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러시안 터틀

https://arca.live/b/monmusu/22494713


음알못 추천곡

https://www.youtube.com/watch?v=GTWqwSNQCcg


강한여자 아님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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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얼음에 대해 들어본적이 있다.

그렘린은 과학계에선 그것이 메탄 하이드레이트이며 응결한 고농축 에너지라 주장한다.

사바트를 대표로 하는 마도의 단체들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고 절묘하게 겹치면 그런 현상을 빚어낼수 있다 할 것이다.


나한테 물어본다면 지금 내 앞의 가이드의 표정이 그러하다, 라 답변할 것이다.

차분하게 있으려 하지만 아까 그 일의 미안한 마음이 남아 있는지, 아니면 부끄러움인지 혼재되어 있는지 모를 표정이 그녀의 표정을 들썩이게 한다.

물론 그 섬에 대해 미리 알았어야 하는 내 잘못이 컸다, 그런 섬인줄 알았으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 말걸.

그러나 내 의견과는 상관없이, 아직 내 머리카락에 채 떨어지지 않은 물방울은 떨어져-


테이블을 미묘하게 적셨다.

"미...미안해, 많이 추웠지?"

"괜찮습니다, 뭐 물건도 같이 떨어트린건 아닐 뿐더러 더더욱이 바로 구해준 은인이지 않나요."

"그래도...일단 차는 시킬게, 따뜻하게 마시면서 진정하고 있어."


사실 체온은 이미 정상수치로 돌아온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코트 알프의 섬중 정열을 상징한다는 섬 네비아.

그녀가 젖은 나를 들쳐업고 마치 부상자라도 업은 양 정신없이 달려온 곳이 이곳이었다.

아마 그녀의 입장에선 따뜻하다, 라는 이미지가 이곳밖에 떠오르지 않았던 것이겠고.

그런 그녀의 판단은 딱히 틀리지 않았다, 뭐랄까-


이렇게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바깥구경을 하고 있어도 흥에 겨웠다.

아까 전의 예술가들이 흐르는 물과 같이 곤돌라에 타서 지나가는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면.

네비아란 섬은 꽃이나 불과도 같이 화려하게 피어나 주변 사람들의 심장을 달궜다.


보라 저렇게, 악단이 연주를 시작하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 합을 맞춘것 마냥 각자의 춤을 추고 있지 않은가.

아 물론 막춤이나 기묘한 춤도 있을 뿐더러, 태고 시절 기준이나 에로스의 기준으로 보면 커플댄스를 야외에서 대놓고 저지르는 일들도 있었다.

집들의 창들도 밤이 되었음에도 어느 하나 닫히지 않고 활짝 열려 관객으로써의 예우를 다해준다.

이곳은 이조차도 포함해서 정열의 섬이고, 넓게 잡으면 그것 또한 코트 알프란 것이겠지.



내 생각이 맞다는 양 테이블마다 놓인 화려한 유리병 안의 장미꽃은 마치 그곳에서 자라기라도 한 것처럼 화사한 향을 뿜어낸다.

"이 섬은 장미가 유명한가 보군요,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향기가 좋으니 말입니다."

"네비앙 로즈라고 해, 이곳 사람들은 이걸 각별하게 여겨서 집안에 장식해 놓고 식용으로도 쓰고 그러지."


그녀는 손을 내밀어 유리병의 장미를 한송이 꺼내려고 했고-

"위험합니다, 찔릴 수도 있어요."

"힉...?!"

나는 반사적으로 막았다.


가시류는 찔리면 아프다, 당하면 누군가가 고통을 이야기만 하더라도 느껴지는 듯 하다, 종이에 베인 감각이 기억되면 그것이 평생 남는 것처럼.

그러나 가시가 달린 부분을 꼭 쥐고 있음에도 그녀의 손은 피가 나기는 커녕...


"가시가 무딘 종입니까?"

눌린 자국조차 생기지 않았다.

"그 뭐냐...이 장미는 찔린다고 다치거나 하진 않아...근데 그 뭐라 해야 하지? 너도 찔렸지? 아냐아냐, 살짝 찔렸으니까 아무 일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아무 일도.

홀로 그렇게 부정하는 건지 믿는 건지 모를 말을 나의 가이드가 되풀이하고 있자니.

저 멀리서 유리 주전자에 차를 담아온 메이드 복장의 여성이 우리 앞에 차를 놓아주었다.


차게 마시는걸 선호하는 사람을 위헤 얼음, 게다가 시럽에 우유, 쿠키까지.

우린 그저 온기만 높이기 위해 왔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차려줘도 되는 것일까.

허나 이곳은 이런 서비스가 마치 예법과 같이 당연한 것처럼 놓아준다.

그리고 빙긋 웃으며 잔에 차를 따라주기까지 하는 것이다.


"네비앙 로즈로 달인 차입니다, 향미가 강렬하고 심지를 달구는 효과가 있어  정열적인 한 쌍이 많이들 찾는 인기 음료죠."

"아...감사합니다."

"천만에요, 저희야말로 그런 한 쌍이 이어지는 걸 볼때마다 기쁜 마음이 절로 드는걸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입모양으로 음악 잘 들었어요란 말을 속삭인 후 천천히 다른 이들의 음료를 서빙하러 걸어갔고.

나는 그녀의 배려에 고마움을 느끼며 차를 입안으로 가져갔다.

첫입은 역시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했으나 서서히 그 향에 익숙해지고 나자 생각보다 복합적인 맛이 들어있음에 놀랐다.


"어때? 좀 따뜻해졌어?"

"네, 이런 곳에 데려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어, 이곳은 나도 좋아하는 곳이거든."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녀가 찻잔을 가볍게 잡은 채 쳐다보고 있는 곳을 따라 응시하자.

예술적이다, 라고 밖에 표현할수 없는 시계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은 매 시간마다 다양한 예술의 마법이 걸리는 곳이지, 그래서 영감을 떠올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특정 시간대를 노려 찾아오기도 해."

"좋은 곳이군요."

"개인적으로 같이 오고 싶었거든."


지금은 춤을 추는 사람들이 영감을 받는 시간인가, 아니면 그저 흥겨워 춤을 추는 것일까.

뭐기 되었던 간에 아직까지도 광장의 사람들의 춤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마치 그 광장이 하나의 무대라도 되기라도 한 마냥 시계가 다음 정각을 가리키자, 호수의 인어상들이 돌아가며 그 모습을 바꾸고-


새 배역이 등장하는 것처럼 한쌍이 광장의 가운데로 스스럼없이 나와 노래를 시작한다.

이윽고 트리오, 콰르텟 -

뮤지컬, 혹은 퍼레이드.


"시간 가는줄 모르겠군요, 앉아 있기만 해도."

"그렇지? 나도 이곳에서 밤까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허다해."

나는 다시 한번 차를 들어 아무 것도 넣지 않은 채로 혀 끝을 적시고 목으로 넘겼고.

벌써 익숙해진 뜨거움과 그 향을 즐겼다.


배가 달궈진 덕분에 쿠키가 벌써 소화되기 시작하자 나와 그녀는 밤이기에 저지를수 있는 배덕감을 공유하기로 합의했다.

별건 아니었다, 그저 피자를 한조각 사서, 거니는 것.

거닐며 가끔 시계탑을 통해 시간을 확인하며 계단과 수많은 광장들로 이루어진 우주 속의.

예술가들의 작업을 위해 켜놓은 등들이 별처럼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면 빙긋 웃으며 자신이 오늘 그린 그림들을 자랑하며 어깨를 으쓱거리는 이들.

타자기를 올려놓고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뭔가를 써내려가는 이들.


사람들 사이를 지나, 샛길을 통해 그 광장들을 빠져나갔을 땐 어느새 손에 들린 것은 종적을 감춘 뒤였다.

그저 분위기에 취해 걷고 있노라면, 그저 막힌 것이 새듯.

평소에 그런 것을 즐기지 않았던 이들도 노래를 하게 되어 있다.


그저 담담히 불렀다, 누군가가 들으라 하는건 아니지만, 내가 들을수 있게.

이곳은 이런 것이 어색하지 않은 곳이기에 허세라니, 헛짓이라니 하는 둑은 치워버리고.

흐르게 두자.


어느새 그녀가 어색하다는 듯이 같이 노래하며 웃었다.

그녀도 이 노래를 알고 있다는 것이 즐거우면서도 왜일까.

그녀가 아까 전의 그 화사한 장미보다도 더...


따뜻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젖어가는것에 상관하지 않았다.

"...근처 숙소를 잡을까? 또 젖겠다."

지금만큼은.



"그...저기...난 괜찮아, 애초에 난 범고래잖아? 살 자체가 한대에서 돌아다녀도 끄떡없고."

"천천히 걷죠, 그러고 싶어요."

"응? 그...같이 산책하자고? 그래 좋아, 근데 숙소는 어떻게 하고?!"

"가이드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푹 숙이고 메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좋은 곳으로 잡아 드리겠습니다..."


삼십분 정도 지난 뒤.

그녀는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었다.

생각보다 섬 사이를 건너는 것이 편해진 덕분일까, 우리는 지금 미라라는 섬의 작은 별장을 숙소로 잡았고.


그녀는 꼬리를 파르르 털며 수건으로 남은 수분을 닦아내었다.

...강아지가 생각나는 건 어쩔수 없었다.


"그...그게...그...있지, 코트 알프의 비는 위험해."

응?

"무슨 소리이신지..."

"걱정하지 마! 온천에 들어가면 그 위험한 비가 씻겨지니까, 물론 나는 가이드니까 당연히 셔츠 입고 들어갈 거야, 또 비가 오면 내 뒤로 숨고!"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조차 모르는 말을 재잘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자니-


"네 좋아요."

생각나려고 했다, 내가 바다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래? 그럼...먼저 들어가? 나는 그...와인이랑,가지고..."

"편하실 때 들어오세요."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다, 물론 그녀가 입고 올 복장에 맞춰 나도 셔츠를 입은 건 당연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나는, 아니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그때 나는...


"뭐해?"

"소라 찾아."

"소라는 왜?"

"무지갯빛 소라가 있는데 거기선 세상에서 가장 예쁜 소리가 난다고 해."

"진짜? 여기 그런게 있어?"


그때 나는 한시간 동안 줄창 옆의 사람과 같이 찾았다, 초6이라 약간은 철이 들 법 한데도.

찾는 과정을 오히려 미지를 개척하는 탐험과도 같이 즐거워하고.

겨우 찾아낸 것이 무지갯빛도 아니고 표면에 균열이 인 소라였지만.


그럼에도 나는 기뻐했고, 그녀 또한 즐거워했다.

"연주해 줘, 어떤 소리가 날까?"


취관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고 음색의 높낮이도 조절할수 없는 자연물에서 어떤 소리가 났는가.

철이 든 사람들이 본다면 그저 나팔을 흉내낸 것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때의 나에겐 아니었다.


"잘 들었어."

"고마워."

"있지, 나도 가수가 되는게 꿈이야, 코트 알프로 가서 멋진 가희가 되는게 꿈이야."

"꼭 이루길 바래줄게."

"바라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 내가 가희가 되면, 내 옆에서 연주를 해 줄래?"




그래.

지금의 나에게도 아니었다.

"와인 따뜻하게 덥혀왔어, 벌꿀도 살짝 넣었으니까 이제 추위가 완전히..."


그리고 지금의 그녀에게도 아니었다.

코트 알프에서 가희가 되려고 한 꿈이 불안증으로 짓씹혔음에도 왜 그 순수함을 간직했는가.

만약 그때 그녀가 나에게 다가오지 않고 다른 것에 흥미가 동해 갔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을 것이다.

좌절당해 얼어붙은 것처럼 보임에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니, 어느 누가 동경하지 않을수 없을까.


그런 그녀가 내 가이드라니.

아니, 그 이상이다.


"솔피 씨."

"예?"

"저희 옛날에, 바다에서 소라를 줍던 거 기억하시나요?"


그녀는 나의 가희였다, 그때부터 계속.


"...기억해줬구나, 그 약속."

"죄송합니다, 찾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찾았잖아, 결국."


그녀의 손을 잡아준다, 천천히 무대의 계단을 내려오는 드레스 입은 주연과도 같이 그녀는 천천히 내려와 물속에 잠겨든다.

"저는...전 많이 모자랍니다, 물론 시다의 가희가 좋게 봐준 것에 대한건 영광이고, 당신 또한 절 좋아하는건 아는데..."

"또 말 많아진다."


뜨거워진 손이 내 뺨을 잡는다.

"너는 연주하고 나는 노래하는 것, 약속은 이게 끝, 여기서 바뀔수 있는건 네가 노래하고 내가 연주하는 거거나...아니면..."

살은 열전도가 쉽게 되는 것이었던가.

모르겠다, 그녀 뺨이 달아올랐으니 맞다 셈 치자.


"결혼...정도야 바뀔수 있지, 그 밖에 건 신경쓰지 마, 음악의 문제야 우리 둘이 조율하면 그만이고, 나쁜 놈들이 오면 동료가 범고래인데 뭐가 두려워?"

와인잔이 찰랑인다, 투명하면서 진한 그 잔 안에 방울들이 별되어 반짝인다.


"그러니까 건배하자, 네가 여기 왔단 것에 대해, 기억해줬단 것에 대해, 서로 이곳까지 왔단 것에 대해."

잔이 울린다, 별들이 충돌한다.

충돌한 것들은 파편과 가루를 남기며 혜성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흩날린다.


예술가는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법.

그러니 그 찬란함이 다가와 내 입술에 닿아.

수십초 이상 머무른다고 해도.


나는 상관하지 않으리라.

머무르는 찬란함도 상관 않는 듯 했다.


따뜻한 물거품은 출렁이며 시간조차 여유롭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