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유라시아 대륙을 정복한 유목민족 켄타우로스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 동쪽의 작은 나라까지 들이닥쳤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말발굽에 무참히 짓밟혔대.


두 눈으론 차마 볼 수 없는 살육현장 속에서 자신의 아이들만큼은 반드시 살리고자 항아리에 씨앗을 담아 서둘러 땅에 묻는 알라우네 부부가 있었어.


결국 이들은 제때 도망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두 부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이 항아리는 유적 발굴팀에 의해 약 700년 만에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됐어.


깨지고 금이 간 뚜껑을 장갑 낀 손으로 조심스레 열자, 안에는 식물의 씨앗으로 보이는 알갱이가 10개 정도 들어있었어.


발굴팀은 이 씨앗을 지질화학연구소에 보내 분석을 의뢰했지. 


연구원들은 감탄을 금치 못했어. 그냥 씨앗이 아닌 알라우네의 씨앗이었거든. 그것도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과거 불교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알라우네였지.


정말 다행히 몇 개는 아직 싹이 살아있어서 조건만 갖춘다면 다시 이 알라우네를 부활시키는 것도 가능했어.


이들은 씨앗 3개를 연꽃이 살기에 적합하게 꾸며놓은 온실에 심고 밤새 상태를 점검하고 온도를 확인하는 등 지극정성을 들여 씨앗이 싹을 틔울 수 있게끔 노력했어.




하지만 어째서인지 모두 감감무소식이었지. 비슷한 종인 다른 연꽃 알라우네들을 초빙해 전적으로 조언을 듣고 관리를 했음에도 씨앗에선 뿌리 한 가닥조차 나오지 않았어.


해당 프로젝트를 맡은 연구원들 중 하나인 몬붕이는 고민에 휩싸였지. 대체 뭐가 문제일까? 역시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분명 싹은 살아있고 모든 방법은 다 동원했는데 왜 싹을 틔우지 못하는 걸까?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던 몬붕이는 씨앗을 발굴한 고고학 연구소에 문의해 보기로 했어. 혹시 씨앗과 함께 발견된 유물들이나 토기에 무언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수화기를 들었지.


그리고 그는 의외의 답을 들었어. 씨앗이 들어있던 항아리 뚜껑에 짤막한 글이 새겨져 있었는데, 얼마 전에 해석을 끝냈다고. 연구에 도움이 될 진 모르겠지만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한번 보라는 말에 몬붕이는 전화를 끊자마자 서둘러 자신의 메일함을 확인했어.


메일의 내용은 대략 이랬어.



 ’누군가 저희 아이들을 발견하신다면, 부디 사랑으로 보듬어 주세요. 

  이 죄 많은 부모가 주지 못한 사랑, 엄마 품에 안겨 자장가를 듣는 소소한 사랑의 속삭임을 이 아이들에게 들려주세요.‘



무언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응어리를 억누르며 몬붕이는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온실로 달려갔지. 


날이 저물어 어둠이 짙게 깔린 온실 구석에 씨앗 3개가 담긴 수조가 놓여있었어. 계속된 시도에도 발아에 실패하자 이전만큼 관심을 가지지 않은 탓에 온실 끄트머리로 밀려난 상태였지.


몬붕이는 그대로 자리에 앉아 수조를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부르기 시작했어. 서툰 박자와 자신의 낮은 음색에 멋쩍은 그였지만 뭐 어때? 그는 밤새 온실에서 시간을 보냈지.




그 뒤로 몬붕이는 일하다 틈만 나면 온실을 찾아가 씨앗들을 봤어. 전에는 영양 관리나 환경점검 같은 사무적인 일에 치중했지만, 지금은 물 속에 손을 넣어 씨앗을 쓰다듬어보기도 하고 오늘 있었던 일이나 재밌는 일화 등등 씨앗을 상대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쏟아냈지.


주변에서는 몬붕이 쟤가 프로젝트 말아먹고 드디어 정신이 이상해졌나보다, 씨앗이랑 연애한다 등등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을 보냈지만 몬붕이는 전혀 개의치 않았어.


오히려 한 술 더 떠서 온실에 텐트를 하나 치고 거기서 출퇴근을 했지. 조금이라도 더 씨앗을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날도 딱딱한 바닥에서 잔 바람에 등에 잔뜩 알이 배긴 몬붕이는 힘겹게 기지개를 펴며 일어났지. 그리고 평소처럼 수조를 본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어.



 “아빠!”



씨앗 3개 중 하나의 껍질이 쪼개진 채 물에 둥둥 떠 있었고, 그 옆에 엄지손가락만한 어린 여자아이가 함박미소를 품은 채 몬붕이를 올려다보고 있었지. 마침내 몬붕이의 노력이 결실을 맺는 거야.




 이렇게 약 700년이 넘는 세월을 건너뛰어 아라연꽃은 세상에 다시 나오게 되었어.


이 연꽃이 발견된 곳이 과거 아라가야가 있던 곳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해.


일반 연꽃하곤 다르게 꽃잎이 날렵하고 옅은 색이라 과거 소박했지만 따뜻했던 우리 조상들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게 특징이야. 


지금도 함안군에 가면 아라연꽃 알라우네들이 자신들의 역사를 소개하며 많은 사람들을 따뜻하게 반겨주고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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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정리하다가 연꽃 보고 갑자기 회로돌아서 써 봄. 나중에 이야기해보자에서 써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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