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가 계약장을 내미는 것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모른다.

동화책에서 조잡한 그림의 악마가 유혹한다.

아이는 악마의 유혹을 거절하고 스스로 고난을 극복한다.

그리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그렇게 배웠다.

거절하고 극복하리.


악마가 찾아왔다.

내가 거절을 할 수 없는 순간에 찾아왔다.

절망에 빠져 옥상에서 바닥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내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악마의 숨결이 내 귀에 닿았다.


순탄한 보도를 걷는다.

악마를 두려워한 내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성공과 성취, 행복이 나를 따르며 나 또한 따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반석 위에 집을 지으며 자손을 남기며

그렇게 살며 그렇게 늙어갔다.


병상 위에 누워 천장을 바라본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들이 내 손을 잡고 울며 미소를 보이고

신부님이 들어와 나를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며

나는 악마의 어린 양이지만, 행복한 삶과 결말을 주소서.

눈을 감고, 죽음을 맞았다.


두렵다.

눈을 뜰 수 있기에 두렵다.

아직 고뇌하며 사고할 수 있는 자신이 남아있는게 두렵다.

죽음은 끝이 아니던가.

신이 아닌 악마의 어린 양

희생 예물


눈을 뜨지 않았다.

두려워서 눈을 뜨지 않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내 눈을 열어젖힌다.

악마의 눈동자가 날 바라본다.

악마는 기다려왔다.

장난감을 가지는 순간을

영원한 시간을 함께 보낼.


악마는 행복한 삶을 주었다.

그리고 결말을 가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