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아아아아!”

 

 해가 지는 숲 속을 달린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다. 

 

 한참을 그렇게 뛰다 발통섬 어딘가 정글에 멈춰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주저앉았다. 

 

 “대체 뭔데에에!”

 

 3초.

 

 내가 리안의 얼굴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자 나는 나도 모르게 달리고 있었다. 

 

 폭발할 것처럼 뛰는 심장. 화끈거리는 얼굴. 어쩔 줄 몰라 하는 팔다리. 지금까지 남 놀리기만 하고 연은 없었던 것이 나에게도 찾아오고야 말았다. 

 

 이젠 더 이상 속일 수 없음을 알았다. 

 

 나는 리안을 좋아하게 됐다. 

 

 “왜 하필 걔야!”

 

 진짜 왜 하필 리안이지? 얼굴이 잘생긴 것도 아니고, 능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머리도 곱슬머리고, 뭐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잖아? 근데 왜?

 

 “아아아악! 진짜 장난까나?”

 

 나는 바로 옆의 아름드리나무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셀 수도 없을 세월을 지내온 나무는 내 주먹에도 약간의 흔들림만 있을 뿐 멀쩡히 형태를 유지했다. 

 

 “……아파라.”

 

 나는 발갛게 달아오른 주먹을 감싸 쥐고 다시 웅크려 앉았다. 한껏 소란을 피운 탓에 주변 마족들의 시선이 모이는 것이 느껴졌다. 

 

 “하아.”

 

 이제부터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난 당연히 걔가 나보다는 란펑을 좋아할 것 같아서 판 깔아주려고 했는데. 완전히 망했어. 

 

 내가 사람을 잘 사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성격 나쁘고, 마족으로선 반쪽에 잘하는 것도, 모아둔 것도 없는데. 

 

 남자야 내가 벗기만 해도 좋아하겠지만, 그게 과연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기다 나랑 리안이랑 맺어지면 란펑은? 또 혼자 남게 되는 거 아니야? 지금처럼 지낼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그 녀석 혼자 두면 불안하고. 

 

 이렇게 또 도망치게 되는 건가? 

 

 “…….”

 

 도망치고 싶지 않아. 어렵게 되찾은 일상을 도망치는 거로 부수고 싶지 않아. 

 

 도망치고 싶지 않아. 

 

 도망치고 싶지 않은데. 

 

 용기가 부족해. 

 

 “핫.”

 

 정말 웃기는 일이야. 총도 칼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고작 좋아하는 사람의 고백을 받아들이는 걸 무서워하다니. 정말 별것도 아닌데. 

 

 “사람이 간사해.”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나무에 기대어 멀뚱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뭇잎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는 하늘엔 노을이 져 있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이젠 익숙해지다 못해 예전엔 어땠는지 기억도 안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소란스러워서 와 봤더니만, 아직도 극복 못했네.”

 

 그리고 동시에 잊어버렸던 그 목소리를 떠올리게 해주는 앵앵거리는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쪽이 더 낮긴 하다. 

 

 “뭐야? 나 하나 찾으려고 신수 둘이 행차했네? 내가 언제 그렇게 거물이 됐지?”

 

 반가우면서도 반갑지 않은 얼굴들이다. 이럴 땐 좀 혼자 냅둬라. 그리고 어떻게 찾아왔는지는……. 뭐 신수들이니 따지는 건 무의미 하겠지. 

 

 “영광인 줄 알아. 나는 사람 한 명 한 명에게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싱하는 그렇게 말하고 내 앞에 앉았다. 신수면서 맨바닥에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추는 선택을 하는 고광함이 있었다. 

 

 “친구인 내가 신경을 쓰는 건 당연하지.”

 

 란펑은 그렇게 말하고 예의 재주로 꺼낸 의자에 앉아 나를 내려다보았다. 참으로 소인 같은 면모였다. 

 

 “이제 와서 이렇게 하라니 저렇게 하라니 할 생각은 없어. 마리는 그러면 더 움츠러드는 성격이잖아?”

 

 “하핫! 적이지만 꽤나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군!”

 

 “저기, 그, 우리 언제까지 적인 거야?”

 

 “내 백성들에게 불손한 사상을 주입하는 한 적이다!”

 

 “그런 적 없는데……. 난 그냥 고민을 들어주는 건데…….”

 

 “말이 그게 뭐야? 신수면 신수답게 당당하게 행동하라고!”

 

 “마리이, 빨리 돌아가자아.”

 

 얘네는 왜 갑자기 꽁트를 하고 있냐? 대체 뭐 하자고 온 거야? 분위기만 흐려 놓고. 

 

 “갈 거면 혼자 돌아가. 난 아직도 갈피를 못 잡겠다.”

 

 사소한 반항. 어린애 투정이라는 걸 알아도 하지 않고서는 내가 너무나 무력해지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어려운 법이지. 그게 쉽다면 세상에 다툼 따위는 없었을 테니.”

 

 말은 쉽지. 용기가 어디서 뿅 하고 튀어나오는 거였다면 모두가 용사고 영웅이었겠지. 

 

 “마리는 뭐가 무서운 거야?”

 

 뭐가 무섭냐고? 이렇게 쓸데없는 일까지 참견하는 당신들이 무서워!

 

 “너무 신수라고 막 말하는 거 아냐? 너희가 내 입장이 되어 보기는 했어?”

 

 나도 미치겠어.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이게 그 잘난 평생 나오지도 않다가 갑자기 깨어난 마족의 본성인지, 아니면 사람이 가지는 자연스러운 반응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내가 이상한 건지. 

 

 “그런 하찮은 존재가 될 일도 없고, 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된 결단도 내리지 못하고 불평만 늘어놓는 우둔한 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줄 이유가 되진 않지.”

 

 “그럼 뭐 하러 참견하는 건데?”

 

 “하고 싶으니까. 너도 마족이라면 자기한테 솔직해지는 게 어때? 그게 아니라면 아직 인간으로 남고 싶은 거야?”

 

 인간 같은 소리 하네. 난 나고 죽을 때까지 마족일 운명이네요.

 

 “그건 고정관념이야. 마족이라고 근심걱정 없고 인간이라고 걱정만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니라고.”

 

 “너는 흡혈귀. 개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혈통을 타고난 모든 흡혈귀 마족의 원류. 그런 네가 흡혈을 하지 않는 행위 자체가 흡혈귀임이 아니라 인간을 선택했음을 나타내지.”

 

 “그게 뭐? 그게 뭐 큰 잘못이라도 되는 거야?”

 

 내가 아니더라도 흡혈귀는 질리도록 많이 있고, 설령 일순간 멸종한다고 해도 금방 다시 어디선가 태어날 것이 뻔한데 그게 그렇게 큰 일이 되나? 

 

 “옳고 그른 걸 따지고 있는 게 아냐. 네가 무엇으로서 그 인간을 사랑할 것이냐의 문제지.”

 

 그런 발상은 없었어.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어.

 

 그렇게도. 생각할 수 있겠구나. 

 

 “스스로 깨달아야 의미가 있는 건데. 나도 같은 의견이야. 마리가 무엇으로서 있을지 정하는 게 중요해. 그렇지 않으면…….”

 

 “않으면?”

 

 “언젠가 네가 원하지 않던 너의 모습이 되어있겠지.”

 

 내가 원하지 않던 모습? 그게 뭔데? 나는 언제나 나일 뿐인데? 

 

 “뭐? 내가 리안을 잡아먹기라도 해?”

 

 “아니. 네가 당했던 그 고통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입장이 되겠지.”

 

 찢어지는 비명. 도망치는 사람들. 도망치는 나. 

 

 마른침을 삼킨다. 강렬한 목마름이 몸을 엄습해왔다. 

 

 “……그걸 어떻게 알아? 이제 내 미래는 못 본다며.”

 

 “이렇게까지 설명해줘도 못 알아듣는 거야? 어디까지 떠먹여줘야 하는 건지. 네 혈통이 뭔지 얘기했잖아? 마족으로서의 너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분명히 폭주한다는 얘기야.”

 

 “설녀의 아이. 라일라처럼.”

 

 몇 달 전의 기사. 가르세일에서 일어난 눈보라 사건이 떠올랐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녀석은 딱히 망설이는 기색이 없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근거는 분명히 제임스였을 것이다. 

 

 “지금까지 딱히 피를 마시고 싶다던가 사람을 덮치고 싶다던가 하는 생각은 안 들었지? 앞으론 생길 거야.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도움을 주러 온 건지 겁을 주러 온 건지 모르겠네. 진짜 마음에 안 들어. 그런다고 이 감정이 사그라지는 것도 아닌데. 

 

 “망할 신수 놈들. 와선 한다는 얘기가 겁주는 것밖에 없네. 그럴 거면 얘기라도 하지 말던가. 겁줘서 무슨 이득이 있는데?”

 

 “언젠가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잖아?”

 

 “……..”

 

 젠장.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왜 멋대로 남의 과거를 들여보는 거야? 

 

 “전에 마리의 과거를 얘기했을 때는 다른 사람들 시선도 있고 해서 그냥 넘어갔지만, 마리가 여기에 온 건 말 그대로 도피를 위해서고, 언젠가 다시 돌아갈 생각이잖아?”

 

 “그게 뭐? 너는 달라? 너도 조국에서 쫓겨나서 여기 도망쳐온 거잖아? 그리고 힘을 회복하면 언제든지 돌아갈 생각이고.”

 

 “역시 그랬어! 여길 침략해서 힘을 회복할 생각이었지?”

 

 “꼬맹이는 끼어들지 말고 닥치고 있어! 예전부터 말이야, 너의 그 잘난 척하는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어. 뭘 그렇게 잘 알고 있다고 그렇게 떠드는 거야?”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 조금 친해졌다고 나에 대한 걸 그렇게 추궁할 권리는 없을 텐데. 

 

 “내 행동이 너에게 그렇게 보였다면 사과할게. 하지만 모르는 척할 수 없었어. 처음엔 네 말 대로 잘난 척하려고, 내가 아는 걸 너에게 나눠 주기 위해서였어. 변명하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진심이야. 네가 파멸을 향해 가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어.”

 

 “파멸? 말 한번 거창하게 하네. 대체 얼마나 대단한 미래를 보셨길래?”

 

 “리안이 죽는 운명.”

 

 저 새끼가 지금 뚫린 입이라고 아무 소리나 지껄인 거지? 뭔 개 같은 소리야? 

 

 “나한테 특별한 능력이 없으니 아무 말이나 하면 다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믿고 안 믿고는 네 자유야. 아니, 그런 무책임한 소리는 하지 않겠어. 난 너희 둘이 그런 미래를 맞이하는 걸 막을 거야. 전에 내가 너희랑 너무 친해져서 미래가 보이지 않게 됐다고 했지? 당연한 일이야. 너희의 미래를 내가 바꿀 거거든.”

 

 결의에 찬 눈. 나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랜 세월을 담고 있는 그 눈엔 그 세월만큼이나 단단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압도되었다. 지금의 나에겐 저 결의를 깨트릴 명분도 의지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저번과 똑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

 

 도망칠 수 없다는 건 안다.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렇지만 달리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섬은 해가 늦게 진다. 해라도 져야 어디 숨어서 숨이라도 고를 텐데 아무리 달려도 그런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젠 어딘지도 모를 곳에 도달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란펑과 싱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콜로딘 교외라면 어디든 있는 정글. 온갖 마족들이 득실거리는 마족들의 보고에서 아는 얼굴을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게 마족이라면 인간이 없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고, 인간이라면 머지않아 다른 마족에게 잡아 먹혀 마족이 될 운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거친 숨을 몰아쉬며 걷던 나는 믿을 수 없게도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그쪽에서 날 먼저 발견하고 말을 걸어왔다. 

 

 “아! 마리 씨! 찾았다고요!”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이성이 날아갔다. 나는 리안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곧장 리안의 양 어깨에 손을 얹었다. 

 

 “마리 씨?”

 

 “너 미쳤어? 무슨 정신으로 정글에 들어왔어? 니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 숲에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라고? 발견한 게 나라서 다행이지 다른 마족한테 발각됐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뒤지고 싶어? 그렇게까지 마족이 되고 싶었냐? 나랑 란펑 다신 못 보고 싶었냐고!”

 

 “어, 음. 마리 씨가 이쪽으로 가셨으니까요?”

 

 “병신이냐? 나한테 고백해 놓고 다른 마족이 채가면 퍽이나 내가 좋아하겠다? 그치?”

 

 “그래도 무사히 만났잖아요.”

 

 할 말도 안 나온다. 이 우직한 바보한테는 무슨 말을 해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아. 

 

 “진짜 믿기지가 않네. 기껏 달려서 만난 게 이 녀석인 것도, 이 녀석이 여기까지 무사하게 온 것도. 뭐 잘못 먹었냐? 뽕이라도 맞아서 제대로 사고가 안 돼?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거 맞냐? 뭐 다른 마족이 환상으로 나 놀리는 건 아니지? 한 대 쳐봐도 되냐?”

 

 나는 주먹을 쥐고 리안에게 다가갔다. 리안은 사색이 돼서 팔을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걱정해 주시는 건 고마운데, 저 진짜 맞거든요? 마리 씨한테 맞으면 그냥 안 넘어가요!”

 

 “괜찮아. 란펑이 어떻게든 해주겠지. 그리고 뭐 내가 피 빨면 시생인인가? 뭔가가 돼서 되살아나는 것 같던데, 괜찮지 않을까?”

 

 “안 괜찮아요! 일단 진정 좀 하시라고요!”

 

 “나 아주 냉정해. 너 때문에 내가 고생을 하고 있으니 이 정도는 아주 정당한 행위 아닐까? 아니어도 일단 한 대 맞아.”

 

 “진짜 마리 씨 답네요!”

 

 나는 가볍게 주먹을 휘둘렀다. 체중은 싣지 않았지만, 맞는다면 코뼈 정도는 부러트릴 수 있는 주먹이었다. 

 

 “후에?”

 

 주먹이 리안에게 닿았다고 생각하는 찰나였다. 별안간 시야가 뒤집히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요즘은 건물 옥상에 올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운 감각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채 파악하기도 전에 등부터 땅에 처박혔다. 

 

 “아야!”

 

 마족의 몸은 튼튼해서 이 정도로는 약간의 통증만 있을 뿐 별다른 타격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금방 움직일 수 없었다. 리안이 능숙한 움직임으로 내 위에 올라타 내 양팔을 구속한 상태였다. 

 

 “요즘 공무원은 호신술도 배우나봐?”

 

 “요즘 시대를 살려면 기본이에요. 사람한테 쓰는 건 처음이지만요.”

 

 서로의 숨이 닿는 거리. 서로 숨을 몰아 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제 슬슬 놔줄래? 등 아프거든?”

 

 “또 때리시려고요?”

 

 “영업비밀이야. 일단 풀어봐.”

 

 “싫어요.”

 

 갑자기 서로 말이 멎었다. 숲 속에 세르방트 놈이랑 둘이 있으려니 짜증이 난다. 

 

 “마리 씨.”

 

 “왜 불러. 나오기나 해.”

 

 “저 진심이니까요.”

 

 “아, 그래그래. 됐으니까 어서 나……!”

 

 리안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싶더니 갑자기 말이 안 나오게 됐다. 그리고 그것이 입맞춤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읍읍!”

 

 이 녀석 지금 뭐하는 거지? 갑자기 키스라니 갑작스러운 거에도 정도가 있지. 저 양치나 제대로 했을지 의문인 입으로 건방지게 입맞춤을 하다니. 기분 나쁜 거에도 정도가……. 정도가……. 

 

 “푸하.”

 

 방금, 뭐였지? 온 신경이 입술에 집중된 것만 같은…….

 

 “……죄송해요.”

 

 이 가슴의 고양감. 뛰지도 않았는데 왜 숨이 차오르는 걸까? 그리고 입술에 남아있는 이 감촉. 그리고 달콤함. 

 

 입가에 손을 대본다. 내 손가락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감촉.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그 감촉. 마치 하늘을 날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이런 충실함, 언제가 마지막이었지? 

 

 리안이 한참 전부터 내 위에서 비켰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멍하게 있었다. 멍하니 고개를 돌리다가 약간 수줍은 듯이 시선을 돌리고 있는 리안을 보자 나는 급격히 현실로 돌아왔다. 

 

 “아아아아아악! 뭐하는 짓이야!”

 

 나는 허겁지겁 일어나 모자를 푹 눌러쓰곤 흐트러진 옷을 정리했다. 

 

 진짜 믿을 수가 없어! 리안이랑 내가 그런 짓을? 말도 안 돼!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할게요.”

 

 “닥쳐!”

 

 나는 리안을 내버려 두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리안이 허겁지겁 내 뒤를 따라왔지만 그런 걸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아무리 해도 입술에 남아있는 그 감촉이 사라지질 않았으니까. 

 

 그렇게 가게로 돌아갈 때까지 리안이 계속 말을 걸고 내가 무시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도무지 리안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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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은 좋지 않아


추석은 나쁜 문명


왜 난 추석이 가까워지면 바빠지는가


다음편도 달달하게 가져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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