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챈 여러분은 플랑드르를 아는가?









(얘 아님)



(이건... 맞나?)




플랑드르, 영어식으로는 플랜더스는 오늘날 벨기에 부근에 위치한 지방으로, 중세 유럽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지역임

부유한 지방이라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 심지어 영국 틈바구니에 끼여 이런저런 고생을 많이 한 곳이기도 함



플랑드르 가문의 상징은 노란 바탕에 검은 사자인데, 이는 이 지역을 다스렸던 플랑드르 가문의 상징에서 따왔음 



(플랑드르 가문의 상징)



플랑드르 가문의 시작은 '강철 팔' 보두앵이 서프랑크의 공주 주디스와 결혼하고 플랑드르의 후작으로 임명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 둘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먼저 주디스 공주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는 오늘날 프랑스 일대를 통치하는 서프랑크 왕국의 공주였다. 그의 아버지 샤를 2세, 혹은 대머리왕 샤를은 카롤루스 대제의 손자로, 그야말로 귀족 중의 귀족 그 자체였다.


(서프랑크 초대왕, '대머리' 샤를)


참고로 샤를 왕은 별명이 머머리임에도 되려 풍성충이었는데, 이건 '대머리'라는 별명이 애초에 그 뜻이 아니었기 때문.

샤를 2세가 태어났을 때 이미 이복형들이 다 왕위를 차지하고 있어서, "머리에 쓸 왕관이 없다(=물려받을 왕국이 없다)"는 뜻으로 붙혀진 별명이었는데 후대 사람들이 이 칭호를 "머리가 없다"로 해석해버려서 별명이 머머리왕이 되어버렸다.



아무튼 머머리왕 샤를은 자기 열두살짜리 주디스를 영국에 있는 웨식스 왕국왕국에 시집보내기로 했음. 애설울프 왕은 웨식스를 지배하던 머시아 왕국을 물리치고 영국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해전에서 바이킹을 무찌른 명군이었는데, 로마로 성지순례 가던 길에 서프랑크를 들려 주디스와 결혼함



그런데 애설울프는 이 때 이미 전부인 사이에서 아들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정통성이 넘치는 새 왕비를 맞이하면 장성한 아들이 해야 하는 일, 다들 뭔지 알고 있을까?





애설울프의 차남 애설볼드는 아버지가 성지순례를 간 틈을 타 섭정단의 동료들과 함께 왕국을 장악해버린다. 

이에 웨식스의 기반인 서쪽은 애설볼드가, 동부는 애설울프가, 켄트는 애설볼드의 동생 애설버트가 각각 장악한다.


(영국 칠왕국. 왕겜 칠왕국의 모델이다.)


나라가 세 조각이 났음에도 의외로 타협이 잘 되었는지, 큰 유혈사태가 일어났다는 기록은 없다. 

858년, 애설울프 사망으로 애설볼드가 진정한 웨섹스의 왕이 되었음에도 애설볼드와 켄트의 애설버트 간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은 걸 보면 합의가 잘 된 듯 했다.


그런데 여기서 애설볼드가 카롤루스 대제의 혈통에 눈이 멀었는지 그만 무리수를 날린다


아버지의 새 아내, 그러니까 새 엄마인 주디스와 결혼한 것이다!

애설볼드가 몇 살인지는 알 수 없으나 855년에 이미 섭정이었던 것으로 보아 성인으로 보이고, 이때 주디스가 12살이니(애설울프 사망 이후엔 15살) 이해는 가지만, 당시 아세르라는 주교는 "기독교도가 아니라 이교도 야만인이나 할 짓"이라고 깠다.


하지만 애설볼드는 주디스와 결혼하고 2년 만에 급사해버린다. 왕위는 켄트를 다스리던 애설버트에게 넘어가고, 주디스는 친가인 서프랑크로 돌아간다. 



사족으로, 애설볼드와 그 동생들은 마가 끼었는지 막내 알프레드를 제외하고는 왕위에 오르면 5, 6년만에 죽어버렸다. 그 와중에 북쪽 노섬브리아 왕국이 약탈하러 온 바이킹 하나 처형했다가 그 아들놈들한테 잉글랜드 전역이 짓밟히게 되는데 이건 또 다른 이야기.


(일명 '이교도 대군세'. 웨섹스 왕국을 제외한 모든 앵글로색슨 왕국들이 이 공격으로 멸망한다.)


(어크 발할라의 알프레드 대왕. 바이킹의 침략을 물리치고 통일 잉글랜드 왕국의 초대 왕이 된다. 이 사람이 애설볼드의 막내동생이다.)



아무튼 주디스는 운좋게 친정에 돌아왔는데, 아버지인 샤를 2세는 딸에게 청천벽력같은 명령을 내린다.



"얘, 결혼 두번이나 했으니 넌 재혼은 무리겠다. 그렇다고 귀족놈들한테 주면 계승권 넘어가니까 걍 수녀로 살아라."

"네, 아빠...(ㅅㅂ...)"



이렇게 계승권을 가진 공주를 넘기지 않기 위한 프랑크의 아름다운 전통에 따라, 주디스는 수녀원에 구금된다. 

그러나!



(아빠 죄송해요ㅋㅋㅋㅋ)


보두앵과 눈이 맞은 주디스 공주는 동생인 '말더듬이' 루이스의 묵인 하에 861년 크리스마스, 수녀원을 탈출해 사랑의 도피를 시전한다.



당연히 속이 뒤집힌 샤를은 위트레흐트 주교 헝거와 충성을 맹세한 도레스타드의 영주 로릭에게 이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보두앵과 주디스는 왕의 추격으로부터 도망치는데 성공한다.


이에 샤를은 교황에게 이들을 파문해달라는 여청을 보내고, 수녀가 탈출했다는 소식에 빡친 교황도 주디스와 보두앵을 파문해버린다.

파문이란 교회는 더이상 이 사람을 보호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며,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이건 치명적이었다. 훗날의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도 파문빔을 맞고 눈밭에서 사죄쇼를 펼쳤는데 집나간 공주님이랑 그 애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주디스와 보두앵은 해냄.

이 두 커플은 파문되자 바로 로마로 향해 교황 니콜라스 1세 앞에서 자신들을 변호했고, 이게 통해서 파문철회는 물론 결혼까지 인정받는다. 결혼을 교회가 주관하는데 교황이 결혼을 찬성한다? 게임 끝난 거임.


결국 머머리왕은 보두앵을 사위로 인정하고 플랑드르 지방의 영주로 임명한다.


(샤를에 의해 플랑드르 영주로 인정받는 보두앵)


참으로 훈훈한 이야기지만 사실 샤를에게는 노림수가 있었다.

듣보잡 말뼈다귀가 장녀랑 결혼했는데 이대로 넘어갈 리가 있겠는가? 샤를이 보두앵을 플랑드르 영주로 임명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플랑드르가 바이킹에게 날마다 털리는 곳이었기 때문임.

카롤루스 대제 치세 후반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바이킹 약탈자들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었음.

아직 잉글랜드를 영혼까지 털어버리고 프랑스 파리를 위렵해 노르망디를 점거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이미 충분한 위협이 된 상태로, 전에 보두앵 부부를 체포하려던 도레스타드의 로릭도 서프랑크를 침공했다가 다른 약탈자들을 막는 것을 조건으로 영주로 인정받은 바이킹 전사임. 체포령 떨어지기 직전에 기독교로 개종했을 정도니 바보도 플랑드르가 위험한 곳이라는 걸 알았을 것.


이것 때문에 이미 당대부터 왕이 사위 전사시키려고 플랑드르 보냈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였음.



그러나 보두앵은 되려 바이킹들을 다 조져버리고 플랑드르를 평정한다.


이후 샤를이 죽고 사랑의 도피를 도와줬던 말더듬이 루이가 왕이 되자 보두앵은 중요한 지지자로 루이 왕을 보좌하다가 879년에 사망한다. 그 자리는 아들인 보두앵 2세 '대머리'(보두앵이 장인어른 별명을 자식에게 붙였다...)가 계승함.


이후 플랑드르 가문은 서프랑크의 대영주 로베르 가문의 외드(프랑스의 왕가가 되는 카페 가문의 조상)랑 대립하거나, 괜찮아 보이는 바이킹 전사 하나 사위로 삼고 영주로 만들어서 두고두고 써먹거나, 분가인 볼로뉴 가문이 예루살렘 왕국의 왕가가 되거나, 천주교 희대의 흑역사 라틴 제국의 황제도 배출하거나 하는 등 잘나가다 결국 1280년에 플랑드르 여백작 마가렛 2세가 계승전쟁에서 패하면서 대가 끊김.



분명 처음에는 강한 야만전사 눈나와 정략결혼하는 귀족 이야기 보고 싶다고 쓸려고 했는데 어째서 이런 장황한 글이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음... 다음에는 몬챈에 어울리는 글 가지고 올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