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우주 노동자 몬붕과 오토마톤 루미의 모험




글 모음 : https://arca.live/b/monmusu/25564643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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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큰일이 하나 지나갔으니까 일단 좀 쉬어 볼까?”

 

“좋아! 먼 곳을 떠나는 거니까 준비도 든든히 하고 가야지.”

 

“알겠어요, 오라버니.”

 

“여러분들이 최대한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그럼, 기왕 제 고향에 돌아온 김에, 부모님께 안부 인사 전해드려야겠어요. 아! 그리고 이제 고정 수입이 생겨서 오빠나 언니들처럼 부모님께 용돈을 드릴 수도 있겠네요!”

 

그리스는 아주 들떠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로켓은 가족과의 인연을 끊은 지 오래기에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곧 ‘사이좋게 지낸 가족들이라면 그럴 수 있지’ 하고 생각하며 그냥 넘기기로 했다.

 

“그럼, 다녀오세요. 저희는 좀 쉬어야겠어요. 나중에 탐사에 필요한 물건 살 때 같이 가게 연락드릴게요.”

 

“네! 갔다 올게요!”

 

그리스는 신이 나서 자신의 집 방향으로 달려갔다. 아무래도 저번처럼 가족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고, 그리스는 자신이 기억하는 것을 최대한 설명하는 일이 일어날 것 같았는데, 현장이 아니라 우주선에 남았던 만큼 그렇게 긴 시간을 잡아먹지는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아까 쉰다고 말했는데,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야?”

 

로켓이 질문했다. 곰곰이 고민하던 몬붕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회사에서 일할 때도 개인 시간엔 일지를 기록해서요.”

 

“그래? 선장이 지시를 안 내려주면 나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네. 지금까지 계속 해적들 조종실에만 갇혀 살았다고.”

 

“그럼 다른 선원들에게 물어보면 괜찮겠죠. 루미, 방울아. 뭘 하면서 쉬어야 할까?”

 

“육체가 피로하다면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게 좋고, 정신이 피로하다면 친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네요.”

 

루미가 먼저 대답했다. 물방울은 생각에 잠긴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연구실에 있을 때가 아니면 간식을 먹으면서 텔레비전 보는 것밖에 해 본 적이 없는데. 처음부터 피로를 느끼지 않는 로봇이랑 슬라임한테 쉬는 방법을 물어보는 게 이상한 거 같아. 그만큼 오라버니께선 쉬지 않고 일을 해오셨다는 건가?’

 

“괜찮네. 방울이 생각은 어때?”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좋겠네요. 먹는 건 몸을, 맛있는 건 정신을 즐겁게 해 주는 거니까요.”

 

‘누워서 영화 보면서 간식 먹는 건 어때요? 는 너무 격이 떨어지는 것 같으니까.’

 

물방울은 루미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은 다음, 자신이 생각하던 것에서 텔레비전을 보는 부분을 빼고 먹는 것을 넣어 추천하기로 했다. 말하고 나서도 자신이 평소에 오라버니에게 맛을 크게 따지지 않는다고 했던 것이 기억나 ‘이게 맞나?’ 하고 자신도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말이다.

 

“좋지. 가장 최근에 둘러앉아서 먹었던 게 그리스 씨의 어머니가 차려주신 카레랑 칠리였으니까, 이번엔 좀 다른 걸 시도해보자고. 그러고 보니 다시 또 여기로 돌아왔네.”

 

“잠깐, 카레랑 칠리가 뭐야?”

 

“로켓 씨는 육지 음식을 거의 안 드셔 보셨나 봐요.”

 

“맞아! 학교에서 다른 녀석들이 먹는 걸 보긴 했는데, 맛있어 보이기는 했지만, 바다에서만 살다가 나왔으니 먹어도 괜찮은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거든.”

 

“그러면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으세요?”

 

“으음……. 선장이 데리고 있는 선원들을 보면, 겹치는 종족이 아예 없으니까 이번 기회에 배워 둬야겠지.”

 

“좋아요. 솔피 종족은 다른 물고기들이 주식이니까 육식이라고 치고, 지상의 고기들을 대접해드리면 되겠다. 그렇지, 루미?”

 

“네. 다양한 방법으로 조금씩 조리해서, 최대한 요리의 종류를 늘려서 로켓 씨의 입맛에 맞는 걸 찾아내는 게 좋겠네요.”

 

“그러면 다시 백화점에 가 봐야겠네.”

 

그러자 루미는 고개를 약간 기울이며 질문했다.

 

“저번에 여기서 샀던 식량들이 남아 있는데, 굳이 새로 살 필요가 있을까요?”

 

“창고에서 꺼낸 식량으로 요리를 하고, 다시 창고를 채워 둬야 하니까. 이제 멀리 떠나게 될 텐데, 비축할 수 있는 만큼 비축해둬야지. 물론 식품 자판기를 써도 되지만 추가 비용이 나오니까.”

 

“와. 우리 선장님 똑똑한데? 생존의 기본도 알고 있고 말이야.”

 

“별거 아니죠. 그럼, 출발할까?”

 

“잠깐, 오라버니는 여기 계세요. 저랑 루미 씨가 같이 다녀올게요.”

 

“뭐, 그러면 나는 로켓 씨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되겠네. 고마워.”

 

“네, 그럼 다녀올게요. 오라버니.” “다녀오겠습니다, 주인님!”

 

‘둘이 저렇게 사이가 좋았었나? 나한텐 오히려 좋은 일이지.’

 

“두 분이 외출하시는군요. 조심해서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돌하우스의 방송과 함께 출입문이 열렸다. 루미와 물방울은 우주선을 떠나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저랑 같은 생각을 하셨나 보네요.”

 

“물론이죠. 여기 처음 왔을 때도 오라버니 옆에서 사람들을 쫓아내는 로봇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또 그런 상황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둘은 또다시 몬붕이 이 행성의 다른 여자들에게 노려질까 봐 걱정한 것이었다. 거주민들은 전부 새로 임명된 보안관이자 인간 남성이며 미혼 상태인 몬붕을 어떻게든 만나보고 싶은 상태였기에 둘이 몬붕을 바깥으로 데리고 나오지 않은 것은 아주 훌륭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어떤 우주선을 타는지에 대한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우주선 앞이 인파로 가득 차는 그림이 연출되지는 않았다.

 

“그럼, 빨리 다녀오자고요. 저 조종사랑 둘만 두고 온 게 마음에 걸리니까요.”

 

“그러죠. 그런데 그 새로운 가슴 부품은 어때요? 무겁거나 하지는 않나요?”

 

“아니요. 출력 자체도 상승해서 별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주인님께서 원하신다면 무겁더라도 참았겠죠.”

 

“으으, 나도 얼마든지 그런 가슴은 만들어낼 수 있는데!”

 

‘그래 봐야 주인님의 첫 상대가 나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롱!’

 

루미와 물방울이 떠나고 난 우주선에는 몬붕과 로켓만이 남아 있었다.

 

“음, 그래서, 선장. 우리끼리 이름 이야기도 했고. 내 과거 이야기는 경찰 앞에서 했는데. 뭐 더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거야?”

 

“그건 로켓 씨가 원하시는 대로 해야죠. 저한테 들려줘야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지금 해 주세요.”

 

“그럼 가장 중요한 실력 이야기를 하면 되겠다. 해적선을 타고 있을 때, 뭔가 꼬였는지 다른 우주선이 우리를 공격한 적이 있었어.”

 

“해적들이 경찰들한테 안 걸릴 자신이 있어 보였으니, 아마 다른 무장 단체랑 불법 거래를 하다가 뭔가 잘못된 걸지도 모르겠네요.”

 

“그럴지도 몰라. 그때, 나는 날아오는 공격을 전부 회피기동으로 피했지! 은폐장이나 차원 이동기 없이 말이야!”

 

“그러면 유도 미사일에 맞지 않을까요?”

 

“유도 미사일도 전부 함포로 격추했어. 물론, 모든 걸 다 나 혼자 한 건 아니고 함포에 배치된 녀석들도 좀 힘을 보태 줬지.”

 

“정말 멋지네요! 로켓 씨가 조종사로 합류해 준 것에 감사해야겠어요.”

 

“감사하려면 끝도 없지. 내가 조종사 학교에 간 거라던가, 여기에 나를 보내려고 했던 경찰이라던가 말이야. 아무튼,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는 그게 끝이야. 이제 선장님이 이야기 좀 해 봐. 예를 들자면 이 배를 장만할 돈을 어디서 마련했는지 그런 거 말이야.”

 

“저는 전에 광부였었어요. 땅속에 들어가서 쓸 만한 돌을 캐 오는 일을 했죠.”

 

“아! 그거 알아. 우리 고향에서도 물속 깊은 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광물을 캐다 파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하하.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그런데 그 땅속이라는 게 평범한 행성의 땅속이 아니라 위험한 토착 생물들이 가득한 행성의 땅속이라는 게 문제였죠. 단순히 돌을 캐는 것만이 아니라 덤벼드는 괴물들을 쏴 죽이는 일도 포함되어 있었어요.”

 

로켓은 주먹으로 다른 손바닥을 내려치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서 기본 생존 수칙을 알고 있는 거였네! 아무튼, 선장님이 일하다가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야.”

 

“마지막 작업이 좀 꼬이긴 했지만, 루미랑 그리스 씨랑 같이 위기를 헤쳐 나올 수 있었죠.”

 

“그때부터 팀이었던 거구나. 음, 나도 믿음직한 선원이 되려면 열심히 해야겠는걸.”

 

“저한테는 벌써 열심히 하시는 것처럼 보이는걸요. 제 이야기를 했으니까 다시 로켓 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좋지, 뭐가 궁금해?”

 

몬붕은 손가락으로 로켓의 허리춤에 달린 가방과 목걸이로 고정되어 뒷목에 매달려 있는 장치를 가리키며 대답했다.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저 모자 같은 게 뭔지 궁금하네요.”

 

그러자 로켓은 가방을 열어 각종 물건을 꺼내 근처에 내려놓았다. 자신의 목걸이를 풀어 ‘모자 같은 것’도 같이 내려놓았는데, 검은색 도색에 가운데 흰 줄이 그어져 있는 것이 로켓의 옛날 이름인 줄무늬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먼저 이 모자는 배의 상황을 표시해주는 장치야. 조종사 학교 졸업할 때 학교에서 선물로 주더라고. 배에 연결하면 파괴나 엔진 상황, 연료 잔량이랑 포탑 탄약 상황같이 중요한 것들을 여기 눈 부분에 표시해 주지. 나한텐 아주 각별한 장비야. 그러고 보면 아직 돌하우스에 연결을 해 놓지는 않았네. 이따 해 놔야겠다.”

 

“와, 로켓 씨의 보물이네요. 생각난 김에 바로 해 버리죠. 돌하우스, 여기 있는 장치랑 연결을 구성해 줄 수 있을까?”

 

“확인해보겠습니다. 조종사 로켓 씨. 잠시 헬멧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로켓은 천장에서 내려오는 로봇 팔에 자신의 보물을 맡겼다.

 

“보물인데 정말 경계심 없이 건네주시네요.”

 

“앞으로 여기서 지낼 건데 뭐.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한테 물건 빌려주는 거에 하나하나 신경 쓸 필요 없지.”

 

헬멧을 이리저리 돌려 보던 돌하우스의 로봇 팔은 곧 헬멧과 무선 연결을 시도했다.

 

“조종사 로켓 씨. 이전 함선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삭제하고 현재 함선의 정보를 덮어씌울까요?”

 

“그래. 이젠 더 필요 없는 자료니까 그렇게 해 줘.”

 

돌하우스가 헬멧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동안, 로켓은 자신의 가방에서 꺼낸 물건들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좋아, 먼저 이거부터.”

 

로켓은 접이식 칼을 들어 올렸다.

 

“칼이라, 생존 상황이든 생활 속에서든 유용한 물건이죠.”

 

“맞아. 이건 다양한 도구들이 한 손잡이에 전부 들어간 물건인데, 망치로도 쓸 수 있고 단검 이외에도 송곳, 줄칼 그 외에도 여러 도구가 접혀 있지. 물론, 전부 써보진 못했어.”

 

“그렇게 접이식이면 내구도가 좀 부족하지 않을까요?”

 

로켓은 펼쳐진 도구들을 다시 손잡이 속으로 접어 넣으며 고개를 한 번 가로저었다.

 

“아니, 이것도 조종사 학교 졸업 선물로 받은 거야. 학교에서 준 건 아니고, 친구들끼리 조난 상황에서는 우주선을 잃는 것보다 조종사를 잃는 게 더 심각한 거라고 하면서 서로 선물한 건데.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져서 일부러 부수려고 하는 게 아니면 멀쩡하더라고.”

 

“그럼 로켓 씨는 친구들한테 뭘 선물로 주셨어요?”

 

“나는 낙하산이랑 구명조끼, 그리고 산소 탱크가 포함된 세트를 선물로 사 줬지. 지금 생각해보면 우주 공간에서 쓸만한 물건들은 아니지만, 그건 이 다기능 칼도 마찬가지니까 쌤쌤이지 뭐.”

 

“그럼 다음 물건은요?”

 

“이건 부싯돌이야. 라이터랑 같은 역할을 하는데, 연료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지.”

 

“불을 피워보신 적 있으세요?”

 

“생존 상황 훈련에서 해본 적 있어. 해저도시에서는 불을 피웠다간 산소가 금방 사라져버리니까 고향에선 본 적 없었는데 엄청나게 뜨겁더라.”

 

“하지만 뭔가 아늑하죠?”

 

“응. 야생동물들이 불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횃불을 만들 수도 있고, 또 뭔가를 요리할 수도 있으니까.”

 

부싯돌을 내려놓고 다음 물건을 들어 올리는 로켓을 본 몬붕은 딱히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은 물건을 보고 자신이 먼저 말을 하기로 했다.

 

“그건 물통이네요.”

 

“맞아. 물을 넣어놓고 아직 열어본 적이 없네. 버리고 새로 받아야겠다.”

 

“그 옆에 있는 건 돋보기고요.”

 

“태양이 뜨는 행성에선 불을 붙일 수도 있고, 뭔가 자세히 관찰하기엔 이게 딱 맞으니까. 렌즈 확대 배율도 조절할 수 있어. 옆에 있는 건 망원경이고. 그리고 이것들은…….”

 

로켓은 말을 하다 말고 쇳덩어리 몇 개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됐다! 이건 졸업할 때 학교에서 받은 거야. 작은 산탄총이지.”

 

“그것도 조종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조난 대비 물품 중 하나겠네요. 해적들한테 안 뺏기려고 분해된 상태로 갖고 다니셨던 거고요.”

 

“맞아. 학교를 세운 사람이 낙하산이랑 이건 꼭 챙겨야 한다고 말했었대. 동물을 사냥해서 먹을 수도 있고, 진짜 원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적진에 떨어졌을 때 자살할 수도 있겠지. 아무튼, 이걸로 내 물건 소개는 끝이야.”

 

“마침 로켓 씨의 헬멧과 저를 연결하는 작업이 완료되었습니다. 헬멧을 돌려받으시기 바랍니다.”

 

로켓은 천장에서 내려온 자신의 헬멧을 다시 목에 걸고, 가방에서 꺼낸 물건들을 도로 집어넣고 있었다. 몬붕은 두 사람만 남은 상황에서 할 말이 없는 분위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돌하우스에게 명령을 내린다.

 

“혹시 지금 뉴스 채널 나오는 곳 있으면 틀어 줄래, 돌하우스?”

 

“네, 선장님.”

 

곧 천장에서 화면이 하나 내려오더니, 전원이 들어왔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체포된 솔피 해적단과 경찰이 거래를 통해 해적단의 형량을 줄여주었다고 하는데요. 자세한 소식을 현장의 래피드 기자에게 들어보시죠.”

 

“네, 래피드입니다. 그동안 자기들만의 방법으로 경찰의 수사망을 교묘히 피해 다녔던 솔피 해적단이 최근 2급 경찰과 용감한 시민들에 의해 체포되었는데요. 경찰은 해적들에게 수사망을 피해 다닐 수 있었던 방법을 받고, 해적단의 형량을 줄여주는 거래를 했다고 합니다. 물론 죄질이 몹시 나쁜 편이었기 때문에 줄어들었어도 남은 수명의 절반 이상을 보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군요. 겨우 그 정도로 만족할 것 같지 않은데, 해적들이 새로운 요구를 하고 있지는 않나요?”

 

“맞습니다. 몇몇은 자신들의 기술을 이용해 무급 노동과 사회봉사를 하는 대신, 추가 감형을 원한다고 경찰에게 요구했습니다. 경찰이 이에 대한 답을 아직 내놓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급 인력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눠 요구를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합니다.”

 

“시민들은 지금 이 상황을 별로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그렇습니다. 특히 해적단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본 시민들의 반대가 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연합에서 새로 보안관을 임명했다고 하는데, 그 배경이 아주 놀랍습니다. 스파크 기자?”

 

화면에서 방금까지 이야기하던 기자가 사라지고, 다른 기자가 몬붕이 보안관으로 임명된 MF-17 행성의 경찰 본부 앞에 서 있는 장면이 송출되기 시작했다.

 

“네, 스파크 기자입니다. 최근 악명높은 솔피 해적단 체포에 이바지한 시민이자 다른 종족에 비해 숫자가 적은 인간 남성인 하트워밍 테디베어 씨가 연합 경찰의 심사를 거쳐 보안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화면은 다시 한 번 보안관 배지를 받는 몬붕으로 전환된다.

 

“본 시민의 용기와 비살상주의, 그리고 정의를 높게 사 보안관으로 임명합니다. 연합의 정의를 회복시키는 데 기여 해 줘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블링키 경관이 조사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제가 이런 자리에 서 있지 못했을 겁니다. 혼자 다쳤으니 잘 보살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수가 이어졌고, 기자들의 요청이 이어진다.

 

“소감 한 말씀 해 주시죠!”

“블링키라는 경관과는 원래 아는 사이였나요?”

“어떻게 이렇게 위험한 일을 돕겠다고 결심하신 건가요?”

 

“소감……. 네, 저는 이 넓은 우주를 탐험하는 게 인생 목표입니다. 제 시야에 닿는 곳에서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고, 약자를 내버려두지 않겠습니다. 다른 질문에는 음, 제가 사람이 많은 곳에서 긴장을 많이 해서 대답을 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시 경찰본부 앞 스파크 기자에게로 화면이 전환된다.

 

“테디베어 씨의 인터뷰 요청 거부로 인해 영상은 여기까지입니다.”

 

“와, 보안관에 훌륭한 인성에 인간 남성이기까지 하니, 인기가 대단할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실제로 인터뷰 거부 이후 기자들은 더 질문을 던지지 않고 청혼을 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경찰 본부 근처에는 테디베어 씨를 만나기 위해 다양한 종족의 여성 시민들이 모였는데요. 한 번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 새 보안관을 보기 위해 여기 오신 건가요?”

 

시로헤비, 25세, 운동선수

“맞아요! 저런 사람 놓치면 평생 후회할걸요? 지금도 아랫도리가 점점 젖고 있단 말이에요!”

 

“그렇군요. 다른 분과도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 여기에 모이신 이유가 새 보안관 때문인가요?”

 

데몬, 39세, 직장인

“여기 다 똑같은 이유로 모였을걸? 조사해보니까 옛날엔 광부로 일했다던데, 몸도 아주 튼실할 거야. 더 늦기 전에 결혼 좀 하라고 집에서 난리인데, 저 사람이면 최고급이지.”

 

몬붕은 공포에 질렸다. 만약 자신이 루미와 물방울을 따라 백화점에 갔다면 무조건 어떤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이 터졌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됐어. 너무 무섭다. 그만 화면을 꺼 줘.”

 

“알겠습니다. 선장님.”

 

몬붕은 다시 천장 속으로 수납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로켓 쪽을 바라보았다.

 

“로켓 씨는 해적들 처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야 뭐. 남들 빨아먹고 살았던 애들인 데다 죄책감도 못 느끼고 다녔으니 늙을 때까지 감옥에서 썩는 게 맞다고 봐. 특히, 뭔가 꼬였으면 우리 곰돌이 선장님도 거기서 총 맞고 어떻게 됐을지도 모르잖아?”

 

“역시 그렇죠?”

 

“근데, 나도 거기 있었는데 반성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했으니까. 혹시 진짜 새사람이 되려고 하는 녀석이 있으면 어느 정도 봐 줘야 할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저는 감옥에 있다가 형량을 줄일 순 있는데, 처음부터 형량이 적은 상태로 감옥에 간 사람의 형량을 늘릴 순 없으니까 처음부터 좀 세게 나와야 한다고 봐요.”

 

“선장님 말도 맞는 것 같네. 아. 혹시 내 개인 숙소도 있어? 물건들을 정리하고 싶어서 말이야.”

 

“네, 여기서 저쪽으로 가면 숙소들이 늘어선 통로가 나올 텐데, 4번 방이나 그보다 큰 숫자 방을 쓰시면 돼요. 4번 방은 그때 팔에 붕대 감고 있었던 경관님이 전에 사용하던 곳인데, 치워놔서 문제없을 것 같네요.”

 

“알겠어. 물건 갖다놓고 조종석 구경하러 가도 될까?”

 

“물론이죠.”

 

“하하, 좋았어!”

 

로켓은 자신의 물건들을 전부 챙겨 숙소로 이동했다. 숙소에서 뛰쳐나와 뭐라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블링키가 정리를 잘해 두고, 남겨둔 물건이 없는 것 같아서 몬붕은 안심했다. 오랜만에 가지게 된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그러고 보면 한동안 일지를 쓰지 못했었네. 기왕 시간이 난 김에 기록을 좀 해놔야겠어.’

 

조용히 선장실로 돌아온 몬붕은, 돌하우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말이야. 내가 지금까지 기록해둔 일지가 있는데, 그걸 전자화할 수 있을까? 종이에 쓰는 것이다 보니 길게 쓰면 점점 무거워질 것 같아서 말이야.”

 

“물론입니다, 선장님. 일지를 탁자 위에 올려두시면 작업을 진행하겠습니다.”

 

선장실의 중앙에 있는 항해도 역할을 하는 탁자 위에 일지를 올려놓자, 탁자 아래에서 나온 로봇팔들이 페이지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스캔을 시작했다.

 

“흥미로운 자료들이군요. 이런 괴물들은 여러 행성에서 같은 종류가 발견된 건가요?”

 

“맞아. 회사는 자원이 풍부한 행성들이 있는 곳 근처에 대형 우주선을 띄우거든.”

 

“우주를 건너 움직일 수 있을 만한 능력은 없어 보이는 괴물들이 여러 행성에 퍼져 있는 사실이 신기하네요.”

 

“듣고 보니 그러네. 혹시 나중에 또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르겠어.”

 

“스캔이 완료되었습니다. 선장님의 휴대전화 단말기에 자료를 보내 드릴까요?”

 

“그렇게 해 줘. 앞으로 선장실에 돌아올 때마다 틈틈이 일지를 더 기록해야지.”

 

“불편하지 않으시다면, 타자기나 펜으로 기록하시는 것 대신 선장님의 음성을 제가 문자로 변환해서 저장해 둘 수 있습니다. 그림의 경우에는 사진으로 대체할 수 있겠군요.”

 

“편하겠네. 혹시라도 사진을 못 찍어 둔 게 있다면 그때 그림을 그리면 되겠지. 아무튼, 고마워.”

 

“탑승하신 모든 분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게 제 임무니까요.”

 

돌하우스와의 대화를 마치려던 몬붕은 방금 반응을 듣고는 머릿속에 뭔가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저기, 돌하우스?”

 

“네, 선장님.”

 

“다른 애들한테는 고맙다는 표현을 안아주거나 쓰다듬어주거나 해 줄 수 있었는데, 돌하우스한테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장님과 선원분들이 모두 편안하고, 무사하게 지내시는 것만으로도 저는 행복하니까요.”

 

“아쉽네. 앞으로 고맙다는 말이라도 자주 해 줄게.”

 

“감사합니다, 선장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몬붕은 시간을 확인했다. 로켓이 신이 나서 배고픈 것도 잊고 조종실을 구경하고 있을지도 모르긴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슬슬 루미와 물방울이 돌아올 시간이 된 것 같아서였다.

 

‘연락을 먼저 해 볼까?’

 

몬붕이 손목시계를 통해 루미를 호출하려던 그때, 돌하우스가 둘의 도착을 알려왔다.

 

“선장님, 루미 씨와 물방울 씨가 구매한 물건들을 가지고 온 것 같습니다. 출입문을 열겠습니다.”

 

“좋아, 그러면 둘을 마중 나가게 출입구 쪽으로 보내줄 수 있어?”

 

“물론입니다. 선장실 바깥 복도에 수송용 의자를 배치했습니다. 출입구를 향하도록 설정해두었으니, 착석하시는 대로 출발시키겠습니다.”

 

“고마워, 로켓 씨도 마중 나오고 싶은지 물어봐 줘. 필요하다고 하면 의자도 배치해 주고.”

 

“알겠습니다. 선장님.”

 

빠르게 선장실을 빠져나와 의자에 앉은 몬붕은 이번에는 잊지 않고 보안경을 착용했다. 보안경 착용까지 완료되지, 돌하우스는 빠른 속도로 의자를 출입구 쪽으로 이동시켰다. 의자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몬붕은 짐을 잔뜩 들고 있는 루미와 물방울, 그리고 신나는 표정을 하고 보안경을 쓴 채 의자에서 일어서고 있는 로켓을 볼 수 있었다.

 

“둘이 잘 다녀왔나 보네! 저게 다 먹을 거라니!”

 

“네, 이건 이제 창고에 넣을 거고, 창고에서 원래 있던 걸 꺼내올 거랍니다.”

 

“그래, 둘이 고생했어. 이제부턴 요리도 하고, 식사도 해야 하니까 다 같이 움직이자.”

 

“좋아요, 주인님!”

 

그렇게 넷은 같이 창고로 이동, 방금 사온 식량 중 실온 보관이 가능한 것들은 창고에, 냉장고와 냉동고에 들어가야 하는 것들은 주방과 붙어 있는 식품 저장실에 보관했다.

 

‘역시 인간은 한계가 있네.’

 

몬붕은 루미, 물방울, 로켓이 들고 있는 짐이 자신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표현하지는 않았다. 상황마다 누가, 무엇을 더 잘 하는지는 항상 바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식당에 도착하면 루미를 제외하면 자신이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요리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짐을 정리하며 선원들을 계속 살펴보던 몬붕은, 물방울의 변화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만큼 눈치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가슴이 몰라보게 커졌잖아? 워낙 다양한 형태로 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기분따라 바꾼 건가? 아냐. 더 생각해 보자. 루미랑 나갔다 왔는데, 변화가 생겼다. 그렇다면 답은 루미한테 있겠군. 질투한 거야. 음, 방울이가 조절만 하면 물웅덩이, 물풍선, 진짜 가슴까지 촉감이 다양하겠네. 하지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그럼, 같이 우리가 먹을 것들을 만들어 보자고. 로켓 씨는 식탁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진짜? 셋이서 나 때문에 무리하는 거 아니야?”

 

“신입 환영회라고 생각해주세요. 아, 혹시 원하시는 게 따로 있으세요?”

 

로켓은 고개를 한 번 저어 아니라는 뜻을 전했다. “아냐, 육지 음식은 잘 몰라서. 그냥 요리사들한테 맡길게.”

 

“알겠습니다. 그럼 루미, 방울아. 뭘 만드는 게 좋을까?”

 

“음, 고기는 많으니까, 조리 방법을 다르게 해서 조금씩 내면 어떨까요? 육회부터 튀김까지요!”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이런, 아직 루미 씨한테 배운 게 없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친근하게 지낼 걸 그랬나? 아니야. 지금부터 배우면 문제없어. 루미 씨 어깨랑 오라버니 어깨에 공부용 분신을 올려도 되느냐고 물어볼까?’

 

물방울은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요리를 먹게 될 당사자인 로켓 앞에서 굳이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로켓의 시야에서 벗어나 주방에 도착한 이후 생각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오라버니, 그리고 루미 씨. 제가 요리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데 혹시 잡일을 도우면서 동시에 공부할 수 있게 두 사람의 어깨에 제 작은 분신을 올려놔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지.” “문제없을 것 같네요.”

 

둘의 허락을 받아낸 물방울은 바로 자신의 가슴 부분을 구성하던 점액들을 떼어내서 두 사람의 어깨에 올렸다. 자신의 변화에 아무런 반응이 없는 오빠를 보고는 ‘좋아는 하시는 것 같지만, 완전 푹 빠질 정도는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셋은 요리를 시작했다. 생으로 양념을 곁들여 내는 방식, 팬 위에서 버터와 향신료를 곁들여 굽는 방식, 삶아서 기름기를 뺀 방식과 증기를 통해 찌는 방식, - 이건 세 명 모두 날것을 뜯어 먹는 솔피족의 방식상 별로일 것 같다고 생각했으나, 어쨌든 최대한 많은 방식을 실험해봐야 했기에 포함되었다 - 그 외에도 오븐을 이용하거나 잘게 잘라 볶기도 하고, 튀김을 만들기도 했다. 튀김은 사악한 유혹이다, 무엇이든 맛있게 해 주지만 건강에 나쁘기 때문이다. 라는 연합 안팎으로 유명한 요리사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루미의 팔은 몬붕과 마찬가지로 두 개로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일들은 루미가 맡고 그나마 덜 힘든 일은 몬붕이 맡아서 진행했으며, 물방울은 두 사람에게 재료나 주방기구를 건네거나 불 조절, 접시 위에 멋지게 담기 등 요리의 간접적인 부분을 담당하며 두 사람의 기술을 배우고 있었다.

 

몬붕에게 작은 점액이 눈 두 개만 내밀고 꼼지락거리는 것은 그 자체로도 귀여워 보였지만,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행동을 배우고 있다는 그 사실에 더욱 귀엽게 느껴졌다.

 

“아이고, 귀여운 방울이. 잘 배우고 있지?”

 

중간에 잠깐 쉴 틈이 생긴 몬붕은 자신의 어깨에 올라와 있던 물방울의 분신을 쓰다듬어 주었다. 귀여운 것이 마치 손길을 끌어들이는 듯했다. 그러자 분신은 입이 없으니 부르르 떨며 행복함을 표현했고, 곧 분홍색으로 색이 바뀌었다. 동시에 물방울의 본체 또한 약하게 분홍색으로 변했다.

 

‘그러고 보니, 방울이는 어떻게 분신들이랑 원거리 소통을 할 수 있는 거지? 옛날에는 책을 여럿이서 읽고 다시 하나로 합치는 식으로 공부했었던 것 같은데. 마치 내가 모르는 선으로 연결된 것 같네. 또 핵이 생겼잖아. 어릴 땐 없었는데. 저건 슬라임들 중에서 마력과 지능이 높은 종류한테만 생기는 거라고 들은 적이 있는 거 같네. 마법이라도 배운 건가?’

 

‘오라버니도 정말, 귀여운 걸 너무 좋아하신다니까. 다음엔 큰 가슴 말고 작은 몸으로 둘을 만들어서……. 지금 그런 생각할 때가 아니지.’

 

나중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슬라임 종족들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자신들의 생태에 대해 다양한 연구팀들과 실험을 진행한 결과, 강력한 핵을 가진 슬라임들에게서 떨어져 나온 자식들은 낮은 확률이지만 자연적으로 핵이 생겨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다. 거기에 더해 자연적으로 핵의 마력을 이용해 분열체들의 생각을 알아내는 방법을 터득한다는 것까지 말이다.

 

“참, 주인님. 그리스 씨가 먹을 저녁 식사도 준비하는 게 좋을까요?”

 

열심히 생각하며 잠깐의 휴식을 즐기던 몬붕에게 루미가 질문했다. 몬붕은 ‘나중에 방울이한테 직접 물어보지 뭐.’ 하고 루미에게 대답하기로 했다.

 

“내가 연락해 볼게. 혹시 집에서 먹고 들어온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면 되겠지.”

 

휴대전화를 꺼내 그리스에게 전화를 걸자, 그리스는 가족들과 밥을 먹고 전화를 받았다.

 

“네, 무슨 일이시죠?”

 

“여기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리스 씨도 오실 건지, 아니면 집에서 먹고 들어오실 건지 물어보려고요.”

 

“어머니랑 아버지께서 궁금하신 게 많은 것 같아서요, 천천히 돌아가 볼게요.”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된 거냐?”

“완전히 집을 떠나는 줄 알았는데, 블링키 경관님이랑 같이 일을 하다 온 거였구나.”

 

전화 너머로 들리는 그리스의 부모님의 말소리에, 몬붕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구나. 나도 우리 선원들을 가족처럼 여기면 저만큼 끈끈한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알겠어요. 좋은 시간 보내시고, 천천히 들어오세요. 저희도 식사 마치면 정글에서 쓸 만한 것들을 사러 갈 테니까 그때 연락드릴게요.”

 

“알겠어요! 그래서 다음엔 무슨 일이 있었느냐면요…….”

 

전화를 끊은 몬붕은 그리스가 먹을 분량은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물방울은 접시와 식기 한 세트를 작은 물방울에게 시켜 원래 자리에 다시 넣어두었다.

 

한편 로켓은 식탁에 앉아 식기들로 장난을 치고 있었다. 맛있는 냄새는 나는데, 대체 언제쯤 먹을 수 있을지를 기다리다 보니 아주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젓가락을 포크 사이에 끼워 산 모양을 만들어 식탁 위에 세우거나, 숟가락을 나이프로 툭툭 치며 소리를 내는, 정말 아이같은 장난들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죠, 식사 나갑니다~”

 

“와! 냄새 때문에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던 것 같아!”

 

음식이 나온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로켓은 빠르게 장난으로 어질러진 식기들을 다시 원래 위치에 되돌려놓았다.

 

식사는 루미와 물방울이 들고 나왔는데, 루미는 큰 쟁반에 접시 여럿을 올려서, 물방울은 팔을 여럿 만들어서 옮기는 방식으로 많은 접시를 한꺼번에 들고 나왔다. 둘 다 자신의 주인이자 오빠에게 일을 시키고 싶지 않아서였다.

 

“우와아, 이게 대체 몇 접시야? 준비하느라 고생 많았겠다!”

“저희가 열심히 준비한 만큼,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요.”

“원래 조종사쯤 되는 고급 인력이면 이 정도 대접은 받아야죠.”

“저는 제가 직접 요리에 관여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같이 좋은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후 식탁을 전부 차리고 모두가 자리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너무 고기만 있으면 영양 조절이 힘들 것 같아 루미가 준비한 채소와 과일 샐러드는 몬붕의 방향에 가깝게 배치되었고, 나머지는 접시가 클수록 중앙에 오는 방식으로 식탁에 올라왔다.

 

“그럼, 잘 먹을게!”

 

“혹시 설명이 필요하시면 이야기해 주세요. 재료랑 요리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하지만 로켓은 한입 먹더니 눈을 빛내며 ‘너무 맛있다!’를 외치더니 모든 음식을 맛보려는 듯 빠르게 다음 접시로 넘어가고 있었다.

 

“끝나고 나면 뭐가 제일이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다음에 준비할 때 도움이 될 테니까요. 주인님과 물방울 씨도 마찬가지! 아시겠죠?”

 

“물론이지. 로켓 씨 덩치를 보고 많이 준비하길 잘했네.”

 

“어머, 오라버니. 여성 앞에서 그런 말은 실례에요.”

 

“난 괜찮아! 그런 거에 신경 안 쓰는 데다가 먹느라 신경 쓸 생각도 없거든!”

 

“그러시다면야. 저희도 얼른 먹죠.”

 

식사 중 로켓을 제외한 나머지는 로켓이 젓가락을 쓸 줄 아는지 확인해보았다. 하지만 먹는 속도가 빨라 젓가락을 쓸 줄 아는데도 빨리 먹으려고 포크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쓸 줄 모르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몬붕은 직장에서 사귄 동료 중 젓가락을 사용하는 사람이 사용법을 가르쳐 줘서 알고 있었고, 루미는 그 정도의 지식은 기본 탑재하고 있었으며, 물방울은 슬라임은 무식하고 교양이 없다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예절들을 공부하며 배웠었다. 하지만 별로 중요한 사실도 아니고, 함께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로켓을 보고 흐뭇한 기분이 들어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식사가 끝나고, 로켓이 배를 몇 번 두드리더니 방금 부탁받은 가장 맛있는 음식을 루미에게 이야기했다.

 

“이야~ 진짜 이렇게 정신없이 먹기만 한 적이 언제였는지 모르겠네, 맛있었어! 이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고르자면 이 양념된 고기였어! 바다에서 살 때는 짠맛밖에 못 느꼈는데 뭔가 달콤하면서도 짭짤하고, 뼈가 없어서 먹기도 쉬웠거든.”

 

“이 접시에 담겨 있었던 건 양념에 재운 다음 꺼내서 구울 때 양념이 약간 졸아들도록 했어요. 확실하게 베어들 수 있도록 하죠. 불고기라고 불러요.”

 

“그렇구나! 그리고 이 뼈다귀가 달린 거. 생선들은 뼈보다는 가시라고 부를 정도로 얇아서 한 번에 삼키는 게 아니면 먹기 힘들었는데 말이야. 뼈를 잡고 뜯어먹다 보면 뭔가 사냥에 성공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물론 맛도 좋고!”

 

“그건 갈비구이라고 해요. 혹시 몰라서 배양육 말고 뼈가 붙어 있는 고기도 사 오길 잘했네요. 주인님을 위해 받아온 지구 음식 자료에 따르면 방금 이야기하셨던 불고기랑 같은 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하네요.”

 

“희한하네. 지구에 가 본 적도 없는데. 아, 그리고 제일 별로였던 건 삶은 고기였어. 식감도 퍽퍽해지고, 기름도 별로 없더라. 이만 마치고 나는 화장실에 가 봐야겠어. 선장님이랑 물방울이 맛 평가를 할 차례겠네.”

 

“식당 옆이나 배정받으신 숙소의 개인 화장실을 이용해주세요. 방금 말씀하신 것들은 기억해놓고 나중에 다시 만들어 드릴게요.”

 

루미는 화장실을 향해 가는 로켓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몬붕과 물방울은 누가 먼저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지 정하고 있었는데, 던질만한 것이 없어 찻잔 받침을 던져 앞뒷면을 가리고 있었다.

 

“저는 원래 먹는 걸 가리지 않는 만큼 맛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혀를 만들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엔 제가 참여하기도 했고 두 분이 열심히 요리한 만큼 혀를 만들어 봤어요.”

 

“오, 그래서 뭐가 제일 좋았어?”

 

“수육이요. 고기 본연의 맛은 크게 없어서 여러 가지 소스에 찍어 먹을 수도 있고, 만들기 쉽고, 양도 많아서요.”

 

“그러셨군요. 로켓 씨가 별로라고 하셨던 거네요. 기록해둘게요. 주인님께서는 어떠셨나요?”

 

“다 좋았어. 방울이랑은 다른 뜻으로 먹는 걸 가리지 않아서 한 개만 고르기 어렵네. 그래도 나를 위해서 준비해준 샐러드는 정말 마음에 들었어.”

 

“맛도 좋았었나요? 주인님께서 좋아하는 드레싱이 뭔지 몰라서 간장과 식초, 설탕, 마늘, 레몬즙, 후추, 올리브유를 섞어서 오리엔탈 소스를 뿌렸어요. 가장 무난하다는 기록이 있었거든요.”

 

“그래. 잘했어 루미. 덕분에 우리 전부 배부르고 또 맛있게 먹었네.”

 

루미는 흐흥, 하고 콧소리를 내더니 양손을 허리에 올리고 시선을 약간 위로 향해 자기 자신이 대견하다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몬붕은 오랜만에 보는 이 자세에 어떻게 반응해 줘야 할지 알았기에 루미에게 다가서서 꼭 껴안아 주었다.

 

‘이렇게 노력해 줬으니 머리를 쓰다듬는 것보다 좋은 걸 해 줘야겠지? 그래도 빼먹으면 서운하니까. 루미 가슴이 커져서 그런가? 전보다 푹신푹신한데, 껴안았을 때 약간 거리가 생긴 느낌이네.’

 

루미를 껴안아준 손 중 하나는 루미의 머리를 향했고, 쓰다듬기 시작했다. 루미는 빨갛게 변해서 열기를 배출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주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물방울은 자신이 먼저 이야기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걸 보고 나면 제대로 된 사고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이러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는데, 오늘은 더 과감하시잖아? 어떡하지? 무슨 반응을 해야 할까?’

 

‘으! 나중에 요리를 다 배우고 나면 내가 저 자리에 있게 될 거야! 두고 보라지. 방에 가면 요리책부터 읽어야겠다.’

 

“그럼, 설거지하고 백화점에 가 볼까?”

 

“안 돼요!” “밖이 난리인데요?!”

 

몬붕은 둘의 격한 거부 반응에 아까의 뉴스를 떠올렸다. 굳이 나가자면 가면을 쓰거나 루미, 로켓, 물방울을 전부 자신에게 딱 달라붙게 해서 임자 있는 몸이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그리고 그건 너무 바보스러운 생각이었으므로, 이번에는 로켓까지 세 명을 백화점에 보내는 게 좋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기로 했다.

 

“알았어. 아까 뉴스 봤거든. 밖에 나를 노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며. 그럼 로켓 씨랑 그리스 씨까지 같이 넷이서 쇼핑하고 오면 되겠다. 근데 내가 쓸 물건은 내가 가서 보는 게 좋은데. 어떡하지?”

 

“제가 영상을 주인님께 보내 드릴게요.”

 

“그리고 저는 오라버니 체형을 베껴 가서 맞는 옷 치수를 찾을게요.”

 

“아, 역시 슬라임이 되어 봐야 슬라임의 능력을 제일 잘 아는구나. 그럼, 내 몸을 베껴 가야 하니까 나한테 한 번은 달라붙어야겠네. 지금 하자!”

 

몬붕은 두 팔을 벌려 물방울이 달라붙었을 때 전신의 모양을 기억하기 쉽도록 했다. 왠지 이번엔 루미의 열 배출이 끝나서 그런지 차가운 눈으로 물방울을 쳐다보고 있었고, 물방울은 반대로 아주 강렬한 분홍색으로 변했다. 아마 전신을 한 번에 만질 수 있는 기회를 가져간 물방울에 대해 강렬한 질투심을 느끼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하아, 오라버니의 몸. 이렇게 만져 보니까 확실히 튼튼하셔……. 벌써 모양은 기억해뒀지만, 더 달라붙어 있고 싶다…….’

 

머리까지 베낄 필요는 없으므로 목 아랫부분까지 올라온 물방울이 15초 이상 달라붙어 있자, 루미는 갑자기 물방울을 떼어내며 약간 화난 목소리로 물방울을 혼내기 시작했다.

 

“이봐요! 과학자를 할 만큼 똑똑한 사람이면 더 붙어있을 필요 없잖아요? 그리고 주인님의 다리 사이도 베낄 필요 없고요!”

 

“음, 지금은 나도 루미의 의견에 동의해. 방울아?”

 

“쳇, 알겠어요. 루미 씨가 화난 것 같으니 설거지는 제가 하고 있을게요.”

 

“왜요, 또 일하면 주인님이 칭찬해주실까 봐요?”

 

“아니요, 제가 더 팔이 많으니까 시간을 적게 쓰니까 그렇죠. 우리가 나가면 오라버니께서 다시 여기 혼자 남게 될 텐데. 그동안 심심하지 않게 루미 씨가 좀 놀아 주세요.”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됐네. 기특해, 우리 방울이.”

 

물방울은 몬붕의 손이 자신의 머리를 향하자, 빠르게 머리 쪽 부분을 말랑하고 탄력이 있게 바꾸었다. 복슬복슬한 털의 느낌도 흉내낼 순 있었으나, 그렇게 만들기에는 시간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쓰다듬기를 받은 물방울은 아까 몸을 만져 분홍색으로 변했다가 다시 투명하게 돌아오던 몸의 색깔이 다시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일한 자는 보상을 받는다! 그런데 일하기 전에도 받았네. 열심히 설거지해야겠지.’

 

접시들을 싹 모아 주방으로 가는 물방울을 본 루미는 ‘슬라임이 못하는 게 대체 뭘까?’ 하고 생각을 하며 몬붕의 손을 꽉 잡았다. 물론 인간의 힘 기준으로 말이다. 주인을 부숴버리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이제 그리스 씨한테 연락해야겠네. 모여야 한다고.”

 

“그건 제가 할게요. 주인님. 아, 그리고 제가 송출하는 영상을 받아보셔야 하는데 어쩌지? 돌하우스! 저 좀 도와주실래요?”

 

“물론입니다. 작은 루미 아가씨. 선장실의 모니터 중 하나에 루미 씨가 송출하는 영상을 받아 재생할 수 있도록 연결을 구축하겠습니다. 이미 루미 아가씨와의 통신 데이터는 가지고 있으니, 추가적인 절차는 필요 없습니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이제 루미 없는 시절은 상상하기 어렵겠다.”

 

“주인님께서 저를 소중히 생각해주셔서 기뻐요! 저도 주인님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만약 저번 해적 사건처럼 저를 희생해서 주인님께서 살아남으실 수 있는 상황이 온다면 꼭 그렇게 해 주세요.”

 

“내가…….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고마워, 루미. 하지만 그런 상황은 최대한 피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

 

“네! 주인님!”

 

이후 그리스를 통화로 부른 루미는 물방울과 로켓과 함께 외출 준비를 했다. 혹시 몰라 주방에 가서 그릇들을 확인했는데, 아주 깨끗이 닦여 있어 물방울에게 트집을 잡을 수는 없었다. 그리스와 선착장의 안내소에서 만난 일행은 백화점으로 출발했다. 안내소의 직원은 우연히 저번에 분노한 물방울이 지나쳤던 그 사람이었고, 루미와 물방울이 일행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는 ‘둘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이 아니었나?’ 하고 의문을 표했다.

 

백화점에 들어간 일행은 가장 먼저 여행/생존용 물품 판매대로 향했다. 일행을 알아보고 몬붕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접근하던 사람들이 몇몇 있긴 했지만, 루미와 물방울의 완강한 거부에 풀이 죽은 채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분명 강제로 정보를 뜯어내고자 하는 인원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덩치 크고 몸 튼튼한 솔피, 능력이 아직 세상에 전부 알려지지 않은 슬라임, 온몸이 무기가 될 수 있는 오토마톤, 그리고 잘 나가는 조선소의 딸이자 이 기계 행성에서 기계의 달인이기까지 한 그렘린을 보고는 ‘아, 그냥 다른 남자나 찾자.’ 내지는 ‘포기해야지.’ 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로켓의 조언에 따라 구매할 물건들을 정하기로 했는데,

 

“정글은 풀이 가득하지. 정글용 칼이 있으면 좋을 거야.”

 

“전 제 몸을 칼처럼 만들 수 있는데요.” “전 팔 속에 단검이 들어있어요!”

 

“아니, 이 아가씨들아. 우리 전부가 그런 건 아니잖아.”

 

같은 일이 있기도 했다. 그리스는 무시무시한 칼을 보더니 전원이 꺼진 동안은 절삭력이 없는 발열 칼을 구매했다. 배터리를 소모하지만 실수로 남이나 자신을 베는 것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덥고 습하니까, 반바지랑 반팔이 있어야지.”

 

“아까 오라버니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배웠으니 오라버니가 입으실 것을 장만해야겠네요. 저한테는 필요 없지만.”

 

“저도 필요는 없지만, 옷이 많으면 꾸미기 쉬우니까 제 것도 살게요.”

 

“흠, 두 사람한테 필요한 게 있기는 할까……?”

 

로켓은 이게 물건을 사러 나온 건지, 슬라임과 오토마톤의 기능에 대해 배우는 시간인지 헷갈릴 지경이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목적지로 갈 것이라고 해 준 데다 장비를 살 크레딧까지 지원해 준 선장의 가족이자 선원들에 대해 불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엔 부싯돌이랑 라이터야. 불이 있으면 야생 동물이 접근을 꺼리고, 뭐 물방울이나 루미한텐 필요 없겠지만, 요리도 할 수 있지.”

 

‘계속하면 로켓 씨를 놀리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니까 내 손에 내장된 라이터는 꺼내지 말아야지.’

 

“불을 안 무서워하는 동물들이 나타나면 어쩌죠?”

 

“그땐 싸워야지. 우리 돌하우스에 무기 많이 있잖아.”

 

“아, 알겠어요.”

 

‘흠, 덩치가 작은 종족이라 겁이 많은 건지, 그리스만 그런 건지 모르겠네. 하지만 역으로 조심스럽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좋아.’

 

“또 식량이 있어야지. 현지의 생물들이 독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건 전에 루미랑 물방울이 사 왔다고 하니까 넘어가자고.”

 

“그 외에 더 준비해야 할 만한 게 있을까요?”

 

“방수포같이 깔고 앉을 물건? 그리고 처음 보는 풍경을 찍을 카메라 정도려나.”

 

“알겠어요, 그다음엔 각자 떠나기 전 가지고 싶은 것들을 챙기죠.”

 

“좋아. 모두 떨어지지 말자고. 주변 사람들 눈빛이 좀 따가워지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카메라까지 구매를 마친 일행은 각자 원하는 것들을 구매하기 위해 여러 군데를 돌아다녔다.

 

로켓은 솔피 인형을 샀다. 색칠이 되어 있지 않은 플라스틱 인형이었다.

 

“마왕 영향 이전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대변화의 시대에도 마력의 영향을 안 받은 녀석들의 생김새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무 일도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생겼을 거라는 거니까. 색칠은 나랑 똑같이 줄무늬로 칠해서 내 방에 갖다 놔야지.”

 

물방울은 아동복을 샀다. 나머지 일행이 ‘왜?’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지만, 물방울은 어린이 모습으로 자신의 오빠를 꼬셔보려는 계획은 입 밖으로 내지 않고 생각만 하기로 했다.

 

루미는 딱히 별것을 구매하진 않았다. 그저 평소에 입던 옷을 입어보자 커진 가슴 때문에 옷이 들려 올라가 배꼽이 노출되는 그림이 나왔기에 평소보다 큰 옷을 사야 했다는 게 특이하다면 특이한 점이었다. 모니터 너머의 몬붕은 ‘와, 저건 생각 못했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 루미는 돌연 무언가 생각이 난 듯 호루라기를 몇 개 샀다.

 

“혹시 흩어지게 되고, 통신이 말썽이면 이걸 쓰세요. 소리가 아주 멀리 퍼져 나가니까 구조 요청을 보내기에 딱이라고 하더라고요.”

 

통신 두절과 위기 상황을 동시에 겪어 본 루미의 머리에서 충분히 나올만한 아이디어였다. 화면을 보고 있던 몬붕도 루미의 선택을 칭찬했다.

 

그리스는 백화점 내부의 무기 부착물 코너로 이동하자고 했다. 무기 상점과는 다르게 부착물 자체는 딱히 위험하지 않기에 백화점에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새로 생긴 에너지 무기들은 부착물에 따라 용도를 바꿀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로켓 씨한테 필요한 부착물도 알아봐야죠!”

 

연사가 되는 에너지 발사 무기가 10발 분량의 충전을 소모해서 강력한 빔을 한 번 쏘게 만들어 주는 장치나, 무기의 렌즈가 과열되는 것을 막아 주는 열 방출기, 렌즈가 특이한 모양으로 생겨서 빔이 셋으로 갈라지게 하는 것 등 특이한 장치들이 많이 있었다.

 

루미는 전투 경험은 있지만 빔을 쏘는 무기들은 써 본 적이 없었고, 그것은 로켓과 물방울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그냥 신이 나서 여러 부품과 장치들을 사는 그리스를 구경하기로 했다. 물론, 로켓의 경우에는 모의 총기에 손잡이나 레이저 조준기 등을 장착해 자신에게 맞는 부품을 찾는 일을 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후 쇼핑을 마치고 돌아온 넷을 돌하우스와 몬붕이 맞아주었다.

 

“복귀를 환영합니다. 여러분.”

 

“사람들 눈총 맞느라 고생 많았겠다. 어서 와요!”

 

역시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루미와 시선에 적응한 물방울의 경우에는 그렇게 힘든 표정이 아니었지만, 소심한 그리스와 처음 맞는 시선들을 겪은 로켓의 경우에는 피곤한 기색이 표정에 가득했다. 식은땀을 흘리기까지 하고 있었으니까.

 

“별로 고생하진 않았어요.”

“저 왔어요, 주인님!”

“선장님, 대체 저 사람들 우리한테 왜 저러는 거야?”

“그러게요, 우리가 무슨 대인기 스타도 아닌데 계속 따라다녔어요…….”

 

“잠깐, 그럼 지금 문밖에 잔뜩 몰려있는 거 아니야?”

 

“괜찮아요, 혹시 여기까지 따라올까 봐 중간에 운송용 드론 두 대한테 태워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신원 노출이 걱정된다고 하니까 순순히 들어주던걸요.”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럼 이제 오늘은 푹 자고 내일 출발하면 되겠다.”

 

“네, 주인님께서 사용하실 물건들은 선장실에 가져다 놓을게요.”

 

“그럼 나는 내 방에 들어가 볼게.”

“저도요.”

“저는 엄마가 만든 음식들 좀 냉장고에 넣고 가 볼게요.”

 

그때, 몬붕은 뭔가 선원들의 피로를 더 풀어줄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다가 피로를 느끼지는 않지만 안아주는 것으로 잠든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던 물방울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래, 모두한테 마사지라도 해 줘야겠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다들 내가 만져 주면 좋아하는 것 같았으니까 문제없겠지.’

 

“잠깐, 방울아. 내가 안아주면 잠이 온다고 했지?”

 

“네. 포근한 오라버니의 품속에서는 모든 감각이 둔해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잘 수 있었어요.”

 

“그럼 방울이부터 시작해서 마사지해 줄게. 다음 순서는 어떻게 정할까. 로켓 씨랑 그리스 씨가 결정하세요.”

 

둘은 가위바위보를 하더니 로켓이 승리했는지 한쪽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스는 지긴 했지만, 마사지 기회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미뤄지는 것이었기에 딱히 실망감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아싸! 내가 이겼다! 그런데 마사지가 뭐야?”

 

“마사지는 가끔 어딘가 뻐근하거나 결리는 느낌이 나는 곳을 주물러서 펴 주는 일종의 민간 치료법이에요.”

 

“오토마톤은 뻐근하거나 결릴 일 없지 않아? 그리고 선장님이 치료사였어?!”

 

로켓의 순수한 질문에 루미가 다시 대답했다.

 

“제가 학습한 정보에 그렇게 쓰여 있어서요. 그리고 민간 치료법은 의사 자격증이나 치유사 자격증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단순한 것들이에요. 물론 마시지 자격증이 따로 있긴 하지만요. 그러면 제 차례는 가장 마지막인가요, 주인님?”

 

“아니, 루미는 진짜 근육에 이상이 생길 일이 없잖아. 굳이 안 받아도 될 것 같은데?”

 

루미는 한 번도 자신의 주인에게서 로봇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을 받지 않았기에, 분명 자신도 옳다고 생각하는 말이긴 했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 믿고 있던 주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와서인지, 아니면 자신이 살아 있는 존재였다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흑, 으아앙!”

 

루미는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더니 자신의 방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어이, 선장님. 방금 여자를 울린 것 같은데.”

“와, 루미 씨가 저러는 건 처음 봤어요!”

“그러게요…….”

 

“나중에 달래 줘야겠다.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안 들어줄 것 같아. 책임지고 다시 웃는 얼굴 만들어 놓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방울이부터 내 방으로 와.”

 

“좋아요. 꼭 루미 씨를 웃는 얼굴로 되돌려 주셔야 해요. 오라버니.”

 

몬붕과 물방울의 뒤에 남은 그리스와 로켓은 자신들의 방으로 돌아가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난 쉬고 있을게.”

“저는 새로운 무기 부품을 실험하고 있을게요.”

 

방에 들어온 물방울은, 사람 형태를 유지한 채로 침대에 엎드렸다.

 

“방울이는 나랑 잘 때는 공 모양으로 변하는 거 아니었어?”

 

“보통 때는 그랬죠. 하지만 마사지를 받는 거라면 오라버니의 실력을 확인할 겸 이 모습으로 있는 게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이거, 나도 진심으로 해 줘야겠는걸.”

 

루미는 자신의 몸을 약간 더 굳혔다. 다른 사람도 주물러야 하는데 손가락이 너무 푹 들어가거나, 아니면 탱글탱글해서 도로 손가락이 튕겨 나올 정도가 된다면 오빠가 감을 잡기 힘들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쌓인 것을 풀 겸 온몸을 성감대로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으나 그것은 실력을 공정하게 평가하는 것을 방해할 수 있기에 시도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촉감밖에 없었다. 근육이나 뼈가 있는 것이 아니니 결리거나 뻐근하다거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없고,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느낌과 온기만으로 평가해야 했다.

 

‘아, 내가 지금까지 오라버니의 온기 때문에 잠들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인간 형태로도 오라버니께서 나를 생각하면서 마사지를 해 준다는 이 느낌, 오라버니의 마음씨가 나를 편안하게 풀어 주던 거야.’

 

시간이 흐르고, 물방울이 편안해진 마음 때문에 약간 흐물흐물해지자 몬붕은 여기서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지금 잠든 거라면 깨우는 거 같아 미안하지만, 다음 사람도 받아야 해서 그런데 어땠는지 이야기해 줄래?”

 

“정말 좋았어요. 하지만 다른 두 분은 체형 자체가 다르니 그리스 씨한테는 힘을 약간 빼 주시고, 로켓 씨한테는 힘을 더 주셔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확실히 그렇겠네. 부위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그리스 씨는 앉아서 일하는 경우가 많으니 허리와 팔 위주가 좋겠네요. 로켓 씨는 다리랑 그리고 자주 안 쓰는 근육인 꼬리를 위주로 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하암~ 그럼 저는 제 방에 돌아가 볼게요. 감사해요, 오라버니.”

 

흐물흐물해진 물방울은 몬붕의 뺨에 입을 맞추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점액이 묻지 않을까 걱정했던 몬붕은 물방울이 나가자마자 침대를 만져보았다. 아주 뽀송뽀송했다. 점액이 남지 않도록 하는 것은 물방울에게 기초적인 기술이었지만 다른 사람들도 사용해야 할 장소이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로켓을 호출했다.

 

“오, 여기가 선장실인가. 이제 뭘 하면 되는 거야?”

 

“여기 침대에 엎드려 누워주세요. 그리고 이제부터 주무르면서 뭉친 부분을 찾아서 거기를 집중으로 마사지를 해 드릴 건데, 혹시 평소에 불편하다고 느끼시는 곳 있으세요?”

 

“조종하다 보면 오래 앉아있어야 해서 그런가? 허리 약간, 그리고 꼬리 무게까지 지탱해야 하는 다리랑 발목, 마지막으로 꼬리 정도려나.”

 

“꼬리는 몸통이랑 연결된 부분을 위주로 해 드리면 될까요? 꼬리 자체 말고.”

 

“응! 그거면 될 것 같은데.”

 

몬붕은 온몸이 근육 덩어리인 로켓을 주무르는 것이었으므로 손에 고무줄을 이용해서 뭉친 휴지를 붙여 지압 효과를 높였다. 중간중간에 들려오는 신음소리를 통해 제대로 하는 것인지 판단했다. 시원할 때 내는 소리와 고통만이 느껴질 때 내는 소리가 다름을 알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꼬리까지 마무리하자 평소에 꼬리가 있는 다른 종족들을 볼 때 하던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꼬리는 어떤 반응을 할까?’

 

로켓의 몸은 전체적으로 물속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인지 매끈매끈한 감촉이었다. 물론 머리의 경우에는 다른 몬무스들과 마찬가지로 머리카락이 보호하고 있으므로 두피가 매끈매끈하더라도 그것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아무튼, 몬붕의 손은 로켓의 머리를 향해 점점 올라가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허락을 받아야 하겠으나, 저번에 블링키를 쓰다듬으려다 루미의 저지를 받은 것처럼 이성은 없고 본능만 남은 행위였기에 허락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시선은 꼬리를 향하고, 손은 머리카락을 향한 채로 쓰다듬기를 시작했다.

 

“뭐, 뭐야? 이것도 마사지의 한 종류야?”

 

“아, 죄송해요. 전부터 꼬리가 있는 종족은 머리를 쓰다듬었을 때 꼬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고 싶었거든요.”

 

“진작 말을 하지! 난 내 꼬리가 의지랑 상관없이 살랑거리길래 이것도 마사지의 효과인 줄 알았지 뭐야. 아무튼, 고마워 선장님, 덕분에 온몸이 상쾌해진 것 같아.”

 

“그러면 자주 해 드리고 싶긴 하지만 로켓 씨가 덩치도 크고, 몸도 탄탄하셔서 한 번 하는 데 시간이랑 힘이 많이 들어서 매일은 못 해 드릴 것 같아요.”

 

“괜찮아, 괜찮아. 선장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런 서비스를 어디서 받아 봤겠어. 매일 해 줄 필요는 없어. 그럼 내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리스를 보고 선장실로 가라고 전해 줄게.”

 

“그렇게 해 주세요. 그리고 푹 주무세요.”

 

“나중에 보자고!”

 

‘역시 생각했던 대로 꼬리가 살랑거리는구나. 하지만 아는 사이였으니까 가능한 거였겠지. 그리고 나보다 머리 하나만큼 키가 크셔서 선 채로는 쓰다듬어 드릴 수도 없겠네.’

 

로켓이 방에서 나간 동안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곧이어 그리스가 선장실에 들어왔다.

 

“두 사람이나 맡으셨는데, 피곤하진 않으세요?”

 

“제가 한 말이니까 지켜야겠죠. 그리스 씨는 특별히 어디를 주물러 드릴까요?”

 

“허리요!”

 

“알겠습니다. 여기 침대에 엎드려 주세요.”

 

그리스를 주무를 때는 지금까지 가장 약한 힘으로, 섬세하게 마사지를 해 주었다. 몸집까지도 작아서 힘이 많이 들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특히 등과 갈비뼈의 옆 부분에 손이 닿을 때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가면 가슴을 만지게 되므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 외에 부분에서는 크게 문제가 될 부분이 없었지만, 쫑긋거리는 머리 위에 달린 귀를 보고는 마사지가 완료되자마자 개인위생 도구를 구석에서 꺼냈다.

 

손톱, 발톱 깎는 도구, 다듬는 도구, 소형 가위, 핀셋, 귀 파는 도구와 잔털 제거용 도구가 포함된 세트였는데, 귀 파는 도구는 금속이 아닌 플라스틱 재질이었다.

 

“저기, 그리스 씨. 혹시 집에서라던가 혼자서 귀 청소 최근에 하신 적 있으세요?”

 

“아~ 개운하다. 잠깐만요, 귀 청소……. 아니요? 왜 그러세요?”

 

“지금 해 드릴까요?”

 

“저야 좋지만……. 귀 모양이 다른데 안 아프게 해 주실 수 있죠?”

 

“물론이죠, 이 귀이개는 숟가락 모양처럼 생긴 부분도 있지만, 반대편엔 뾰족한 부분이 없는 나사처럼 생겨서 회전시키면서 귀지를 빼낼 수 있거든요. 마무리는 면봉으로 할 테니까 안 아플 거예요.”

 

“그럼 해 주세요!”

 

몬붕은 바로 한 손으로는 귀이개를, 다른 손에는 손전등을 들고 그리스의 귀 청소를 시작했다. 곧 털 뭉치들 때문에 손전등이 딱히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내려놓긴 했지만, 정확히 아픈 부분에 닿기 직전까지 파내고, 면봉으로 마무리까지 해 주는 것에 성공했다.

 

“끝났어요.”

 

“정말 고마워요! 안 아프게 해 주셨고 또 고용주가 고용인한테 이런 서비스를 해 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을 거라고요!”

 

“하하, 같은 배를 탔으니까 고용주 고용인 관계 말고 좀 더 친근한 관계로 생각해주시면 더 좋을 것 같네요.”

 

“그, 그러네요. 그럼 저는 돌아가 볼게요!”

 

“좋은 꿈 꾸세요.”

 

그리스가 방에서 나가자, 몬붕은 자신의 잠옷으로 갈아입고 베개를 챙겨 루미의 방으로 향했다.

 

‘노크할까, 아니면 선장 권한으로 문을 열까.’

 

그래도 루미의 의견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해서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나야, 나. 아까 일을 사과하러 왔어. 지금까지 루미를 사람처럼 생각해왔는데 방금은 그렇게 하지를 못했네. 미안해.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약속할게.”

 

그러자 천천히 문이 열렸다.

 

“아니에요, 주인님. 저도 아이처럼 떼를 쓴 것 같아요. 제 인공 근육이 마사지를 받는다고 좋아지거나 나빠질 일은 없을 텐데 말이에요.”

 

“그래. 하지만 말로만 하는 사과는 별로겠지. 내가 들고 온 베개, 보여?”

 

“호, 혹시 제 방에서 주무시려는 건가요?”

 

“그래, 회사 숙소에서처럼 루미랑 나랑 같이 침대에 누워서 자자. 안아줄게.”

 

‘가끔은 아이처럼 떼쓰는 것도 좋을지도……. 아냐. 아까 분위기는 정말 별로였어. 주인님께서는 같이 자 달라고 하면 이런 일이 없었어도 부탁을 들어주셨겠지!’

 

“정말요? 그럼 얼른 침대에 잠자리를 준비해 놓을게요! 평소엔 충전 스테이션에서 자느라 거의 쓰진 않았는데, 이런 기회가 생기다니!”

 

“기뻐하는 것 같아 다행이네. 그럼 사과를 받아 주는 거지?”

 

“물론이죠, 주인님!”

 

그렇게 돌하우스 호의 모든 선원은 선장의 노력으로 편안히 잠들 수 있었다. 명예 선원인 블링키 빼고. 그녀는 남들이 잠들 시간에 거리를 순찰해야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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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이전보다 건강해졌습니다. 글에 걱정해주시는 댓글 달고 추천 눌러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이번 화는 쉬어가는 느낌으로 써 봤습니다. 이런 일상적인 부분이 많아야 좋을지 적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위기 상황을 최대한 빼놨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계속 여러가지 글감들이 떠올라서 아마 그 어떤 편보다 글자수가 많아진 것 같네요.

이번 화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