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우주 노동자 몬붕과 오토마톤 루미의 모험

글 모음 : https://arca.live/b/monmusu/25564643


이 소설은 허구이며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등은 실존하는 것과 일체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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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ㄱ...”

 

“잠깐 루미. 저, 안녕하세요. 지금 제 친구들이 여기 사는 누군가에게 잡혀갔는데 혹시 친구들을 되찾는 걸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몬붕이 루미를 제지하며 털뭉치에게 이야기했다. 상대 또한 이쪽을 확인하고 무기를 내려두었기에, 똑같이 총을 쥐긴 했지만, 땅을 조준한 상태로 말이다.

 

“납치? 응, 알 것 같아. 도와줄게. 먼저 집에 돌아가야 해.”

 

“정말 급한 상황인데, 혹시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나요?”

 

“응, 집에, 무기가 있어.”

 

그 말을 들은 루미는 자신의 무장을 전부 사격준비 상태로 꺼내놓았다.

 

“무기라면 저한테도 충분히 많이 있어요. 혹시 단순한 화력으로 상대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맞아. 화살이나 총알, 안 통해. 폭탄 던지면, 잡혀 있는 친구?”

 

“인질이요.”

 

“인질도 당해.”

 

털뭉치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확실히 몬붕과 루미보다 아는 것이 많아 보였다. 확실히 처리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시간을 쓸 각오를 하고, 몬붕은 집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물어보았다.

 

“틀린 말은 아니네요. 그래도 시간이 촉박하니, 집이 있는 위치를 알려주시면 루미가 빠르게 데려다 줄 수 있을 겁니다.”

 

“잠깐만요, 주인님. 이게 함정이면 어쩌죠? 집에 갔더니 포위당하기라도 하면 어떡해요?”

 

신중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분명히 이 털뭉치는 선의의 의도를 가진 것 같고,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이쪽은 이 행성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고, 털뭉치는 먼저 이곳에 있던 존재로 둘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것도 그래. 루미, 혹시 거짓말탐지기 같은 기능도 있니?”

 

“네, 물론이죠, 음, 거기 흰털 씨?”

 

“흰색, 털? 나 말이야?”

 

“잠시 제 손을 잡아 주시겠어요?”

 

“그게, 도움이 되는 거야? 그럼 할게.”

 

흰색 털뭉치가 수풀 밖으로 빠져나온 모습을 보니, 눈에는 가면을 썼고 다리가 없는 인간 형태의 모습이 들어왔다. 정확히는 인간의 상반신에 뱀의 하반신을 가진 라미아 종족, 그 중 하나인 버닙이었다. 굉장히 희귀한 종족으로, 물방울처럼 사회에 섞여 살아가는 지능적인 슬라임만큼이나 숫자가 적고 알려진 사실이 별로 없는 종족이지만 지금 둘에게는 그 사실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 그림을 남긴 종족이겠지.’

‘언제부터 여기서 살고 있었던 걸까?’

 

곧 흰털 씨 -루미가 급조한 이름- 가 루미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자마자 루미는 바로 내부에 탑재된 거짓말탐지기를 작동시켰다.

 

“음, 거짓말을 하는 반응은 없네요.”

 

“응. 나, 그 녀석 없애고 싶었어. 거짓말, 안 해. 아, 집은 저쪽이야.”

 

“비행 준비를 해야겠네요. 주인님, 흰털 씨, 저를 꽉 잡고 계세요!”

 

“응. 응? 알았어. 그런데 흰털이라는 이름, 별로인 거 같아. 나중에 인간이 새로 지어 줘.”

 

“알겠어요. 제 친구들을 구하고 나면 마음에 드는 걸로 지어 드릴게요.”

 

루미는 그 말을 듣고 무슨 이름이 붙을지 대충 예상해보았다. 자신의 이름을 루미로, 우주선의 이름을 돌하우스로, 본인의 이름을 테디베어로 지었으니 아마 푹신푹신한 털 느낌이 나도록 플러피로 지어 주지 않을까. 하고.

 

“정말? 멋진 이름 좋아. 나, 열심히 도와야겠네.”

 

“이제 출발합니다!”

 

루미는 양팔로 몬붕을 잡았고, 흰털 씨는 루미에게 업히듯 등 뒤에 매달려 꼬리는 아래로 축 늘어뜨린 자세로 세 명의 출발 준비가 완료되었다. 루미는 흰털 씨가 자신의 몸에 꼬리를 말지 않아 비행에 큰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인간의 다리보다 긴 꼬리의 무게가 좀 나가기는 했지만, 최근에 받은 출력 개조 덕분에 큰 문제는 없었다.

 

“우와, 새들은 이런 기분일까?”

 

“대부분의 새는 저보다 느리지만요.”

 

“응, 너, 진짜로 빨라. 그런데 둘, 이름이 뭐야?”

 

“제 이름은 루미에요. 주인님께서 지어 주셨죠.”

 

“오, 이름, 멋있어. 그럼 인간 이름은 주인님이야?”

 

“아니요, 제 이름은 하트워밍 테디베어입니다.”

 

“테디베어, 알겠어. 나한테도 멋진 이름 지어줄 거야?”

 

“아까도 이야기해 드렸지만, 제 친구들을 구하는 데 성공하면 얼마든지요.”

 

똑같은 말을 두 번이나 하는 흰털 씨 때문에 자신이 멍청한 사람의 말을 따르고 있는 건 아닌지 초조해진 몬붕은 ‘이름이 없다는 건 이름을 지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건가? 설마 여기 혼자 남은 거 아니야? 그럼 불쌍하게 생각해줘야지. 짜증 내지 말고.’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곧 루미의 아래에 나무와 풀, 진흙으로 지어진 건물 몇 채가 나타났다.

 

“저기, 아래 보이는 거, 우리 집.”

 

“알겠어요. 곧 착륙할게요.”

 

루미는 착지한 뒤 몬붕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고, 흰털 씨는 착지와 동시에 작은 움막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다시 둘이 된 몬붕과 루미는 주변을 둘러보며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다.

 

“건물이 하나보다 많은 걸 보면 흰털 씨의 가족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째 다들 텅텅 비어 있네. 분위기가 아주 썰렁해.”

 

“네, 대충 봐도 최근에 사람이 사용했던 흔적은 거의 없네요. 예를 들면 흰털 씨가 들어간 집 말고는 불을 피우고 남은 재가 없고, 식기나 무기도 관리가 안 되어 있어요.”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선원들을 구하고 나서 들어야 하겠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네.”

 

몬붕과 루미가 주변을 둘러보며 함정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 있는 동안, 흰털 씨는 가루가 든 가죽 주머니와 코 부분에 약초가 들어간 가면을 가져왔다. 그리고는 양손에 가면을 쥐고 둘을 향해 내밀었다.

 

“이거, 써. 녀석의 냄새 맡으면, 정신이 이상해져.”

 

“정신에 직접 영향을 주는 가스를 사용하나 봐. 고맙습니다.”

 

“저한테는 필요 없어요. 저는 기계거든요.”

 

“기계? 우주선 같은 거야?”

 

“네. 맞아요. 강철로 만든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멋있다. 아, 그리고 이건 풀 죽이는 약이야. 덩굴줄기들이 우리 공격할 때 이거 쓰면 죽일 수 있어. 우리 가족들이 직접 만들었어.”

 

가면 하나를 자신의 가죽 가방에 집어넣은 흰털 씨는 이번엔 가루가 든 주머니를 펼쳐 보이며 이야기했다. 

 

“그런 덩굴 따위, 잘라버리면 그만 아닌가요?”

 

“나도 비슷한 생각 했었어. 그런데 금방 다시 자라나. 아, 직접 보여 줄게.”

 

흰털 씨는 주머니에서 가루를 조금 집더니, 근처에 자라나 있던 덩굴을 향해 집어 던졌다. 곧 가루가 닿은 부분에서 연기가 나며 타는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뭐야, 제초제가 아니라 소이제 같은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주인님. 보시다시피 흰털 씨의 손은 멀쩡하잖아요?”

 

“제초? 소이? 그런 거 몰라. 어른들이 풀한테 뿌리면 물이랑 영양을 뺏어간대. 그리고 풀들은 그거 둘이 없으면 죽는다고 했어.”

 

“아무튼 상대하는 적이 식물 계열이고, 재생 능력이 있다면 이 가루는 확실히 큰 피해를 줄 수 있겠네요. 혹시 녀석에 대한 다른 정보도 있나요?”

 

“음....... 아! 생각났어. 주변에 벌레들이 녀석 지켜 줘. 녀석이 자기 꿀을 먹인 것 같아. 벌레들은 꿀을 지키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방울이가 벌레가 없다고 한 거였군.’

‘벌레들이 다 한군데 모여 있으니까, 물방울 씨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어.’

 

“정리하면, 식물계통에 재생하는 덩굴을 조종하고, 정신에 간섭하는 가스를 뿌리면서, 주변 동물들이 보호하고 있는 녀석이 인질까지 잡고 있다는 거네요.”

 

“맞아 루미. 마지막 부분만 없었다면 정면승부도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 그랬다간 화가 난 녀석이 선원들의 목숨을 가지고 협박을 할 수도 있겠어. 가장 좋은 방법은 기습하는 건데, 이런 녀석일수록 꼭꼭 숨어있을 테지.”

 

“맞아. 하지만 녀석, 뿌리로 움직여서 안 빨라.”

 

그 말을 들은 몬붕과 루미는 한 숨 놓을 수 있었다. 느리다는 것은 사격에 취약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인질들도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을 것이며 우주선을 공격할 수 없다는 뜻도 되니까.

 

“어디 있는지는 흰털 씨가 알고 계시겠죠? 그렇다면 어서 움직이죠.”

 

“그래. 일단 우주선으로 돌아가자. 아까처럼 루미한테 업히세요.”

 

“알겠어. 그런데 방금 테디베어한테서 이상한 소리 났어.”

 

몬붕이 자신의 주머니를 확인하자,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진동으로 설정한 상태로 너무 긴장해서 울리고 있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혹시나 지금 잡혀 있을 셋의 전화일지도 몰라 아주 빠르게 전화를 주머니에서 꺼내 들었다.

 

“여보세요?”

 

“선장님, 돌하우스입니다. 통신을 기록 중에 선원분들이 실종되었음을 의미하는 대화 내용이 기록되어 연합에 구조 요청을 보냈습니다.”

 

“고마워, 정말 잘했어! 얼마나 걸린대?”

 

“연합 경계에 걸친 곳에서는 범죄를 저지르고 연합 밖으로 달아나려는 범죄자들의 숫자가 많아 출동 가능한 인원이 없다고 합니다. 대신 모든 경찰 병력에게 현재 위치를 알려 두었으니, 연합의 중심부 쪽에서 출동 가능한 인원들을 곧 보낼 것 같습니다. 연합 경찰 표준 고속함의 속도를 생각해보면, 거리에 따라 다르겠지만 3시간 이상 걸릴 것 같습니다.”

 

“이런. 그때까지 기다리긴 힘들겠어. 나랑 루미랑 그리고 여기 현지 사람이랑 셋이서 구하러 가려고 하는데, 돌하우스에 돌아가서 그리스 씨가 만든 포탑이랑 통신기 추적 장비를 챙긴 다음 갈 거야. 혹시 입구에 방금 말한 것들을 준비해 줄 수 있을까?”

 

“알겠습니다. 모두를 무사히 구할 수 있으면 좋겠군요. 그리고 전투를 할 것이라면 토착 생물들을 처치해야 할지도 모르니, 연합에 행성 파괴에 관한 허가 또한 받아놓겠습니다. 그럼, 전화 끊겠습니다.”

 

몬붕은 아까의 루미도 그렇고, 돌하우스도 그렇고 인공지능들은 정말 이성적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자신은 선원들을 구할 생각에 그런 절차를 까맣게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화를 끊고 루미 쪽을 보니, 흰털 씨는 자기가 챙겨 온 물건들을 전부 가방에 집어넣고 벌써 루미에게 업혀 있었다.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주인님! 제가 들어 드릴게요!”

 

“그래. 다시 한 번 신세 좀 질게.”

 

루미가 몬붕을 안아 올리려던 그 순간, 이번에는 통신기가 울렸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선원들의 구조요청 또는 적이 통신기를 빼앗아 요구사항을 말하려는 것 둘 밖에 없었기에, 루미는 비행 준비를 취소했고, 흰털 씨도 분위기를 읽고는 루미의 등에서 내려왔다. 통신기의 화면에는 숫자 3이 쓰여 있었는데, 돌하우스에 세 번째로 합류한 그리스의 통신기로부터 신호를 잡았다는 뜻이었다.

 

몬붕은 떨리는 손으로 통신기의 연결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먼저 말을 하지는 않았다. 몬무스들이 탐내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이쪽에 먼저 밝히는 것도 좋을 것이 없었기에, 통신은 루미가 담당하기로 했다.

 

“......”

 

“뭐야 이거, 이제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는 거겠지?”

 

‘아까도 들었던 그 목소리로군. 납치범의 목소리.’

 

“흠흠, 지금 나는 고래 꼬리를 가진 사람이랑 복슬한 귀가 달린 기술자를 잡고 있다. 지금까지 시계 없이 살아서 시간은 잘 모르겠고, 해가 지기 전에 우주선을 넘기면 둘을 풀어주지.”

 

“둘이라고요? 슬라임도 한 명 있었을 텐데!”

 

“맞아. 있었지! 그런데 어떻게 묶어놔야 할지 몰라서 그냥 빨아들였지. 물 마시는 것처럼!”

 

루미가 걱정스러워하며 몬붕을 쳐다보자, 몬붕은 입 모양으로 아주 심한 욕을 하고 있었다. 

 

“그럼 지금 슬라임을 죽였다는 건가요?”

 

“아니, 우주선을 넘기면 뱉어줄게. 그래도 물을 좀 빨아들여서 이전만큼 커다랗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알겠어요. 어디서 만날지 위치를 알려주세요.”

 

“얘네들이랑 일행이었다면 강을 봤겠지? 강 따라 내려오면 이쪽으로 덩굴들이랑 꽃들이 안내해 줄 거야. 무기랑 동료는 데려오지 말고. 그럼 시간이 흐르고 있으니 빨리 생각하라고~”

 

통신이 종료되자, 몬붕은 물방울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분노를 터트렸다.

 

“으악! 방울이를 죽인 줄 알았잖아! 망할 년!”

 

“서두르죠, 주인님!”

 

“잠깐만, 그 전에. 혹시 해가 지기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을까요?”

 

“알겠어, 시계 보고 올게.”

 

흰털 씨는 자기가 물건을 가지고 나왔던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곧 붉은 디지털 숫자가 표시되고 있는 시계를 하나 가지고 나왔다.

 

“봐, 3시 16분이야. 그리고 5시에 어두워져.”

 

‘루미가 최근 착륙한 우주선이 없는 행성이라고 했지만, 원시적인 도구 중에 깡통이나 전자시계가 나오는 걸 보면 식별 불가능하거나 일련번호를 지운 우주선이 분명 여기 왔던 걸지도 몰라. 나중에 흰털 씨에게 물어봐야 할 게 점점 더 많아지네.’

 

시계를 보고 갑자기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 몬붕은 루미에게서 통신기를 건네받고 루미의 손을 잡았다. 그것을 본 흰털 씨 또한 루미에게 다시 매달렸다.

 

“경찰 지원은 못 받겠네. 우리한테 남은 시간은 100분 정도. 고마워요, 흰털 씨. 그럼 출발하자, 루미!”

 

“출발합니다!”

 

루미는 비행을 시작하고 돌하우스 방향으로 빠르게 가속했다. 상대가 협상을 걸어왔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무기를 챙겨두는 것은 일종의 보험이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인질을 어디에 숨겨놓았을지도 모르니 통신기 추적 장비 또한 필요했다. 물론 상대가 인질들의 무장을 해제해서 장비들을 어딘가에 쌓아두었다면 통신기만 찾아서는 사람을 찾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받을 수 있는 모든 도움을 받아야 했다.

 

최고 속력을 낸 루미 덕에, 돌하우스의 입구에는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돌하우스 또한 선장의 도착과 처음 보는 버닙이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을 아까의 통화로 미리 알고 있었기에 바로 문을 열어 주었고, 내부에 그리스의 포탑을 대기시켜 놓았다.

 

몬붕이 포탑을 작동시키자, 삐빅거리는 소리를 내며 전원이 켜지기는 했지만 몬붕을 따라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그리스가 자신 이외의 사람을 따라다니지 않도록 잠금이나 보안 장치를 걸어 둔 것 같았다.

 

“이런, 얘네들은 못 쓰겠군. 만약 저 쪽이 돌하우스를 습격하려고 한다면 지원 사격을 해 주긴 하겠지만.”

 

“주인님, 추적 장치가 없어요!”

 

“아, 루미 씨. 추적 장치는 크고 무거운 편이라 제가 직접 운영하면서 여러분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 나을 것 같습니다. 제 로봇팔로 작동 가능한 걸 확인했거든요. 포탑에 대해서는 유감입니다.”

 

“그렇군요, 하지만 돌하우스 씨가 저희에게 계속 정보를 이야기해 준다면 소리 때문에 저희가 숨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요.”

 

“그거라면 괜찮습니다. 선원들이 사용하라고 만든 귀마개 크기의 수신기가 선장실에 있으니, 가져가서 사용하시면 소음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그건 내가 가지러 갈게. 혹시 루미도 따로 챙겨야 하는 거 있어?”

 

“으, 아까부터 고속 비행을 해서 보조 연료를 쓰고 있었거든요. 주 연료를 써버리면 충전하는 데 오래 걸리니까 바로 교환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제 방에서 연료를 좀 챙겨와야겠어요.”

 

“좋아. 아, 흰털 씨는 여기서 잠깐 쉬고 계세요. 돌하우스,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분이니까 간식이라도 필요하다고 하면 좀 드려.”

 

“알겠습니다. 선장님.”

 

돌하우스의 유일한 버닙인 흰털 씨는 모든 것이 신기한 것투성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있었다. 가지고 있던 가장 최신 기술이 전자시계였으니, 현시대 과학의 집합체 중 하나인 우주선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저기, 방금 말한 거 우주선이야?”

 

“네, 저희 선원들의 구출을 도와주신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합니다. 혹시 필요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깨끗한 물 같은 음료수는 어떨까요?”

 

“응,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 싶어.”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시계의 삑삑거리는 알람 소리만 듣던 흰털 씨는 사람 말을 할 줄 아는 기계인 돌하우스가 대단한 물건인 듯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 곧 그 시선은 물컵이 올려진 채로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의자로 옮겨졌다.

 

“오.......”

 

“마시기 좋은, 아주 차갑지는 않지만 시원한 물입니다.”

 

“고마워.”

 

“아닙니다. 저 말고 선장님께 감사하시는 게 맞겠죠. 혹시 뭔가 드시고 싶은 건 있나요?”

 

“괜찮아. 지금 배 안 고파.”

 

“알겠습니다.”

 

흰털 씨가 컵을 들고 이리저리 살피다가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분명 같은 물인데도 강에서 떠 마시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물을 다 마시고 잔을 다시 의자에 올려놓자, 의자는 아까와 반대로 서서히 멀어져갔다. 동시에 방에서 이런저런 준비를 마친 몬붕과 루미가 흰털 씨에게 가까워졌다.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84분 정도에요. 거리와 속도로 계산해 보면 제가 7분 이내에 모셔다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간제한이 있는 문제였군요. 방금 추적 장치를 가동한 결과 3개의 통신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두 개는 같은 위치에 있고, 하나는 거기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네요. 위치를 선장님과 루미 씨에게 전송해 두겠습니다.”

 

“혼자 떨어져 있는 건 납치범인 것 같고. 가만있는 건 사람인지 통신기인지 알 수가 없겠네. 그리고 우리는 일단 협상을 하는 척을 해야 하니까 통신기가 있는 위치로 바로 가는 게 아니라 강가를 따라 하류 방향으로 가야 해. 일단 출발하자.”

 

“모두 함께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다시 돌하우스는 출입구를 열어 주었고, 공기가 오염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진공실 과정은 건너뛰었다. 흰털 씨는 돌하우스 밖으로 나온 뒤 돌하우스를 향해 인사했다.

 

“잘 있어, 우주선 씨.”

 

“주인님, 그런데 정말로 돌하우스를 넘겨줄 생각이세요?”

 

강가 하류 방향으로 아까와 같이 루미가 다른 둘을 데리고 비행하던 도중, 루미는 몬붕에게 아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건넸다.

 

“우주선은 다시 구할 수 있지만, 선원들은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순순히 넘겨주지는 않을 거야. 돌하우스에게도 혹시 우리가 돌아오지 못하고 이상한 식물 계열 여자가 탑승한다면 문을 갑자기 닫아서 압사시키던지 아예 주포로 쏴 버리라고 해 놨거든.”

 

‘역시 주인님이셔. 남들을 챙기는 멋진 모습 좀 봐! 하지만 주인님이 돌아오지 못하는 일은 없을 거야. 만약 협상이 잘못되면 바로 납치범의 목이든 뿌리든 뽑아 버려야지.’

 

“그리고, 저런 녀석이라면 제대로 협상이 될 것 같지도 않아. 셋을 한 번에 잡았으니, 이번에도 협상하러 나선 사람을 제압하고 우주선 조종 권한을 넘겨받으려고 하겠지.”

 

“아까 납치범과 제가 대신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번 협상에도 제가 나서야겠네요.”

 

“미안해, 루미. 하지만 부탁 좀 할게.”

 

“물론이죠. 음, 그러고 보니 흰털 씨?”

 

“응?”

 

“녀석을 잘 아는 걸 보면 전에 만난 적이 있으실 것 같은데, 저랑 같이 가면 말 대신 주먹이 먼저 날아오지 않을까요?”

 

“그럼 강가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으니까, 강 속에 숨어 있을게.”

 

“상대는 루미 혼자 오는 줄 알고 있을 테니까. 나도 어디 숨어 있어야 하나.”

 

몬붕이 말을 마치자마자, 루미 항공의 아래에는 나무가 없이 꽃이 가득한, 빽빽한 나무들 사이에서는 어색한 평지가 펼쳐졌다. 조종사와 탑승객 모두 납치범에게 가까워졌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76분이 남아 있었다. 루미가 이야기한 것보다 1분 정도 더 걸리긴 했지만,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기에 몬붕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저렇게 숨을 곳이 없으면 나도 흰털 씨 따라서 강 속에 숨어야겠다.”

 

“주인님은 평범한 인간이라 오래 숨을 참을 수 없을 텐데요?!”

 

“머리만 내밀고 있지 뭐. 일단 물에 들어가기 전에 장비들을 가방에 넣어야 하니까 강 반대편 나무들 사이에 내려 줘.”

 

“잠깐, 인간. 이거 써. 내려가면 이상한 냄새에 당할 거야.”

 

흰털 씨는 약초가 담긴 마스크를 내밀며 말했다.

 

“큰일 날 뻔했네요. 아, 돌하우스. 듣고 있으면 이쪽으로 오는 구조대원들에게 방독면이나 보호복도 준비해서 와야 한다고 전해 줘. 고맙습니다. 흰털 씨.”

 

“응, 사냥하기 전에는 준비 많이 해야 해. 싸움도 마찬가지.”

 

“그럼 착륙할게요.”

 

곧 루미는 꽃이 잔뜩 핀 평원의 반대편 강가에 착륙했다. 몬붕은 내리자마자 자신의 장비를 가방에 집어넣고 있었고, 흰털 씨는 날카로운 돌 단검을 꺼내 주변 나무를 찍어 수액을 묻히더니, 특수 제초제가 든 주머니에 넣었다 빼서 대 식물용 병기를 만들어내었다.

 

“아, 흰털 씨. 저도 똑같이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루미는 자신의 손 내부에 들어 있는 단검을 꺼내 흰털 씨에게 보여주며 질문했다. 생각 같아서는 총알에 발라두고 싶었지만, 화약에서 나오는 열에 제초제가 무슨 반응을 일으킬지 알 수 없는데다가, 장거리 전투에는 새로 장착한 에너지 무기인 열광선 총을 사용하면 될 일이었기에 쓰기 편한 단검을 선택한 것이다.

 

“알았어. 나무즙을 더 받아야겠네.”

 

“부탁해요.”

 

모든 준비가 끝나고, 이제 납치범이 알려준 장소로 이동하는 것만 남은 상황이었다. 몬붕은 회사에서 일할 때에도 꼭 들고 다니던 대구경 리볼버 하나는 유일하게 가방에 넣지 않은 채로 손에 쥐고 있었고, 흰털 씨도 칼이 물에 들어가면 안 되기에 똑같이 칼을 쥐고 있었다. 루미는 아직 기계라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기에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일 수 있도록 모든 무기를 집어넣고, 관절 부위를 가리는 옷을 입고 있었다.

 

“준비 다 끝났으면 어서 가자. 저쪽은 시계가 없으니 대충 어두워지자마자 우리 선원들을 처리하려고 들지도 몰라.”

 

“네, 먼저 가 볼게요. 돌하우스에서 받은 수신기에 제 마이크를 연결해뒀어요. 협상 진행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아실 수 있을 거에요.”

 

“조심해야 해. 루미마저 잃을 수는 없으니까.”

 

“물론이죠, 주인님!”

 

루미는 자신의 팔을 활짝 벌려 보였고, 몬붕은 루미를 꽉 안아 주었다. 일이 끝난 뒤 다시 서로 이렇게 안아줄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그런 포옹이었다. 흰털 씨도 주변 풀을 베며 자신의 단검을 시험하다가 그 광경에 이끌려 가만히 쳐다볼 정도였다.

 

곧바로 루미는 강을 헤엄쳐서 건너갔다. 날아서 건널 수도 있지만, 착륙하는 과정에서 상대를 보지 못했으니 상대도 아직은 이쪽이 기계라는 것을 알아채도록 해선 안 되기 때문이었다. 강을 건넌 루미가 꿈틀대는 덩굴줄기를 따라 몇십 걸음쯤 걸어간 뒤, 몬붕은 빈 물통 몇 개를 바닥에 매달아 물에 뜨는 가방을 만들어 리볼버를 그 위에 올린 채로 수영을 시작했다. 흰털 씨는 단검을 든 한쪽 팔은 물 밖으로 내놓고 다른 팔과 뱀 몸통과 꼬리를 이용해 미끄러지듯 따라붙었다.

 

“너무 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바로 따라붙을 수 있게.”

 

“괜찮아, 식물은 물 마셔야 해. 강이랑 멀지 않을 거야.”

 

“아, 그러네요. 그러면 밤이 되기 전에 만나자고 하는 것도.......”

 

“빛 없으면, 식물 못 자라나.”

 

“그렇죠. 그러니까 이렇게 나무 그림자가 없는 공간을 만들었겠죠.”

 

“응.”

 

몬붕은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꽃이 잔뜩 피어난 평지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곤충들이 여럿 날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약간의 기다림 이후, 수신기에서 톡톡 치는 소리가 두 번 들려왔다. 빠르게 자신의 시계를 확인한 몬붕은 루미가 이곳으로부터 200m 안쪽에 있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장비를 챙기고 뛰어가면 30초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다.

 

“흰털 씨, 여기서 협상 내용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알겠어. 지금 루미한테 집중하고 있을 테니까, 물 밖으로 나와서 기다리자.”

 

그렇게 말한 흰털 씨는 스르륵 하는 몸짓으로 빠르게 물속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서는 몬붕이 잡고 있던 가방을 물가로 끌어당겨 몬붕 또한 강가로 빠져나오는 것을 도와주었다.

 

“고맙습니다.”

 

“별거 아니야.”

 

“그나저나 아까 여기 있던 덩굴이 사라졌네요.”

 

“다른 사람이 따라올까 봐, 다시 거둬들였나 봐.”

 

몬붕이 덩굴이 있던 곳을 확인하자, 땅에 덩굴이 쓸린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식물치고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 같았다. 시선을 흰털 씨에게 옮기자, 자신과는 다르게 털이 전혀 젖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고 보면 초록과 갈색의 어두운색이 가득한 곳에서 흰털이 자라난다는 것은 전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사냥꾼으로서는 사냥감에 다가가기 전에 발견될 것이고 사냥감으로서는 사냥꾼의 눈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젖지 않는 털이라는 것은 진흙을 발라 위장하는 것도 평범한 피부나 털을 가진 종족보다 힘들 것 같았다. 몬붕은 나중에 흰털 씨에게 할 질문 하나를 머릿속에 추가해두었다.

 

다시 덩굴로 돌아와서, 쓸린 흔적을 쫓아가도 루미를 찾을 수 있겠지만 그랬다가는 주변을 지키고 있는 덩굴이나 동물들에게 걸릴 확률이 있었다. 다행히도, 몬붕에게는 루미가 주었던 시계를 이용해 루미의 위치를 쉽게 알아낼 수 있기에 굳이 흔적을 쫓을 필요는 없었다.

 

“괜찮아요. 저한텐 루미의 위치를 확인할 방법이 있으니까요.”

 

“잠깐, 방금 기계에서 소리 났어.”

 

몬붕은 그 말을 듣고는 시계를 조작하다 말고 바로 엎드렸다. 흰털 씨 또한 그 동작을 보고는 똑같이 따라 했다. 몬붕은 수신기의 소리가 흰털 씨에게도 들릴 수 있도록 자신과 흰털 씨 사이에 위치시킨 다음, 무슨 소리가 들리나 들어보기로 했다.

 

“음~ 시간 맞춰 왔네.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다고.”

 

“다른 분들을 구해 드려야 하니까요. 여기, 이게 우주선 통제 권한 카드에요. 다른 분들을 풀어 드리면 넘겨 드리죠.”

 

“좋아, 그런데 내가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떻게 알아? 먼저 날 너희 우주선에 데려다 줘. 거기서 그 카드인지 뭔지를 시험해 봐야겠어.”

 

“그러면 직접 우주선까지 가서 보시겠다는 건가요? 그동안 다른 분들의 안전은 보장되는 거고요?”

 

“물론이지, 그런데 보다시피 땅에 뿌리를 뻗고 있어서 거기까지 가는 데 오래 걸릴 것 같네. 대신 데려다 줄래?”

 

“그렇게 데려다 주는 동안 여기를 벗어나서, 벌레 소굴과 떨어졌을 때 제가 당신을 죽여 버릴지도 모르는데요.”

 

“그럴 수는 없을 걸? 얘네들은 나를 계속 따라다닐 거고, 어차피 내가 죽으면 니 친구들 곁에 있던 벌레들이 내 명령을 무시하고 인질들을 뜯어먹어 버릴 테니까.”

 

‘이런 망할! 인질이라는 게 이렇게 강력한 협상 수단이었다니! 저렇게 뻔뻔하게 굴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이젠 어떻게 하지? 진짜 돌하우스까지 데려가야 하나? 만약 그렇게 되면 돌하우스에 주포를 쏘지 말라고 해 둬야겠다. 아니면 주인님의 명령을 기다릴까?’

 

눈앞의 이름 모를 알라우네의 태도에 흰털 씨가 약을 발라 준 단검을 당장 꺼내 상대의 목에 꽂아넣고 싶은 심정을 참으며, 루미는 자신의 주인이 흰털 씨와 함께 공격 명령을 내릴지, 아니면 돌하우스로 알라우네를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내릴지 기다리기로 했다. 

 

“루미. 일단은 쟤가 시키는 대로 돌하우스로 데려가. 발포 명령은 취소해뒀어. 인질이 있는 이상 우리가 절대 불리한 협상이니까, 루미랑 알라우네가 자리를 비운 동안 흰털 씨랑 같이 인질을 찾아볼게.”

 

“네, 주인님. 다른 분들 구조도 중요하지만, 주인님의 안전도 꼭 챙기셔야 해요!”

 

“물론이지. 최대한 시간을 벌어 줘야 해.”

 

몬붕과 루미는 루미가 오토마톤이라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알라우네에게 들리지 않도록 통신기에 말을 하는 대신 루미가 말하고 싶은 단어를 음성 메시지로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잘 모르는 흰털 씨는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으, 알겠어요. 몸무게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뿌리로 움직이시는 게 힘들다면 제가 업어 드리죠.”

 

“진짜? 한 번도 업혀 본 적 없는데....... 땅 밖으로 뿌리를 꺼내면 왠지 힘이 빠질 거 같기도 하고. 뭐, 어차피 인질이 있으니 상관없나? 아니, 그래도 뿌리 좀 적셔두고 갈까?”

 

“그럼 물이라도 떠 드릴까요?”

 

“좋지! 한가득 담아 와 줘. 어차피 오면서 강을 지나쳤을 거 아냐.”

 

루미가 알라우네의 꽃 아래에 물을 잔뜩 뿌린 뒤, 알라우네는 땅속에서 뿌리를 뽑더니 팔로는 루미의 어깨를, 뿌리로는 등과 허리를 꽉 붙잡은 상태로 이동을 시작했다.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가 되자, 흰털 씨가 몬붕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럼, 우리 이제 잡혀간 사람들 찾아야 해?”

 

“네. 그런데 벌레들이 인질 옆에 잔뜩 있을 텐데. 벌레 죽이는 약이라도 어디서 가져와야 했나?”

 

“괜찮아. 나한테 다른 방법 있어. 어디 있는지만 알아내면 돼.”

 

“그럼 통신기 신호가 잡히는 방향으로 가 보죠. 돌하우스, 여기서 어느 방향이지?”

 

“거기서 북서쪽입니다. 거리는 250미터보다 약간 먼 것으로 표시되고 있습니다.”

 

“알겠어. 흰털 씨, 저쪽이에요.”

 

“응, 어서 가자.”

 

몬붕은 총성을 들은 알라우네가 돌아올까 봐 자신의 무기에 소음기를 장착했고, 흰털 씨는 자신의 가방에서 날카로운 쇳조각을 꺼내 제초제를 발랐다.

 

“그걸로 뭐 하시게요?”

 

“우리가 가는 방향에, 녀석이 심어져 있던 곳 있을 거야. 거기에 이거 묻어 두면 돼.”

 

“함정이군요. 하지만 죽여버리면 인질들 위치를 물어볼 수 없을 텐데요.”

 

“으응, 근데 돌아온다는 건 우주선에 안 탔다는 거. 카드가 가짜인 거 알아채고 루미 쓰러트렸다는 거. 그럼 살려두면 안 돼.”

 

“그럴 일이 없기만을 바라야겠네요.”

 

“사냥에는 확실한 거, 없어. 모든 일에 바로 반응해야 해.”

 

“그럼 계속 이동하죠. 그런데 무기는 그 돌 단검밖에 안 가지고 계신가요? 제 합성 철 단검이라도 빌려 드릴까요?”

 

“오오! 전에 그런 거 쓰는 사람 우리 행성에 왔었어. 돌 단검보다 뭐든 더 잘 잘랐어. 그런데 그런 귀한 거 빌려줘도 괜찮아?”

 

“물론이죠, 창이나 활도 없으신 것 같은데.”

 

“고마워. 잘 쓸게. 여기도 약을 발라야겠다.”

 

흰털 씨가 단검을 받은 다음 약을 바르는 동안, 두 사람은 알라우네가 있었던 곳에 도착했다. 정확히 알고 온 것은 아니지만, 땅에 남아있는 뿌리가 뽑힌 흔적, 주변보다 더 젖어있는 흙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 루미가 물을 뿌려 준 다음 뿌리를 들고 일어나 루미와 함께 돌하우스 방향으로 이동했으리라.

 

“그럼, 여기에 함정 설치해 둘게.”

 

“저도 도와 드릴게요. 같이 하면 더 빠르겠죠.”

 

“응, 좋아. 뾰족하니까 손 조심해야 돼.”

 

둘은 뿌리가 뽑힌 장소에 제초제가 발라진 철 조각들을 묻어놓기로 했다.. 이곳의 주인이 다시 돌아왔을 때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지 않도록, 땅을 헤집고 묻는 대신 철 조각들을 조심스럽게 땅속으로 밀어서 집어넣었다.

 

“아직까지 아무것도 안 튀어나오는 게 좀 이상하네요. 자기가 살던 곳인데 경비가 없다니.”

 

“루미를 못 믿어서 여기 있던 벌레들, 루미 몰래 데려갔을지도 몰라.”

 

“어쨌든 저희한텐 잘 된 일이네요. 이제 조금만 더 가면 통신기 신호가 잡히는 곳이 나올 텐데, 조심하세요.”

 

“알겠어. 조심해야 해.”

 

함정을 설치하고 다시 이동을 개시한 둘 앞에는 땅이 움푹 들어간, 그러니까 입구가 하늘을 향하고 있는 동굴 같은 곳이 나타났다. 동굴 안쪽으로는 주변 나무들과 식물들의 덩굴줄기가 밧줄처럼 길게 뻗어 있었다. 마치 동굴과 바깥을 잇는 사다리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런 줄기가. 

 

주변에 통신기를 보관해둘 만한 다른 곳이나 인질들이 보이지 않았기에, 몬붕은 저 굴속으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전에 확인해둬야 할 것들이 있었기에 먼저 통신기를 꺼내 들었다.

 

“돌하우스, 통신기 위치 한 번 더 확인해줘. 나랑 가까운 편이야?”

 

“네, 선장님. 선장님께서 향하시던 방향과 아주 가깝습니다.”

 

“좋아. 그럼 루미, 지금 어디쯤 도착했어?”

 

“절반 정도 온 것 같아요. 계속 갈까요?”

 

“그래. 그런데 아직은 루미가 오토마톤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안 되기도 하고, 시간도 끌어야 하니까 힘드니까 잠시 쉬어 가자는 식으로 시간을 더 끌어 봐.”

 

“아, 지금까지 한 번도 힘들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어서 그런 생각은 못 했었네요. 알겠어요, 주인님!”

 

통신기를 집어넣고 나니, 흰털 씨는 벌써 꼬리를 덩굴에 감고 있었다. 행동의 정확한 의미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내려갈 준비를 먼저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기에 회사에서 사용하던 조명봉을 벨트에서 하나 꺼내 손에 쥐고 자신 또한 내려갈 준비를 마쳤다.

 

밧줄 같은 게 있어 근처의 튼튼한 나무에 묶은 다음 내려간다면 훨씬 안전하겠지만, 밧줄이 없었고, 꼬리 무게 때문에 인간보다 몸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 편인 라미아 계열의 버닙인 흰털 씨가 덩굴을 타고 내려간다면 여러 가지 장비 때문에 무거워진 자신의 몸 또한 덩굴이 버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저 안에선 아무것도 안 보일 텐데, 먼저 이 조명봉을 던져 넣는 게 좋겠어요.”

 

몬붕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흰털 씨는 조명봉을 휙 낚아챘다.

 

“아니야. 내가 먼저 가서 둘러보고 올게.”

 

“하지만 뱀들은 시력이 나쁜 걸로 유명한데.......”

 

“대신 사냥감이 내는 열, 눈으로 볼 수 있어. 마스크 때문에 냄새는 못 맡지만.”

 

“그렇지만 식물 덩굴들이 도사리고 있으면 어떡해요? 그것들은 열을 내지 않을 것 같은데.”

 

“으~응. 그러네. 빛나는 막대기 먼저 던져 보자.”

 

흰털 씨는 여전히 덩굴에 몸을 감고 있는 채로 조명봉을 집어던졌다. 떨어지는 것을 보면 그렇게 깊은 것은 아닌 듯 보였고, 곧 안에서 깜짝 놀란 박쥐들이 밖으로 날아올랐다. 몬붕은 날개가 파닥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입구에서 몇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흰털 씨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날아오르는 박쥐 중 한 마리를 그 자리에서 꿀꺽 집어삼켰다.

 

“아, 미안. 배가 고파서.”

 

“괜찮아요. 박쥐들은 다 나간 것 같으니 제가 먼저 살펴볼게요.”

 

“나, 부족에서 제일 눈 좋아. 그리고 인간보다 튼튼해. 내가 먼저 갈래.”

 

“아, 알겠어요. 그런데 부족이라고요?”

 

흰털 씨는 덩굴을 감고 있는 꼬리의 힘을 살짝 풀어 덩굴을 타고 스르륵 내려가며 대답했다.

 

“지금은, 나밖에 없어.”

 

‘괜한 걸 물어봤네. 기분 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몬붕이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자니, 흰털 씨는 덩굴을 감고 있던 꼬리를 완전히 풀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어. 내려와도 괜찮아.”

 

“다행이네요. 금방 따라갈게요.”

몬붕 또한 덩굴을 붙잡고 매달린 다음, 손과 다리에 힘을 약간 빼 천천히 바닥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흰털 씨는 덩굴을 타느라 사지를 사용할 수 없는 몬붕을 위해 착지 지점 근처를 단검을 들고 살피며 경계를 해 주고 있었다. 

 

몬붕의 착지 이후, 흰털 씨는 경계를 풀고 떨어져 있던 조명봉을 단검을 쥔 손의 반대 손으로 주워들고는 전진했다. 몬붕은 나갈 때 다시 이곳을 찾기 편하도록 조명봉을 하나 더 꺼내어 바닥에 내려두고는 흰털 씨의 뒤를 따랐다.

 

곧이어, 여러 가지 잡동사니를 모아 놓은 곳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장난감이나 찻잔, 그리고 깡통과 같은 것들이었는데 조금 더 가까이 가자 몬붕에게 익숙한 물건들이 한두 개씩 보였다.

 

“이건....... 로켓 씨의 물건들인데! 주변에서 통신기랑 다른 사람 물건들도 찾을 수 있겠어!”

 

“그런데 잡혀간 친구들은 안 보여. 잠깐, 저쪽에서 열기를 봤어.”

 

“무슨, 사냥감인가요?”

 

“아니, 뭔지 모르겠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양이야. 그리고 갑자기 나타났어. 더 가까이 가서 뭔지 보고 올까?”

 

몬붕은 흰털 씨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무기를 조준하고 빈손으로는 조명봉을 꺼내 던졌다. 그러자, 덩굴에 묶여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덩굴 줄기를 이빨로 뜯어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선장님? 선장님이야?! 그럼 빨리 도망가! 여긴 함정이야!”

 

“로켓 씨?!”

 

“테디베어, 뒤에!”

 

흰털 씨의 말을 듣고 빠르게 뒤를 돌자, 그곳에는 엄청난 크기의 거미들이 둘, 아니 셋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심지어 몬붕과 흰털 씨가 타고 내려왔던 덩굴줄기들은 잘린 것인지, 아니면 알라우네가 설치해둔 함정의 일종이었는지 사라져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윙윙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벌들이 로켓이 묶여 있던 덩굴 아래쪽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알라우네가 말했었던 인질 처형에 사용되는 녀석들일 것이다.

 

몬붕은 흰털 씨에게 나쁜 말을 가르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씨발, 망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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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지적 환영합니다.

또 다른 몬무스가 등장했습니다. 버닙 흰털 씨 입니다. 마물소녀도감을 기반으로 하되 완전히 따라가고 있지는 않아서 원본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위기 발단 전개 위기 결말 순서에서 전개와 위기 사이를 너무 끌어가는 느낌이 드네요. 흰털 씨의 비중을 높이려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이번 화도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