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전....


비가 내리는 레스카티에의 빈민가거리에서....


고급의복을 입고 비단우산을 한 손에 쥐고 있던 늙은 사내가 하찮은 것을 보는 것처럼 빈민가거리에 쓰려진 하얀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왜 살아돌아왔느냐?"




차가운 목소리가 사내에게서 흘려나왔다.
불구대천의 원수에게 말을 걸어도 저거보다는 온화하다고 여겨질 만큼 차가운 목소리가 사내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사내의 말에 눈처럼 하얀 여자는 허무하다는 듯이 억울하다는 듯이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비록 사내의 눈빛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우산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보이는 눈의 편린만으로도 여자는 사내의 눈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눈보다 더 차갑고.... 칼날보다 더 날카로운 눈매일 것이다.
지금 빈민가거리에서 쓰려져 있는 하얀 여자를 보는 사내의 눈은 바로 그런 눈매일 것이다.




여자는 지금, 이 상황이 못마땅한지 주먹을 꽉 지었다.
그러자 여자의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서 흙과 자갈이 여자의 손톱 사이를 파고들면서 상처를 냈고 상처에서 나오는 피들이 흐르는 빗물을 따라 흘려갔다.




그런 여자를 보면서 늙은 사내는 아까보다도 더 잔혹하고 냉혹한목소리로 말했다.




"짐이.....물지 않았나?
왜 살아돌아온 것인가?
더러운 마물의 아이를 낳은 주제에 염치도 없이 왜 돌아왔냐 말이다."


남자의 말에 하얀 여자는 고개를 들더니 흉폭하고 사나운 눈으로 사내를 쳐다 보면서 말했다.


"대체....왜....대체....왜 소녀를 팔아넘기신 것이옵니까?
언제나....언제나.... 아바마마의 자식으로서 인정받기 위해서 노력해온 소녀입니다.
언제나....언제나.... 레스카티에의 자랑스러운 공주로서 살기 위해서 노력해온 소녀입니다.
아바마마가 소녀에게 여성스러움을 원하실 때는 십자수를 배웠고.....
아바마마가 소녀에게 소녀의 형제남매들 대신 전장에 나가서 싸우라 하실 때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마물을 베어온 소녀입니다.
그런데....그런데..... 대체 왜!!!!!!!!
대체 왜!!!!!! 소녀를 저 간악한 용들에게 팔아넘긴 것이옵니까!!!!!!
왜 소녀의 배다른 형제에게.....
아바마마의 또 다른 자식에게 저를 데오노라....
저 가증스러운 용들의 왕에게 팔아넘기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옵니까!!!!!!"


하얀 여자의 원망스러움이 가득한 외침이 길거리에 울려펴졌지만...
그 외침은 하늘에는 닿지 못한 채로 떨어져 버렸다.


"짐이 먼저 물었다.
왜 살아돌아온 거지?
그곳에서 너가 죽었다면 우리 왕가의 전쟁유공자가 생기는 거였다....
너의 용맹함과 명성은 세계 곳곳에 퍼졌을 것이고....
우리 왕가의 명예가 드높아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니 년이 살아돌아옴으로 인해서 다 물거품이 되었느니라....
대체 왜 살아돌아온 거이냐?
천 것 주제에 그렇게나 왕위가 탐나더냐?
살아돌아오기만 한다면 짐의 자리가 네년의 것이 될 줄 알았더냐?!!!!!!"


늙은 사내의 노호성에 맞추어서 번개가 쳤고 번개의 빛이 하얀 여자의 얼굴을 비추었다.


고된 세월을 보낸 듯 많이 상한 피부였지만 아직은 아름답다쳐줄 만한 얼굴과 바다를 품은 듯한 사파이어와 같은 푸른 눈동자...


여자의 정체는 레스카티에의 눈의 기사라고 불리는 공주였다.
정확히는 왕과 첩 사이의 딸인 옹주였다.
그것도 어미가 노예인 옹주였다.
.
.
.
.
.
.
32년 전에서 다시 11년 전....
그러니까.... 벨이 태어나기 3년 전


벨의 친모인 그녀는 왕의 딸이였지만 동시에 노예의 딸이였다.


허나 그녀는 노예의 딸이면서도 다른 모든 왕족들을....아니 레스카티에에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던 자였다.
그 빛나는 재능으로 여러분야에서 활약한 자였다.


허나....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노예의 자식이라는 신분은 그녀에게 크나큰 족쇄가 되었기에.... 그녀의 정치적 뒷배는 없었기에...그녀의 재능은 오히려 그녀의 독이 되었다.


그녀의 재능이 피어날 때마다.... 그녀의 형제자매는 물론 그들의 외척들까지도 그녀를 시기하고 모함했다.
노예의 딸년이 했다가는 부정탄다면서....
노예의 딸년 주제에 그런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면서....


그렇기에 그녀는 늘상 재능이 있던 분야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재능을 뽑내지 못하고 그저 십자수 같은 것들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을 새장에 가둔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녀를 시기하고 모함했던 자들이....
그녀의 형제자매와 외척들이 그녀를 치켜세우면서 추천했을 때가 있었다.


마물 중에서 가장 강한 종족으로 알려진 용들이 레스카티에에 쳐들어왔을 때......
그리고 그들을 막기 위해서 군을 소집하고 그들을 지휘할 왕실의 사람을 필요로 할 때.....


강력한 용들과 싸우는 것이 무서웠던 왕족들은 하나 같이 그녀를 희생양으로 삼았다.
매번 그들이 모함하던 그녀의 재능을 그들 스스로 치켜세우면서 그녀에게 총사령관자리를 떠넘겼다.


그녀를 총지휘관으로 삼은 군을 내 보낼 때....
왕족들은.... 그녀의 가족이라는 자들은 안도하고 기뻐했다.


용들은 인간을 배불리 잡아먹는다면 다시 용들의 왕국으로 되돌아가니까.....
신병과 노병들로만 가득한 군대를 희생양으로 보냄으로서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덤으로.... 언제나 눈에 가시였던 그녀 또한 용들의 아가리 속으로 들어간다면....

왕좌를 향한 경쟁자까지 줄어드니 그들에게는 일석이조처럼 느껴졌다. 


예정된 그녀의 죽음과 그리고 희생양으로 선택된 군인들의 희생에 진심으로 기뻐했던 그들이 파티를 열고 있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단 한 장의 편지가 백성과 군인의 죽음으로 살아남은 귀족들과 왕족들의 연회장에 도착했을 때.... 그 누구도 그 편지 안에 적힌 내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대승'


희생양으로 선택한....
대신 죽으라고 용들의 아가리 속으로 던져놓은 그녀와 그녀의 군대가 그 유명한 용들의 왕 데오노라에게 대승을 거두었다는 편지였다.


편지 안에 적힌 단 두 글자에 놀란 그들은 전장에 사람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파견된 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노병은 그 무엇보다 노련하였고,
신병들은 그 누구보다 용맹하였으며,
그 노예년은 누구의 견제도 없자 마음껏 자기 재능을 펼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난 그 이후로 그녀에게 이명이 생겼다.
레스카티에의 눈의 기사
혹은 성스러운 공주기사


한 번 용들에게 대승을 거둔 그녀와 그녀의 군대는 2년 동안 파죽지세로 용들을 격퇴했고,
레스카티에의 백성들은 그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그러자 발 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레스카티에의 귀족들과 왕족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지내야 했다.


언제나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면서.....
귀족이란 약한 자들을 지키는 자들이라면서 되지도 않는 말들하면서 백성들의 고혈을 착취한 그들에게 백성들이 좋은 시선을 보낼리는 없으므로....


그리고 점점 눈의 기사라고 불리는 그녀를 다음 대 왕으로 삼자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권력과 힘을 잃는 것이 무서웠던 그들이었기에....
백성들의 손에 끌어내려지는 것이 무서웠던 그들이었기에...
그것이 그녀의 가족이라는 존재들이었기에.....
그들은 한 가지 계략을 짜냈다.


그 계략은 바로....
용들의 왕 데오노라와 힘을 합쳐서 그녀의 군대를 몰살하고 그녀를 데오노라의 성 노리개로 파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판 대가로 레스카티에에서 완전히 용들을 철수시키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왕위를 노린다고 생각했던 왕은.....
그녀의 아버지는 그것을 승인하였다.


그 후 왕은 솔선수범 데오노라에게 비밀리에 사신을 보내고는 계략을 설명했다.


안 그래도 계속된 패전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난 데오노라는 어차피 더 이상 레스카티에를 침공할 여력이 없었기에 그들의 계략을 받아들였고.....
이후의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그녀의 형제였던 레스카티에의 왕세자는 레스카티에의 전 병력을 이끌고 그녀의 군대에 합류하는 척하면서 뒤를 쳤고...
당황하여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녀의 군대를 용들이 습격하였다.


결국, 그녀의 군대는.... 역사상 가장 강력했다고 알려진 인간의 군대는 너무나도 손쉽게....
너무나도 어이없이 그날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데오노라에게 사로잡힌 그녀는.....
믿었던 부관과 등을 맡길 수 있는 전우.... 마지막으로 충성적인 군대를 잃어 버린 그녀는....


그들이 모두 사라지던 날.....
데오노라에게 강제로 범해졌고....
그날의 결과물이 그녀의 배 안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그녀의 군대를 몰살 시킨 왕족들은 백성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마물들과 협력했다는 사실과 인류 최강의 군대를 배신했다는 사실을 감추고는 수많은 프로파간다를 양성했다.


'눈의 기사와 그녀의 군대는 장렬히 전사했다!'

'용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그들은 열심히 싸웠고,
비록 그들이 모두 죽었지만 그들은 이 레스카티에를 지켜내었다!'

'그들의 죽음은 숭고했다!'

'눈의 기사는 단순한 기사가 아닌 성녀였다!'

'눈의 기사가 숨을 거두기 전 그녀는 그녀의 형제이자 레스카티에의 왕세자전하에게 레스카티에를 부탁했다!'

'숭고했던 그녀의 삶과 죽음을 기리기 위해 그녀의 마지막 유언을 지키자!'

'그녀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서 레스카티에의 정당한 왕과 후계자에게 모두 충성을 다하자!'


이런 어이없는 선동에 백성들은 선동되었고.... 그녀를 배신했던 왕실을 지지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을 몰랐던 그녀는 그녀와 닮은 사내아이를 낳은 상황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내가 돌아가기만 한다면.... 내 전우들의 복수를 할 수 있을 거야....'

'아바마마는..... 그래도 아바마마는 나를 믿어줄 거야....'

'돌아가기만 한다면 다시 한번 군대를 일으키고 이 드래고니아를 멸망시켜 버릴 거야....
그리고 마물 주제에 나랑 닮은 저 혐오스러운 것도 내 손으로 죽여 버릴 거야....'

'그러니....그러니... 나를 엄마라 하지 마....
그 더러운 입으로 나를 부르지 마....
나는 너를 죽일거란 말이야....
그런 내게 웃어주면 안돼....'


-------------------------------

음..... 이 소설이 정녕 마소도패러디가 맞을까?

차라리 로판이면 아다구가 맞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