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우주 노동자 몬붕과 오토마톤 루미의 모험

글 모음 : https://arca.live/b/monmusu/25564643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습니다.

 

///


여기서 회사의 12번 함으로 잠깐 눈을 돌려보자. 몬붕과 루미, 그리스가 회사의 12번 함으로 귀환하기 30분 전쯤의 일이다. A를 포함한 몬붕의 동료 직원들이 몬붕의 방 앞에 꽃을 사다 놓거나, 몬붕이 식당에서 자주 먹던 음식 재료 통조림을 안주 삼아 술을 마시며 몬붕을 기리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언제 한 번은 거대한 집개 달린 녀석 알지? 그 녀석이 나를 잡아선 백 미터도 넘는 곳에서 바닥에 패대기쳤는데, 몬붕이가 바닥에 충격 흡수 플랫폼을 만들어서 살려준 적이 있었다니까.”


“목숨을 구해줬다. 이건가? 그럼 꽤 상실감이 크겠네. 나랑은 자주 누가 얼마나 더 많이 자원을 수집하나 경쟁하곤 했는데, 나한테 운이 따르지 않는 날에는 항상 몬붕이 이겼지. 그런데 그렇게 해서 MVP 보너스를 받으면, 항상 같이 따라갔던 팀원들한테 나눠줬었어.”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보통 사람이 사라지면 흉을 보기 마련인데, 아무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몬붕 본인이 들었다면 부끄러웠을지도, 루미가 들었다면 자부심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회사에서는 98번 행성으로 떠나는 임무를 무기한 연기하도록 설정하고, 발열석 구매를 원했던 고객들에게 정말 안타깝지만, 회사의 인원 손실이 너무나 커져서 당분간 발열석을 구하실 수 없다는 식의 사과문을 작성해야 했다. 인사 부서의 몇몇은 통신 장애를 고쳐달라고 통신 부서에 연락하거나, 98번 행성에 떨어진 몬붕, 루미, 그리스와 계속 접촉을 시도하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몬붕 말고 또 다른 교육자가 필요하니, 그에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꽤 괜찮은 사람들을 찾아냈지만, 몬붕만큼 방송에 적합한 인물은 없었다는 게 주된 평가였다.


B의 경우에는 좀 많이 특이한데, 98번 행성으로 1인 임무를 나서고 있었다. 다른 팀이 귀환에 성공해 왕복선이 하나 비게 되자마자 자신이 혼자 탑승하고 내려간 것이다. 하필이면 발열석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아 자동으로 항로가 발열석이 가장 많은 곳으로 설정된 상태인 데다, 회사에서 98번 행성으로 출발하는 항로가 있는 왕복선들에서 항로를 삭제해버리기 직전이었기에 그게 가능했다.


“몬붕 대신에 교육용 영상을 촬영할 사람 구함. 98번 행성에 가서 현재 수요가 너무 높은 발열석을 등급 관계없이 100개 이상 모아오는 직원은 승진하며 촬영자로 선정되어 보너스와 함께 앞으로 수행하는 모든 임무에 대해 15%의 추가 수당을 지급함.


음~ 이것 좀 봐. 딱 문제 하나를 처리하니까 내 인생이 피려고 하잖아. 웬만한 괴물들은 지금 몬붕이 시체에 달라붙어 있을 테니까 완전 공짜나 다름없지. 다른 놈이 먼저 임무를 채 갈까 봐 걱정했는데, 역시 나만큼 부지런한 사람도 없지.“


그렇게 혼잣말을 하며 왕복선에 몸을 실은 B가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몬붕이 더 좋은 세상으로 떠났기를 비는 행사에 참가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기도 했고, B의 성격상 이런 기회를 굳이 남한테 알려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시간은 몬붕과 일행이 회사의 12번함에 도착한 때로 돌아온다.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왕복선의 안내 메시지가 재생되고, 그 소리를 들은 탑승객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하암~ 이 정도 잔 거로는 한참 모자라네.”


몬붕이 피곤함을 토로하며 이야기하자, 그리스가 맞장구쳤다.


“그러게요……. 아무래도 다른 일들은 일단 푹 자고 나서 생각해야겠어요.”


그리스가 푹 잔다는 이야기를 하자, 호기심 많은 몬붕은 궁금증이 생겨 바로 질문했다.


“그런데 직원들은 직원 개인 숙소를 쓰면 되는데, 그리스 씨처럼 외부 사람은 어디서 잠을 자요?”


“아, 외부 인원들을 쓸 일이 많은 회사인지 직원 숙소 중에 빈 곳을 잠깐 빌려준다고 했거든요. 어디 보자, 207호네요.”


“아하, 무슨 외부 직원용 공간이라도 따로 주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요. 아무튼, 오늘 고생 많이 하셨고, 푹 쉬고 내일 식당 앞에서 봅시다.”


“네, 몬붕 씨도 그, 루미 씨랑 같이……. 아니에요! 푹 쉬세요!”


그렇게 말한 그리스는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장비를 챙기고는 왕복선 밖으로 뛰쳐나갔다.


‘진짜 껴안기만 할 건데. 오해했나 보네. 뭐 상관없나.’


몬붕은 천천히 일어나 자신의 장비를 반납할 준비를 했다. 자원 탱크가 격납고에서 내려 회사 창고로 총총 걸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언제나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줬다. 그러고 보니, 루미를 깨워줘야 할 것 같았다.


기술의 발전으로 저장용량이 크게 늘었다고 해도, 혼자 충전하는 시간까지 저장한다면 금방 용량이 꽉 차는 경우가 많아 보통 충전 중에는 절전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용량 문제를 막고, 오로지 가정부로만 쓰이는 오토마톤의 경우에는 날짜와 그날 일어났던 일을 텍스트로만 기록하는 방식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얼핏 들은 기억이 떠올랐지만, 루미는 그 이상의 존재로 설계되었기에 영상이나 다른 방식을 사용할 테니 이 과정은 꼭 필요했다.


스테이션이 보관된 곳의 문에 손을 대자, 지문을 스캔하더니 슥 하고 문이 열렸다. 루미 눈의 불빛이 꺼져 있는 게 루미가 자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아침에 껴안았다가 일어났던 사건을 생각해보면 그건 숙소에 갈 때까지 아껴두고, 평소처럼 손을 잡아줘야겠다고 생각한 몬붕은 바로 루미의 한쪽 손을 양손으로 감싸주었다.


“루미, 일어날 시간이야.”


그러자, 평소와 같이 루미의 눈이 점등하더니 작동을 시작했다.


“주인님을 확인했습니다. 안녕하셨습니까? 장비 반납과 목욕, 침대 3단계의 계획을 이야기하셨었죠. 도와드리겠습니다.”


“좋지. 빨리 자고 싶었거든. 참, 루미가 이렇게 도와주니까 편하네. 루미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어.”


“칭찬 감사합니다. 호, 혹시 괜찮으시다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이지. 그 정도도 못할 정도로 지친 건 아니니까. 우리 루미, 착하다~”


루미는 이제는 더는 감정을 숨기지 않으려는 듯 신체접촉을 요구해왔다. 이렇게 칭찬을 요구해오는 루미도 정말 귀여웠기에, 쓰다듬어주는 보람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 몬붕은 상냥하게 루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 시작했다. 루미는 이제 이 정도는 부끄럽지 않은 듯 열기를 배출하지는 않았지만, 환한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몬붕의 손에 비벼왔다. 몬붕은 루미의 표정을 보고, 짧은 생각에 잠겼다.


‘꼬리가 있었으면 살랑살랑 흔들렸겠는데. 이 반응이 귀여워서 멈출 수가 없다니까. 사랑에 빠진 여자애들은 다 이렇게 되나? 아, 꼬리가 달린 종족 사람들 반응이 갑자기 궁금하네. 내 여동생은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아아, 역시 주인님의 손길이에요. 따뜻하고, 상냥해서 잊을 수가 없다니까요. 이렇게 회사 우주선에 돌아와서 주인님의 칭찬을 받고 있으니까 정말 집에 돌아온 것 같네요. 주인님의 집은 아니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다리 부상 관련해서 의무실에 먼저 가 보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랬었지, 참. 안 아파서 잊고 있었네. 그럼 먼저 갈 테니까, 장비 반납하고 침대에 이불 좀 펴 줄래?”


그렇게 이야기하며 몬붕이 루미의 머리에서 손을 떼자, 루미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몬붕은 억지로 웃는 얼굴을 만드는 건 아주 쉽지만, 웃는 얼굴을 지우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약간 소름이 끼쳤다.


‘만약 그럴 일은 없겠지만, 루미한테 절대 미움받으면 안 되겠다. 그리스 씨가 겁먹은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군.’


“주인님과 떨어지는 건 아쉽지만, 알겠습니다.”


루미는 몬붕의 보호복과 자신에게 장착된 각종 장비를 능숙하게 해제하고는, 주변의 카트에 싣고 손을 흔들며 “다녀오세요, 주인님.” 하고 인사해 주었다.


이때 루미의 호감도 상태는 이미 최대치를 넘어선 상태였다. 평범한 오토마톤 소유자들은 이쯤에 이미 육체적 관계를 맺지만 루미의 경우 나중에 둘만의 공간에서 분위기 있는 잠자리를 함께하자고 한 약속과 예쁜 루미는 몸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주인의 말을 계속 상기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최대한 칭찬과 신체접촉을 받으며 욕구를 억누르는 동시에 주인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 했다. 루미에게는 운 좋게도, 몬붕은 귀여운 것을 쓰다듬는 것을 좋아했다.


회사 내부 병원에 도착한 몬붕이 의사에게서 뼈에 문제는 없고, 신진대사 가속 약물로 인해 상처가 빨리 치료되겠지만, 앞으로 24시간 동안은 평소보다 많이 열량 소모가 있을 테니 식사를 많이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동안, 루미는 몬붕의 방 앞에 쌓인 물건을 보고 ‘대체 이건 뭐지?’ 하며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꽃, 빵 통조림, 술, 카드? 주인님께는 죄송하지만 대체 이게 무슨 난리인지 확인하려면 살짝 열어봐야겠어.’


손가락 끝 마디 하나를 꺾어서 편지 칼을 꺼낸 루미는 봉투를 살짝 뜯어 안의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몬붕은 훌륭한 직원이었으며, 정말 안타까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쓰여 있었다. 장례 문화에 대한 기록이 없는 루미는,


‘이 세상에서 떠나간 사람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해 줄 필요가 있나? 뭐, 우리 주인님은 보란 듯이 당당히 돌아오셨지만 말이야. 어차피 주인님을 위해 놔 둔 물건들이니까, 주인님 방 안으로 옮겨 놔야지. 흠, 이불을 펴고 나면 이것들의 총액이 얼마나 나갈지 계산이나 하고 있을까.’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아마 몬붕이 봤으면 깜짝 놀랐을 텐데 말이다. 회사에서는 몬붕이 생존했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그것을 공지했다가는 당장 통신도 원활하지 않은 상태인데 몬붕과 연락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고 또 이런 상황이 있을 때마다 직원들이 자신 동료의 생존 확인을 요청할 수 있기에 굳이 발표하지는 않았다. 또 몬붕이 돌아와서 걸어 다니며 자기가 직접 설명을 해 주는 게 회사 차원에서도 편했다. 몬붕은 어쨌든 회사 덕분에 목숨을 건진 것이니 자기 이야기를 할 때 회사 욕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루미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몬붕의 숙소는 인간들이 가장 많이 배치된 층이고, 인간 기준으로 새벽 시간에 몬붕 일행이 돌아왔기에 술판과 조촐한 장례식은 꽤 이전에 끝나고 모두 잠을 자러 갔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B와 같이 일을 하러 나간 사람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 빈 방도 있었다..


이불을 펴고, 목욕물을 받아 놓은 루미는 주인의 문 앞에 놓인 선물들을 침대 옆쪽에 모아 정리한 다음 임무 단말기를 이리저리 조작해서 배달 상점 화면을 띄워 주인 앞으로 온 선물들의 가격 총합을 정리해두었다.


‘섬기고 봉사하는 우리는, 무언가를 받았을 때 돌려줘야 한다. 돌려줄 때는 받은 것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비싼 값으로 돌려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서로 주고받으며 긴밀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우리의 기본 행동 원리에 집어넣어 주신 말씀이지.’


물론 루미가 뭔가를 받은 것이 아니라 몬붕이 받은 것이지만, 루미는 주인에게 얼마만큼의 선물을 받았는지, 그렇기에 다른 직원들에게 보담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싶었기에 꼼꼼히 화면에 나온 제품과 주인 방에 쌓아둔 물건들을 비교하며 정리를 끝마쳤다.


병원이 꽤 멀었는지 주인이 돌아오지 않자, 루미는 방에서 나와 주변을 둘러보며 아무도 없음이 확인하고는 바로 옆의 B의 방에 들어가서 책상다리 뒤의 자그만 기계를 회수하고 돌아왔다. 이 정도면 주인님의 말씀인 남들을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는 것을 거스르지 않는 선이라고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루미는 더는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아 식당에 들러 밥이라도 가져오려고 했던 그때, 몬붕이 웃으며 숙소에 돌아왔다.


“의사가 아무 문제 없대. 대신 밥을 좀 든든히 먹어두라고 하네.”


“아, 다행입니다. 그러면 의사 선생님의 말씀대로 식당에서 음식을 좀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B씨가 주신 식권도 남아 있으니, 그걸 사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루미 덕분이지. 오늘 루미가 몇 번이나 나를 구해줬는지 모르겠네. 그럼, 먼저 씻고 있을게.”


몬붕이 다쳤던 다리를 같은 쪽의 팔로 툭 치며 이야기했다. 만약 루미처럼 몬붕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전 재산으로도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것이나 다름없을 정도의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닙니다. 이게 제 본분인걸요. 주인님을 도울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주인님께서 저의 노력을 칭찬해 주시니, 이 루미, 행복에 잠길 것만 같네요.”


“하하, 그래, 그래. 조심히 다녀와. 오늘 밥은 뭐가 나왔을지 궁금하네.”


식당으로 떠나는 루미의 등을 토닥여준 몬붕은, 옷을 벗고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갔다. 욕조에 잠겨 온몸으로 적당히 따뜻한 물을 느끼며 피로를 해소하던 몬붕은 욕조의 물을 바라보며 뜨거운 물 사용료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뜨거운 물을 많이 쓰면 추가 요금이 나오긴 할 텐데. 뭐, 오늘같이 땀범벅이 된 데다 생사를 넘나든 날이라면 이 정도 사치는 괜찮겠지.’


같은 시간 그리스는 어떻게 벌게 된 첫 크레딧인데 따뜻한 물에 쓸 수는 없다며 차가운 물로 몸을 씻은 뒤 바로 침대에 뛰어들어 잠을 청하고 있었고, 루미는 ‘오늘 첫 주인님 씻겨주기까지 할 수 있었는데, 아깝다. 하지만 배고프신 주인님을 위한 일이야. 아, 오늘 처음으로 한 일들이랑 버킷리스트를 대조해 봐야지.’ 같은 생각을 하며 식당 메뉴를 살펴보고 있었다.


온몸의 긴장과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감각과 노곤함에 따뜻한 물에 잠겨 있는 느낌은 정말 오래간만이었기에 거의 잠들기 직전이었던 몬붕은 바퀴 소리와 이어지는 노크 소리에 정신을 확 차렸다.


‘똑똑똑’


“네, 누구시죠?”


“주인님의 루미입니다. 이 시간엔 같은 층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잠들어 있는 것 같은데, 혹시 저 말고도 주인님의 방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오는 분이 계신가요?”


루미의 목소리의 톤은 전혀 변화가 없었지만, 루미와 꽤 여러 사건을 겪으며 느낀 바로는 저 말 속에는 호기심이 아닌 질투가 숨겨져 있다고 느낀 몬붕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재빨리 대답했다.


“아니, 그런 뜻으로 누구냐고 물어본 게 아니었어. 예의상 물어본 거지. 무슨 일이야?”


“식사를 가져왔습니다. 식으면 다시 데우면 되겠지만, 주인님 또한 피곤하실 텐데 욕조에서 주무시기보다는 식사를 마치고 침대에서 주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맞는 말이야 루미. 다 씻었으니 금방 나갈게.”


몬붕이 루미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면 방금 루미의 말 속에는 ‘주인님이 빨리 안아주셨으면 좋겠다.’ 하는 기대를 읽을 수 있었겠지만,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니었다. 아니면, 자신을 걱정해주는 말 속에서 다른 의미를 일부러 찾으려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욕조의 물을 빼고 다음의 사용을 위해 청소를 한 몬붕은 온몸을 수건으로 닦은 다음 욕실 겸 화장실의 손잡이에 걸어 둔 편한 옷을 입고 욕실을 빠져나왔다. 아주 상쾌한 기분으로. 그저 이대로 밥을 먹고 잠이 들면 최고일 것 같았지만, 그래도 루미가 뜨거운 물을 많이 받아서 생긴 비용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루미의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는 당연히 아니었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한 행동이 나쁜 일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교훈을 주고 싶어서였다.


“루미가 딱 맞는 온도로 물을 받아 줘서 개운하게 목욕했네. 고마워. 그런데 루미, 이렇게 뜨거운 물을 많이 쓰면 추가 요금이 나오거든?”


“앗! 죄송합니다, 주인님. 설마 엄청나게 비싼 요금이 발생한 건가요?”


“그렇게 비싸지는 않지. 그런데 보통은 그걸 피하려고 물을 많이 쓰지는 않거든. 돈을 모아야 했으니까.”


루미는 자신이 큰 실수를 한 줄 알고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눈물도 흘리려고 하고 있었는데, 정말 이게 큰 실수고 큰 손해가 발생한 상황이라면 분위기가 심각해졌겠지만 몬붕은 별것 아닌 거로 울려고 하는 루미의 모습이 꽤 귀엽다고 느꼈다. 작든 크든 주인에게 피해를 줬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이기에, 루미가 펑펑 울게 되기 전에 얼른 달래줘야겠다고 생각한 몬붕은 루미의 등을 토닥이며 이야기했다.


“괜찮아, 괜찮아. 정말 별것 아니야. 게다가, 이런 일이 생길 줄 모르고 그런 거잖아. 내가 알려줬어야 하는 건데. 그리고 나를 위해서 한 거잖아? 만약 상황이 반대여서 내가 루미였어도 따뜻한 물을 받아 놨을 거야. 그러니까 속상해하지 않아도 돼.”


“히잉, 정말인가요? 주인님? 큰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에요. 다음부턴 꼭 뭔가 하기 전에 주인님과 상담 먼저 할게요오......”


위로의 말과 함께 루미를 안아주자, 루미는 몬붕의 품속을 파고들더니 금방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는 몬붕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품속에서 킁킁대는 모습에 약간 당황했지만, 주인이 어떤 비누나 입욕제를 선호하는지 배워두려고 하는구나 싶어 그저 비어있는 다른 손으로 등을 토닥여주기로 했다.


"그래 주면 고맙지. 하지만 항상 하던 식사 가져오기나 청소 같은 것을 할 때는 굳이 상담하지 않아도 괜찮아. 처음 하는 일이라던가, 뭔가 버리려는데 나한테 중요한 물건인 것 같을 때 상담하면 되지. 그런 게 아니어도 질문은 언제든지 해도 괜찮으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마."


"감사합니다, 주인님. 루미, 오늘 일을 명심하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의도로 실행한 일이라도, 완전히 일에 대해 파악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걸요."


"기특하네. 역시 그래야 루미답지. 아, 그래. 밥 먹어야지!"


그 말을 들은 루미는 빠르게 자신이 끌고 온 식사 카트에서 접시를 꺼내 몬붕의 책상 위로 내려놓으며 평소보다 양이 많은 것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신진대사가 늘어나 필요한 열량이 높아졌을 테니, 두 명 분량을 가져왔습니다. 삶은 면과 볶은 면, 크림소스와 카레 소스 그리고 샐러드입니다."


"내가 면을 좋아하긴 하지. 잘했어 루미. 그래도 자기 전에 먹기에는 양이 좀 많은데. 루미도 좀 먹을래?"


어떻게 보면 이것 또한 허락 없이 식권을 두 장 사용한 셈이 되겠지만, 방금 얻은 교훈을 또 가르칠 필요도 없는 데다 B에게 선물 받은 식권이었기에 무료나 다름없었던 것, 그리고 곧 회사를 떠날 것이기에 식권을 빨리 써버리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몬붕은 루미를 봐서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충전 스테이션이 바로 옆에 있기에 주인님이 드실 음식을 저에게 나눠 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긴 한데, 루미가 뭔가를 먹은 다음의 반응을 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건……."


"그리고 루미를 보고 있으려니 옛날 여동생한테 밥을 먹여주던 생각이 나서 그러는데 내가 먹여줄게."


"그러면 저도 먹겠습니다."


`주인님께서 나한테 먹여주는 경험도 오늘 하는구나, 만세! 원래대로라면 아까의 행성에서 했으면 좋았겠지만, 이젠 거기를 기록한 데이터는 다신 돌려보고 싶지 않네. 그런데 여동생도 있으셨구나, 우리 주인님. 하지만 오늘 밤 주인님의 품은 내 거야. 굳이 다른 여자 이야기는 안 해야지.`


먹여준다는 말을 듣고는 바로 얼굴에 웃음기를 띄운 루미를 보며, 몬붕은 `역시나 쉬운 여자야.` 하고 생각하며 벽에 붙어있던 자신의 책상을 침대 옆으로 옮기기 위해 음식 접시들을 다시 카트 위로 올려놓기 시작했다.


"책상을 옮기시려는 겁니까?"


"그래, 루미랑 마주 보고 먹으려면 의자가 더 필요한데, 없으니까 한쪽 의자는 침대로 대신하려고."


"그런 거라면 저도 돕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루미는 한 손에는 책상, 한 손에는 의자를 들어 올리더니 침대와 가까운 쪽에 내려놓았다. 임무 중에도 루미가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 평소에 볼 수 없는 장면들이었기에 단순히 성능이 뛰어나다는 정도에서 생각이 그쳤었다. 하지만 가구 옮기기라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고된 일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해내는 것을 본 몬붕은 루미와 자신 사이의 힘 차이가 머릿속에 저절로 새겨졌다.


책상을 옮기던 루미를 바라보던 시선이 루미가 책상을 내려놓는 것과 동시에 아래로 내려가자, 침대 옆의 쌓인 선물들이 눈에 들어온 몬붕은 깜짝 놀랐다.


"이게 다 뭐지?"


"주인님 앞으로 온 동료 직원분들의 작별 선물입니다. 주인님의 카메라가 꺼지던 화면을 본 직원분들이 주인님이 명을 달리하신 줄 알고 이렇게 준비해두신 것 같습니다."


"이런 망할. 회사에선 내가 직접 해명하는 게 제일 빠를 거라고 생각했나 보구만. 보너스가 얼마나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퇴사할 때 술값이라도 내면서 보답해줘야겠는걸."


"주인님, 이 죽은 사람을 기리는 문화는 원래 인간들 사이에선 유명한 건가요?"


"꽤 유명하지. 내가 알기로는 지구 출신이거나 지구 방식 교육을 받은 사람은 다 챙길 거야. 죽음이라는 것을 인간은 꽤 민감하게 받아들였거든. 그 사람이 맺은 관계, 쌓은 재산, 이룬 업적이 전부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만 남게 되는 거니까. 아무튼, 식사 준비나 계속할까?"


둘이서 다시 책상에 접시와 식기를 차리고 몬붕은 의자, 루미는 침대에 앉아 접시 뚜껑을 열었다. 뚜껑이 보온 역할을 잘해 주었는지 음식은 아직 자신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려주듯 김을 내고 있었다. 몬붕의 입에는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식사 인사를 하고 포크를 집어 든 몬붕은, 루미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있는 것과 책상 위에 자신의 것 말고는 식기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뭐야, 결국은 내가 먹여줘야 하는 거였잖아.`라고 생각하며 굵은 면을 포크로 말아 크림소스를 찍은 다음 루미 쪽으로 가져갔다.


"자, 루미. 아~"


그러자 루미는 얼굴을 붉히며 포크에 감겨 있던 면을 전부 빨아들였다. 몬붕은 루미가 맛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서 식사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이지만, 음식을 냠냠거리는 귀여운 모습에 정신이 팔려 맛에 관한 이야기를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기 다루듯 아~ 하라고 한 게 부끄러워서 얼굴이 빨개진 건가? 역시 루미는 귀엽네~`


`이제 주인님이 저 포크로 식사하시면 간접키스가 되는 건가? 꺄~ 아냐, 잠깐만. 그냥 지금 진짜 키스를 해버리면 간접키스로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잖아. 그런데 밥 먹을 때 건들지 말라는 이야기를 저번에 내가 해버렸네. 으~ 이번은 내가 참아야겠다.`


두 사람의 생각은 달랐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루미는 처음으로 주인이 밥을 먹여준 사건에 대해 기록하며, 음식의 맛을 분석하고 있었다. 음식에 관심이 많은 주인인 만큼 자신이 이 회사 식당의 크림 스파게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약간은 두껍지만 부드럽게 씹히는 밀가루 면을 기름에 볶은 맛이네요. 소스에선 고소하고 약간 짜고 아주 살짝 단맛이 납니다. 아마 제가 인간이었다면 갈증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네요. 전체적으로 보면 최상급은 아니지만, 꽤 맛있습니다. 아마 주인님께서 먹여줘서 더 맛있는 것 일지도요."


마지막 말을 들은 몬붕은 `역시 주인을 행복하게 할 줄 아는 오토마톤이야.`라고 생각하며 루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루미 역시 자신이 한 말에 대한 보답을 받자 생글거리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 이제 계속 루미 한 입, 나 한 입 먹어야 하는 건가? 꽤 오래 걸리겠네."


그렇게 이야기한 몬붕은 이번에는 얇은 면을 카레 소스에 찍은 다음 먹기 시작했다. 간접키스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남의 침으로 더러워진 거 아니냐고 생각하기에는 루미에게서 나오는 액체 대부분이 대기 중의 수분을 끌어모은 것이라는 것을 배운 상태라 거부감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루미는 그 말을 듣고는 또 한 번 자신이 나설 차례가 왔다는 듯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런 문제라면 제가 해결할 수 있겠네요."


그렇게 이야기한 루미는 자신의 한쪽 팔의 덮개를 열더니 숟가락, 젓가락, 포크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마감 처리가 잘 된 나이프까지 포함한 식기 세트를 꺼내기 시작했다.


"뭐야, 루미. 이런 것까지 챙겨 다니는 거야?"


"혹시라도 극한 상황에 몰렸을 때 주인님께서 손으로 음식을 섭취하시면 안 되니까요."


"아하. 그럼 식기 전에 얼른 먹자."


"알겠습니다, 주인님."


그렇게 몬붕과 루미는 서로 식당 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샐러드 같은 경우에는 태워도 에너지로 바꿀 게 별로 없다며 루미는 먹기를 거부하다가, 그래도 혹시 맛을 분석할 수는 있지 않으냐는 몬붕에 말에 마지못해 조금 먹는 일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아무런 문제 없는 식탁이었다.


밥을 다 먹은 몬붕은 이빨을 닦으러 다시 욕실에 들어갔고, 루미는 접시를 반납하고 오겠다며 식당으로 돌아갔다. 양치질을 하고 있으려니 내일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신이 살아 돌아온 건지 설명해야 할 일에 머리가 아파져 오는 것을 느낀 몬붕은, 빠르게 세수를 마치고는 침대에 뛰어들었다. 따뜻하고 푹신한 그 느낌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회사는 직원 서비스가 루미 이후로 서서히 개선되고 있었지만, 몬붕은 그전부터 침대의 매트리스를 더 좋은 것으로 바꿔 설치해놓았었다. 푹 쉬어야 다음 날 열심히 일할 수 있어서 필수적인 절차였다.


침대에 누워 박수를 두 번 쳐서 음성인식기에 불 끄라는 명령을 내리고 잠들 준비를 하고 있으려니 루미가 카트를 반납하고 돌아왔다.


“주인님, 돌아왔습니다.”


“항상 고마워 루미. 이제 같이 잘까? 내가 루미를 위해 잘 준비를 도와줘야 하나?”


루미는 스테이션에서 충전 케이블을 끌어온 다음 자신의 등 쪽의 충전 단자에 꽂으려다가, 침대 껴안기에 방해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머리 뒤쪽에 꽂아 충전을 시작했다. 도와주실 필요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기에 몬붕은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충전 시작, 잔여 전력 1.2%, 절전모드 사용하지 않음. 아, 드디어 마음이 좀 놓이네요.”


“와, 루미 오늘 엄청나게 힘썼구나. 고생 많이 했네. 그런데 혹시 1%면 몇 시간 기동 가능한 거야?”


전투가 조금만 더 길어졌어도 루미가 꺼질 수 있었다는 데 살짝 충격을 받은 몬붕이었지만, 이미 지난 일인 데다 지금은 안전한 곳에 도착한 상태였기에 호기심이 더 앞섰다.


“평범하게 주인님의 가정부 역할을 한다면 5시간 정도입니다. 절전 상태에선 훨씬 더 오래 버틸 수 있고, 모듈 장착으로 인한 무게 증가나 추가 프로그램 등을 설치해서 사용한다면 최소 2시간 정도겠네요.”


“대충 일반 업무가 5시간, 최고 성능에서 2시간인 건가. 알겠어.”


“그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불도 꺼졌고, 충전도 시작되었으니 옷을 벗어야겠네요.”


그 말을 들은 몬붕은 얼굴을 붉히며 침대에서 펄쩍 뛰었다.


“루미, 우리 약속 기억하지! 회사에선 안 돼!”


“물론입니다. 제 메모리엔 이상이 없으니까요. 저는 메이드복을 입고 잠드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잠옷으로 갈아입는다는 뜻으로 한 이야기였는데, 주인님께서 야한 생각을 하셨다면, 얼마든지 응해 드리겠습니다.”


“아냐아냐아니야. 함부로 장난치면 안 돼, 알았지?”


‘하지만 주인님의 다양한 표정을 기록해두고 싶은걸요.’


“알겠습니다. 주인님.”


한숨을 푹 내쉬며 생각해 보면 저번 안아주기 때도 그렇고 루미는 장난치는 것을 꽤 즐기는 것 같았다. 몬붕은 꽤 진지하게 이런 것도 설정으로 바꿔버려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루미가 같이 누울 수 있도록 옆으로 살짝 비켜 주었다.


“자, 여기 누우면 될 거야. 좁아서 미안해.”


“저는 좁은 공간이라도 전혀 문제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자, 이제 루미를 안아줘야지.”


몬붕은 양팔을 쫙 벌려 옆에 누운 루미를 끌어안았다. 푹신하고 말랑한 게 기분이 상당히 좋았다. 옛날에 대형 베개에 사람 그림을 그린 상품을 파는 상점을 볼 때는 무식한 아이디어 같았지만, 지금은 이해가 되려고 할 정도였으니까.


“햐읏!”


“응?”


깜짝 놀라 팔을 확 떼니 어둠 속에서 루미의 눈이 반짝이며 온몸이 증기를 뿜고 있었다. 그렇게 자극이 강했었나? 설마 고장이라도 난 건가?


“루미, 왜 그래? 내, 내가 또 무슨 실수를 한 건가?”


루미는 다시 한 번 자신만의 세계에서 어떤 대답을 주인님께 해 드려야 할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찾기 시작했다.


‘방금 뭐야? 주인님 팔이 가슴 위로 스트레이트로 지나갔어! 어떡해!’


‘아이, 더는 못 참겠다. 선이라는 게 있는데, 주인님께서 그걸 넘어버리신 거야!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주인님 탓이라고!’


‘조용히 해, 선을 다시 그으면 해결될 문제잖아? 지금까지 주인님께 심어둔 좋은 인상 다 버리려고 그래?’


‘그럼 뭐라고 말해? 그냥 직구로 주인님, 제 가슴을 만지셨는데요. 그렇게 해?’


‘최대한 귀엽고 애달프게 해. 하응, 주인니임……. 그렇게 제 가슴을 만지고 싶으셨나요? 해 봐. 만약에 주인님이 선제공격하면 루미 잘못이 아니게 되는 거야.’


역시나 마지막으로 나온 말이 제일 괜찮다고 판단한 루미는, 그대로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행동으로는 윗옷을 아주 천천히 벗는 동작만 취하기로 했다.


“하읏, 주인님……. 그렇게도 제 가슴을 만지고 싶으셨나요? 미리 이야기해 주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미안, 진짜 미안해 루미! 여자 가슴을 함부로 만지다니 내가 미쳤었나 봐! 안 되겠다, 이대로는 잠을 못 자겠어. 진짜 미안한데 그냥 충전 스테이션으로 ㄷ-”


루미는 주인이 자신의 유혹에 넘어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한 행동이 오히려 주인이 자신과 거리를 만들게 되어 당황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 원래 얻으려고 한 만큼은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한 루미는 진정하고 다음 말을 골랐다.


“아니에요, 루미는 주인님 것인걸요. 함부로 만지셔도 괜찮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을 뿐이지 푹신푹신한 침대 위에서 주인님 품속에 안기기까지 하니까 정말 행복했어요. 주인님께서 놀라시지 않도록 자세를 바꿀 테니, 계속 안아주시면 안 될까요?”


“그……. 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휴, 나도 계속 놀라니까 너무 피곤해서 얼른 자야겠네, 자 루미. 조심해서 들어와. 아마 몇 번 머리도 쓰다듬어 줄 텐데 도중에 내가 잠들어도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루미는 주인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해서 가슴이 닿지 않도록 주인의 품속에 파고들었다. 주인은 자신이 한 말대로 루미의 허리에 감기지 않은 다른 손으로 루미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더니, 곧 코를 골며 잠들었다.


‘주인님 너무 좋아! 음, 냄새는 장미 향 비누 냄새네. 체온은 36.4도로 정상 체온이야. 그런데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건 주인님의 상냥함 때문일까? 아아,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그래, 이 기억은 백업해놔야지~’


주인의 품속에서 루미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몸을 돌려 몬붕과 눈을 마주하는 자세로 바꾸었다. 그저 저 잠자는 귀여운 얼굴만 보고 있어도 행복할 것 같았기에 자는 모습을 계속 녹화하다가, 첫 키스를 확 뺏어버릴까 하고 이마가 닿는 거리까지 입술을 가져갔지만, 주인을 배신하는 것 같아 포기했다. 자신 또한 이제 절전모드로 들어가지 않으면 주인이 깨어날 때 완전 충전 상태가 되기 어렵다는 계산이 나와 주인과 같이 잠들려고 했으나 그 순간, 주인이 내일 할 일이 꽤 많다는 것이 떠올랐다.


‘피곤하신 주인님 대신 일정을 짜 둬야지. 이건 비서들이 하는 일이지만, 루미는 훌륭한 메이드니까 이 정도는 별거 아니야. 그리고 쓰레기 같은 자식 방에 설치해뒀던 이 장치는……. 충전 효율이 매우 낮습니다. 절전모드로 전환합니다. 주인님과 함께 충전된 아침을 맞이하십시오.’


루미는 주인의 내일 할 일인 회사에서 보수를 받는 것부터 그리스와 계약을 맺는 것까지 시간 순서를 맞춰 설계해두려고 했으나 내일의 시작을 완전히 충전된 상태로 맞이하고 싶었기에 주인과 같이 잠들기로 했다.


그 날, 몬붕의 숙소에는 평소처럼 외롭게 한 사람을 품은 침대 대신, 행복한 두 사람을 품은 침대가 있었다.


------


6편이 개념글을 가서 기분이 뛸 듯이 좋았습니다. 댓글도 많이 달렸었고요. 원래대로라면 여기서 우주선을 구매 또는 탑승을 해야 하는데, 루미가 귀여워서 안고 잠드는 데 까지만 썼는데도 이만큼 길어졌네요. 사실 쉬어가는 편으로 쓰고 싶기도 했고요. 쓰다 보니 왜 나한텐 루미가 없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큰 우주선! 모험도 엄청 크겠지! 하고 기대하셨던 분들에겐 죄송합니다. 그래도 방향이 잡혀서 다음편은 조금 더 빨리 나올 것 같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항상 감사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전편 링크만 남길 생각입니다. 계속 1편까지 남기면 보기에도 별로일 것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