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만 쓰는 침실에서 지내는 기분이 어떤가요?"

 

 황제는 마왕의 지시에 따라 따로 방이 마련되지 않고 마왕의 침실에서 지내게 되었다그렇다고 한들 황제의 목에는 치욕적이게도 목줄과 목걸이가 채워졌다그야말로 애완동물 취급이었다.

 

 "확실히 이러니 귀엽게 보일 정도네요폐하의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은 말이죠이렇게 손발을 자유롭게 풀어놓아도저를 죽일 수 있게 빈틈을 만들어도 죽이지 못하다니 그 사랑이라는 것은 정말 바보 같아요."

 

 마왕은 황제의 예상과는 달리 침실 안에서는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별 큰 제약을 두지 않았다그래도 황제는 마왕을 해칠 수 없었다그토록 마왕을 증오했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마왕을 사랑하고 있었다.

 

 "그럼 오늘도 저를 위해 힘써주셔야겠네요."

 

 마왕은 속옷 차림으로 황제의 목줄을 끌고 침대로 향했다마왕은 황제를 사로잡은 이후로 황제를 자신만 쓸수 있는 정기 가축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그것도 매일이 착정의 연속이었다황제는 당연히 거부하고 싶었지만 마왕은 그 의도를 알아채고 황제가 거부할 수 없도록 언제나 상냥한 태도로 황제를 대했다황제는 그 모습이 진실이 아님을 머리로는 이해했어도 마음은 아니었다그래서 늘 마왕의 의도대로 정기를 짜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늘도 고생했어요자도록 하죠."

 

 마왕은 무방비한 상태로 황제를 옆에 끼고 잠을 청했다황제는 그때마다 마왕을 죽일 기회가 찾아와 죽이려고 시도하지만 마왕의 잠버릇으로 품에 안기면 그러지 못했다결국 그 상태로 같이 잠에 빠지는 것도 이제는 익숙한 일상이었다이런 일상도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몰랐다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였다.

 

 "열이 심하시네요이렇게 아픈 적은 처음인데."

 

 어느 날 마왕이 일을 끝내고 침실로 돌아온 날이었다그날도 마왕은 평소처럼 황제를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그러나 침실로 돌아오니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심한 열로 인해 사리분별을 못하고 있는 황제의 모습이었다황제가 이렇게 아팠던 적은 없었기에 마왕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이렇게 아파서야 무리겠네요."

 

 마왕은 황제를 침대에 똑바로 눕히던 때였다황제가 갑자기 마왕의 소매 끝자락을 잡았다.

 

 "가지마."

 

 심한 열로 인해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도 꺼낸 한마디였다마왕이 놀라서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발... 아무 것도 안 해줘도 좋으니까... 옆에만 있어줘... 아니 옆에만 있어주세요... 부탁입니다..."

 

 황제는 아픈 몸에도 천천히 마왕을 향해 있는 힘껏 말을 전했다그리고 황제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 말을 들은 마왕은 불쾌한 기분이었다이전에 느낀 적 없는 기분이었다황제가 평소에 이런 부탁을 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런지 색다른 느낌이었다마왕은 그런 황제의 부탁에 장단을 맞춰주기로 했다마왕은 황제 옆자리에 앉았다황제는 여전히 현실이 분간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앓고만 있었다.

 

 "오늘은 일찍 자야겠네."

 

 치유 마법은 다룰 줄 몰랐기에 마왕은 악몽이라도 꾸지 않도록 서큐버스의 능력을 사용해 황제가 잠은 편히 잘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이윽고 전등을 끄고 마왕 자신도 잠을 자려하는 순간이었다황제가 아픈 몸을 뒤척이다가 마왕 쪽으로 돌아 누운 채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마왕은 혹시나 잠에서 깬 것인지 황제의 상태를 확인했지만 황제는 여전히 잠든 상황이었다황제의 눈에서는 눈물마저 흐르고 있었다.

 

 "아바마마... 어머니...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마왕은 그런 황제의 모습을 보고만 있었다그러다가 마왕은 비어있던 황제의 손을 잡아주었다그러자 황제는 반대쪽 손도 모아 마왕이 건넨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그리고 황제의 표정이 풀어지는 것을 마왕은 볼 수 있었다황제는 마왕의 손을 소중히 여기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어머니... 안아주세요..."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는 듯했다아무리 인류동맹을 이끄는 황제였다지만 아직 어린 나이였다마왕은 새삼 굳건해보였던 황제의 새로운 모습에 기분이 묘했다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황제를 품에 안았다이전에도 안고 잔적은 있었지만 지금은 기분이 이상했다황제는 그런 마왕의 품으로 좀더 파고들었다그리고 평온한 표정으로 잠에 들었다.

 

 "어머니... 저 황제가 되면서부터 좋아했던 애가 있어요..."

 

 황제의 발언에 마왕은 놀란 눈치였다아무래도 마왕의 품을 어머니의 품과 착각한 듯했다그런데 황제의 이 발언은 마왕 본인도 몰랐던 사실이었다분명 자신이 매혹을 건 시점은 출정을 떠나기 직전에 황제의 품에 안겼을 때였다그리고 자신이 직접 황제의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황제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기척이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황제의 이 발언은 마왕의 흥미를 돋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게 누군지 알려주겠니?"

 

 마왕은 이 이상의 정보를 캐기 위해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로 황제에게 물었다그러나 질문에 무색하게 황제는 편안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졌다마왕도 이내 포기하고 같이 잠에 들었다.

 

 

 

 

 다행히 황제는 며칠 뒤에 건강을 되찾았다마왕은 이때가 기회다 싶어 황제에게 물었다이전의 잠꼬대가 무슨 의미인지를 말이다분명 황제가 사랑하는 사람도 같이 붙잡는다면 황제를 더욱 옥죄는 방법이라면서 말이다.

 

 "이전에 아플 때의 기억은 나시나요?"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아플 때의 기억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자면서 잠꼬대를 한 기억도 나지 않으시겠네요?"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에요열 때문에 심하게 앓아 누웠을 때 한 잠꼬대가 기억이 나지 않은지 묻는 겁니다."

 

 황제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그러자 마왕은 본격적으로 본론을 꺼냈다.

 

 "그렇다면 본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고 고백한 것도 당연히 기억이 나지 않으시겠네요?"

 

 마왕의 말에 황제의 눈빛이 매섭게 돌변했다그리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마왕에게 말했다.

 

 "지금 날 놀리는 거야이미 너도 내가 매료에 걸려서 너를 사랑하고 있어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말을 돌리지 마시죠분명 폐하께서는 즉위할 때부터 사랑을 한 사람이 있다고 털어놓았어요그러니 그런 시시한 농담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이것 봐나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했는데결국 예상했던 이야기잖아분명히 말했잖아너도 스스로 말했잖아출정을 떠나기 전에 매료를 걸었다고 했잖아."

 

 둘의 언성은 높아져 갔다마왕은 아무리 물어도 답을 하지 않는 황제의 태도에 화가 났고황제는 황제대로 자신을 능욕하는 것 같아 화를 냈다두 평행선을 달리는 둘의 언쟁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제가 매료를 걸기 전부터 사랑에 빠진 여인이 누구인지 묻는 겁니다."

 

 "진실을 말해줘도 계속 묻다니나를 비참하게 만들 속셈이라면 이미 성공했어나는 네가 3년 전 황제가 되어 처음 만난 날부터 사랑을 한 내 마음이 한낱 서큐버스의 매료에 의한 감정일 뿐이라니자그마치 3년이야. 3년이나 내 감정을 갖고 놀아놓고도 아직 능욕할 셈이라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자결을 선택하겠어."

 

 황제의 말을 들은 마왕의 표정은 의아한 표정이었다분명 자신이 매료를 건 시점은 출정을 떠나기 직전이었다그래서 그보다 전부터 진심으로 사랑하던 여인의 존재를 알게 되니 기분 나쁜 감정에 황제에게 직접 물은 것이었다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황제가 스스로에게 매료를 걸었다고 생각한 시점이 3년 전이라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이신가요제가 매료를 건 시점은 출정 직전이었는데 말이죠."

 

 "거짓말그럴 리가 없어지난 3년 내내 똑같은 감정이었던 걸 보면 네가 매료를 건 시점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분명해."

 

 마왕은 황제의 반응을 보고 금방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상황이 파악이 되자 마왕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그렇게 된 거였어아주 재밌어."

 

 황제는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마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일이 재밌게 되었군요이럴 줄 알았다면 굳이 매료를 쓸 필요가 없었을 텐데요."

 

 그 말과 함께 마왕은 황제에게 걸려있던 매료를 풀었다그리고 황제에게 다시 물었다.

 

 "이제는 어떤가요여전히 이렇게 다가가면 심장이 떨리나요?"

 

 마왕은 황제의 얼굴 앞으로 다가갔다갑자기 다가가자 황제의 얼굴은 매료에 걸렸을 때처럼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매료에 걸려있을 때와 같은 반응이었다마왕은 황제의 이런 반응에 확신했다.

 

 장난 그만하는 게 좋아.”

 

 실례했어요그리고 미안하지만 매료는 이미 진즉에 거두었어요방금 당신의 반응은 오로지 순수한 당신의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이죠.”

 

 황제는 반신반의한 심정이었다정말로 마왕이 매혹을 거둬들인 게 맞는지를 말이다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 감정이 온전히 본인 스스로의 감정이라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굳이 사람 하나를 데리고 올 수고를 안 해도 되니 말이죠폐하께서 순수하게 사랑하는 존재가 적국의 마왕이라니아이러니하네요.”

 

 마왕은 여전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황제를 내려다봤다그러나 황제도 가만히 앉아 마왕의 계략에 놀아날 생각은 없었다황제는 갑자기 일어나더니 마왕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마왕이 황제가 무슨 짓을 하려는지 생각하기 전에 황제는 금방 마왕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폐하!”

 

 마왕이 말을 다 꺼내기도 전에 황제는 마왕에게 키스를 날렸다마왕은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얼굴이 빨개졌다아무리 그래도 황제가 이런 적극적인 행동을 하리라고는 예상을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마왕이 급하게 얼굴을 때려고 해도 황제는 오히려 들이대면서 마왕을 안고 오히려 진한 키스를 이어나갔다끈적이던 키스가 끝나고 황제가 입술을 뗐을 때 둘 사이에는 키스를 했다는 걸 증명하듯 얇은 실이 서로의 혀끝을 이은 채로 늘어지고 있었다.

 

 내 마음이 매료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나도 이제 참지 않겠어반드시 너를 사랑에 빠지게 만들 거야내 방식대로.”

 

 황제의 눈빛은 결연했다그리고 이것은 마왕에 대한 도전이었다.

 

 그래그런데 과연 인간에 불과한 당신이 서큐버스이자 마왕인 나를 공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요?”

 

 그건 직접 해봐야 아는 거지.”

 

 마왕이 무슨 말을 하던 간에 황제의 결심은 결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마치 출정식 때의 다졌던 각오처럼 황제는 지금 이 결심에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