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우주 노동자 몬붕과 오토마톤 루미의 모험

글 모음 : https://arca.live/b/monmusu/25564643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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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잠든 돌하우스의 시간이 조용히 흘러갔다. 돈을 벌기 위해서도 아니고 누군가 의뢰를 맡겨서도 아닌 선원들이 원하던 모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대감에 찬 로켓이 가장 먼저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이 바로 출발하는 날이잖아? 선장한테 지금 당장 출발하자고 할까? 어차피 준비는 다 마쳤으니까!”

 

로켓은 지금이라도 당장 조종실에 가서 엔진을 켜고 싶었지만, 선장의 의견도 묻지 않고 그런 중요한 일을 할 수는 없었다. 잠깐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로켓은, 자신의 장비들을 챙기고 세면을 시작했다. 바로 선장실의 문을 두드리러 가고 싶었지만, 이왕 선장을 만나는 거라면 깔끔하게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든 준비를 끝내고 복도로 나온 로켓은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하긴, 이 넓은 곳에 나 포함 다섯이라면 조용할 수밖에. 서른 가까이 타고 있던 곳이랑 확실히 차이가 나네. 아니면 아직 다들 자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선장실 앞에 도착한 로켓은 문 옆에 자리한 단말기의 버튼을 눌렀다. 초인종과 같은 역할을 하는 장치였는데, 튼튼한 문짝을 노크하다가 손이 아파지는 경우를 막기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뭐지? 소리 없이 알려주는 방식인가? 전등을 깜빡인다거나 해서 말이야. 하지만 이러면 잠든 사람은 못 깨우잖아. 설마 수면 방해 금지 기능인 건가?’

 

어리둥절한 로켓이 문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있자, 근처에서 작은 돌하우스의 방송이 흘러나왔다.

 

“선장님께서는 루미 씨를 위로해주시려고 잠들기 전에 루미 씨의 방에 들어가셨습니다. 지금 선장실은 비어 있기에 버튼이 아무 동작을 하지 않은 거죠.”

 

“그렇구나. 언제 출발할지 물어보려고 했지. 둘을 방해하기는 좀 그러니까 나 대신 물어봐 줄래?”

 

“그렇게 하겠습니다.”

 

로켓은 자신의 장비들을 조종실에 옮겨 놓고, 식당에서 누가 가장 먼저 나올지 지켜보기로 했다. 그리고 요리를 할 줄 몰랐으므로 요리사를 기다려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후 잠에서 깬 몬붕과 루미는 물방울의 오해를 피하고자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방에서 나왔다. 같이 있는 것을 보면 또 질투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장실에 돌아온 몬붕은 출발 전 마지막 점검을 위해 돌하우스에게 집합 명령을 방송하라고 지시했다. 집합 시간은 방송을 듣고 깨어났을지도 모르기에 20분 이후로 지정했다.

 

‘바로 가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20분이 흐르고, 모든 인원이 식당에 모였다. 숙소와 같은 층이면서 가장 넓은 공간이기에 가정집으로 치면 마루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이제 드디어 모험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래서, 사고를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점검해둬야 하죠. 그러니 그리스 씨?”

 

“네! 네?”

 

“돌하우스 인공지능과 함께 함선 검사를 부탁드려요.”

 

“알겠습니다! 선장님!”

 

그리스는 돌하우스의 안내를 받으며 2층으로 올라갔다.

 

“로켓 씨는 조종실에서 가져오신 장비가 잘 작동하는지, 조종석에 앉았을 때 편한 자세는 맞는지 확인하고 자기한테 잘 맞게 조절해두시면 될 것 같네요.”

 

“알겠어, 갔다 오면 밥 먹는 거 맞지?”

 

“아…. 그걸 잊고 있었네요. 네, 그리스 씨가 돌아오면 다 같이 먹죠.”

 

“그럼 주인님, 저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면 될까요?”

 

“그래, 루미는 스스로 점검할 수 있으니 식사 준비 이후에 자가 점검을 한 번 하면 되겠다.”

 

“그럼 오라버니, 저는 뭘 하면 될까요?”

 

“방울이는 돌하우스 출입구 근처에 놓인 탐험용 도구들이랑 선원들 숫자랑 비교해서 충분히 준비되었는지 확인해 줄래?”

 

“맡겨두세요!”

 

루미는 주방으로, 물방울은 출입구의 보관함으로 떠나고 나자 몬붕 혼자만이 식당에 남아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나하나 지시해주는 데 시간이 좀 걸리네. 사람이 더 많아지면 시간도 많이 잡아먹겠지. 아무래도 사람을 더 구하면 역할을 제대로 정해 줘야겠어. 그리스 씨랑 로켓 씨는 정비사랑 조종사라고 치고, 루미랑 물방울은 무슨 역할이지? 만능?’

 

생각에 잠긴 몬붕과 다르게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선원들 덕분에 순조롭게 점검과 준비, 아침 식사가 완료되었다. 연합 영역 내에서는 돌하우스의 자동 경로 설정을 통해 이동하고, 영역을 벗어나는 대로 로켓이 조종하는 계획을 갖고 돌하우스는 그리스의 고향 행성의 선착장을 다시 한번 떠났다.

 

일을 마친 선원들의 보고에 따르면 탐험용 장비의 숫자는 충분했고, 우주선의 결함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번 식사는 고기와 채소, 탄수화물이 적당히 섞인 반찬은 적지만 든든한 식사였다. 루미의 말에 따르면 시간이 조금 더 있었으면 더 많은 종류의 음식을 준비할 수 있었을 거라는데, 몬붕은 루미에게 가짓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영양과 맛이 중요한 거라고, 잘 했다고 칭찬해주었다.

 

식사 중에 로켓은 탄수화물과 해초 종류를 피했다. 자신이 잡아먹던 녀석들이 먹던 거라 기분이 이상하다나. 나머지 인원들은 맛있었다며 루미를 칭찬했다. 루미는 기분이 아주 좋은 듯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로켓은 조종실로, 루미는 설거지를 하기 위해 다시 주방으로, 나머지 세 명은 각자 자신의 방에 돌아갔다.

 

“휴, 역시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네. 정말 내가 인간 남자라는 걸 공개하는 게 나으려나?”

 

몬붕이 여전히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자신의 구인 공고를 확인하고 있으려니, 곧 선장실에서 로켓이 통신을 요청해왔다.

 

“무슨 일이죠?”

 

“아, 선장님. 곧 연합 구역 경계에 도착하는데, 거기서는 선장님이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부분이 나오거든? 조종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금방 끝날 거야.”

 

“알겠어요. 곧장 거기로 갈게요.”

 

“기다리고 있을게!”

 

이제는 익숙해진 돌하우스의 운송수단 중 하나인 선로 이동형 의자에 착석하자, 금방 조종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는지, 조종실에는 로켓 혼자 앉아서 여러 화면과 계기판을 확인하고 있었다.

 

“도착했어요.”

 

“딱 맞게 왔어! 저기 접근 중인 드론들 보여?”

 

“네. 저번에 상업 행성에서 봤던 거랑 비슷한 모델들인데. 설마 연합 밖으로 나가는 것도 절차가 필요한가요?”

 

“그렇지. 이제 쟤네들이 나보다 더 잘 설명해 줄 거야.”

 

“선장님, 외부 통신 요청입니다. 로켓 씨가 방금 말씀하신 대로, 연합 소속의 드론들입니다.”

 

“연결해 줘.”

 

화면이 연결되자, 드론들은 조종사가 없어서 그런지 연합의 깃발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시민분. 실례가 아니라면 신원 조회에 협조해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몬붕이 자신의 시민증과 보안관 증명서 화면에 비춰 주었고, 로켓은 그걸 웃는 얼굴로 보고 있었다. 보안관이거나 그 이상의 등급을 가진 시민은 서류 절차를 대부분 건너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들의 보안관이셨군요. 어딘가를 지키는 일을 하다가 지쳐서 잠시 쉬러 가시는 건가요?”

 

“아, 아니요. 어딘가 새로운 곳을 탐사하고 싶어서요. 이 근처에 미 탐사 정글 행성이 하나 있다고 하는데, 그곳으로 가 보려고 합니다.”

 

“그렇군요. 구역을 나가는 이유, 행성 탐사. 목적지, 연합 경계에 가장 가까운 정글 행성. 알겠습니다. 무사히 돌아오시길 바랍니다.

 

또한, 몇 가지 더 알려드리자면 아무런 국가나 연합에 속하지 않는 행성이지만 무차별적 파괴는 가능한 한 하지 말아 주십시오. 만약 전염병이 퍼졌거나 적대적 생물체로 가득 찬 경우, 연합 경찰 본부 또는 연합군에 연락을 하면 행성 파괴 허가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또는 구조 요청을 위해 연락하셔도 문제없습니다.

 

목적지가 미 탐사 행성이므로, 만약 선내에 과학자가 있다면 행성 탐사 도중 발견한 유용한 자원들을 연합에 보고하시면 포상금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설명이 길어졌군요. 방금 방송 내용과 추가 사항은 시민분의 우주선에 메시지로 보내 두었습니다.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고마워요. 나중에 봐요.”

 

드론들은 절차가 무사히 진행되었음을 알리듯, 포위망을 풀고 다시 원위치했다. 돌하우스는 곧 드론들이 지키던 장소를 통과했다. 연합의 보호와 감시를 받지 않는 영역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휴우, 별거 아니었네.”

 

“그거 봐. 역시 우리 선장님, 보안관 칭호까지 있고 든든하다니까.”

 

“원래 절차는 더 복잡한가요?”

 

“내가 그, 해적선에 있을 때는 걔네가 나를 바지 선장으로 앉혀 놔서 아는 건데 말이야. 나가는 이유, 어디로 가는지, 언제쯤 돌아오는지, 호위 명목으로 감시용 드론을 붙여도 되는지, 수하물은 무엇을 가졌는지, 최근 방문한 곳이 어디였었는지…. 아! 아무튼 짜증 나게 많이 물어본다고.”

 

“와, 그거 진짜 짜증 나겠는데요.”

 

“그치, 그치? 아무튼 이제 내가 조종해야지. 아마 장애물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한, 아니 두 시간 내에는 도착할 거 같아. 그때쯤 되면 선내 방송으로 알려 줄게. 아니면 나랑 같이 조종실에서 주변 감상할래? 연합 바깥이라 볼 건 흘러가는 별무리들밖에 없지만.”

 

“심심하실 텐데, 같이 있어 드릴게요.”

 

“정말이야? 고마워!”

 

그렇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보니, 설거지를 마친 루미가 조종실에 들어왔다.

 

“주인님, 여기 계셨네요?”

 

대화는 이미 주제가 떨어져서 끝났던 터라, 몬붕은 바로 루미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대답했다.

 

“응, 로켓 씨가 심심하실까 봐서 같이 있었지. 왜 그래?”

 

‘꼭 이유가 있어서 주인님을 보러 오는 건 아니잖아요.’

“아, 자체 점검을 하려는데 혹시 주인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나 해서요.”

 

루미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 앞에서 예의가 아닌 거 같아 그나마 가장 필요한 일을 핑계로 삼았다.

 

“물론이지. 로켓 씨. 잘 부탁드려요.”

 

“어차피 이 배를 가라앉히면 나도 끝장인 걸 뭐. 아무튼 덕분에 안 심심했어. 이따 도착할 때 알려 줄게!”

 

몬붕은 자리에서 일어나 루미와 함께 조종실을 나가 루미의 방으로 향했다.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정글에서 루미에게 필요할 것 같은 장비들을 장착하거나, 루미가 팔이 닿지 않는 -사실은 완전 회전 가능한 구조를 인조 피부밑에 숨기고 있지만, 주인의 관심을 받고 싶었기에- 등 부분을 몬붕이 살펴봐 주는 식으로 정비를 진행했다.

 

“이 미사일 공장은 좀 거추장스럽지 않을까? 또 무차별 파괴에 해당하는 무기이기도 하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뭐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는데, 주인님께서 위험해질 상황은 피해 가자고 하셨잖아요.”

 

“그랬었지. 맞는 말이야. 확실한 한 방이 있으면 좋지. 그럼 그것도 가져가자고.”

 

둘이서 미사일 공장을 루미에게 장착하자, 곧이어 로켓의 목소리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아, 아. 잘 들리는 거 맞겠지? 나한텐 잘 들리는데. 아무튼! 곧 착륙할 거야. 다행히도 탁 트인 공간을 찾았거든. 착륙할 준비 하고, 충격에 대비하길 바래. 혹시 몰라서 주변을 탐색해봤는데, 함정으로 만들어진 공간은 아닌 거 같네!”

 

방송을 들은 몬붕과 루미는 서둘러 준비를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갔나? 루미랑 같이 있으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네.”

 

“저랑 있는 시간이 좋으셨다는 거네요!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주인님께서 저를 도와주셨으니까, 이번엔 제가 주인님 물건을 챙겨드릴게요.”

 

“아냐. 아까 방울이가 입구 쪽에 전부 준비해놨다고 했으니까. 거기 가서 챙기면 될 거야.”

 

“그렇군요. 그럼 저 미지의 세계로부터 주인님을 열심히 지켜드릴게요!”

 

“좋지. 그럼 슬슬 움직이자.”

 

출입구로 향한 둘은, 자신 몫의 장비를 챙기고 있는 물방울과 그리스를 만날 수 있었다. 로켓은 마지막 착륙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선장으로서 몬붕은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모두가 처음 도착한 곳인데, 무슨 생각이 들어? 방울아?”

 

“흠, 기대되네요. 뭘 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적대적인 생물은 있을지 어떨지 살짝 걱정되기도 해요.”

 

“그리스 씨는요?”

 

“저도 비슷해요. 걱정도 되지만, 기대가 더 커요. 우리 가족 중에서 이렇게 야생으로 직접 와서 구경하는 경험은 제가 처음이니까요. 아, 혹시 흩어져야 할지도 몰라서 무전기를 만들어뒀어요. 하나씩 가져가세요.”

 

“고마워요. 다들 챙겨두자고. 루미는 어때?”

 

“전 바깥이 어떻든 주인님의 안전이 가장 중요해요. 사실, 주인님께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 있다면 좀 가져와 보고 싶기는 해요.”

 

“그렇구나. 아, 로켓 씨가 오기 전에 말인데, 혹시 밖에 나가도 괜찮을지 좀 봐줄래?”

 

“물론이죠, 산소는 충분한지, 오염되지는 않았는지. 먼저 나가서 확인해볼게요!”

 

그러자 물방울 또한 자신의 물건과 무전기를 챙겨 나갈 준비를 했다.

 

“방울이도 먼저 가 보려고?”

 

“네, 저도 너무 건조하거나 덥거나, 춥지만 않으면 멀쩡히 돌아올 수 있을 테니까요. 물론 세세한 수치까지 측정하는 건 루미 씨한테 밀리겠지만 말이에요.”

 

“그래? 그럼 먼저 가서 뭘 조사하려고?”

 

“벌레가 많은지 보려고요. 사람을 무는 종류가 있을지도 모르고, 걔네가 독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심각해지겠죠.”

 

“으으, 벌레는 싫은데!”

 

그렇게 말하며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그리스를 토닥이며 몬붕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우리는 좀 천천히 출발해야겠네. 로켓 씨한테도 이야기해 둘게. 둘이 먼저 다녀와.”

 

“다녀오겠습니다!” “알겠어요.”

 

“출입구를 열겠습니다. 오염의 우려가 있으니, 현재 외출하시는 두 분만 출입구 앞으로 이동해주십시오.”

 

곧이어 출입구 앞에 있던 정화실의 문이 양옆으로 열렸다. 물방울과 루미는 일행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막 합류한 로켓은 그리스와 몬붕에게 상황 설명을 듣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정화실에 들어서자, 우주선 안으로 향하는 문이 다시 닫혔다. 이어서 우주선 밖으로 향하는 문이 열렸다.

 

“흠, 다시 돌아올 때는 외부의 공기를 빼내야 하니 진공 상태가 되겠네요.”

 

“실험실에서 자주 겪어 본 일이라 딱히 상관없지만, 어쩌다 보니 다시 우리 둘이네요.”

 

“그러네요. 둘이 상점으로 갔었죠. 지금은 정찰하러 가는 거고요. 각자 맡은 일을 잘해 보자고요, 물방울 씨.”

 

“물론이에요. 멀리 떨어지지 않도록 해요.”

 

곧 루미는 근처를 돌아다니며 대기의 상태를 점검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도 확인해보고, 우주선이 착륙한 지점과는 달리 나무와 풀, 넝쿨들이 우거진 곳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저 미지의 식물들이 이상한 가스를 내뿜기라도 하면 큰일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혹시 온도를 감지해서 공격해오는 녀석이 있지 않을까 자신의 온도를 높이거나 낮춰보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데다 사람이 숨쉬기 적당한 정도의 대기 상태임을 확인하고는 돌하우스로 돌아가기로 했다.

 

물방울은 벌레가 얼마나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근처 숲속에 들어가 보았다. 벌레가 모여들 만 한 물길이나 나무에 설탕물과 소금물을 뿌려두고 자신을 여럿으로 나눠 곳곳에서 상황을 지켜보았지만, 이상하리만치 아무 벌레도 가까이 오지 않았다.

 

‘이상한데, 이런 습기 가득한 환경에 아무것도 없다니?’

 

그렇게 생각한 물방울은 벌레들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분신들과 함께 주변에 벌레1 둥지나 알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때, 루미가 물방울에게 통신을 보내왔다.

 

“이제 측정이 다 끝나서 돌아가 보려고 하는데, 물방울 씨의 상황은 어떤가요?”

 

“벌레가 한 마리도 없는 거 같아요. 이상하네요. 아무튼 저도 돌아가도록 할게요.”

 

“벌레가 없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뭐, 우주선에 남아 있는 분들에게는 분명 좋은 소식이겠죠. 아마 아직 이 행성엔 벌레들이 들어온 적이 없나 봐요.”

 

‘아니면 서식하는 구역이 저 깊은 곳이던가. 나중에 조사해 봐야겠어.’

 

“그럼, 제가 태워 드릴까요?”

 

“아니에요, 저도 빨리 달릴 수 있으니까, 곧 도착할 거예요.”

 

“이따 봐요!”

 

통신을 마친 루미와 물방울은 곧장 우주선으로 향했다.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들어온 방향의 문이 닫히고 정화 장치가 가동되었다. 동시에 외부에서 들어온 공기를 전부 밖으로 배출한 다음, 안쪽 문이 열리고 둘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던 일행을 만날 수 있었다.

 

“밖은 어때, 나갈 만 해?”

 

로켓의 질문에, 정찰대 두 명은 루미부터 밖에서 본 것들을 이야기해주었다.

 

“일단 호흡에는 전혀 문제없을 것 같아요. 산소 농도가 약간 짙은 걸 보면 여기 있는 식물들도 우리가 평소에 알고 있는 식물들처럼 호흡하는 것 같네요. 다른 행성보다 나무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독성 물질이나 알려지지 않은 물질은 확인되지 않았어요.”

 

“좋아, 아주 잘했어, 루미!”

 

몬붕이 루미를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물방울은 루미가 더 말을 잇지 않는 것을 보고, 빠르게 자신이 다음 발표를 이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제 차례네요. 바깥에 벌레는 보이지 않아요. 이 부분이 뭔가 조금 수상한데, 숫자가 적다 하고 끝날 수준이 아니에요. 아예, 아무것도 없었어요.”

 

“벌레가 살기 좋은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네! 바로 그거에요. 이 주변만 둘러본 거니까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세 가지인데, 하나는 행성이 탄생한 이후 한 번도 벌레가 이 행성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 둘은 활동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것. 지금이 활동 시간이 아니라면 땅속이나 나무 속에서 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죠.”

 

그리스는 벌레가 없다는 말에 안심하다가, 두 번째로 어딘가 숨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다시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리고는 세 번째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그, 그럼 세 번째는 뭔가요?”

 

“세 번째 가정은 서식지가 숲 중심부라는 거죠. 그래서 바깥쪽만 잠시 둘러보고 온 저한테 안 보였던 거고요. 가능성은 제일 낮아요. 아무리 사는 곳이 정해져 있다고 해도 주변으로 계속 퍼져나가려고 하는 게 벌레들이거든요.”

 

“뭐, 먹혀들지는 모르겠지만 벌레 스프레이도 준비해뒀으니까 챙겨 가면 되겠지. 그럼 출발할까?”

 

“좋지! 아까부터 언제쯤이나 나갈 수 있을지 근질거렸다고!”

“약간 불안하긴 하지만, 각오하고 있던 거니까요.”

 

로켓과 그리스의 대답을 들은 몬붕은 다시 돌하우스에게 문을 열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번엔 정화 장치와 외부 출입문이 동시에 열렸다. 외부 대기가 오염되었거나 독성을 띠는 게 아니라는 루미의 조사 결과 덕분이었다.

 

“우와아! 우리 동네에 있던 공원보다 훨씬 더 초록색이잖아?”

“음, 역시 땅 위에 있다는 느낌이네. 처음 목적지로 정하길 잘했어.”“진짜 초록이 무성하네. 뭘 찾을 수 있을까?”

 

먼저 나갔다 들어온 루미와 물방울을 제외하고 각자 처음 정글을 마주하게 된 감상을 이야기했다.

 

“그럼 뭐가 나타날지 모르니 다 같이 행동하자고.”

 

“네, 주인님!”

“알겠어요. 오라버니.”

“그렇게 할게.”

“저….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어떤 질문인가요, 그리스 씨?”

 

“그게요, 아까 연합에서는 쓸모 있는 자원을 찾아내면 보수를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저희가 여기 있는 것들을 보기만 해서 쓸모 있나 없나를 알아낼 수 있을까요?”

 

“그것도 그러네요. 뭐, 원래 목적이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서 온 거니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기로 하죠. 일하러 온 것도 아니고, 이런 방면의 학자를 데려온 것도 아니니까. 아, 방울이 의견은 어때?”

 

물방울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가방에서 투명한 통들을 잔뜩 꺼내 보이며 이야기했다.

 

“원래는 여기 사는 생물들이 다른 곳에서도 관측된 적이 있나 채집하고 확인해보려고 했는데, 벌레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니 그건 넘어가야겠어요.”

 

“음, 통들이 좀 작아 보이는데. 큰 녀석이 나타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럴 때는 제가 직접 잡으면 된답니다?”

 

물방울의 온몸이 꿀렁이기 시작했고, 옆에 같이 서 있던 그리스와 로켓은 물방울로부터 몇 발짝 떨어졌다. 곧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은 것처럼 물방울의 몸이 아주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여기에 고대 공룡이 사는 게 아니라면 제 몸으로 다 잡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정도로 커질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바닷속에선 고래나 대왕급 생물 정도는 되야 저 크기를 넘어서겠는데?”

 

“좋아. 방울이가 잡아다가 무슨 쓸모가 있을지, 위험하진 않을지 분석해 주면 되겠네.”

 

“최소한 굶지는 않으시겠네요.”

 

“뭐, 그렇죠. 다 한 번씩은 삼켜야 하니…. 잠깐, 방금 그거 저 놀리는 건가요?”

 

“아닌데요?”

 

“자 자, 그 정도만 하고. 이제 어떻게 움직일지 계획을 세워봐야지. 둘이 정찰 나갔을 때 혹시 강 같은 물줄기 발견한 적 있어?”

 

“아, 저 방향에 있는 숲속에 물길이 하나 있었어요.”

 

“그쪽을 따라 움직이는 게 좋겠네. 모든 문명은 강 주변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잖아? 혹시 지능이 있는 생명이 있었다면 강 근처에 흔적 같은 게 남아 있겠지.”

 

“오, 좋은 생각이야, 선장님. 그럼 수색 효율을 높일 수 있게 두 팀으로 나누는 건 어때?”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로켓이 경로 설정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는 반응했다. 모두의 시선이 몬붕에게 꽂혔고, 몬붕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한 팀은 상류로, 한 팀은 하류 방향으로 이동해 보죠. 혹시 전투 상황을 대비해서 여러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루미랑 방울이는 각자 다른 팀에 들어가는 게 좋겠어.”

 

“그럼 주인님 곁에는 제가!”

“그렇다면 오라버니 팀에는 제가!”

 

그리스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안절부절못하고 둘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고, 로켓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선장이 제일 중요하면 둘 중에 더 센 사람이 붙으면 되는 거 아냐?”

 

“로켓 씨! 왜 그런 말을 하고 그래요?”

 

“아니 왜, 맞잖아.”

 

몬붕의 걱정은 눈앞에서 현실로 다가왔다. 물방울과 루미 둘 다 전투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루미는 자신의 팔다리에 숨겨진 무기에 호신용 무기까지 손에 쥐어 들었고, 루미 또한 총을 쥐고 있는 손 이외에 다른 팔을 만들어 내 칼날 모양으로 바꿔놓고 있었다.

 

“언젠가는 결판을 내고 싶었는데, 잘됐네요.”

 

“여기서 진 사람은 앞으로 절대 이긴 사람한테 대들지 않는 걸로 하죠.”

 

하지만 둘은 곧 서로의 사이에 걸어들어온 몬붕 때문에 전투 준비를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쉬고 있는 자신의 오빠이자 주인님을 보자마자 이전에도 같은 상황에서 둘을 말리며 화를 냈던 모습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만!”

 

“죄송해요.” “못 볼 꼴을 보였네요.”

 

“알면서도 그러는 이유가 뭐야?”

 

“주인님을 지켜드리고 싶어서요….”“오라버니 곁에 남고 싶어서….”

“이런 상황이 한두 번 나올 것도 아니고, 다음에는 지금 같이 안 갔던 사람이랑 가 줄게. 그러니까 이번은 동전 던지기로 정하자.”

 

“그렇게들 해. 자, 내 행운의 동전 줄게. 아니면 아예 관계없는 사람인 내가 던져줄까?”

 

로켓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주머니에서 녹색으로 반짝이는 동전을 꺼냈다. 연합에서 크레딧 칩 발행 이후 현물 화폐의 발행을 조금씩 줄여 나가는 추세였기에, 지금은 희귀한 편에 속하는, 50 크레딧의 가치를 지닌 동전이었다. 로켓은 그중에서도 동전이 가장 적게 발행된 해가 기록되어 있는 이 동전을 자신의 행운의 부적으로 삼고 무언가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던져올리곤 했었다.

 

“아, 그렇게 해 주세요. 로켓 씨. 그러고 보면 크레딧 칩 말고는 가진 돈이 없었네요.”

 

“알았어. 둘이 앞 뒷면 고르라고.”

 

“잠깐, 그럼 앞 사람이 고르면 뒷사람은 선택지가 없는 거 아닌가요?”

 

“맞아. 원래 그렇잖아. 왜?”

 

로켓이 동전을 던지려다 말고 둘을 쳐다보자, 루미와 물방울은 그런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듯 다시 눈을 마주쳤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물방울이었다.

 

“안 되겠어요. 누가 먼저 고를지 가위바위보로 정하죠.”

“좋아요!”

 

‘그럴 바엔 그냥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내지.’

‘진짜 치열하네.’

‘그냥 가만히 있어야겠다.’

 

“가위 바위 보!”

 

루미는 가위를, 물방울은 바위를 내 물방울이 승리했다. 물방울은 미소를 지었고, 루미는 울상이 되었다.

 

“그럼 방울이가 이겼으니 먼저 앞뒷면을 골라야지.”

 

“전 뒷면으로 할게요!”

 

“저는 자동으로 앞면이 되겠네요.”

 

“이제 더 할 거 없지? 던진다!”

 

던져진 동전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홀수라서 두 팀으로 나누면 한쪽에 사람이 더 많아질 텐데 괜찮으려나?’ 하고 다른 생각 중이던 그리스의 시선마저도 동전에 꽂힌 상황. 바로 떨어졌을 동전이 왠지 천천히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니, 사실 로켓의 힘이 세서 높이 던져진 동전이 평소보다 떨어지는 게 느린 게 사실이긴 했다.

 

“자, 어디 보자. 앞면이야!”

 

“야호!”

 

루미는 제자리에서 폴짝 뛰더니, 한 바퀴 빙글 돌며 춤을 췄다. 물방울은 의외로 순순히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뭐, 괜찮아요. 다음번엔 루미 씨가 아니라 제가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그래. 그렇게 받아들여 주니까 좋네. 그러면 나랑 루미랑 같이 가고. 방울이랑 가고 싶은 사람?”

 

“내가 갈게. 전부터 이야기를 많이 해 보고 싶었거든.”

 

“그러면 로켓 씨까지 정해졌으면 다음은 그리스 씨?”

 

“음....... 으음....... 저번엔 루미 씨랑 함께였으니까, 이번엔 저도 물방울 씨랑 같이 가 볼게요.”

 

“팀은 나눠졌고. 어느 팀이 상류 아니면 하류로 갈지만 결정하면 되겠네.”

 

“저희가 하류 방향으로 가 볼게요. 그쪽에서 꽃을 좀 본 것 같은데, 그리스나 로켓 씨한테 구경시켜 드리면 좋은 경험이 될 거예요.”

 

“오, 방울이 생각 괜찮네. 다들 어때요?”

 

“괜찮을 거 같은데!”

“좋아요.”

 

“그럼 루미랑 나는 상류 방향으로 가 봐야지. 뭔가 발견하면 서로 통신하자고!”

 

“나중에 다시 만나요!”

 

약간의 소란 이후, 각자의 장비를 다시 한번 점검하며 루미 팀과 물방울 팀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새로운 경험을 찾기 위한 모험을 시작했다.

 

“회사에서 일할 때가 생각나네. 루미를 받고, 같이 일했던 기억들 말이야.”

 

“저도 그래요. 그때의 메모리는 잊을 수가 없죠. 무슨 일이 생기면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도와드릴게요.”

 

“고마워, 루미. 최대한 주변을 살피면서 가 보자. 지금 생각해보면 지능이 있는 생명이 살고 있다면 먹이를 잡기 위해 함정을 파 뒀을지도 몰라.”

 

“알겠어요. 그럼 제가 앞장설게요. 주인님이 약하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저 제 몸이 더 튼튼하고 수리하기 쉬우니까요.”

 

“그래 주면 좋지. 진짜 함정을 밟는 상황이 나오지만 않으면 좋겠네.”

 

그렇게 얼마간 걷고 있으려니, 동물들이 놀라서 도망가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청나게 커다란 식물들과 얽힌 덩굴줄기들, 가까이 다가가면 밝은 빛을 내는 버섯이나 꽃잎이 접히는 신기한 식물들이 나타났다.

 

‘예쁜 풍경이야. 주인님과 함께한 기억이니까 저장해 둬야지. 그나저나 벌레는 한 마리도 없네. 이것만큼은 물방울 씨를 인정해 줘야겠어.’

 

‘신기한 것투성이네. 정말 한 종류씩 채집해 두고 싶지만, 괜히 만졌다가 탈이 나면 어떻게 해. 흠, 식물학을 전공한 사람도 선원으로 모집해 볼까?’

 

확실히, 잘 알지도 못하는 것들에는 손대지 않는 게 정상이긴 했다. 몬붕은 회사에서 일할 때 알고 지내던 몇몇 동료가 임무 목표와는 관계없는 동, 식물 또는 빛나는 광석을 함부로 만졌다가 그쪽 손과 팔에 버섯이 자라나거나 피부가 초록색으로 변하는 등의 사고를 본 적 있기에 특히 그런 방향으로는 조심하고 있었다. 연합에서 괜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었다는 말이 되겠다.

 

‘에이, 뭐 돈 벌려고 여기 왔나. 지금까지 바깥에선 못 보던 것들 보려고 온 거지. 사진이나 찍어둬야겠다.’

 

“루미, 여기 화려한 꽃들이 좀 있는데 둘이서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갈까?”

 

“좋아요! 그러고 보면 함께한 시간이 제 메모리에만 남아 있었네요. 제 시야를 그대로 찍은 거라서 주인님만 나오고 저는 안 나왔는데, 아무튼 여기쯤 서 있으면 될까요?”

 

“그래. 조금만 더 왼쪽으로. 그다음에 이 카메라를 올려놓을 곳이 이 바위 정도면 괜찮겠지.”

 

타이머를 맞추고, 몬붕은 루미 옆으로 이동했다. 곧 카메라가 삑삑거리며 작동하고 있음을 알려왔고 루미와 몬붕은 각자 자세를 취했다. 이어서 ‘찰칵’하는 소리가 났고, 몬붕은 카메라를 회수하기 위해 다시 바위 가까이 이동했다.

 

“응? 아까도 이런 게 있었나?”

 

“어떤 거요?”

 

“바위에 무슨 그림이 있는 거 같은데?”

 

루미는 다시 한번 무장을 꺼내기 직전 상태로 돌입했다. 아까부터 자기 주인이 이야기했던 지성체의 존재가 친근하게 다가올지, 적대적으로 다가올지는 모르지만, 준비를 해 두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도 한 번 볼게요.”

 

“그래. 여기쯤 그려져 있네. 무슨 그림이지?”

 

“여기 이건 뱀 다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 같네요.”

 

“아아, 회사에선 본 적 없지만 보안관 칭호를 받을 때 기자로 온 사람이 있었던 거 같아.”

 

“그리고 이쪽은, 음. 다리 부분이 꽃에 잠겨 있는 사람처럼 보여요. 사람을 잡아먹는 꽃을 의미하거나….”

 

“알라우네 종족을 의미하는 거겠지. 엄청나게 크게 그려져 있는 데다 주변에 뱀 다리를 가진 사람들이 도망가는 걸 보면 사람 잡아먹는 알라우네일지도 모르겠어.”

 

“여기 살던 사람들이 그냥 만화를 그린 게 아니라면, 최소한 지성이 있는 종족이 둘 이상 이 행성에 있다는 뜻이겠죠?”

 

“그래. 흠, 그래도 알라우네 종족 정도면 자기가 몸담은 꽃을 조종하는 정도가 전부일 텐데, 여기 그림을 남긴 게 뱀 종족이라고 치면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몰라.”

 

몬붕이 카메라를 다시 그림을 향하게 한 뒤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루미는 주변을 둘러보며 경계하고 있었다. 이런 그림이 남아 있는 돌이 있다면 주변에 그림을 그렸던 사람, 또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용된 도구가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 누군가 다시 여기 찾아올 가능성도 충분해서였다.

 

‘저건 뭐지?’

 

루미는 곧 팽팽하게 당겨져 있는 줄이 땅바닥과 약간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것이 거미줄이 아니라는 것 또한 알아냈다.

 

“저, 주인님! 이쪽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 잠깐만, 곧장 갈게!”

 

카메라를 다시 보관한 몬붕은 루미가 쪼그려 앉아 있는 곳으로 다가가서 자신도 똑같이 앉은 자세를 취했다.

 

“이건 확실히 자연적으로 생긴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렇죠?”

 

“한 번 줄을 따라가 볼까? 무언가 이 돌멩이와 관련된 주술적인 도구라면 뭔가 연결된 게 없을 수도 있지만, 함정의 한 부분일지도 모르니까 건드리지는 말고.”

 

“알겠어요.”

 

둘은 각자 다른 방향으로 줄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줄은 주변 수풀 안쪽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수풀 속 줄에는 빈 깡통들이 매달려 있었다.

 

“여기 사람이 살았던 건 확실해. 그런데 이 행성에 이런 깡통을 구할만한 장소가 있나?”

 

“아니요? 무언가를 판매하는 곳도 없고. 연합에서 구역 밖 행성을 쓰레기 처리장으로 쓴 적도 없고, 바깥 다른 국가에서는 여기 착륙했던 기록도 없어요.”

 

“와, 루미는 정말 아는 게 많구나!”

 

‘방금 데이터 센터에서 받아온 정보긴 하지만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은 루미를 본 몬붕은 이제 습관적으로 루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에 맞춰 루미 또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헤헤 웃었다. 다시 깡통에 관심을 두게 된 몬붕이 머리에서 손을 떼자 그 미소는 곧장 사라지고 아쉽다는 얼굴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게 뭐 하는 물건일까?”

 

“글쎄요? 뭔가 주술적인 의미 아닐까요? 깡통이 구하기 쉬운 물건은 아니었을 테니까, 자기들의 기록을 남겨놓은 이 돌멩이에 무슨 뜻을 부여하기 위한 걸지도 몰라요.”

 

“함정이랑 연결된 것 같지는 않으니까 한번 작동시켜 볼까….”

 

“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지켜드릴게요.”

 

몬붕이 줄을 살짝 건드리자, 매달린 깡통들이 서로 부딪치며 시끄러운 소리를 만들어 냈다. 둘은 그 소리에 깜짝 놀랐다. 바로 그때, 무전기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도, 도와주세요! 방금 로켓 씨가 이상한 뭔가에 잡혀갔어요!”

 

“그리스 씨? 괜찮으세요? 강을 따라 하류 쪽으로 가면 될까요?”

 

“중간에 꽃향기가 엄청 진하게 나는 방향으로 틀었는데, 아마 이쪽으로 오다 보면 찾아내실 수 있을 거 같- 방금 물방울 씨도 당한 거 같아요!”

 

“그리스 씨가 무사하면 저희가 힘을 합쳐서 둘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일단 우주선이 있던 방향으로 후퇴하세요! 무기를 쓰셔도 괜찮으니까!”

 

“알겠어요!”

 

곧 무전기 너머로부터 총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도 곧 잦아들었고, 처음 듣는 목소리가 몬붕과 루미의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쪼그만 녀석, 왜 허공에다가 소리를 치는 거야? 투명한 친구들이라도 데리고 있는 건가?”

 

“읍, 으으!”

 

“아, 입을 막았으니 말을 못 하겠지. 데리고 돌아가서 다시 한번 물어봐야겠어.”

 

이후 아무런 통신이 흘러나오지 않자, 루미는 몬붕이 무슨 명령을 내릴지 기다리고 있었다. 괜히 무슨 말을 했다가는 이성적인 판단에 방해가 되리라 판단해서였다.

 

“루미, 지금 세 사람을 구하러 가는 게 우선일까, 아니면 일단 우주선으로 돌아가는 게 우선일까?”

 

루미는 꽉 쥐어져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몬붕의 손을 보고 주인의 화를 가라앉히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럴 시간도 아까운 상황이었기에, 자신이 생각한 제일 나은 방법을 이야기했다. 

 

“먼저 순식간에 세 명이 당할 정도라면 돌하우스에서 그리스 씨의 포탑과 통신기 추적 장치를 꺼내와서 머릿수도 채우고 위치도 확실히 특정한 다음 출발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니면 연합 드론이 이야기했듯이 구조 요청을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그래…. 같은 생각이야. 루미가 있으니까 감성보다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었어. 그럼 어서 돌아가 보자.”

 

“저, 주인님. 혹시 방금 발견했던 깡통, 그러니까 경보장치 같은 게 이상한 것들을 불러들인 건 아니겠죠?”

 

“아닐 거야. 우리랑 전혀 다른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 당했으니 동시에 상황이 발생한 건 우연이겠지. 그나저나 이걸 설치한 사람이 여기 살고 있다는 가정하에 방금 우리 선원들을 납치한 녀석을 알고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둘이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지.”

 

“지금 생명체 탐지기를 작동시켜볼게요. 으, 워낙 생명이 넘치는 정글이라 그런지 반응을 특정할 수가 없는, 잠깐만요. 뭔가가 가까이 오고 있어요.”

 

“경보장치를 건드렸으니 분명 전투 준비를 한 채로 이쪽을 경계하면서 접근하고 있을 거야. 물어봐야 할 게 많으니 죽이면 안 돼. 알겠지?”

 

“네, 주인님!”

 

루미와 몬붕은 등을 맞대고 무기를 꺼내 들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근처 수풀에서 나뭇잎이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둘은 총구를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겨눴다. 물론 방아쇠에 손을 뗀 채로 말이다. 놀라서 방아쇠를 당기기라도 했다간 방금 이야기 했던 생포와는 아주 거리가 먼 일이 벌어질지도 몰랐으니까. 곧이어, 경계하던 방향에서 스르륵거리는 소리가 멈추더니, 털이 복슬복슬한 무언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바위, 만지면 안 돼. 어라? 인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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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많이 늦었습니다. 처음엔 이런 건 어떨까 하는 게 작성하는 데 원동력이 되었지만 이제는 읽어 주시는 여러분들의 관심이 원동력이 되었네요. 기다리고 계시던 분들에게는 죄송합니다. 시간만큼 글자 수가 길지도 않고요. 휴식은 이전 편에서 충분히 했으니, 이번 편은 인물들이 겪을 위기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이번 화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