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오노라: 오늘 오전의 어전회의는 이것으로 파하노라.

일동: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회의장 문을 나서는 나를 문지기가 붙잡았다.


와스프 문지기: 아트 경. 키모가 찾아왔습니다.

나: 알겠네. 바로 가지.



키모는 우리 집 메이드이다. 출장이 없으면 매일 내게 점심 도시락을 싸다 주었다.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궁궐 응접실에서 나를 기다리던 키모가 반색을 했다.


키모: 주인님!

나: 오래 기다렸어?

키모: 전혀요. 자요, 제가 어제 직접 잡아 구운 암소 스테이크예요.

나: 키모의 요리는 언제나 환영이지. 우와~ 바로 구운 것처럼 뜨끈뜨끈하네.

키모: 그야... 주인님을 향한 제 사랑을 담아 가슴 사이에 품고 마력으로 구웠으니까요~♡ 왕국의 유일한 인간 남성인 주인님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 키모.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라던데?

키모: 그래서 만들어 드린 거예요.(찡긋)

나: (귓속말)오늘 밤은 기대해도 돼. 자, 같이 먹자.


3인분은 될만한 양의 도시락에서 반을 덜어 키모에게 나누어 주려 했다.


???: 호오. 그 스테이크를 짐도 맛볼 수 있겠는가?

나: 폐하?

키모: 폐, 폐하. 천민 키모. 폐하를 뵙습니다.

데오노라: 허례는 접어 두도록. 흥미가 돋는군. 짐도 그 스테이크를 맛보고 싶노라.

키모: 아... 어찌 천민의 하잘것없는 솜씨를...

데오노라: 입에 맞지 않더라도 타박하진 않겠노라. 그러니 염려 놓거라.


폐하께선 키모의 스테이크를 작게 잘라 젓수시었다.


데오노라: 훌륭한 솜씨로다. 키모라고 했던가? 아트 경. 경은 메이드 복이 있군. 그럼 맛있게 들도록.


폐하께선 몸을 돌려 걸음을 재촉하셨다. 폐하의 스치는듯한 옥음이 내 귓가에 맴돌았다.


데오노라: 그러니까...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라고?


키모와 환상적인 하룻밤을 보내고 출근했다. 폐하께선 오전 어전회의 후 특별히 남도록 하교하셨다.


데오노라: 아트 경. 그대가 이계에 넘어온 후 벌써 1년이 지났군. 그대의 신문물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노라.

나: 영광이옵니다, 폐하.

데오노라: 그나저나... 어제의 전리품으로 만들었노라. 맛을 보거라.


시종이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 접시를 하나 가져왔다.


나: 폐하, 이것은?

데오노라: 강변의 물소 중 가장 강하고 튼튼한 수놈이지. 짐이 직접 사냥해 손수 요리했노라.


폐하께선 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귓가에 속삭이듯 하교하셨다.




데오노라: 순수한 마음은 돼지고기까지라고 하지 않았더냐?오늘 밤 기대하겠노라.

나: 소... 송구하옵니다. 폐하. 신에게는 이미 키모가...

데오노라: 왕국의 모든 신민은 짐의 것. 키모도 납득할 것이니라.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하지? 멍하니 칼질을 반복했지만 스테이크는 스테이크대로 안 잘리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없었... 스테이크?


나: ......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오나 스테이크가 잘리지 않아서 맛을 볼 수 없사옵니다.

데오노라: 잘리지 않는다고? (직접 잘라본다.) 너무 덜 구웠군. 다시 구워 주겠노라.


폐하께서 가볍게 불꽃 숨결을 뿜으셨으나, 스테이크는 접시째 재가 돼 버렸다.


데오노라: ...... 잘 익힌다는 게 이 모양이 됐군. 그대에겐 미안하게 되었노라.

나: 폐하. 부디 이대로 물러나는 것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데오노라: 시간을 빼앗았군. 그리 하도록.


최대한 빠르게 어전을 물러났다. 폐하의 옥음이 스치듯 귓가를 지나간다.


데오노라: 언젠가는 먹고야 말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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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이런 게 써보고 싶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