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갤에서 몬무대회 연다길래 다시 몬무스 배우러 왔습니다

쓰다 망한 소설 몬무스버전으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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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

다시 그 하이힐 소리가 들릴 즈음에 몬붕은 일어나기를 거부했다.
이대로 기절하자. 아니면 잠이라도 들자. 그러면 다시 숙소에서 눈을 뜰 것이다.
하지만 차가운 물살과 함께 그를 반긴 건 변함없는 고통이었다.

"잘 잤는가 인간."

얼음여왕. 그녀가 날카로운 입고리로 감옥문을 열었다.

"그럼 다시 고문받을 시간이란다."

몬붕은 얼음여왕에게 붙잡혔다. 던전에서 나오던 중 얼음정령들에게 습격 당한 것이다.
마왕과의 협정에 따라 얼음여왕은 몬붕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정보를 빼는데 주저함도 없었다.
다 불어버렸다. 병력, 병량, 살고 있는 도시에 관한 것은 전부. 그런데도 고문은 끝나지 않았다.

유희가 시작된 것이다. 인간이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축제가!

"그럼 내일 또 오겠다. 인간."

야릇한 목소리로 얼음여왕은 손을 흔들며 감옥문을 나섰다.
뒤따라 나서는 정령들이 호호 웃으며 머리를 짓밟았다.
굴욕적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그저 희망을 갖고 기다리는 수밖에.


***


감옥문을 나서자 정령들은 불안한 기색을 표했다.
그녀들은 원탁에 앉아서 하나둘 두려움을 호소했다.

"정말 괜찮겠습니까 여왕님? 인간들을 공격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단번에 점령한다 하더라도 침공은 침공.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성을 지키는 병력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감정 따윈 차갑게 메말랐을텐데도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허나 얼음여왕은 피식 웃으며 지팡이를 들었다.

"다들 걱정말거라. 겨울이 오면 놈들은 알아서 성을 내줄테니."

일단 성의 구조만 파악하면 점령은 손쉽다. 겨울이 왔을 때 취약한 부분을 향해 한기를 보내는 거다.
그렇게 뚫린 마법 방어벽은 추위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영원한 겨울이 시작이다.
몬붕이 생각보다 끈질기지만 아무렴 어떤가. 시간은 넘칠 정도로 많은데.

"곧 있으면 용사도시의 전 영토가 우리 손에 들어올 거다. 그렇게 되면 다시 겨울세상이 오는 거다."

여왕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부하들은 활기를 되찾았고 그렇게 회의는 끝났다.
달이 창문 틈으로 얼굴을 내보였다. 벌써 밤인가. 여왕은 마지막으로 지팡이를 들어 몬붕을 투시했다.
한 나라를 다스리는 마물급이면 상대방의 기억조차 읽을 수 있다.

얼음여왕은 즐겁게 몬붕의 머릿속을 훑으며 정보를 캐내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응?"

은밀한 기억이었다. 지친 정신이 토해낸 숨기고 싶었던 정보.
그 속에서 얼음여왕은 한 명의 마물을 보았다.

쇼거스였다. 혼돈의 신에게서 태어나 세상으로 넘어왔다는 슬라임 메이드.
별 거 아닌 쓰레기 마물인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에 무언가를 끼고 있었다.

은은한 빛이 감도는 얇은 링. 결혼반지였다. 인간들이 평생 함께할 반려에게 준다는 애정의 증표.
그것을 사람도 아닌 마물이 손에 지니고 있었다. 조금있자 그 쇼거스는 행복하게 몬붕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기억은 얼마 안 가 끝났다.

"......마물과 인간이?"

얼음여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이 따위 것을 왜 집중해서 봤을까.
시간 낭비만 했네. 그런데 고개를 돌렸을 때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말았다.

자기도 모르게 손가락을 만지고 있었다. 왼손 약지부근.
그곳에 텅빈 허전함이 외로움을 일으켰다. 반지를 찾고 있는 것이다.
쇼거스의 감정이 역으로 얼음여왕에게 흘러오기 시작했다.

"헉!"

깜짝 놀라 마력을 끊었지만 두근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근처를 거닐던 하인들이 괜찮냐며 걱정스런 눈빛을 보냈다. 여왕으로서 체통을 깎을 순 없는 법. 태연한 척 별 거 아니라고 웃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손가락은 왼손 약지를 주무르고 있었다.
얼음여왕은 어쩐지 무서워 거울을 보았다. 그곳엔 빨갛게 얼굴을 붉힌 여인이 비치고 있었다.


***


다음 날. 좁은 감옥 안에서 몬붕을 둘러싸고 정령들은 담소를 나눴다.
어떤 고문을 할까는 주제였다. 칼날, 갈고리, 망치. 별의 별 단어가 나올 때마다 몬붕의 묶인 몸이 들썩였다.

"여왕님께선 어떤 것이 마음에 드나요? 역시 채찍이십니까?"

옆에서 흉기를 가져다 바쳤다. 고개를 돌려 몬붕을 보았다.
비에 젖은 강아지처럼 떠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얼음여왕은 말하였다.

"이건 좀... 아프지 않을까?"

그 말에 침묵이 놓여졌다. 정령도 몬붕도 그리고 얼음여왕 자신도 멍을 때렸다.
아차 이래선 안되지. 그녀는 헛기침하며 정정했다.

"내 말은 죽여선 안된다는 거다. 애석하게도 이 녀석은 유일한 인질이지 않느냐.
괜한 유희 때문에 우리의 목적을 잊어서는 안되느니라."
"역시 여왕님이십니다. 생각해보니 요즘 저희가 조금 심했군요."
"맞습니다. 재밌다고 해서 감정에 휘둘리면 인간놈들과 다를 바 없지요."

정령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흉기를 내려놓았다.
다행이다. 얼음여왕도 몰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니 이 녀석은 당분간 내가 직접 맡겠다. 너희들은 원래 직무에 복귀해 본분을 다하거라."

인간 하나 때문에 계속 시간을 뺏길 수는 없는 법. 정령들은 무릎 꿇어 예를 표하곤 밖으로 나갔다.
그것을 보자 몬붕은 조금이나마 안도하였다. 오늘은 이렇게 끝나나 보다. 아프지만 않다면 뭐든 좋지.
그렇게 긴장을 풀고 있는데 얼음여왕이 그를 발로 걷어찼다.

"일어나라 버러지."

그럼 그렇지. 또 시작이군. 몬붕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예상 밖의 단어가 얼음여왕의 입에서 던져졌다.

"치, 치료를 해주겠느니라. 죽어버리면 곤란하니."

거칠면서도 부드러움이 전해지는 말투. 몬붕은 당황스러워 눈을 깜빡였다. 여왕의 손에는 이미 붕대가 들려있었다.
멍 때리는 사이 구속구가 풀리자 상처투성이 등에 약이 발라졌다.
여왕의 가슴이 콩닥거렸다. 인간의 피부는 마물과 달리 따뜻해서 기분 좋았다.

'남자의 등은 넓구나.'

손수 약을 발라주면서 이곳저곳을 만졌다.
신기하다. 피부는 거칠고 딱딱한데 만지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이 감촉을 쇼거스도 느꼈을까.
황홀함에 빠진 얼음여왕은 그 감촉을 즐기다 그만 욕망에 이끌렸다.

"!"

몬붕의 허리를 잡았다. 정확히는 가슴 아래 갈비뼈부분.
근육이 근사하다며 보고 있었는데 어느새 손가락이 멋대로 올라간 것이다.

미친.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몬붕이 멍하니 고개를 돌렸을 때 얼음여왕은 얼굴을 가리고서 급히 감옥문을 나섰다.

"나, 나머지는 스스로 하거라!"

복도를 달리고 계단을 뛰었다. 누가 볼새라 얼른 방에 들어와 문을 잠갔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으니 제정신이 돌아왔다.

'나 정말 미쳤나봐.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그냥 근육만 좀 보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지만 손에 아른거리는 그 감촉. 얼음여왕은 열기가 도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만졌다.

'남자는 근육도 단단하구나.'

그렇게 밤을 새며 온기를 얼굴로 느꼈다.

이튿 날. 얼음여왕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비장한 마음으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몬붕 앞에 앉았다.

"주물러라."
"뭐?"

그녀의 태도는 확고했다.

"어제 네놈을... 그대를 치료해주지 않았는가. 주는 게 있으면 받는 것도 있는 법."

그리고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옷을 내려 맨어깨를 내보였다.
몬붕은 고민했다. 뭐지? 새로운 정신고문인가? 여기서 다가서면 지팡이로 떄리며 욕설을 듣는 건가?
하지만 굳이 그런 번거로운 수를 쓸 이유는 없다. 아니, 그렇다고 어깨를 주므르라니.

몬붕이 이리저리 고민하는 사이 얼음여왕이 발을 구르며 재촉했다.

"뭐하느냐. 꾸물거리지 말고 빠, 빨리하거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셈이냐?"

에이 씨 모르겠다. 재수 없으면 다시 피의 파티, 육체고문시간이 시작된다.
몬붕은 눈을 찔끔 감고서 얼음여왕의 맨살을 주물렀다.

혹시 또 때리지 않을까. 이번에는 무슨 핑계로 욕을 내뱉지 않을까. 1분1초가 몬붕에겐 1년과 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얼음여왕은 순수히 이 밀회를 즐기고 있었다.

'손도 나보다 크구나. 손바닥 크기부터 달라.'

옷이 아닌 피부로 느끼니까 알겠다. 어깨를 붙잡는 손 모양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거기에 힘있게 눌러지는 압박감. 단순한 마사지지만 손바닥 전체에 살이 붙잡히니 포옹과 다를 바 없었다.
얼음여왕은 이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 눈을 슬쩍 감았다. 하지만 씰룩거리는 입고리는 감출 수 없었다.
다행인 건 몬붕에겐 두려움만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며칠이 또 흘렀을까.
얼음여왕은 이번엔 달이 떴을 때 몬붕을 찾았다.

별 다른 뜻은 없었다. 그냥 밤이 되면 방해받지 않으리라 여겨서 였다.
조심히 감옥문을 열자 바닥에서 잠을 자는 몬붕이 보였다.
동화책을 읽는 것만 같았다. 조그만 창문을 통해 그의 피부를 뽀샤시하게 비추는 달빛.
그런 그를 남몰래 보며 가슴을 졸이는 얼음여왕. 그녀는 몬붕의 머리칼을 쓸며 오붓한 만남을 즐겼다.

'자는 모습도 귀엽구나.'

그렇게 뺨을 향해 손을 움직이는데 듣기 싫은 단어가 튀어나왔다.

"쇼... 거스..."

──!

그 기집애 년의 이름이었다. 감히 먼저 만났다는 이유로 결혼까지 해버린 가증스러운 여자.
그래. 너와 나는 결국엔 적이지. 우리가 만난 시간은 기껏해야 한 달 남짓 정도니까.
네 맘 속엔 계속 다른 년이 들어와 있었구나.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내가 모조리 갖겠다."
"......?"

인기척을 느껴 깼을 때 몬붕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얼음여왕이었다. 겨울 숲의 마물 군주. 몬붕을 납치하고서 야심을 드러낸 사악한 괴물.
그녀가 나풀거리는 드레스를 걸친 채 야릇한 미소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 표정은 전과 달랐다. 분노, 경멸, 거만. 이 따위 부정적인 감정만을 가졌던 얼굴이 지금은 애틋함을 지닌 것이다.
꼬았던 다리를 살포시 풀며 얼음여왕은 한발짝 다가왔다. 홍조를 띈 표정이 믿기 힘든 목소리를 들려줬다.

"기다리고 있었단다 몬붕아."

그리고 마침내 꽃이 피었다.

몬붕은 그제서야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깨달았다. 하지만 좁은 감옥 안에서 도망칠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한쪽 다리를 앞으로 내밀고 얼음여왕이 한걸음 걸었다. 매끈한 다리가 깨끗한 얼음과 같았다.
다시 다음 다리가 앞으로 나와 천을 던졌다. 달빛이 하얀 피부를 아름답게 비춰주고 있었다.

그리고 둘의 그림자가 곧 맞닿았다.


***


설녀와 츠라라온나는 이상한 소식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음여왕이 모습을 감추었다. 며칠 전 혼자 있고 싶다더니 그대로 감옥에 가서 나오지 않는다.
그 현명한 여왕님께서 실수하리란 생각은 들지 않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법.
그녀는 다른 정령들을 데리고 직접 몬붕을 만나러 갔다.

복도를 걷는 동안 마법으로 과거를 읽었다. 탁자에 앉아 몬붕을 훔쳐보는 얼음여왕.
지팡이를 들어 몬붕의 과거를 읽는 얼음여왕. 그 기억 속에서 나타나는 몬붕의 반려 마물 쇼거스.
왼손 약지에는 인간들이 전해주는 애정의 증표, 결혼반지를 낀 그 아름다운 모습.

그 모든 것을 짜맞추자 하나의 감정이 보였다.
그녀들은 마침내 얼음여왕이 왜 연락을 끊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도시를 점령할 필요가 없었다. 점령할 곳은 이곳에 있었다.

마물들의 가슴 속에서 언제나 들끓었던 욕망.
그 감정을 받아줄 남자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마물을 차별하지 않고 마물을 좋아해줄 수 있는 인간이.

"여기 계셨군요 서방님."

이윽고 감옥문을 열었을 때 그녀들은 모두 새로운 남편을 맞이했다.
공포에 질린 몬붕을 향해 애정어린 그림자가 하나 둘 포개어졌다.

몬붕은 비명을 질렀으나 그 비명이 끝나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저 모든 게 빨리 끝나길 빌며.
몬붕의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에 붙잡히며 춤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