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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아까 이름이 뭐라고?"


결국 초콜릿을 4개나 먹은 엘프가 뜬금없이 아이작의 이름을 물었다. 물론 그는 흔쾌히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아이작.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 그런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처음으로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아직 혼란스럽기만 했다.

 

"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아니면 여기서 살고 싶어? 만약 여기 살 거면 우리가 집도 줄 거고,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기 전까지는 돈도 꼬박꼬박 줄 거야."


"그럼.. 그냥 여기서 살래."


어차피 엘프가 돌아간다고 해도 이전처럼 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물론 외곽 지역의 이들에게 갈 수도 있었지만 자신을 받아줄지도 의문이었고, 어쩌다 보니 쓰라린 추억만 남게 된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꺼려졌다.


"그래? 잘 생각했어. 일단 밥 좀 먹어. 잘 먹어야 빨리 낫지."


한참 전에 가져온 수프는 그릇에 걸린 보온 마법 덕분에 아직 따뜻했다. 마음은 고마웠지만 자꾸 무언가를 먹이려는 그의 모습은 과장을 보태서 애완동물을 챙기는 주인 같다고 엘프가 생각했다.


그날 저녁 배를 든든히 채운 엘프와 아이작이 서로를 마주보고 의자에 앉았다.


"너 이름이 레아라고 했지? 미안. 아직 덜 익숙해서."


"응. 미안할 필요 없어."


"고마워. 어쨌든 하루 종일 여기 있으니까 심심하지? 내일 의사 선생님이 괜찮다고 하면 밖에 나갈까?"


잠시 고민하던 레아가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 그녀 역시 고향과는 전혀 다른 나라인 이곳이 궁금하던 참이었다.


"아이작, 나 궁금한 게 있어."


"그게 뭔데?"


"천국은 어떻게 갈 수 있는 거야?"


다소 황당한 질문에 아이작이 잠시 멈칫했지만, 다행히 그가 충분히 대답해 줄 수 있는 것이었다.


"그건 말이지.."


오래전 마신은 죽은 생물의 영혼을 거두고 환생시키는 일을 맡았다. 곁에는 항상 까마귀들이 함께했는데, 뛰어난 지능과 시체를 먹어준다는 특성상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인간, 엘프처럼 문명을 이루고 살 만큼 똑똑한 종족들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그들은 여태까지의 동물들과는 다르게 '도덕'이라는 개념이 존재해서, 선한 이들도 악한 이들도 있었다. 그 광경을 유심히 본 창조주는 저승이라는 다른 차원을 만들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죽은 자들의 영혼은 생전에 선행을 많이 했다면 천국, 악행을 많이 했다면 지옥으로 갔다. 이도저도 아닌 이들은 중간계로 가게 되었는데, 착실히 벌을 받거나 죄를 뉘우쳤다면 지옥이나 중간계에서 천국으로 가는 것도 가능했다.


다만 이를 결정하는 것은 마신이 아닌, 정령과는 전혀 다른 존재들인 심판관이었다. 마신은 그저 망자들을 저승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여전히 도덕 관념이 없는 생물의 영혼을 관리하는 것은 마신이었지만 말이다.


"심판관들은 우리 차원에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야. 즉 다시 말해 마신님을 포함한 그 어떤 정령도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순 없단 말이지. 그걸 결정하는 건 오로지 네 행실이야."


"그럼 난..죽어서 지옥 가는 거야?"


엘프의 표정이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변했다. 


"무슨 소리야. 살면서 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다고? 넌 전쟁에도 나간 적 없잖아."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악신을 섬겼잖아."


"네가 그걸 알고 한 것도 아니고, 고작 그런 사소한 걸로 지옥 안 가. 지금부터 착하게 살면 되지."


다 큰 여자와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좀 기묘했지만, 어쨌거나 아이작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달래주었다.


"죽은 뒤에 어떻게 될지 너무 신경쓰지 마. 지금 몇 살인데?"


"..23살.."


"거 봐. 아직 몇백 년은 더 살 수 있잖아. 지금은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해 보자. 넌 원래 직업이 뭐였어?"


"나? 그냥 농사 지으면서 살았어."


아이작은 그녀에게 농사도 나쁘진 않지만, 제대로 하려면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로 내려가야 할뿐더러 종족 자체가 식물 키우기에 특화되어 있는 트롤에게 밀릴 거라고 설명했다.


"미안.. 그럼 난 어쩌지?"


"뭐 특기나 취미 같은 건 없어? 엘프면.. 활쏘기라든지?"


레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본국에서 여자는 취미를 가지는 게 금지되다시피 했고, 오로지 남자들의 일을 돕거나 농사 같은 잡일을 도맡아야 했다.


"괜찮아. 누구나 한 개쯤은 잘하는 게 있으니까.. 나도 어렸을 때 공부 진짜 못했다? 어쩌다가 검술에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정말? 난 공부는 꽤 잘했어. 근데 다른 애들은 재수없다고 날 더 싫어하더라."


"거봐. 너도 잘하는 게 있잖아. 아, 네가 잘하는 거 하나 더 찾았다."


"그게 뭔데?"


그녀는 기대감에 부푼 얼굴로 아이작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장난기 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먹는 거. 아까 보니까 진짜 복스럽게 먹더라."


"야! 너 진짜...."


두 남녀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밤은 점점 깊어갔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가운데 환한 보름달이 위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