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작전적 사고는 역사적으로 시종일관 제국의 존망을 좌우하는 고도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으며 결고 승리를 위한 해법도 아니었다. 단순한 '고육지책' 이자 '궁여지책' 일 뿐이었다. 이른바 '양지를 노리는 빈곤한 자들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독트린이었던 것이다."
= 독일군의 신화와 진실 : 총참모부 작전적 사고의 역사 (게하르트 P. 그로스 作) 中 =


-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던 비스마르크는 독일 통일 후, 신생국가였던 독일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외교적 노력으로 평화 체제 유지, 하지만 황제 빌헬름 2세를 위시한 독일 군국주의자들은 뒤늦게 제국주의 경쟁에 뛰어들어 팽창 정책을 추구하며 어그로를 잔뜩 끌어모음.


- 결국 유럽대륙의 양대 강국이었던 프랑스와 러시아를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됨(양면전쟁). 이러한 전략적 열세를 독일 통일전쟁 과정에서 발전된 기동전, 포위섬멸, 우회 등 고도의 전술적 역량으로 만회하고자 함.


- 장기전으로 갈 수록 불리하므로 신속한 승리가 핵심. 양면의 적을 신속한 기동을 통해 각개격파 하고자 함. 이를 바탕으로 '슐리펜 계획' '소(小)몰트케 계획' 등의 양면전쟁 계획이 작성됨. 2차대전 초기의 '전격전' 역시 이러한 개념의 연장선.


- 변변한 식민지 하나 없는 독일은 체급의 한계가 분명했으나, 자신들의 전술적 역량을 굳게 믿어 보급문제 등 현실적 한계를 외면. 단기간의 승리를 위해 중립국을 침공하거나 부족한 물자를 현지에서 약탈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며 적을 늘림.


- 또한 군부의 힘이 막강한 군국주의 성향으로 인해 군부 내 파벌 갈등 극심. 국가의 이익보다도 군부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 전략 목표에 있어서도 이견 발생 / ex) 총참모부(보수세력, 반 히틀러) vs 국방군 최고사령부(신진세력, 친 히틀러)


- 그 결과 우월한 전술능력으로 수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고도 이를 총체적인 전략적 승리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패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