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우주 노동자 몬붕과 오토마톤 루미의 모험

글 모음 : https://arca.live/b/monmusu/25564643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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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소 직원의 혼잣말을 들었는지, 슬라임은 갑자기 휙하고 뒤를 돌더니 다시 안내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직원은 당황하며 혹시 슬라임이 무언가 두고 갔는지 살펴보았지만, 아무리 주변을 둘러 봐도 주인이 없는 물건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는 온몸이 감각기관인 슬라임을 상대로는 혼잣말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으려니, 슬라임이 말을 걸어왔다.

 

“저기, 혹시 아까의 방향으로 가면 우주선 조선소가 몇 개나 있을지, 아니지. 혹시 관광 지도가 적힌 책자라던가 있을까요?”

 

“10개 정도 있는 거로 기억하는데, 오늘 전부 운영하는지는 모르겠네요. 관광지도 여기 있습니다. 원래는 5크레딧이지만 바빠 보이시니까 그냥 드릴게요.”

 

그러자 슬라임은 연합의 5크레딧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 안내소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지도를 받아서 다시 원래 방향으로 빠르게 나아가며 대답했다.

 

“저는 빚 지고는 못사는 사람이라서요, 고마워요!”

 

직원은 오랜 시간 동안 본 적 없던 지폐를 보며 현실 화폐는 여러 가지 용도가 있어 완전히 폐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하던 단체를 떠올렸다. 지금처럼 크레딧 칩을 기계에 인식시키면 손님의 크레딧을 감소시킨 다음 상점의 크레딧을 증가시키는 과정을 거친 다음 다시 손님에게 돌려주는 것보다 지폐 하나를 휙 던지고 가는 게 시간 절약에 도움이 돼서 그런가 보다 하며, 잘 보관해 두기로 했다.

 

슬라임은 방문해 봐야 할 장소가 10개나 있고, 자신이 찾는 사람이 언제 도착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그 결과 몇몇 조선소는 영업 중이 아니거나 영업 중이라도 건조 중이 아니라면 몬붕이 들린 곳이 아닐 테니 몸을 10개로 쪼개서 각 조선소를 둘러본 다음, 찾던 곳이 아니라면 바로 주변의 다른 조선소로 향해 몸을 합쳐서 발성 기관으로 변할 수 있는 크기가 되어 직원에게 인간 남성이 건조 의뢰를 맡긴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기로 했다.

 

나쁜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마지막에 도착한 기어 부부의 상점에서 발생했다.

 

“네? 그런 손님은 온 적이 없다고요?”

 

“그렇다니까요, 제가 여기 계속 있었는데 지나갔으면 봤겠죠. 그리고 뭐 손님한테 숨길만 한 일도 아니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안내소에서 우주선을 구매하려는 인간 남성이 이쪽으로 왔다고 했는데, 여기가 제가 들린 마지막 조선소란 말이에요!”

 

슬라임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온몸을 붉게 물들이며 큰소리로 외쳤다. 종업원은 겁에 질린 듯 움찔하더니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들어오는 사람은 못 봤지만 아까 어떤 손님이 로봇이랑 꼭 손을 잡고 나가는 걸 봤는데, 아마 꼬리나 뿔, 튀어나온 귀도 없고 팔다리도 인간 같았으니까 그 사람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을 들은 슬라임은 갑자기 색이 분홍색으로 바뀌더니 흥분된 목소리로 종업원에게 질문했다.

 

“어디? 어느 방향으로 가셨는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상점가에 로봇 옷을 사러 간다고 했나? 아마 안내 지도가 있으면 근처의 제일 큰 매장을 둘러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저 방향이거든요.”

 

“알겠어요, 일단 확실히 이 행성에 있는 건 맞는 것 같네요. 고마워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발걸음을, 아니 미끄러짐을 계속하려고 한 그 순간, 슬라임은 종업원 뒤로 현재 건조 작업 중인 우주선을 목격했다.

 

“그런데 이 우주선은 어떤 분이 제작 의뢰를 한 거죠?”

 

“그건 잘 모르겠네요. 아! 조금 전에 사장님께서 직접 맞이할 손님이 있다고 하셔서 저는 잠깐 쉬고 있었는데, 그때 들어오신 분인가?”

 

‘뭐야, 아까는 계속 여기 있었다면서, 거짓말을 한 거야? 실수할 수도 있지. 만약에 그 실수 때문에 오라버니를 놓치게 된다면 몸속에 집어넣고 녹여버리든가 해야지.’

 

무시무시한 생각을 마치고, 슬라임은 이번엔 몸을 둘로 나눠 하나는 상점가로, 하나는 이곳의 사장님이라는 분을 만나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종업원에게 질문했다.

 

“음, 그럼 잠깐 사장님을 볼 수 있을까요?”

 

평소와 같은 상황이라면 ‘사장님은 바쁘시다.’ 라거나 ‘예약을 하지 않으셨으면 만나실 수 없다.’ 같은 대답을 하려던 종업원은 자신의 감정 상태에 솔직한 슬라임을 상대로는 굳이 화를 돋우고 싶지 않았기에, 상점 입구의 고객 센터 문을 열고 나오면서 대답했다.

 

“제가 지금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아니면 저를 따라오시면 사장님께 바로 안내해 드리죠. 그런데 죄송하지만, 혹시 여기에 분체 하나만 남겨주실 수 있나요? 다른 손님이 오실지도 몰라서…….”

 

슬라임은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았고, 그리고 종업원이 직접 안내해 준다고 하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하며 둘로 몸을 나눠 하나는 고객 센터에 남기고 하나는 종업원을 따라가기로 했다.

 

곧 몬붕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는 황홀감, 기대감과 같은 행복한 감정에 쌓여 분홍색으로 변한 몸에서 빛까지 내뿜기 시작한 슬라임은 아까의 종업원에 대한 분노를 풀고 몬붕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를 다시 떠올려 보기로 했다.

 

보육원에서 만난 몬붕과 점액. 몬붕은 20년 전 당시 8살이었기에 어린 아이의 사고 정도는 할 수 있었지만, 점액은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 실험은 무서운 것, 움직이며 먹이 찾아 소화하기 정도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 점액이 몬붕을 발견하자, 급속도로 움츠러들었다.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보육원의 봉사활동가나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싸움을 말리거나 등의 도움을 주긴 했지만, 그 공포심만큼은 어떻게 치료해줄 수가 없었다. 거기에는 입과 발성 기관을 만들 줄 몰라 소통이 어려웠기 때문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면 이 점액은 다른 종족들과는 잘 지냈느냐고 하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슬라임이란 기본적으로 뇌가 없어 지능이 꽤 낮은 편인데다, 보통 한 행성에 슬라임이 살고 있다고 치면 굳이 다른 종족들이 그곳에서 지내려고 하지도 않았다. 보이는대로 먹어치우고, 배가 부르면 분열해서 숫자가 늘어나는 종족이 언어도 통하지 않으니 행성에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몇 년 내로 슬라임 천지로 변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슬라임에 의한 피해를 본 아이들은 보육원에 없어 적대심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처음 점액을 본 아이들의 시선에는 신기함이 가득 담겨 있었지만, 나중에는 물컹물컹하고 축축해서 기분이 나쁘다며 괴롭히기 일쑤였다. 발로 밟거나 침을 뱉거나 하는 것은 예사였고, 물걸레로 빨아들인 다음 청소 창고에 가두기도 했다. 앞의 두 일은 어차피 물리적인 피해는 거의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인 데다, 침을 뱉는 행위의 나쁜 뜻 또한 몰랐기에 큰 상관이 없었지만, 걸레는 아주 고통스러웠다. 걸레에 빨려 들어간 다음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는 엄청난 힘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괴롭히는 것과는 다르게, 몬붕은 항상 식사가 담긴 접시를 가져다주고는 멀리 떨어져서 점액이 식사하는 것을 구경하거나 혹시라도 걸레가 다른 색으로 물들어 있으면 짜내서 점액을 꺼내 주고는 했다. 물론 그때는 탈출하자마자 몬붕에게서 도망가긴 했지만 계속되는 호의에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 점액은, 최대한 빨리 쓰는 언어를 배우든 말하고 듣기를 배우든 해서 의사소통이라는 세상을 향한 문을 열기로 했다.

 

결심을 굳힌 이후에는 쉬웠다. 이 점액은 다른 슬라임과는 다르게 배우고자 하는 열정도 강하고 기본 지능도 높은 편이었기에, 발성 기호와 그에 맞는 소리가 녹음된 당시에도 구식이었던 기계를 버튼을 누르고 듣는 것을 반복해서 전부 학습했다. 또 수업 시간에 글자를 읽는 법을 배워서 아이들이 별로 없을 때 아동용 책이 꽂힌 책장에 가서 책을 통째로 삼켜 한꺼번에 읽고는 뱉어내며 말 그대로 지식을 빨아들였다.

 

다행히도, 점액은 미끄러지면서 움직이거나 폭력에 당하며 슬라임들의 기본 능력 중 하나인 단단한 정도, 그러니까 점액이 고체는 아니지만 짧게 말해서 경도를 조절하는 능력도 터득했기에, 그렇게 삼켰다 뱉어낸 책에는 점액이 묻거나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러 번 강제로 몸이 분리된 적이 있었기에, 분리된 몸을 조절하는 방법 또한 알고 있어서 책을 두 권 이상 한꺼번에 읽는 것도 가능했다.

 

이렇게 글자와 말을 배우니, 몬붕이 항상 했던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널 해치려는 뜻이 아니야.’

‘밥은 먹었어? 아니면 여기, 내가 가져왔어!’

‘애들이 또 걸레에 집어넣었나 보네? 나쁜 놈들, 모르긴 몰라도 기분 나쁜 건 알 텐데…….’

 

‘사람을 무서워하는 이유라도 있니?’

‘내가 미운 건 아니지?’

‘넌 이름이 뭐니?’

 

‘아, 선생님들이 그랬는데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널 괴롭혔다면서? 난 흰옷도 안 입었고, 너를 괴롭히지도 않을 거야. 안심해도 괜찮아. 음.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전해지면 좋겠다.’

 

그 말들의 뜻을 알아낸 슬라임은, 심장은 없지만 가슴이 아려왔고 눈이 없지만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걱정해 주고 도움을 준 것은 자신이 그토록 미워했던 인간 중에서도 꼬맹이였던 몬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몸의 형태를 바꾸는 방법이나 말을 하는 방법을 몰라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는 없었다. 몸을 동그라미나 가위표 등으로 바꿔 긍정 또는 부정을 표현할 수만 있다면 그나마 시작이라도 될 텐데 말이다. 대신, 몬붕이 다가오면 멀어지지 않고 가까이 가는 방식으로 자신의 호감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와, 드디어 얘가 날 좋아하나 봐!”

 

몬붕이 기쁨에 차서 소리쳤다. 보육원의 어른들 또한 점액이 잘 적응하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기에, 앞으로 몬붕이 점액의 공부나 생활을 돕는 짝꿍이 돼 주는 것이 어떻겠냐고 권유했고 몬붕은 흔쾌히 승낙했다.

 

그것이 다른 아이들로서는 별로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다. 보육원의 아이 중 유일한 인간과 유일한 점액이 친한 친구가 되자, 평소에는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마저도 몬붕을 적대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괴롭히던 아이를 보살펴 주는 사람과 계속 좋은 관계를 갖는 것은 모순이니, 둘 다 괴롭히자는 정말로 사악한 심보였다. 쉬운 말로는 ‘야, 쟤랑 놀지 마. 너도 바보 된다.’ 현상이었다.

 

그래도 몬붕은 뭔가 동생이 생긴 기분으로 점액을 보살펴 주었다. 혹시라도 모래 놀이터에 가거나 흙 바닥을 지날 때면 작은 병에 점액을 집어넣고는 데리고 다녔다. 처음 작은 병을 본 점액은 실험실로 끌려가던 그때가 생각나 겁을 먹었었지만, 몬붕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인 것인지 순순히 병 속에 들어갔다. 병 속에서는 세상이 좀 달라 보였다. 병의 굴절이라던가 그런 거 말고, 점액은 땅바닥에 붙어 다녔으니 왠지 키가 커진 사람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한, 바닥에서 미끄러져 다닐 때보다 몬붕이 데리고 다니는 것이 훨씬 빠르기도 했다. 주변 아이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심한 일을 벌이면 항상 어른들과 선생님들께 이야기하며 둘의 관계는 점점 발전해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우주 공통의 소통 방법인 한번은 부정, 두 번은 긍정을 수업시간에 배운 날이었는데, 몬붕이 화장실에 들어가기 위해 화장실 앞에 점액이 든 병을 내려놓은 동안에 일이 터진 것이다. 몬붕은 점액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어 화장실 앞에 병을 내려놓고는 했고, 점액 또한 잘은 모르지만, 곧 자신을 다시 주워드는 몬붕을 보며 이것은 자신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갑자기 병을 뒤집었다. 점액은 온몸이 눈 역할을 했기에 시야가 뒤집히지 않아서 자신이 뒤집혔다는 느낌을 처음엔 받지 못했지만, 누군가 병에 손을 댔고 자신이 지금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동시에 병이 뒤집혔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도 못하는 게, 혼자서 인간 독차지하니까 좋냐?”

 

‘아니 내가 뭐 나만 돌봐 달라고 말이라도 했나. 몬붕이 스스로 날 도와준 건데 왜 저래?’

 

“그래 맞아, 너만 없었으면 몬붕이랑 아직도 같이 재밌게 놀았을 텐데, 이게 다 뭐야!”

 

‘자기들이 괴롭히는 무리를 멈춰줬으면 될 텐데, 오히려 합류해놓고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릴.’

 

자세히 보니 원래는 몬붕하고 친한 여자애들이었다. 아마 질투심을 느껴서 이런 짓을 한 것 같은데, 점액은 대체 자신이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어 너무나도 슬펐다. 빠져나와서 몬붕에게 도망이라도 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곧 애들이 발로 병을 밟아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정말 난 몬붕 없이는 안 되는 몸인가? 만약에, 만약에 내가 다 자라서도 사람들이 날 괴롭히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냥 어디 쓰레기통에 들어가서 쓰레기만 먹으면서 사람들을 피하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렇게 절망 속으로 빠져들려던 그 순간, 몬붕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와서는 모든 것을 다 목격했다.

 

“얘들아, 왜 그래! 이 작은 친구가 너희한테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몬붕은 마치 점액의 억울함을 대신 표현하듯, 보육원 바깥에 지나가던 사람들에게까지 들릴 정도로 큰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놀라 한 아이는 도망을 쳐버렸고, 한 아이는 울먹이며 몬붕에게 이야기하기를,

 

“너가 얘랑만 놀아주니까 그랬어, 흑. 미안해!”

 

그 말을 들은 몬붕은 다시 병을 뒤집어 자신의 품으로 가져온 다음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 주며

 

“괜찮아, 다음부턴 그러면 안 돼? 그리고 나랑 놀고 싶으면 언제든 놀자! 괴롭히는 애들이 생기면 어때? 우리가 재밌으면 되는 거 아니야?”

 

와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는 웃으며 ‘응!’ 하고 대답했고, 몬붕은 친구가 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혹시 도망친 아이한테도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있느냐고 하자 아이는 ‘그럴게! 다시 같이 놀면 좋겠다!’ 하며 도망친 자신의 친구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아? 많이 놀랐지? 애들이 참 나쁘다. 말도 못한다고 막 괴롭히고.”

 

그러자 놀랄만한 일이 벌어졌다.

 

“보글, 보글”

 

점액이 방울을 두 번 만들어 터트린 것이다. 몬붕은 이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다가, 오늘 배운 우주 공통의 부정과 긍정을 나타내는 표현이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추가로 질문을 더 해보기로 했다.

 

“너 오늘 배운 예, 아니오를 쓰는 거야?”

 

“보글, 보글”

 

“맞구나! 이젠 애들이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 싫다고 표현하는 애를 어떻게 괴롭히겠어?”

 

점액은 빠르게 몸으로 주변 공기를 감싼 다음 공기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구멍을 내는 식으로 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웠었고, 이게 무슨 쓸모가 있겠느냐며 자책하다가 오늘 배운 것을 써먹기로 한 것인데 아주 잘 먹혀들어가서 너무나도 기뻤다.

 

‘드디어 인간 오빠랑 이야기할 수 있어!’

 

이후 상황은 화들짝 놀란 어른들이 몰려와 진정되었다. 거기에 추가로 어른들에게 지금까지의 따돌림 사실을 이야기하자 원장이 직접 아이들 앞에서 따돌림은 없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예산으로 오토마톤 보육 교사를 사 와서 괴롭힘을 감지하면 즉시 달려갈 수 있도록 설정하기까지 했다.

 

전쟁, 해적의 습격으로 인한 함선의 파괴, 워프 사고 등으로 발생한 고아들을 맡아주는 연합의 보육원에 무슨 예산이 있어서 그런 걸 사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아이들이 울기 시작하면 몬붕의 외침처럼 사고가 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아서 추가 예산을 신청했거나, 아니면 교사들이 돈을 모아서 샀거나 했을 것이다.

 

어른들은 몬붕의 큰 목소리와 인간 아이치고는 큰 덩치, 그리고 주변 아이들과 잘 지내는 성격을 보고 큰 곰돌이 같다고 앞으로 ‘대웅’이라고 이름을 붙여 주었다. 아이의 특징을 따서 이름을 지어주는 보육원의 관습에 따른 것이었는데, 어느 정도 큰 아이가 독립하러 나갈 때 이름 칸이 비어있는 연합 시민 등록 신청서를 주며 보육원의 이름을 그대로 쓸지, 아니면 새 이름을 만들지 결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성은 나중에 결혼하고 가족을 만들 생각이 있는 아이들은 직접 지어서 썼고, 그렇지 않으면 이름과 어울리는 성을 어른들이 지어 주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슬라임은 잠시, ‘그럼 오라버니의 성은 뭐지? 이름을 바꾸시면서 아예 안 정했나?’ 하는 딴생각에 팔려 회상을 중단했다가 ‘나중에 물어봐야지.’ 하고는 다시 회상을 재개했다.

 

이름을 받은 몬붕, 아니 대웅은, 자신이 보살펴주는 이 점액에게도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기에 처음 대화를 나눈 그때를 떠올리며 점액에게 이름이 마음이 드는지 물어보기로 했다.

 

“처음 보글거릴 때, 비눗방울이 생각났어! 그런데 너는 비누가 들어있지는 않으니까, 음. 이름으로 물방울, 어때?”

 

“보글 보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그럼 앞으로 물방울이라고 부를까? 아니면 방울이도 괜찮아?”

 

점액은 귀여운 이름이고, 대웅이 지어준 이름이라면 소중히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긍정 표현을 했다.

 

“그럼 방울아! 하하하, 이제 우리 둘 다 이름이 생겼네. 어른들한테 너한테 물방울이라고 이름 지어줬다고 이야기하러 가야겠다.”

 

그러자 병이 달그락거리기 시작했다.

 

“응? 왜 그래? 혹시 나오고 싶어서 그래?”

 

“보글 보글.”

 

그 소리를 들은 대웅은 병을 자신의 다른 손을 향해 뒤집어 손 위로 물방울을 꺼내 주었다. 물방울은 대웅의 손의 체온을 느끼며 행복한 듯 부르르 떨었다.

 

“귀엽네. 뭐, 이름 이야기는 나중에 해도 되니까,”

 

그렇게 손 위에서 부르르 떨던 물방울은, 갑자기 얇게 펴지더니 한 손을 전부 몸으로 감쌌다.

 

“응, 왜 그래? 내 손이 무슨 맛인지 보려고?”

 

자신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단단히 믿고 있던 대웅이 물방울을 가만히 내버려 두자, 곧 물방울은 몸을 뭉쳐 손바닥 위로 올라왔다. 그런데 여기서 대웅과 물방울이 놀란 것은, 물방울이 자신의 몸을 손바닥 모양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직원의 안내를 통해 기어 가족을 만난 물방울은, 자신이 몬붕과 어떤 관계이며 왜 찾아야만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자신이 방금까지 회상했던 내용을 들려주었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기어 부부와 그리스는 긴 이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푹 빠졌는지 화장실을 가거나 음료수를 마시지도 않고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음, 그래서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요? 거 이야기하는 재주가 있으신데.”

 

물방울은 그리스의 아버지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러면 제 이야기를 믿어 주신다는 거네요. 제 오라버니 이야기를 해 주시면 저도 제 이야기를 계속할게요.”

 

“어디 보자. 아까 손님으로 오셔서 우주선 조립을 요청하셨고, 지금은 루미라는 오토마톤이랑 같이 상점가에 휴대전화를 다시 개통하고 옷을 좀 사러 가셨지.”

 

“아, 그러면 오라버니에게 전화를……. 아니지. 전화번호를 아직 모르잖아.”

 

“허허, 그렇게 서두르는 걸 보면 정말 다시 만나고 싶으셨나 보네. 감격의 재회겠어.”

“맞아요, 여보. 아, 혹시 물방울 씨도 음료수 좀 드릴까요?”

 

“좋아요. 물이 있으면 좋겠네요. 혹시 그 전에 회사에서 일하실 때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으셨었나요?”

 

그리스의 어머니가 다시 물을 가지러 간 사이, 그리스의 아버지가 질문에 대답했다.

 

“그건 내 딸이 더 잘 알 거요. 얘가 어제 맞나? 아무튼, 몬붕 씨가 회사를 나오기 전에 수행한 마지막 임무라던가, 무슨 홍보 영상을 찍었다고 했으니까. 그렇지, 그리스?”

 

“네? 네! 맞아요. 무슨 이야기를 해 드리면 될까요? 아, 그리고 저도 물방울이라고 불러 드리면 될까요?”

 

“그게 제 이름이니까요. 하지만 방울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오라버니뿐이랍니다. 음, 제일 궁금한 건 그 오토마톤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거기에 대해선 잘 모르시겠죠?”

 

그리스는 루미의 전투능력이나, 몬붕에 대한 사랑 등이 떠오르긴 했지만, 자신이 몬붕을 만나기 전부터 루미와 몬붕이 함께했을 것을 생각해보면 잘 모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그렇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저보다 오래 몬붕 씨랑 일하셨을 테니까, 몬붕 씨가 저보다는 잘 알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래도 저도 길게 이야기를 한 만큼 잠시 쉬고 싶으니, 가능한 몬붕 씨와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건 전부 이야기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이야기가 길어지겠군. 그럼 난 내 아내랑 쉬다 와야지. 아, 물방울 씨? 여기서 편히 몬붕 씨를 기다리셔도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오라버니를 찾을 수 있겠네요.”

 

그렇게 그리스가 물방울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안, 기어 부부는 몬붕은 어릴 때부터도 착한 사람이었으니 그리스를 태우고 가도 안심할 수 있겠다는 대화를 나눴다.

 

한편, 연합 밖으로 나갈 것이기에 프리미엄 요금제를 선택한 몬붕은 두 사람이 가입하면 20% 할인해준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을 굳혔다.

 

‘루미까지 전화를 맞춰 주려고 했는데, 20% 할인받아도 총 가격은 160%야. 한 사람 비용보다 비싸다는 이야기지. 그냥 내 손목시계로 계속 루미랑 이야기하는 게 더 싸겠어.’

 

그렇게 자신만의 전화를 개통하고는, 백화점처럼 보이는 큰 가계로 향했다. 공장 행성이라 각종 기계와 기계 신체를 파는 시장이 제일 컸고, 여러 행성으로 물건을 옮기는 사람들이 쉬다 갈 수 있는 목욕탕이나 식당이 그다음이었다. 옷을 파는 상점들은 규모가 작긴 했지만, 그래도 여러 종족에게 맞는 치수와 스타일이 갖춰져 있었다. 물론, 루미는 일단 인간 체형이므로 다른 종족의 옷은 둘러볼 이유가 없긴 했지만.

 

“이건 어떠세요? 더 귀여워 보이지 않나요?”

 

“응, 루미. 귀엽긴 한데…….”

 

“그런데?”

 

“여긴 다른 사람들도 보여줄 만한 옷을 사러 온 거야, 나만 볼 옷 말고.”

 

“히잉, 알겠어요. 그럼 다른 걸 입어봐야겠네.”

 

마치 몬붕을 당황하게 하려는 듯, 루미가 처음 입고 보여준 옷은 고양이 속옷 세트였다. 고양이 귀와, 고양이 얼굴 모양으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브래지어, 고양이 귀 모양으로 배꼽 쪽을 향해 튀어나온 작은 부분이 2개 있는 팬티에, 아마 몬붕이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고양이 꼬리도 달렸을지 모른다.

 

‘이렇게 보니까 루미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네. 처음에 생각한 것보다 더 큰 가슴 크기로 도착해서 약간 당황했지만,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지. 역시 난 큰 가슴을 좋아하나 봐.’

 

그렇게 생각하며 몬붕은 자신의 열을 식힐 겸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저, 이거 좀 더 큰 치수 없나요? 저한테는 두 치수 정도 작은 것 같은데.”

 

“아, 고객님. 홀스타우로스 족이셨군요. 그러면 저 직원을 따라가 주세요. 몸집이 크신 분들을 위한 제품이 준비된 곳으로 안내해줄 겁니다.”

 

“고마워요. 저는 또 작은 치수만 있길래, 다른 매장처럼 큰 종족용은 없는 줄 알았지 뭐예요.”

 

“아, 이 매장은 회장님부터가 키가 보통 사람의 두 배 정도 되니까,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 뭐야, 사람 중에서도 정말 큰 사람이 H컵이랬는데, 저분은 한 손에 안 들어올 정도가 아니라 두 손으로도 감싸 쥐기 힘들 정도잖아? 덕분에 오히려 더 더워지는군. 나는 거유파였나봐. 이런, 갑자기 루미 가슴이 작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아랫도리를 가린 몬붕. 꽤 현명한 선택이었다. 주변의 다른 손님들이 루미가 없는 상황에서 열이 한껏 오른 아랫도리를 보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접근하려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에 루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 옷으로 갈아입었어요! 한 번 보실래요?”

 

“으, 응. 한번 보자고.”

 

몬붕은 눈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아까의 고양이 속옷보다는 충격이 덜했지만, 루미가 이번에 입은 옷은 레이스 속옷이었기 때문이다. 중요 부위만 완전히 가려지고 나머지는 레이스 무늬가 들어가 반투명하게 살결이 보였다. 그렇다고 루미가 직접 고른 옷인데 계속 눈을 가리고 있기도 미안해서, 다시 한 번 찬찬히 루미를 살펴보기로 했다.

 

‘적당히 크지만 나보다는 작은 키, 들어갈 곳은 들어가고 나올 곳은 나온 몸이라. 인기가 있을 수밖에 없지. 그런데 아까 큰 가슴을 봐서 그런가 루미의 가슴이 왠지 작아 보이는 느낌이야. 흠. 어차피 말투가 바뀌어도 루미는 루미 그대로라고 했으니 이번에 자동친구에 가면 가슴 부품이 있나 물어봐야지. 그런데 왠지 가슴이나 고운 피부, 허벅지보다 저 팔다리의 관절 부분이 굉장히 멋지네.’

 

인간은 갤럭시 드릴의 동료 직원인 아저씨들밖에 만나본 적 없는 몬붕에게는 인외 종족들이 더 친숙한 편이었다. 처음 루미를 봤을 때는 거의 인간과 같은 모습에 적응하기 편하겠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이 아님을 나타내는 어깨 부분의 관절 연결부와 허벅지와 허리를 잇는 부분의 관절 연결부를 보며 거부감이 아닌 멋, 그리고 그 멋이 살아있는 몸매를 보고 있자니 정말 회사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지금까지 루미가 잠옷 없이 속옷만 입은 걸 본 적 없었는데, 너무 매력적이다. 그런데 루미, 아까 속옷들 다 사 줄 테니까. 앞으로는 평상복만 고르자. 안 그러면 나 화낼 거야.”

 

“주인님과 곧 밤을 보내게 된다니 흥분해서 그랬나 봐요. 죄송해요! 제대로 고를 테니 루미를 버리지 말아 주세요! 아, 그리고 칭찬 감사합니다.”

 

“너 내가 안 버린다는 거 알고 그러는 거지?”

 

“헤헤......”


그렇게 몬붕은 루미가 선택한 속옷과 자신이 보기에 괜찮은 옷들을 골라서 구매했다. 주로 밝은색을 띄는 평상복이 많았고, 그중 몇몇 옷은 로봇 관절이 드러나는 어깨 노출이 있었다. 몬붕의 인외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그렇게 옷을 받은 루미는 최근 그 어떤 때보다 행복해 보였고, 그걸 보는 몬붕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할 일을 마친 둘은 옷가게를 나와 기어 부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우주선이 완성되면 실을 식량이랑 물을 준비해야 하나?"


몬붕이 약간은 걱정스러운 듯 이야기하자, 루미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보통 선착장 근처에 큰 규모의 보급품을 판매하고 직접 우주선까지 짐차나 로봇을 이용해서 배달까지 해 주는 곳이 있으니까, 그런 건 내일 출발하기 전에 구매하시면 될 거에요."


"그렇구나. 주변을 잘 둘러보는 게 좋겠네. 어쨌든 우주선을 몰아 본 경험이 없으니 최대한 많이 배워놔야지."


"그래도 혹시 지금 당장 드시고 싶은 게 있다면 제가 요리해 드릴 수도 있어요! 재료만 준비된다면요."


아까의 기어 부부의 저녁 식사 이야기를 떠올린 몬붕은 이 기회에 다른 음식 또한 먹어보고 싶었기에 굳이 재료를 사지는 않았다. 대신, 혹시라도 저녁이 자신이 먹기 너무 어려운 음식이 나올까 걱정하며 샌드위치를 사서 돌아가기로 했다. 루미는 저번의 감자계란 샌드위치를 떠올리며 `주인님은 샌드위치를 엄청나게 좋아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혹시라도 기회가 된다면 주인에게 맛있는 샌드위치를 대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그리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의 다 끝내가고 있었다.

 

“...... 그렇게 돼서 몬붕 씨가 출연하는 홍보용 영화에 저랑 루미 씨가 출연할 수 있었죠. 그다음엔 이렇게 우리 집으로 온 거고요.”

 

자신의 부모에게는 두 번, 그리도 이제는 세 번째로 이야기하는 것이었지만 물방울은 몬붕을 만나기 위해 먼 거리와 시간을 달려온 손님이기도 했고, 그리고 희귀한 높은 지능의 슬라임과의 대화였기에 그리스는 최대한 기억을 되짚어가며 이야기를 끝마쳤다.


“고마워요, 이야기를 정리해 보니, 그리스 씨의 수리 능력과 루미 씨의 전투 능력이 오라버니를 여러 번 구했었군요. 정말 감사드려요.”

 

“별거 아니에요, 저도 몬붕 씨가 구조해줬는걸요. 그리고 저한테 직업도 주셨고, 영화에 나오게도 해 주셨죠.”

 

“그러면 이야기를 정리해서, 오라버니가 지금까지 모은 돈으로 우주를 탐험하려고 하신다는 건가요?”

 

“네, 저도 거기에 정비사이자 기술자로 합류할 거고요. 루미 씨도, 음. 아마 빨래나 요리, 청소 아니면 전투 요원으로 합류하겠네요.”

 

“저도 오라버니 곁에 남으려면 이 우주선에 타야겠네요. 그런데 이 우주선의 이름은 뭔가요?”

 

그리스는 머리를 탁 치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을 안 지어줬네요! 중요한 건데! 몬붕 씨 선장이 될 테니 돌아오면 같이 정해요!”

 

그렇게 대화를 마친 둘은 주방에서 들려오는 기어 부부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제 슬슬 돌아올 시간인데."

"그러게요, 여보. 곧 저녁이 식겠어요."

 

그때, 물방울에게 작은 슬라임 하나가 꼬물대며 돌아왔다.

 

“지금 가게 앞에 도착하셨네요.”

 

“아니, 그건 어떻게 아셨죠? 여긴 밖을 볼만한 곳이 접객실의 창문밖에 없는데.”

 

그리스의 어머니가 놀라며 한 말에, 물방울은 작은 슬라임을 자신의 몸에 흡수시키며 대답했다.

 

“아까 여기로 입구의 직원분이 저를 안내해주실 때, 혹시 다른 손님이 오실지도 모르니 제 분신을 하나 입구에 남겨달라고 부탁하셨었거든요.”

 

“저런, 저희 직원이 손님에게 부탁하다니. 사과드려야겠네요. 죄송합니다.”

 

“괜찮아요, 덕분에 오라버니를 일찍 볼 수 있었으니까요.”

 

물방울이 웃으며 대답하자, 진짜로 곧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들어와요, 몬붕 씨! 열려 있으니까.”

 

그리스의 아버지가 한 말에, 몬붕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의문을 표했다. 원래는 루미가 문을 열어 주는 편이었지만, 양팔에 전부 옷 가방과 샌드위치 봉지가 걸려 있어 문을 열 수가 없어서 몬붕이 대신한 것이다. 저번의 회사에서 짐을 옮길 때와는 다르게 몬붕은 주변에 워낙 로봇이 많기도 하고, 루미에게 이 정도는 별것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에 짐꾼 역할을 맡기기로 한 것이다.

 

“어떻게 제가 들어오는 걸 아셨-”

 

“꺄악! 오라버니이!”

 

“잠깐! 오라버니라니, 누구시죠?”

 

물방울은 정말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했던 몬붕을 다시 만나게 된다는 흥분으로 총알처럼 몬붕을 향해 뛰어들었지만, 순식간에 옷 가방 위에 샌드위치 가방을 내려놓는 방식으로 짐을 보호한 루미가 양팔로 물방울을 제지했다. 문제는, 물방울 본인도 자신의 속도를 조절할 수 없었는지, 루미에게 그대로 돌진했고 젤리를 강하게 벽에 집어 던진 것처럼 루미와 주변 바닥에 흩뿌려졌다는 것이다.

 

“잠깐만, 슬라임이면서 나를 오빠 취급해 줄 사람이라면……. 혹시 방울이니?”

 

“저번에 주인님과 같이 식사한 날 이야기하셨던 여동생분이신가요? 인간처럼 보이지는 않는데.”

 

그러자 물방울은 이리저리 흩뿌려진 자신의 몸을 다시 모아 원래의 형태로 만들고는, 웃음꽃이 잔뜩 핀 얼굴로 대답했다.

 

“맞아요! 역시, 오라버니라면 저를 기억해주실 줄 알고 있었답니다?”

 

“그래, 기억하고말고! 루미, 경계하지 않아도 괜찮아. 방울아, 오랜만에 쓰담쓰담 받을래?”

 

“좋아요, 좋고 말고요!”

 

그 말을 마침과 동시에 물방울은 몬붕의 품속으로 기어감과 동시에 온몸을 압축시켜 공 모양으로 만들었다. 몬붕은 한 손으로 물방울의 받치고, 다른 손으로는 공을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

 

“햐으응..... 오라버니의 손길...... 따끈따끈......”

 

온 몸으로 자신이 오라버니라 여기는 사람의 손길을 받게 된 물방울은, 어느새 투명색이었던 몸통이 분홍색으로 온통 물들었다.

 

기어 가족은 가족의 만남이 성사된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몬붕과 루미가 도착했으니 물방울이 자신이 좀 전에 마저 다 못했던 이야기를 몬붕과 함께 들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루미만이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저, 주인님? 혹시 이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당신이 루미 씨? 저희 오라버니를 두 번 넘게 구해주셨다면서요? 정말 감사드려요. 그 어떤 거로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네요.”

 

“그렇지? 루미가 정말 훌륭한 경호원 겸 메이드 역할을 해 줬다니까. 아, 인사해 루미. 얘는 내가 어릴 때 보육원에서 만난 슬라임, 방울이라고 해.”

 

‘저렇게 아무것도 안 했는데도 쓰담쓰담을 받을 수 있다니! 내 자리를 뺏긴 것 같아 기분이 나쁜걸. 하지만 주인님의 가족한테 화를 낼 수는 없지. 루미는 훌륭한 메이드니까!’

 

“안녕하세요, 물방울 씨.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몬붕 주인님의 메이드인 루미입니다.”

 

싱숭생숭한 기분이지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한 루미에게 물방울도 공 모양으로, 그것도 남의 품에 안겨 인사를 하는 건 무례하다고 생각했는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더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루미 씨, 저는 물방울이라고 합니다. 오라버니와는 제가 아기일 때 인연을 맺게 되었죠.”

 

“자, 자. 가족끼리 만나고 인사 나누는 건 다 좋은데, 저녁이 준비되었으니 같이들 식기 전에 들어요. 식탁은 다 차려 놨으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엄마!” “고맙습니다.”

 

몬붕은 식탁이 아주 큰 것을 보고 ‘역시 5형제가 살던 집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덕분에 의자가 모자라지 않은 건 덤이었다.

 

식탁에는 아주 커다란 냄비와 빵 바구니, 그리고 쌀밥과 각종 향신료가 놓여 있고, 의자 앞에 하나씩 접시와 식기구가 놓여 있었다.

 

몬붕과 루미, 물방울은 냄비만 보고서는 무슨 요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리스의 눈이 빛나며

 

“와! 엄마 특제 냄비다!”

 

라고 하는 것을 듣고는 몬붕만 ‘내 샌드위치도 맛있다고 했던 사람인데, 감자 요리인가?’ 하고 냄비의 내용물을 짐작했다.

 

냄비의 내용물은 칠리 반, 카레 반이었다. 항상 새로운 장난감, 그리고 자극을 찾는 그렘린들에게 어울리는 식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많이 있으니까, 많이들 먹어요. 우리 가족이야 농장이 있어서 쌀이 익숙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빵을 찍어 먹으면 될 거에요.”

 

그리스가 신나게 먹기 시작한 것을 본 기어 부부는 흐뭇해 했고, 먹는 거라면 뭐든 시도해보는 정신이 있는 몬붕은 쌀밥과 빵을 다 그릇에 담아서 한 번은 카레, 다른 한 번은 칠리와 함께 먹었으며 루미는 딱히 식사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런 가족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몬붕과 마찬가지로 카레와 칠리를 먹었다.

 

남이 주는 음식은 주인보다 먼저 맛을 보고 독극물 여부를 판단하는 게 원래 오토마톤의 절차였지만, 루미는 기어 부부를 신뢰했기에 딱히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다. 분석 결과는 강한 매운맛이었기에 혹시라도 주인이 못 먹는 것 아닌가 하고 쳐다보았지만, 맛있게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요리한 것도 저렇게 맛있게 먹어 주실까?’ 하고 딴생각에 잠겼다.

 

그리스를 포함한 기어 가족은 식사 중에 힐끔힐끔 물방울을 쳐다보았는데, 대체 슬라임은 식사를 어떻게 할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런, 인종 차별이네. 항상 당해 왔던 거라 상관없지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그릇을 통째로 삼켜서 사람들을 깜짝 놀래주는 재미가 있었는데! 하지만 오라버니 앞에선 아가씨가 되어야겠지?’

 

그런 각오를 다지며 물방울은 손과 팔을 움직여 식기를 잡아 사용했다. 카레가 몸에 들어가자 카레 색으로 몸이 잠깐 변했다가 분해되어 사라졌고, 칠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변화는 기어 가족에게 너무 신기했기에, 중간에 먹는 것을 중단하고 물방울에 시선이 집중되는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모두 그리스 어머니의 요리 실력을 칭찬하며 즐겁게 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자, 그럼 아까 물방울 씨가 하던 이야기를 마저 들어 봅시다.”

 

식사를 마치고 접객실에 물방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모두 모였다. 그리스가 물방울에게 루미 씨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으니 처음부터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 일이 있어, 루미에게는 물방울과 몬붕이 함께 기어 가족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시간을 써 주었다.

 

‘그러니까 주인님이 어릴 때부터 보살펴 준 사람이라는 거지. 고향은 자기도 모르는 거고? 나중에 역사 공부를 해 봐야 더 잘 알 수 있겠지만, 아마 20년쯤 전이라면 워프와 포탈 기술이 실험 단계를 거치던 시기였으니까 그때 사고를 당하셨나 봐. 불쌍해라!;

 

“어릴 때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힘들었을 텐데, 그리고 이미 그리스 씨의 가족들에게 한 번 들려준 이야기였을 텐데도 저에게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는 필요 없어요. 슬라임은 큰 상처를 재생할 때를 빼면 피로를 느끼지 않기도 하고, 또 루미 씨가 없었다면 우리가 여기에 모이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이야기야 얼마든지 들려드릴 수 있답니다. 하지만 고통스러운 기억이라. 몸의 상처는 재생할 수 있지만, 마음의 상처는 재생할 수 없었죠.”

 

그러면서 물방울은 몬붕의 양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라버니가 함께해 주신 덕분에, 나쁜 생각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답니다?”

 

물방울의 예의 바른 모습에, 루미는 ‘그래, 주인님처럼 멋진 남자는 여자 하나로는 안 되겠지. 질투하지 말자.’ 하고 나쁜 마음을 먹지 않기로 했으며 그것은 물방울도 마찬가지였다. 또, 루미는 자신이 주인의 정을 받은 적이 있으며 잠을 같이 자기도 했으니 한 발자국 앞선 사람의 시선으로 물방울을 바라보았기에 질투심이 옅어지는 효과는 더 컸다.

 

이제 몬붕과 물방울을 둘러싼 기어 가족이 간식과 음료를 먹으며 계속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기에, 물방울과 몬붕은 어떻게 물방울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는지, 그리고 헤어졌는지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대웅 덕분에 왕따가 사라진 보육원에서 물방울과 대웅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복면을 쓴 인질범들이 나타나 보육원의 아이들과 교사를 인질로 잡고 거액을 요구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경찰들은 아이들이 다치게 될 경우의 여론 악화 때문에 강경 진압을 망설이고 있었고, 협상가도 도착까지는 한참이 걸리기에 어떻게든 요구를 들어 준다고 이야기하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저격수 또한 한 명 뿐이기에 선제 사격을 했다가는 화가 난 인질범들이 아이들을 전부 처형할 수도 있었고, 정신에 간섭할 수 있는 대원이 있긴 했지만, 인질범 중에서도 정신을 조종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있었기에 서로의 능력이 상쇄되어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아이들은 인질범들이 울면 죽이겠다는 말에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지만, 5살의 하피 꼬마가 울기 시작하자 눈물은 전염된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아이들도 덩달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요구사항이 빨리 이루어지지 않는 데다 협상가 또한 오지 않았고, 마침 경찰도 적은 것을 확인한 아이들 제압 역할을 맡은 인질범은 아이들이 우는 소리에 스트레스가 극한에 달해 가장 처음 울기 시작한 하피 꼬마에게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지만,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고 숨을 쉴 수가 없게 되어 컥컥거리는 소리만을 낼 뿐이었다.

 

그랬다. 이들은 대웅이 들고 있던 병을 음료수병이라고 생각해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고, 이제야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며 평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을 방해한 것에 화가 난 물방울이 인질범의 얼굴에 달라붙어 눈과 코, 입에 침투한 것이다.

 

대웅에게 긍정 부정 표현법을 이용해 먼저 달려들겠다고 이야기를 미리 해 둔 덕분에 인질범이 질식으로 인해 총을 떨어뜨린 것을 대웅이 뛰어나가 받을 수 있었고, 정신 간섭을 차단하느라 인질들에게 집중할 수 없었던 두 번째 인질범이 당황하며 허둥지둥 대웅을 향해 총을 겨누려고 하자, 대웅은 망설이지 않고 선제 사격을 가해 두 번째 인질범까지 쓰러트렸다. 내부의 총성을 듣고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고 달려가던 세 번째 인질범은 경찰 저격수가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으며, 요구사항을 외치고 있던 마지막 인질범은 정신 간섭을 할 수 있는 대원이 자신의 능력을 막는 존재가 사라진 것을 느끼고 기절시켜버렸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원래는 오라버니가 잘 때 얼굴을 덮쳐서 목소리를 내는 기관을 베끼려고 했는데, 저한테는 잘 된 일이었죠. 인질범의 코와 입, 그리고 성대와 폐를 분석해서 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거든요. 이후에는 조정을 가해서 여성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요.”

 

“뭐? 방울아, 너 진짜 그런 생각도 했어?”

 

“죄송해요, 오라버니. 하지만 정말정말 오라버니와 대화라는 걸 해 보고 싶었다고요.”

 

“그래, 지난 일이니까 용서해 줄게.”

 

루미는 ‘설마 아직도 밤에 잘 때 덮치려는 생각을 하고 계신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이어지는 몬붕의 이야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보육원에서는 일정 이상 나이가 찬 아이들한테 직업 소개를 해주거든요. 그때 갤럭시 드릴에 지원하면서 방울이와 헤어지게 된 거죠. 그다음은 뭐,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열심히 일하고, 베테랑 직원이 돼서 루미를 받고 또 그리스 씨를 만나서 여기까지 도착했습니다.”

 

물방울은 몬붕에게 아까부터 계속 궁금했던 것을 질문했다.

 

“그러면 오라버니, 연합 시민 등록 신청서에 이름을 몬붕으로 적은 건가요?”

 

“물론 사람 머리에 총을 쏜 보육원의 기억 때문에 옛날 이름 대신 새로운 이름을 쓰고 싶긴 했지.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니까 다른 종족하고 친하게 지내는 걸 보고 사람들이 나보고 몬붕이라는 별명을 지어 줬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친근한 이름이잖아.’ 하고 그걸 그대로 이름처럼 썼지.”

 

그렇게 이야기하며 몬붕은 이름 칸이 비어 있는 시민 등록 신청서를 내밀었다. 기어 가족은 당황했다.

 

“아니, 시민이 아닌 사람은 우주선 소유 불가인데 어떻게 빨리 처리해야 되는 거 아뇨?”

“그러게요. 근처에 작명해 주는 사람이 있나 알아볼까요?”

 

그리스는 잠깐 생각에 잠긴 다음 자신 가족의 작명 방법과 연관을 지어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 이야기했다.

 

“그러면, 테디베어는 어때요? 몬붕 씨의 옛날 이름인 대웅과 비슷하기도 하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셨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요.”

 

“곰 인형이요? 흠. 나쁘지는 않은 것 같네요. 베어라고 했다가 곰 종족을 만나서 ‘제 이름이 곰이에요.’ 하면 웃길 것 같긴 하니까.”

 

“그러면 성을 정해요! 제 가족처럼 꾸밈말을 써도 괜찮고, 아니면 혹시 생각해 둔 거라도 있으세요?”

 

몬붕은 역으로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질문했다.

 

“그리스 씨가 저보고 마음씨가 따뜻하다고 하셨는데, 여러분 모두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것 같네요.” “맞아요. 겸손한 사람은 보통 친절하니까.” “오라버니는 손도 따뜻한데!” “주인님은 따뜻한 분이세요.”

 

모두의 동의를 얻은 몬붕은 결심을 내리고 이야기했다.

 

“그러면 성은 하트워밍으로 하죠. 가슴 따뜻한 곰돌이라니, 어디 장난감 같아 보이는 이름이지만 농담으로도 쓸 수 있고, 친근한 이름이기도 하네요. 하지만 여러분들이나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되면 애칭으로 몬붕이라고 불러 달라고 할 겁니다. 제가 가장 오래 쓴 이름이고, 다른 종족과 친하게 지낸다는 뜻이 담겨있어서 좋아하거든요.”

 

그렇게 ‘하트워밍 테디베어’ 라고 기어 가족과 비슷한 방식의 작명을 한 몬붕은 연합 시민 등록 신청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리스와 루미, 물방울 모두 몬붕이라고 부를 것이기에 크게 뭔가를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리스의 어머니는 새로운 이름을 자기 가족의 방식대로 지은 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새 사람의 탄생을 기념하며 음료수를 내주었다.

 

작은 기념식이 끝나고, 그리스의 아버지가 물방울에게 질문했다.

 

“저, 물방울 씨. 물방울 씨도 이제 몬붕 씨의 우주선에 탑승할 건가요?”

 

“물론이죠, 오라버니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거예요.”

 

“그러면 특기가 뭐죠? 아, 곤란하게 하려는 건 아니고. 제한된 인원이 타는 배에는 각자 특기를 살린 사람들이 모여야 최대의 효율이 나와서 하는 이야깁니다.”

 

그리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모두의 시선이 물방울에게 집중되었다.

 

“저는 이야기 드렸다시피 생물에게 접촉해서 해당 생물을 분석하고, 모방하는 능력이 있어요. 원래는 멀리 있는 다른 행성에서 연구자 겸 해부 표본 역할을 맡기도 했죠.”

 

그러자 몬붕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질문했다.

 

“뭐? 그러면 너한테 칼을 들이댔다는 말이야?”

 

“걱정 마세요. 오라버니. 희귀한 생물은 죽일 수가 없으니 제가 삼켰다 뱉은 다음, 그 모습으로 변신해서 생물 연구원들을 도와주는 일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저는 칼 좀 닿았다고 다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도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아, 그리고 제 재생 능력을 다른 생물의 상처에 저를 조금 떼어 붙이는 걸로 나눠줄 수도 있어요. 연구원 중 한 명이 날카로운 가시에 찔려서 출혈이 있었는데, 그걸 막으려고 제가 감싸 주었더니 금방 치유되더라고요.”

 

“그거 대단한 능력이시네. 그러면 산소 공급실 근처 방을 쓰시면 되겠다. 식물 상태도 검사할 수 있는 거 맞죠?”

 

그리스 아버지의 질문에, 물방울은 거품을 하나 만들어 터트렸다. ‘보글’ 하고.

 

“안타깝지만 식물은 제가 삼키고 소화해 봐도 분석이 안 되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가능하면 오라버니 옆방을 쓰고 싶은데.”

 

그러자 루미가 ‘흐흥~’ 하는 듯한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거긴 제 방이에요. 주인님께서 정해 주신 거죠. 물방울 씨는 제 옆방을 쓰시면 되겠네요.”

 

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물방울 또한 질 수 없다는 듯 이야기했다.

 

“어머나, 그러셨군요. 어쩔 수 없죠. 그러면 루미 씨 옆방을 쓰면서, 배관이나 틈새를 통해 오라버니 방에 몰래 들어가면 되겠어요.”

 

“방울아, 그거 진심이니?” “뭣! 안 돼요!” “하하, 하하하하하!”

 

그 발언에 기어 가족은 재밌는 농담이라며 웃음을 터뜨렸고, 몬붕과 루미의 반응을 구경하더니 웃음소리는 더 커졌다.

 

“글쎄요, 오라버니. 이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츄릅. 두고 봐야겠죠?”

 

물방울은 혀를 날름거리며 대답했다. 그런 모습을 몬붕은 ‘제발 진심이 아니어야 할 텐데.’ 하고 바라보았으며, 루미는 ‘완전 미친 사람 아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흠, 흠. 아무튼, 탑승하게 된 것을 환영해. 방울아. 네 방은 생물 연구소 형태로 꾸며 줄게.”

 

“그렇게 되면 제 방에서 생활이 어려울 테니 오라버니 방에서 함께 생활하면 되겠네요!”

 

루미는 그 말에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큰 소리를 재생했다.

 

“그건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네요. 선장이 되실 주인님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겠어요.”

 

“그래, 너 병 속에서도 잘 지냈잖아. 슬라임이라 씻거나 잘 필요도 없고. 내 방에서 생활은 안 돼.”

 

단호한 몬붕의 말에 물방울은 약간 슬픈 얼굴을 했지만, 여전히 오라버니를 만나서 함께하게 된 것이 신나 보였고, 루미는 ‘역시 우리 주인님이야!’ 하고 미소지었지만 앞으로 물방울을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소동이 끝나고 나서, 밤도 깊었고 모두가 잠들 준비를 하려는 그때, 경찰 사이렌이 울리며 일행 앞에 자그만 균열이 생겨났다. 균열 속에서는 경찰 옷을 입은 차원 이동의 전문가, 고양이 수인이 튀어나와서는 몬붕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 연합 시민으로 등록하지도 않은 사람이 우주선을 보유하려고 하다니, 현장 체포하겠다냥. 그리고 이 조선소를 운영하는 당신들도 조사를 받아야 된다냥. 알겠냥?”

 

하고는 경찰 배지를 들이밀었다. 아무래도 오늘 일행이 푹 자기는 그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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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조회수는 높지 않지만 항상 똑같은 추천을 해 주시는 걸 보면 처음부터 쭉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네요. 항상 감사합니다. 글 올리고 나면 며칠 내내 댓글 알림만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