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水素女活遊記(백수소녀활유기)


 괴력난신의 시대, 이 세상 어딘가 골포라 불리는 작은 마을에 사단이라는 청년이 살았다. 어릴 적 가족을 잃고 천애고아가 된 그는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마음씨 좋은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러한 그가 오늘만큼은 대낮부터 술에 진탕 취한채 논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소꿉친구가 있었다. 명망있는 집안이었지만 가세가 기울어 가난했던 그녀는 서로의 처지가 비슷한 탓인지 금새 친해질 수 있었고 성인이 될 때까지 딱 붙어다녔던  두 사람은 남녀로서의 관계 또한 깊어져 갔다. 어느날 그녀는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와 약혼을 한 후 출세를 위해, 집안의 재부흥을 위해 서울로 떠났다. 반드시 다시 돌아와 결혼을 하자는 말과 함께…


 처음부터 비상한 재능을 가진 소꿉친구였기에 금새 서울에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그에게까지 전해져왔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의 가족들이 서울로 이사를 갔지만 그는 여전히 마을에 남아 그녀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서울에서 소꿉친구로 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약혼을 취소한다.’ 짧고 간단한 내용이었다. 그는 그녀로부터의 일방적인 통보에 혼란스러웠다. 편지에는 약혼을 취소한다는 내용과 그에 대한 보상으로 마을에서 떨어진 한 구석에 있는 그의 집 주변에 조그만 땅을 주겠으니 서로 이 일을 잊도록 하자는 이야기가 짧게 적혀있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자제심을 잃어버리고 평소엔 마시지도 않는 술을 만취하도록 마시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바로 결혼할 것 처럼 약혼을 맺고 서울에서 성공하자마자 약혼을 파기한 그녀에 대해 원망스러운 마음이 있었지만 서울에 있는 잘난 남자들에 비교해 볼품없는 가난한 무지렁이 농민인 자신이 비교되어 체념하는 마음이 앞섰다.


 푸~푸~ 한숨만 내쉬며 땅바닥을 보며 갈지자로 걷던 그는 논길에 떨어져 대낮의 열기에 바싹 익어가는 우렁이를 보았다. 만취상태였던 그는 우렁이를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그녀 버림받은 자신처럼 이 우렁이를 버리고 가는 건 여러모로 마음에 걸렸는지 우렁이를 잡아들어 논 옆을 흘러가는 개울에 풀어줬다.


 그 후로 그는 그녀에게서 작별선물로 받은 땅을 경작하며 지냈다. 내려치는 괭이질 한번에 소꿉친구를 향한 원망을 흘려보냈다. 내려치는 괭이질 한번에 그리움을 흘려보냈다. 내려치는 괭이질 한번에 그녀를 향한 마음을 흘려보냈다.


 시간이 흘러 논에서 꼴을 뽑을 시기가 되자 그는 그녀를 향한 마음에 뚜껑을 덮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그에게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소꿉친구와의 약속만을 믿고 살아왔던 그였기에 그는 이미 노총각이라고 불릴 정도의 나이가 되었고, 이는 그의 꿈이었던 가정을 꾸리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로 찾아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부모도 재산도 없는 그였기에 마을 그 누구도 그에게 선뜻 혼담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이별 선물인 이 땅조차 없었다면 평생을 가난한 소작농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그는 자신이 평생 결혼을 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농사를 지어 누구랑 먹고 살고?” 그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며 혼잣말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그러자 어디선가,


“나랑 먹고살지, 누구랑 먹고살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소리가 나는 곳으로 찾아가보니 사람만한 우렁이가 있었다.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있으려니 별안간 우뢰같은 소리와 함께 우렁이의 껍질이 쩍 갈라지더니 그 안에서 고운 처녀가 기어나왔다. 복족류 특유의 점액질로 번들거리면서도 매끈한 피부를 보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에게 붙어있는 패각은 마치 백자와도 같아 단아한 예술품 같았다.


 그녀의 모습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그에게 우렁이 처녀는 입을 열었다. “소녀는 본디 선녀이오나 벌을 받아 지상에서 우렁이의 모습으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길에서 말라죽어가는 소녀를 당신이 구해주어 소녀, 당신의 처가 되어 평생토록 이 은혜를 갚기 위해 현현하였습니다. 부디 가약의 연을 맺어 각시로 맞아주시오.”


 그 날 사단은 만취를 했기에 우렁이를 구해줬던 일을 기억하지 못했고 이 요사스런 요물이 노총각을 홀리려는구나 라고 의심하여 우렁이 처녀를 거절하였다. 하지만 본디 심성이 착하고 여린 그였기에 집도 절도 없는 처자를 노숙시킬 수는 없어 자신에 집에 데려와 숙식케했다.


 그 후로 우렁이 처녀는 지극정성으로 사단을 내조하였고 그런 그녀의 모습에 그의 마음은 점점 열려 어느덧 소꿉친구가 새긴 마음의 상처를 메우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확인했다. 둘은 조촐하지만 누구보다 행복한 혼인식을 치뤘고 그 무엇보다 농후한 점액질로 가득찬 미끌미끌하면서도 끈적끈적한 첫날밤을 보냈다.


 이것이 우렁각시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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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이런 시대였지만 갑자기 나타난 우렁각시와 혼인한 청년의 이야기는 흔한일이 아닌지라 마을의 큰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의 신비한 사랑이야기는 소문에 목마른 사람들에 의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약혼녀에게 버려진 청년과 은혜를 갚기위해 사람으로 변한 우렁이라는 이야기는 여러가지 형태로 변화하며 흘러흘러 어느덧 서울까지 전해졌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소문을 전하는 저잣거리의 이야기꾼의 입담을 들으며 지고지순한 청년을 버린 약혼자를 비난하고 청년과 우렁각시의 행복한 결말을 축복했지만 그렇지 않은 이 들도 있었다.


 서울의 관청에서 저잣거리에 떠도는 소문을 검토하고 있던 한 관원이 그러했다. 그녀의 이름은 설화, 바로 이야기 속의 약혼자를 비참하게 버린 악독한 그 약혼녀였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안경을 고쳐쓰고 다시한번 보고서에 쓰여진 내용을 보았지만 그 내용이 바뀌는 일은 없었다. 보고서를 쥐고있는 그녀의 손은 마치 사시나무 처럼 떨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그 떨림을 버티지 못한 보고서가 반으로 찢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발걸음을 옮겼다. 주변의 관원들이 갑자기 이상행동을 보이는 그녀를 잡아보려했지만 마치 나찰과 같은 표정에 감히 말도 붙이지 못하고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약혼취소라니요! 그것도 나한테 비밀로 하고! 아버님, 노망드셨어요?”


 서둘러 서울에 위치한 집에 도착한 그녀는 아버지의 방에 직행해 찢어진 보고서를 책상에 내려치며 소리를 질렀다. 분에 이기지 못해 강하게 내려친 그녀의 손에 의해 책상이 두동강으로 쪼개지는 것을 본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딸이 이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을 보는 것은 이번이 두번째였다. 처음은 어찌저찌 넘겼지만 이번은 무사히 넘어갈 수 있을지 감당이 안된다. 하지만 아버지의 위엄을 잃어버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그 등을 꽂꽂히펴고 반론한다.


“그런 미천한 놈에게 신경꺼라, 이게 다 너를 위…”


 기세좋게 이야기하던 그는 더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었다. 그의 딸이 갑자기 입을 막아버리고 그 속에서 혀을 잡아뽑았기 때문이었다.


“그 입에서 나를 위한 일이라는 말이 나오려고 했던건 아니겠죠, 아버님?” 그녀는 잡고있는 아버지의 혀를 점점 더 힘을 주어 잡아당긴다. 그는 꼴사납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비를 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아버님을 위해 대신 군역을 해 전쟁터에 나간 사실을 잊어버린건 아니죠?” 그녀는 더욱이 손에 힘을 준다. 그 고통에 아버지는 식은 땀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무남독녀였던 설씨 가문은 전쟁이 발발하자 가장인 그가 군역을 나가게 되었다. 하지만 노쇠하고 유약한 자신이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고통스러워하자 딸아이와 친하게 지내던 천한 놈, 사단이 그와 딸을 위해 대신 군역을 나갔다. 그 때가 화가 치솟아 자신을 죽이려하는 딸을 그와 혼인을 허가하는 걸로 겨우 설득시킬 수 있었다. 전쟁터 속에서 죽어버릴 줄 알고 말했지만 전쟁이 끝나고 그 자식은 멀쩡하게 돌아왔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거짓말을! 하고! 혼약을! 파기해?" 소리지르는 설화의 눈에 핏발이 점점 서기 시작했다. 동시에 잡혀있는 혀에서는 피가 새어나왔다.


 분노로 가득차 악귀나찰의 형상을 하고있던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언제나와 같은 평온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피가 철철 흐를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혀를 놓고 손을 흔들어 피를 털어낸 그녀는 아버지의 방에서 나오면서 말했다.


"아버님, 혹시 제가 갑자기 아버님을 죽여도 놀라시거나 원망하지 마세요. 아셨나요?"


 그는 미소를 짓고 있지만 쓰고있는 안경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싸늘한 딸의 눈을 보고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밖으로 나온 그녀는 품 속에서 붉은 부적을 4장 꺼내더니 잘게 찢어 허공에 뿌렸다. 허공에 뿌려진 종이조각들은 갑자기 불타오르기 시작하더니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그녀는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힐 정도로 인상을 썼다.


"씨발, 개좆같네…" 그녀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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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밤 서울 외각에 위치한 서낭당에 불빛도 없이 앉아있는 여성이 있다. 그런 그녀의 옆에 4개의 인간이 아닌 형체가 다가왔다. 그러자 앉아있던 사람은 등불을 켜 주위를 밝혔다.


"역시 짐승새끼들이라 시간관념이 없네, 늦었는데도 어슬렁 기어오고 있다니." 앉아있던 여성이 일어서며 말했다. 등불에 밝혀진 그 여자는 설화였다.


"이 씨발년이, 네가 잘못해서 모이는건데 뭔 좆같은 소리야!"


 설화의 비아냥거림에 지네의 형태를 한 여성이 발끈하여 설화의 멱살을 잡는다. 위협하는 듯이 입에서는 불길이 조금씩 뿜어져 나왔다. 설화는 별 감정이 없는 표정으로 멱살을 잡고 있는 손을 잡아 치운다.


"오는 길에 대충 무슨 일인지 대강은 들었는데 자세히 설명하세요, 설씨녀. 서방님을 주변을 정리하는건 제일 가까이에 있던 당신이 해결해야하는 문제인데 왜 이 지랄이 났는지…" 이번엔 두루미의 형태를 한 여성이 약감 어색한 어투로 말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거의 다 핀 궐련을 땅바닥에 버리고는 두루미의 얇은 다리로 비벼끈다.


"뭐긴뭐야, 지 혼자 오라버니를 독점하려고 하니깐 배탈난거지. 우리를 다 배제하고 혼자서 오라버니를 관리한다고 할 때 부터 난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알았어." 여우의 모습을 한 여성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거들었다.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 갈 때 쯤 반짝이는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가진 물고기 모습의 여성이 입을 열었다. "책임이고 나발이고 그런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어떻게 해결할지를 생각하는게 어때?"


"해결? 그건 간단하지." 설화가 이야기하며 나머지 4명을 바라봤다. 그러자 4명은 설화가 말한 그 간단한 해결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들은 듯 미소지었다.


 심야의 어둠 속, 음산한 기운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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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렁각시는 최근들어 계속 기분이 좋았다. 자신의 서방, 사단과 혼인을 맺은 것에 기분이 좋았고, 그와 매일같이 끈적끈적한 복족류 진심교미를 하고 있는 것에 기분이 좋았고, 지금은 그 진심교미의 결과물로 사랑의 결실을 맺어 아이를 가진 것이 기분이 좋았다. 우렁각시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며 낫질을 그만두고 배를 쓰다듬었다.


 그녀는 지금 들일을 하러 나왔다. 회임 소식을 알게된 때 부터 그녀의 남편은 홀몸이 아니니 제발 일을 하지 말고 집에서 푹 쉬고 있으라 하였지만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 움직일 수 있을 때 까지는 남편을 일을 몰래몰래 도와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몰래 도와주는 것 그건 우렁각시에겐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


 한창 낫으로 나물을 베고 있자 어디선가 매케한 탄 냄새가 바람을 타고 풍겨왔다. 그 냄새가 강하지 않은 것이 가까운 곳에서 불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냄새가 강해지는 방향을 찾아 언덕을 올라갔다. 언덕을 올라가 연기가 피어오르는 방향을 확인했을 때 그녀는 나물을 캔 광주리를 내팽겨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시커먼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은 자신과 사랑스런 남편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신발이 벗겨지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려가 집에 도착한 우렁각시는 자신들의 집이 화마에 집어삼켜져 무너져내리고 있는 처참한 광경을 마주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끔찍한 것은 자신의 서방을 붙잡고 웃고 있는 5명의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서방님!" 우렁각시가 소리쳤다.


그녀의 외침에 사단을 잡고 있던 다섯명의 시선이 우렁각시에게 향했다. 방금전까지 웃고있던 그녀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일그러졌다. 그 중 안경을 쓴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네가 그 상도덕도 모르는 창녀구나. 남의 지아비를 훔쳐가놓고선 잘도 당당하게 나타나다니,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네."


우렁각시는 그녀의 도발에 낫을 들고 달려들려고 했으나 그 순간 지네처럼 생긴 여자가 그 독니를 남편에게 들이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멈추었다.


"일단 그 낫 부터 버려." 지네가 우렁각시에게 말했다.


"안돼, 버리면 안돼. 이 년들은 미쳤어… 혼자라도 도망쳐서 아이들을…" 낫을 버리려던 우렁각시를 막으려던 사단은 지네의 독으로 혼절해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번엔 그냥 기절시키는 독이지만, 다음은 더 끔찍할 거야." 지네는 킥킥 웃었다.


 우렁각시가 낫을 멀리 집어던지자 지네 옆에있던 두루미가 긴 다리를 휘둘러 우렁각시를 걷어찼다. 일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한 발차기였다. 두루미의 발에 걷어차인 우렁각시는 하반신에 힘이 풀려 땅바닥을 기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두루미는 추잡한 욕설을 하며 발길질을 계속한다.


"역시 저년이 제일 속이 더럽다니깐, 평소엔 점잖은 척은 다 하더니 서방님이 안보니까 본성 바로 드러나네." 지네는 그런 두루미의 모습을 보며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두루미의 무자비한 폭력이 끝나고 나자 우렁각시는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 패각은 깨지고 매끈한 피부는 터지고 찢어져 전신이 성한 곳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도 그녀는 몸을 웅크리고 배만큼은 지켰다. 계속된 발길질에 지친 두루미는 숨을 몰아쉬며 품에서 궐련을 꺼내 불을 붙인다.


"입에서 담배를 떼지를 못하는 꼴초년이 서방님 앞에서는 담배를 참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단 말이야." 뒤에서 지켜보던 여우가 한마디 툭 던졌다. 그러자 두루미가 살벌한 눈빛을 던졌지만 여우는 어깨만 으쓱거리고 말 뿐이었다.


 두루미가 입에 궐련을 물려던 순간 지네가 그 궐련을 빼앗아 자신의 입에 문다. 그러고는 한 모금 빨아들이더니 이내 큰 기침을 하며 켁켁거리며 가쁘게 숨을 뱉어냈다.


"씨발, 존나 맛없네…"


"또 개거지 같은 짓하고 있네, 맨날 담배 필 때마다 그런 식으로 한개씩 도둑질해 갈거면 네꺼 사서 피세요. 담배가 상극인 년이 왜 맨날 가져가고 지랄이야..." 지네의 말에 두루미는 하루 이틀일이 아니라는 듯 역정을 내며 말했다.


"싫어, 난 남이 맛있게 먹는 걸 빼앗아 먹는게 좋거든." 그렇게 말하고는 지네는 짧게 한 모금만 마신 아직은 긴 궐련을 땅바닥에 버렸다. 어지러운 듯이 머리를 부여잡고 비틀거리는 지네의 모습을 보고 여우와 물고기는 폭소했고 두루미는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런 그녀들을 놔두고 바닥에 엎어져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는 우렁각시에게 안경을 쓴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우렁각시 앞에 쪼끄려 앉아 안경을 고쳐썼다.


"흠, 집념이 대단하네. 그렇게까지 맞아가면서도 새끼들은 지키려고 하다니… 평소 같으면 노력이 가상해서 살려주겠지만, 지금은 경우가 다르지." 그녀는 품 속에서 부적을 꺼내 아이를 배고있어 부풀어오른 우렁각시의 배에 붙인다. 그리고는 또다른 부적을 꺼냈다.


"그 이의 아기씨를 훔친 창녀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얼음장과 같은 한기가 느껴지는 듯한 말이었다.


 안경을 쓴 여자는 그 말과 함께 손에 쥐고 있던 부적을 찢었다. 그러자 우렁각시의 배에 붙어있던 부적이 불타더니 우렁각시는 뱃속이 허전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우렁각시가 놀라 배를 내려다보니 부풀어 올라있던 배가 홀쭉해져있었다. 그녀가 다시 안경 쓴 여자를 바라보았을 때 그 여자의 손에는 핏덩이 같은 한창 아기가 되고있는 태아가 들려있었다. 약간 투명한 피부 속에서 살기위해 펄떡이는 심장이 보였다.


"아… 아…." 우렁각시는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고 필사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아이에게 손을 뻗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비웃듯이 여자는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손 위의 태아를 쥐어 터트렸다. 그리고 그 잔존물을 기어오는 우렁각시의 앞에 놔뒀다.


"하… 제일 재밌는건 혼자서 다 한다니깐, 치사하게." 구경하고 있던 물고기 여자가 말했다.


"끝났으면 빨리 가는게 어때요. 이런 구질구질한 곳이 오래있기도 싫고, 오랜만에 서방님과 회포도 풀어야하니." 두루미 여자가 말했다.


"그래, 이런 쓸데 없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기는 아깝지. 지네, 네가 마무리해." 안경을 쓴 여자가 일어서며 말했다.


"하… 씨발, 끝까지 명령조네. 그래도 이런 재밌는 건 놓칠 수 없지." 지네 여자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지네 여자의 입에서 불꽃이 어른거린다.


"잠깐만, 그 전에 간만 좀 빼갈게." 여우 여자가 뛰어와 날카로운 손톱으로 우렁각시의 뱃가죽을 뚫고 그 속을 헤집어 우렁각시의 간을 찾아 뽑아냈다. 그러고는 지네 여자에게 차례를 넘긴다는 듯이 자리를 비켰다.


 만신창이가 된 우렁각시에게 마지막으로 지네는 입에서 불을 뿜어 그녀를 불태웠다. 점액질로 뒤덮여있던 우렁각시의 피부가 따닥따닥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끔찍한 작열통에 우렁각시는 비명를 질렀다.


"너희들 모두 내가 복수하리라! 반드시 내 손에 처참하게 죽을 것이다!" 우렁각시가 절규했다.


 "해봐." 그 여자들 중 한 명이 비웃듯이 말했다. 아니, 그녀들 모두가 그렇게 말한 걸지도 모른다.


 우렁각시는 몸 속에 있는 공기조차 불타버려 더 이상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5명의 웃음소리가 점점 멀어져갔다.


 산골짜기에 시커먼 연기가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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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치솟아 오르던 검은 연기가 가늘어지고 더 이상 초가집에 불탈 것 조차 없어지던 즈음에 하늘에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몇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빗줄기가 되었고 이윽고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 처럼 강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불에 타 시커먼 덩어리가 된 우렁각시의 몸이 비에 적셔졌다. 익어 굳어버린 피부가 움찔거리더니 쩌적하는 균열이 생겼다. 그녀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폐부 깊숙히 숨을 크게 들이쉬고는 눈을 떴다. 끔찍한 악몽, 꿈이기를 바랬지만 냉담한 현실을 보여주듯 눈 앞에는 자신과 같이 불타버린 자신의 아이와 집의 잔해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주변의 흙을 긁어모아 아이를 묻었다. 무너져내린 집의 나무조각으로 아이를 위한 묘표를 세웠다. 그녀의 입에서는 미안해 라는 말만 반복되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나 세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약해질 때가 되서야 우렁각시는 일어나 자신이 던져버린 낫을 집어들었다. 서슬 퍼런 날에 빗방울이 튕겨 살벌한 소리를 냈다. 그녀는 낫으로 검게탄 자신의 피부를 벗겨냈다. 그녀의 입에서는 더 이상 미안해 라는 말이 반복해서 흘러나오지 않았다.


"지네...두루미...여우...물고기…" 그녀는 중얼거린다.


"지네…두루미...여우...물고기…" 그녀는 끝없이 반복해서 중얼거린다.


"지네...두루미...여우...물고기………...인간"


 우렁각시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 여행이 짧지는 않을테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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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느낌의 미친 동물과 인간을 무찌르며 나아가는 우렁각시의 복수 순애보 써줘. 몬무스 버전 킬빌 써줘. 기대할게...


참고한 이야기


우렁각시,백수소녀 - 한국구비문학대계, 수신후기

설씨녀 - 삼국사기

은혜갚은 두루미 - 일본설화

지네각시 - 오공장터설화, 한국민담 중 '지네각시'

매구 - 한국구비문학대계 중 '여우누이'

금붕어 처녀 - 하동의 구전설화 중 '동정호 금붕어와 혼인'

킬빌 - 쿠엔틴 타란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