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걱서걱-


나는 서툰 손놀림으로 상아를 깎아낸다. 사실 여기 있는 누구든 서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

상아를 깎아서 당구공을 만든다니, 19세기 초에나 있을 법한 일이 지금 다시 일어난다.


기술의 발전은 놀라워, 이제는 상아가 플라스틱을  대체한다니. 한 때 상아의 대체품이었던  플라스틱은 이제 귀하신 몸이 되어 첨단 산업에만 쓰이고 썩어 사라지는 상아가 친환경적이다나 뭐라나 하며 다시 각광 받는다.


아, 물론 코끼리나 뭐 그런걸 잡아만드는 게 아니니 합리적이긴하지. 세포 배양을 통한 생체구조 성장기술이 탄생하고서 근 10년간 얼마나 많은 가공품들이 뼈와 뿔로 대체되고 있는지. 그 덕에 나도 이렇게 일자리를 얻었으니 불만은 없다. 반복작업에, 지루하고, 보람없고, 나와는 하등 관계없는 물건이지만.


-서걱서걱-


고기 값이 싸진 것은 좋다. 배양육이 대량생산되면서 싼 고기가 시중에 많이 나왔다. 맛이없어서 그렇지. 여전히 맛좋은 고기는 목장에서 비싼 풀드시며 자란 육우를 도축해서 만든다. 다만  거기에다 예전보다 더 비싼값에 팔릴 뿐이다. 5살때 엄마 손잡고 레스토랑 가서 먹은 스테이크는 참 맛있었는데, 예전의 맛이 그립다. 오늘은 돈 좀 깨지더라도 닭고기라도 살까.


잘라낸 상아를 손안에서 이리저리 굴리며 살펴본다. 적당히 둥글어진 모습이 이제  모서리를 깎아내는 작업은 끝난 것같다. 둥글어진 상아덩어리를 사포로 문질러 줄 차례다. 그 전에 마스크가 어디에 있었더라.


내 자리 주변을 이리 저리 둘러보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은 여공이 마스크를 건네준다. 고개를 까딱하고 사포를 상아에 문댄다.



-사락사락-


이름이 뭐였더라. 저 친구는 불교도였다. 하지만 고기도 잘 먹고 이렇게 상아 깎는 일도 한다. 세포배양은 살생으로 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불교도들의 논쟁은 작년에 막 끝난 참이었다. 그들은 이제 고기를 먹는 것이 내면의 욕망에 굴하는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시작했다. 이슬람과 기독교는 신이 주신 생명과 음식, 인간의 권리 따위에 관한 논쟁을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정말 하찮기 그지없어라. 그네들 얘기를 들어보면 사람ㅇ을 젱외한 동물은 죄다 도축대상인 것 같다.


이 새로운 기술. 새로운 시대 앞에 사람과 사회는 다시금 요동쳤다. 일자리가 적어졌다가 많아졌다가,  환호하다가 분노하다가. 하지만 적어도 돈 앞에서 인간의 지위는 평등했다. 버는 놈은 벌고 못 버는 놈은 못번다. 뭐 그래도 굶어 죽는 사람은 많이 사라졌으니 일단 좋은 건가. 식량문제도 해결됬다고 했던거 같은데... 근데 제 3세계 내전은 여전히 끊이질 않고 기부후원 문자도 끊이질 않는다. 아니 이양반아 지금 내가 월 3000원이 필요한 판이라고.


-사락사락-


매끈해진 상아공을 기계구멍에 넣는다. 평형은 기계가 잡아 줄 것이다. 다시 새로은 상아 덩어리를 집어들 차례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의 부품화가 시작됬다고 했지. 새로운 시대가 열렸는데도 그건 변하지 않아. 빈자가 부자가 될 수도 부자가 빈자가 될 수 도 있지만, 결국 빈자와 부자는 언제나 공존하잖아? 노동자도 부품도 그렇겠지 아마. 그래서 내가 이 재미없는 상아깎기를 계속해야하는 거고.


단조로운 상아깎는 소리들 사이로 반장이 호통치는 소리가 들린다. 또 누가 손이라도 배었나보다. 왜 기계는 평형맞추는 작업밖에 못하는 걸까? 러다이트를 방지하기 위해서인가. 


 -서걱서걱-


하지만 재밌게도, 또다른 시대가 열리려고 하고 있었다. 어떤 친애하는 미친 과학자께서 인간과 동물의 신체를 융합하는 실험을 하고 계시거든. 인간의 간을 돼지에게 넣었다가 다시 인간에게로 이식하는 기술은 들어봤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돼지 심장을 쌩으로 붙이려고 하더라. 물론 유전자조작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돼지다. 그 미친놈씨는 이번 수술이 성공하면 외형적 신체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외형적 신체.


말 그대고 외형.


미친것 같지만 사실이나. 날개나 꼬리, 송곳니, 눈알 등등 뭐든간에를 자기몸에 정말로 박아 넣으려는 사람이 있다니. 하지만 세상은 넓고 미친이는 많은 것이다. 자진해서 그 실험에 참가하겠다는 이들이 벌써 수 천. 지원자는 이미 던부 모였다는 듯 하다.


솔직히 흥미롭기는 하다. 첫빠따가 되기는 싫을뿐.


만약 성공한다면 신화 속 온갖 형상들이 세상에 풀려나오겠지. 그리고 어쩌면 우리가 상상한 것 이상의 모습도.인간의 신체부위 배양도 코 앞인지금. 실패의 걱정없이 미친짓에 다이브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저번에는 팔에 구멍을 뚫은 사람을 tv모델 쇼에서 봤다. 뼈모양 대로 갈라진 기묘한 팔에 장신구를 덕지덕지 걸었는데, 솔직히 아직 세상이 받아 들이기엔 너무 이른 패션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다음 놈을 보고서는 저 정도면 받아줄만 하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 놈은... 아 생각하지말자. 이러다가 밥 못 먹는다. 곧 퇴근인데 저녁은 먹어야지.


-서걱서걱-


예전에는 공상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두근두근 거리지는 않는구나. 현실은 현실이다. 공상은 현실이 아니라서 로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기를 꿈꾸지만 정작 일상을 벗어나면 거대한 흐름에 휩쓸릴 뿐이다. 그 흐름이 재앙인지 뭔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사람은 나이를 먹고 체념하고 지루해지는 것이다. 모험을 피하고 상상을 하지 않으면서 일상에 집중한다. 천진난만하던 아이는  현명한 어른이 되면서 그렇게 스스로를 좀 먹어 자신을 죽여가는 것이다.


-드르르륵!!!


우리 중에서 시간에 제일 민감한 직원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 친구가 일어나면 정시라는 소리다. 모두들 일어나며 의자가 받다긁는 소리가 온 사방에서 들린다. 십 수몇번은 막아왔던 반장도 이제는 체념하고 보내준다. 이게 학습의 힘인가한다. 역시 사람은 칼퇴를 해야지 살맛이난다. 떠들며 휴대폰을 보며 다들 일어나서 갈 채비를 한다. 나도 앞치마와 마스크를 벗고 캐비넷에서 내 가방과 파카를 넣은 바구니를 찾는다.


드디어 오늘도 끝이다. 문을 나서면서 팔을 쫙 벌리고 기지개를 편다. 하늘은 어둑해지기 시작하면서 분홍빛 구름과 보랏빛 구름으로 번져간다. 하늘 빛은 저렇게 예쁘건만, 오랫동안 웅크린 날개는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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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