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오빠...! 최우수상이에요! 최우수상!"


랴난시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몬붕이 곁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1년 가량 그녀가 준비해서 쓴 웹소설이 근리 미디어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에서 크게 성공한 것이다.  

그녀가 평소 침착하고 냉정한 성격이었던 것을 알고 있던 몬붕이는 검지로 랴난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흐뭇한 미소를 띄었다. 


"와~, 여기와서 글쓴 지 얼마나 됐다고 상이야? 축하해."

"고마워요! 오빠가 대신 키보드 눌러줬으니까 오빠랑 같이 받는 거에요!"


랴난시는 몬붕이의 뺨에 자기 얼굴을 비비더니 "아니지, 차라리 오빠가 상을 받는 건 어때요? 저는 상보다도 오빠랑 사는 게 더 좋아요!"라며 아예 자신의 노력으로 받은 상마저도 거저 내밀 작정이었다. 

몬붕이는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칭찬에 어쩔 줄 몰라했다. 자신이 한 것이라곤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노트북에 써내려간 것뿐인데, 너무나 과분한 감사의 표시에 손사레를 쳤다. 


"아냐아냐, 이건 랴난시 네가 노력해서 받는 상이니까, 네가 받는게 맞아. 게다가 이번에 상받은 작품들은 그쪽 사이트에서 연재해준다잖아? 내가 받았다간 나중에 엄청 곤란해질걸?"

"그...그래두우..."


상을 마다하는 몬붕이를 바라보며 랴난시는 뺨을 부풀렸다. 

그녀가 토라지더라도 현실은 현실, 단순히 옮겨적는 역할에 불과한 몬붕이가 상을 받았다간 안좋게 흘러갔을 수도 있다. 그렇게 랴난시와 몬붕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에 빠졌다. 




그리고 마침내 근리 미디어의 편집장과 미팅이 있는 날, 랴난시는 요정용 정장을 갖춰입고는 거울 앞에서 한참이나 빙빙 맴돌았다. 

마치 딸아이가 학교에서 표창장을 받는 듯한 기분에 빠진 몬붕이는 "그만하면 됐어, 랴난시. 엄청 예쁜데?"라며 추켜세워줬다. 


"헤헤, 오빠한테만 예쁘면 상관없겠죠? 맞다, 이제 작가 랴난시 님이라고 불러주세요!" 

"그래그래, 랴난시 작가님."


몬붕이와 랴난시는 그렇게 집에서 빠져나와 한참을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서울 중심에 있는 근리 미디어가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다. 다만 몬붕이는 이번 미팅에 있어서 제3자였기에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건물 정문에서 그녀를 배웅해주었다. 


"어디어디~, 근리미디어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번잡한 내부에 랴난시는 한참을 붕붕 날아다니다가 겨우겨우 6층에 있는 근리 미디어 사무실에 도착했다. 

랴난시가 진심을 다한 어깨빵으로 문을 통통 두드리자 문이 스르륵 열리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는 아저씨가 그녀를 맞이해주었다. 


"어...혹시 무슨 일로...(어이어이, 뭐냐구! 이 초 카와이한 요정 소녀는!)"

"그, 이번 공모전에서 최우상을 받은 랴난시입니다! 오늘 미팅이 있다고 말씀하셔서..."

"아아! 그렇군, 이리로 들어오시지요(크윽, 이렇게 천사같이 예쁘면서 글까지 잘 쓰는 건 치트라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의 속마음이 들려온 랴난시는 비즈니스용 미소를 지으며 잔뜩 어지럽혀진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잔뜩 뜯어진 소파에 앉아 있으니 음흉한 미소를 띈 한 안경잡이 남자가 랴난시를 회의실로 안내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작가 데뷔, 처음으로 하게 된 미팅에 잔뜩 긴장한 랴난시가 굳은 결의를 다지고 회의실로 들어왔다. 


"자, 일단 여기 앉으시고 우선 여기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죠? 우리 랴난시 님."

"네? 뭐 힘들긴 했는데 저야 세상 구경도 하고 좋았어요."

"그래요, 뭐 차라도 한잔 하시겠어요? 몬진아~!?"


그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평범한 인간 여성이 들어왔다.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그는 싱글벙글 웃더니 그녀에게 입을 열었다. 


"여기 커피 한잔하고, 녹차 한잔~."           

"...네."

"흐흐, 작가님도 앞에 계신데 표정은 밝게 해야지?"

"..."

"맞다, 오늘 퇴근하고 오래간만에 같이 밥이나 먹자고...응?"


편집장은 그러더니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던 그녀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훑더니 음흉한 미소를 띄었다. 당연히 에로티시즘이 가득한 상황을 좋아하는 랴난시라면 절로 군침이 싹 도는 사내연애 장면이었겠지만 랴난시는 왜인지 그에게 알 수 없는 거부감이 치밀어올랐다. 

그렇게 그녀가 떠나가고, 다시 단둘이 있게 된 랴난시와 편집장. 어색한 기류 속에서 편집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선, 이번에 이런 작가님과 함께 동행하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아, 네..."

"저희가 또 이제 정부에서 선정한 100대 성평등 기업이잖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남자 작가가 아닌 여성 작가님을 많이 뽑으려고 했었거든요. 다행히ㄷ..."

"네?"


랴난시에겐 금시초문, 들어보지도 못한 이야기였다. 게다가 100대 성평등 기업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 설마 공모전의 참고 사항을 안 읽어보시고 지원하신 건가요? 여기 공모전 안내 글이 있는데..."


편집장은 황당해하는 랴난시를 향해 종이를 내밀었다. 처음 보는 홍보 팜플랫을 읽어내려가던 랴난시는 문득 중간에 쓰인 내용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뭐야...평가기준에 가산점..."

"네네, 요새 또 말이 많잖아요? 기울어진 천장이라고. 언제까지 이 시장에 사지 멀쩡한 남자 작가님들만 있을 수 있겠어요?"


랴난시가 충격을 받은 부분은 다른 사람이라면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는 '가산점' 대목이었다. 




어디까지나 글만으로 평가받는 공모전에서, 작품을 준비하는 데에 불편하거나 열악한 사람들을 돕기 위한 일환으로 쓰여야 할 가산점이 이번 공모전에서 어딘가 모르게 잘못 책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편집장은 랴난시가 받은 충격을 인지하지 못한 듯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장애인, 장애 급수에 따라 최대 3점...여성 작가, 혹은 작품의 주인공이 여성일 경우 5점..."

"네네, 저희가 남성향 웹소설을 지향하고 있습니다만! 뭐랄까, 사업의 확장성이랄까, 여러모로 많은 팬층들을 확보하고 싶은 욕심..."

"편집장님."


랴난시가 일장연설을 시작하려던 편집장의 말을 끊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 

요정, 아니 여성에게서 이런 살기를 느껴본 적이 없던 그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저를, 뭘로 보시는 건가요?"

"네...네?"

"전 크기는 작지만 몸도 멀쩡하고, 정신도 온전합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동정받을 만큼 불쌍한 존재도 아니고요."

"..."

"여쭤볼게요. 편집장님이나, 근리 미디어는 저를 '장애인보다도 못한 병신'으로 보는 건가요?"  


랴난시는 그 '가산점' 대목을 읽고 '모욕감'이 치밀어올랐던 것이다. 

단지 XX염색체를 타고났다는 이유로, 위해주는 척하면서 장애인보다 더 불쌍한 존재로 취급받는 모욕감.

   

"아...아닙니다! 작가님이라면 충분히 가산점 없이도 상을..."

"이 상, 반납할게요. 그리고 출간이나 연재는 없던 걸로 할게요."

"자...작가님!?"


랴난시는 그곳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났다. 

차라리 기피한다면 모를까, 위선적인 자들에게 아기마냥 다뤄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사무실을 박차고 빌딩 밖으로 빠져나온 랴난시는 문득 벤치에 앉아 자신을 기다리던 몬붕이를 봤다. 

그동안 자신의 꿈을 위해 상당한 시간을 양보해준 그, 그를 볼 낯짝이 없어진 랴난시는 울상을 지었다가 자신의 뺨을 세게 내려쳤다. 


'기회라면 얼마든지 많아,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성공할거야!'


약해진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 그녀는 오히려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몬붕이의 어깨에 앉았다.


"오빠! 잘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어? 빨리 나왔네? 미팅은...?"

"에이씨, 돈도 쥐꼬리만큼 주면서 다음 작품도 연재해달라하길래 뛰쳐나왔어요!"

"하, 뭐 그런 놈들이 다 있냐?"

"것보다! 저 배고프니까 오래간만에 외식해요, 외식!"

"그래그래."


그렇게 몬붕이의 어깨에 기댄 랴난시는 환하게 웃으며 고기 노래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