링을 즐기기로 하였다.


리나는 헤네시스에서 소문난 이야기 보따리. 빅토리아의 세헤라쟈드라는 명성을 가진 자이다. 심심할 땐 헬레나가 리나를 초대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할 정도였다. 세헤라쟈드가 누구냐고? 저런, 메이플 월드에서 '모르면 그란디스인'이라 불릴 정도의 기본적인 상식조차 모르다니. 공부하세욧!


"리나 언니, 오늘도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세요."


마야가 보챘다. 몸이 아팠던 마야에게 간간히 찾아와 과일을 깎아주며 리나의 특제 동화를 들려주던 오뭇한 시간은, 마야에게 정말 즐거운 기억이었기 때문이다. 리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 지 고민하다가, 머쉬맘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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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네시스의 명물인 버섯, 그리고 이 버섯들이 만든 왕국, 사람들은 이곳을 버섯왕국이라고 부른다. 헤네시스 마을에서 남서쪽 깊은 숲으로 가면, 이성이 있는 버섯들이 거대한 성을 세우고 작은 사회를 꾸리고 있다.


버섯왕국의 왕, 머쉬킹은 젊은 나이에 선왕의 뒤를 이어 버섯왕국을 이끌게 된 자애롭고 지혜로운 왕이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반전이 있는 법. 이것은 버섯들 사이에서 금기가 되어버린, 머쉬킹의 젊은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너무 젊은 나이에 왕이 되고 만 머쉬킹은 즉위 후 10년만에 결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신하들은 왕국의 귀족들의 딸 중에서 혼기가 찬 이들을 모이게 한 뒤 경합을 벌여, 이후 최종 선발된 여인(?)들 중 왕이 직접 자신의 반려를 선택하는 전통적인 방식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머쉬킹은 반대했다.


"어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짐은 그런 방식을 추구하지 않는다. 나는 자연스럽게 만남을 추구하느니라."


신하들은 생각했다. 너무 왕이 너무 젊은지라 간간히 신분을 숨긴 채 성 밖으로 나가는 일탈을 저지른 적이 많았는데, 아마 그 과정에서 하층민들의 삶을 접하며 이상한 것에 물들었다고 말이다. 하지만 머쉬킹의 고집을 신하들은 감히 꺾을 수 없었다. 물론 머쉬킹이라 해서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자 신하들과, 나이 지긋한 메이드들 뿐인 이 성채에서 자신이 바라는 또래 여성을 자연스럽게 만난다니, 쉬운 일은 아니지. 하지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머쉬킹은 머리를 식히고자 그날도 밤에 신하들 몰래 복면과 후드를 쓰고 버섯왕국 성채 밖으로 나섰다.


머쉬킹은 밖으로 나갈 때마다 종종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곤 했다. 어쩌면 머쉬킹으로 하여금 주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기도 했으나, 오늘 만큼은 다른 곳으로 가고 싶은 머쉬킹이었다. 늘 지나다니던 길은 너무 식상했으니 말이다. 머쉬킹은 성 밖의 숲속 깊은 곳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머쉬킹은 마법에도 능통했기에 끽해야 스톤골렘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면 자기 몸 정도는 스스로 지킬 수 있었다. 물론 강한 모험가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나무와 나무 사이를 지나다니면서 머쉬킹은 성 밖의 신비로운 풍경에 감탄하였다. 눈도 입도 손도 없이 그저 식물처럼 나무 밑에서 자라는 버섯들, 눈도 입도 있으나 대화가 통하지 않는 지성 없는 버섯들. 이것을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각각 침팬지 피규어 모양 약초, 그리고 침팬지 정도로 생각한다면 될 것이다. 성 밖으로는 신하들을 대동하고 잠깐 사냥하러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한밤의 숲속은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 때, 익숙하면서 익숙하지 않은 울림이 들리기 시작했다.


뭐지? 머쉬킹은 당황했다. 이것은 동족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울음소리. 분명 지성 없는 버섯의 울음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작은 버섯 몬스터들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마 이 정도의 울음을 낼 정도라면 아주, 아주 거대한 버섯일 것이다.


머쉬킹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안개 낀 어두운 숲은 반딧불이와 발광초, 달빛이 흐리게 길을 비추었고, 저 안개 너머로 서서히 실루엣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더 가까이 접근하자, 정체불명의 울음소리를 가진 존재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머쉬맘. 머쉬킹은 이 존재에 대해 알고 있다. 모든 버섯들의 어머니이자, 골렘을 제외하면 헤네시스의 진정한 터줏대감으로 긴 세월을 살아온 신적인 존재. 머쉬킹을 비롯하여 모든 버섯왕국의 버섯들이 신화와 역사 수업을 통해 이야기로만 접하던 존재가 지금 머쉬킹의 눈 앞에 있다. 머쉬맘은 이방인이 자신에게 접근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달을 바라보며 계속 웅장한 울음 소리를 내었다. 그 울음은 마치 구슬픔과 그리움이 녹아든 듯한,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원초적인 욕망을 품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모름지기 버섯은 나이를 먹어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균사체 섬유 조직의 주름이 자글자글해지고, 갓은 색과 윤기를 잃고 탁해진다. 하지만 머쉬맘은 달랐다. 몇백년, 어쩌면 몇천년을 살아왔을지도 모르는 저 고대의 존재는 여전히 태양처럼 화려한 갓과, 생기 있는 몸통을 가진 존재였다. 그래, 이 광경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넘모나도 아름다웠다』


머쉬킹은 혼이 나간 듯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다, 실수로 눈 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밟아 큰 소리를 냈다. 그러자 울음 소리를 내었던 머쉬맘은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돌렸다. 지긋히 머쉬킹을 바라보던 머쉬맘은 이내 먼 거리에서 몸을 찌그러뜨리더니 부웅- 소리를 내며 하늘로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고는 머쉬킹의 앞에 착지했다. 폭발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일대가 울리며 주변 나무들이 박살났다. 머쉬킹은 크게 당황했다. 아마 아바마마의 어깨 위에서 목마를 타던 어린 시절의 머쉬킹이었다면 오줌을 지렸을 것이다. 하지만 머쉬킹을 바라보는 머쉬맘의 거대한 눈동자에 매료되자, 머쉬킹은 뒷걸음질을 치긴 커녕 머쉬맘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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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챠쿠챠 했다구요?"


아르미가 리나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르미는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채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야는 예전에 지병에 걸렸던 시절마냥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가 병이 아닌 야릇한 이야기 때문에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은 저 흔들리는 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크흠흠, 그런 말은 너무 천박하지 않니?"


리나가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아르미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니, 그러면 이 이야기 자체를 꺼내질 말았어야죠 언니...


이제는 지나가는 모험가들의 샌드백이 되어버린 불쌍한 머쉬맘은, 한 때 헤네시스를 호령한 존재였다. 물론 머쉬맘을 포함해서 수많은 거대 버섯이 헤네시스를 가득 메우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헬레나의 초원 개척과 함께 씨가 말라버렸고, 극소수의 거대 버섯들만 신격화되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 엘프인 헬레나가 더 이상의 살생을 원치 않았던 점도 머쉬맘의 명을 늘인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긴 세월동안, 새로운 거대버섯이 나타날 수는 없었다. 궁수 교육원을 통해 육성된 수많은 초보 모험가들의 수련 대상으로 어린 버섯들이 무차별적으로 희생당했고, 그렇기 때문에 버섯의 평균 수명은 계속 낮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지성을 가진 버섯 종족이 지성 없는 야생 버섯들을 소탕하여 왕국의 터를 확보하면서 어린 버섯이 거대한 버섯으로 성장할 기회는 몇백년동안 막혀버렸다.


이 때문에, 머쉬맘은 비슷한 사이즈의 동족들을 모두 잃어버린 이후로 자신의 반려를 가질 기회가 전무했다. 짝을 찾고 싶다는 소망은 그녀로 하여금 밤마다 울음을 외치게 하였고, 그러던 그녀를 아주 앳된 청년 버섯인 머쉬킹이 발견했던 것이었다.


"그럼 설마 비올레타의 어머니가..."


마야는 제발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리나에게 물어봤다.


"아니, 비올레타는 머쉬킹의 양딸이란다. 비올레타의 친아버지인 버섯왕국의 총리대신이 가난에 못 이겨 유기했던 딸을 머쉬킹과 그 아내가 키우게 된 것이지. 참고로 이 때의 머쉬킹의 아내도 머쉬맘이 아니라고 해. 머쉬맘 사건 이후로 머쉬킹이 왕국 안에서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마주친 장미꽃집 여인(?)과 눈이 맞았다고 하더구나. 그 때문에 왕비가 죽은 지금도 버섯왕국 한쪽에는 자신의 아내를 기리는 장미꽃 정원이 있다고 해."


마야는 안심하고 휴우-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장미 정원에 대한 얘기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만 뭐, 세상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그럼 그날의 일탈은 결국 어떻게 끝난 거래요?"


아르미가 다시 물어본다. 리나는 다시 차근차근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글쎄, 당시의 버섯왕국의 기록에 따르면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된 머쉬킹이 절박하게 성문을 두드리는 장면이 문지기 병사들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해. 아마 몸을 섞다 정신을 차린 머쉬킹이 머쉬맘의 무게에 짓눌려 부상을 입고 미친듯이 도망을 쳤던 것이겠지. 그 뒤로 성 밖으로는 죽어도 나가지 않았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펭귄왕국의 습격으로 성에서 도망나왔을 때 병에 걸렸던 것도 딸을 잃은 슬픔 때문이 아닌 성 밖의 트라우마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어. 물론 이 얘기를 왕국 내부에서 했다간 갓을 압수당하고 지하감옥에 갇힐지도 모르는 일이지."


"리나 언니... 혹시 다른 얘기로 넘어가면 안될까요?"


"어머, 아직 이런 이야기에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나 보네, 미안하구나 호호"


리나는 조금 더 전체이용가에 걸맞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리나의 이야기를 듣는 두 소녀의 모습 너머로, 따스한 봄날 짝을 찾는 어느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하늘하늘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가 평화로운 헤네시스의 모습을 더욱 정겹게 만들어주고 있다. 새로운 반려를 찾은 머쉬킹처럼, 자신과 비슷한 체구의 수컷 거대버섯인 블루 머쉬맘이 등장하여 머쉬맘과 백년해로를 기약한 것은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아, 수컷인데 왜 블루 머쉬'맘'이냐고? 그런 사사로운 건 묻지 마. 언어의 관습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지 뭐.














내가 시발 뭘쓴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