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가 마왕을 상대로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선언을 한 뒤로 둘의 일상에는 변화가 생겼다이전과는 달리 황제가 적극적인 태도로 변했다는 점이었다특히 마왕을 공략하기 위해 황제는 마왕을 유혹하기 시작했다그러나 마왕은 겨우 몇 번의 노력으로 그리 쉽게 넘어갈 존재가 아니었다.

 

 오늘도 안아줘아직 오늘은 안 안아줬잖아.”

 

 황제는 이전과는 달리 적극적으로 마왕의 포옹을 원했다틈만 나면 마왕에게 달라들어 포옹을 원했다초반에는 마왕은 무시로 일관했지만 그럴수록 황제는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역시 너의 품이 따뜻해서 좋아다음에도 잘 부탁할게.”

 

 결국 보다 못한 마왕이 포옹을 해주면 황제는 더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마왕을 감싸 안았다포옹이 끝난 뒤황제는 언제나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짓을 황제는 서슴없이 행했다물론 마왕은 초반에 이런 황제의 행동에 위협을 하기도성적인 행동으로 구슬려보기도무관심으로 일관하기도 했었지만 이미 사랑에 빠진 황제를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번에도 손 잡아줄래?”

 

 황제의 애정 행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마왕과 함께 잘 때도 황제는 멈추지 않았다황제는 그날 마왕에게 선언을 한 이후 일관되게 적극적인 구애를 펼쳤다반면에 황제에게 끈적이게 달라붙던 마왕은 황제의 돌변한 태도에 거리를 두려 했다한마디로 입장이 정반대가 되었다.

 

 마왕님요즘 근심이라도 있으신 겁니까안색이 엄청 안 좋아 보이십니다.”

 

 최근 황제의 구애 공세에 마왕은 날이 다르게 수척해졌다특히 작은 것에도 예민해져 업무에 지장도 생기고 있었다이전과는 달리 눈가에는 피로가 가득했으며 이제는 황제를 피해 침실에 안 들어가기까지 했다이런 상황이 벌써 몇 개월이나 이어졌다.

 

 마왕님그렇게까지 싫으시다면 차라리 황제를 석방하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이미 저희의 전략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어떻게 황제를 사로잡았는데 그런 짓은 할 수 없다아직 황제는 이용할 가치가 있어.”

 

 보다 못한 마왕의 참모들은 인간 황제를 석방하자고 몇 번이나 간언을 올렸다마왕의 근심이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마왕은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가며 참모들의 간언을 거부했다그러자 마왕성 안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마왕님께서 사실 인간 황제와 사랑에 빠졌다.”

 

 당연한 결과였다주변 참모들이나 사용인들의 입장에서 황제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마왕의 귀와 볼이 약간 빨개지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었다이렇게 사소한 변화는 곧 걷잡을 수 없는 소문으로 번졌다.

 

 사실 마왕님은 황제의 측근으로 몰래 잠입했을 때 한눈에 반했다.”

 

 마왕님이 인류동맹에 전쟁을 일으킨 것은 순전히 사랑에 빠진 황제를 자신의 곁에 두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황제랑 단둘이서 비밀연애를 하고 있는 거다.”

 

 이런 소문에 마왕성 내부의 반응은 엇갈렸다오래전부터 마왕을 모시면서 마족들을 이끌어온 관료들은 위엄에 찬 마왕의 모습을 깎아내린다며 소문에 부정적이었지만성 내부의 사용인이 대부분의 평범한 마족들은 무서운 마왕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열광적인 반응이었다당연히 소문이 퍼지자 마왕의 귀에도 이 소문이 들어가게 되었다.

 

 도대체 그런 소문을 퍼트리는 이가 누구인가그런 소문을 다시는 입 밖으로 내지 않도록 하라.”

 

 그러나 마왕의 명령에도 이 사랑이야기는 일파만파 퍼져나갔다이에 마왕은 골머리를 썩을 수밖에 없었다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상황은 악화만 되어갔다.

 

 

 

 

 마왕님세상에 술이라도 마신 거야얼굴 상한 거 봐.”

 

 마왕은 계속되는 소문에 만취할 정도로 술을 들이키고서 침실로 들어갔다침실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술에 잔득 취한 마왕을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황제가 있었다바깥의 소문이 어떻게 퍼지든 황제는 일편단심이었다늘 마왕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래서 마음이 이제는 놓인 것인지 아니면 술기운이었던 것인지 마왕은 침대에 걸터앉아 황제의 곁에 기대었다.

 

 “...황제넌 지금 침실 밖에서 무슨 소문이 떠돌고 있는지 모르지?”

 

 무슨 소문?”

 

 말도 안 되는 소문이야내가 황제를 사랑한다는 소문.”

 

 마왕은 술 때문에 볼이 빨개진 상태로 황제에게 소문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그리고 지금 함구령을 내렸어도 불구하고 계속 퍼져나가는 소문 때문에 미쳐버리겠다는 말까지도 덧붙였다황제는 마왕의 한탄을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거 내가 퍼트린 거야.”

 

 ?”

 

 마왕은 황제의 폭탄과도 같은 발언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리고 황제를 바라보자 황제는 간악한 미소를 지으며 마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왕이 나를 사랑한다는 소문을 퍼트린 거그거 나라고.”

 

 마왕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다심지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도대체 왜?”

 

 왜라니그야 내가 이렇게 너를 사랑하는 걸나는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의 방법을 쓴 것일 뿐이야.”

 

 마왕은 이해할 수 없었다황제가 원래부터 전술이나 전략에 관해서는 괜찮은 안목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렇다쳐도혼자일 이 마왕성 안에서 어떻게 그런 계략을 꾸밀 수 있었냐는 것이다게다가 마왕은 황제가 온 이후로 침실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고 있었다.

 

 과연 마왕성 안에 심어 놓은 첩자가 몇이라고 생각해아니면 넷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사랑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사용인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황제의 말에 마왕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본인은 인류동맹의 첩자를 다 잡았다고 생각했다기껏해야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용인을 포섭하는 정도에서 끝날 줄만 알았다그러나 사랑에는 관심이 없는 마왕 본인과는 달리 사용인들은 평범한 마족들이었다그들도 사랑이야기라면 열광했고 그 이야기의 대상이 마왕이라면 더욱 열광했다.

 

 나는 마왕성 안에 첩자들한테 약간의 단서만 던져줬을 뿐이야그런데 이렇게 일이 거대해질 줄은 몰랐네.”

 

 황제는 마왕에게 얼굴을 들이댔다마왕은 순간 얼굴을 뒤로 뺐다.

 

 난 내 계략대로 이루어져서 만족해.”

 

 하지만 그런 건 전부 헛소문이야마왕인 내가 적국의 황제를 좋아한다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적국의 마왕을 사랑하는 이야기는 눈앞에 있는데그리고 정말로 내가 싫었다면 참모들이 하는 말처럼 나를 그냥 내치면 되는 일이었잖아나를 석방한다고 해서 마족에게 타격이 가는 것도 아니고이미 동맹군을 박살낸다는 목적 자체는 이뤘잖아?”

 

 그건그건...”

 

 마왕은 황제의 말에 반박을 하려다 말문이 막혔다머리가 식으니 황제의 말처럼 참모들의 조언에 따르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그러나 그런 조언을 거부한 것은 마왕 본인의 의지였다마왕은 알 수 없는 먹먹한 감정을 느꼈다.

 

 사실은 너도 모르게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는 이유밖에는 떠오르지 않아맞지?”

 

 아니야그런 일은 절대 없어!”

 

 마왕이 완강하게 아니라고 말하자 돌연 황제는 기습적으로 마왕에게 키스를 퍼부었다마왕은 갑작스러운 키스에 입을 떼려고 했지만 황제는 마왕의 몸을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마왕은 키스를 하면 할수록 두근거림을 느꼈다알 수 없는 기분이었다마왕은 힘을 주고 있던 몸에 힘을 빼고 눈을 감은 채로 황제와의 키스에 열중하기 시작했다마왕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이었다잠시 후 끈적이게 달라붙었던 황제의 입술은 마왕에게서 떨어졌다열정적인 키스를 나눈 두 사람의 사이에는 그 결실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얇은 실이 늘어지고 있었다.

 

 하아하아어때아직도 자신의 마음을 모르겠어?”

 

 너 정말 싫어.”

 

 그렇게 얼굴이랑 귀를 붉혀놓고 그런 말 하면 설득력 없는 거 알지?”

 

 그러면서 황제는 이번에는 마왕의 품속에 안겨들었다그러자 마왕의 심장은 요동치듯이 박동이 빠르게 뛰었다마왕은 이번에도 황제의 행동에 아무 것도 못하고 당황한 상태였다.

 

 이제는 숨기기도 싫은가봐심장 박동도 엄청 빨라.”

 

 황제의 말에도 마왕은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다이제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마왕은 황제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래나 너 좋아해좋아하고 있어이게 원하는 대답인 거지?”

 

 황제는 마왕의 고백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그리고 왈칵 눈물을 흘렸다마왕은 갑자기 우는 황제를 달랬다.

 

 괜찮아이건 기뻐서 흘리는 거야너무 기뻐서 눈물이 막 흘러 나와.”

 

 황제는 펑펑 울면서 동시에 기쁜 미소를 지어보였다마왕은 그런 황제를 자신의 품에 안고 달래주었다그러자 갑자기 마왕은 중심을 잃고 침대 위로 눕혀졌다황제가 마왕을 밀어서 그랬다아까와는 달리 황제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마왕은 황제의 이런 모습이 처음이었다.

 

 이제 우리 서로 사랑하는 연인인거지?”

 

 마왕은 얼굴만 붉힌 채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지금 이거는 서로 동의한 일이야.”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마왕을 덮쳤다처음은 마왕이 덮친 것과는 달리 상황이 반대되었다그날 둘은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진하게 사랑을 나누었다이는 마왕에게도 황제에게도 처음이었다.

 

 

 

 

 마왕님몸은 좀 어때?”

 

 괜찮아이제는 안정기라서 어의도 괜찮다고 했어.”

 

 황제는 이미 만삭이 다 된 마왕이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마왕은 그런 황제의 손을 포개어 같이 자신의 배를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쓰다듬었다둘의 약지에는 어느덧 둘의 사랑을 증명하는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런데 아직도 마족 몸은 적응을 못하겠어벌써 몇 달이나 지났는데도 그래.”

 

 황제는 자신에게 돋아난 뿔꼬리날개그리고 여우귀를 만지면서 불평했다황제의 모습은 영락없는 마족의 모습이었다.

 

 우리 애도 마족일 텐데 아버지라는 사람이 얼른 적응해야지.”

 

 내가 마족이 된 건 다 마왕님이 사랑을 나누다가 목덜미를 물어서 그렇잖아.”

 

 황제의 일갈에 마왕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눴던 첫날밤에 마왕은 자신의 두근거림을 주체하지 못해 그만 황제의 목덜미를 물었다그래서 황제는 마왕에 의해 강제로 마족이 되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그 몸이 싫어?”

 

 아니 싫지는 않은데 그래도 어색한 건 어색한 거야.”

 

 난 폐하가 나랑 오래오래 같이 살 수 있어서 좋은데.”

 

 황제는 마왕의 말에 두근거렸다실제로 인간이었던 황제는 마족이었던 마왕에 비해 오래 살지 못할 운명이었다.

 

 폐하어디에 계십니까!”

 

 황제가 마왕이 달달한 시간을 가지는 사이 밖에서 황제를 찾는 소리가 들렸다황제는 그 목소리에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폐하는 이번에도 일을 내버려두고 온 거야?”

 

 하지만 아직 마왕님의 포옹을 못 받았는데그게 없으면 기운이 도저히 안 난단 말이야.”

 

 오늘은 벌써 6번이나 해줬잖아.”

 

 부족한 건 부족한 거야.”

 

 마왕은 황제의 말에 팔을 잡고 끌어당겨 안아주었다황제도 마왕을 안아주었다.

 

 이제 됐지그러니까 어서 가서 일을 마무리하고 와.”

 

 아직 부족한데...”

 

 어서 가.”

 

 마왕의 단호한 태도에 황제는 투정을 부렸지만 곧 자신을 찾은 시종장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끌려 나갔다마왕은 그런 황제에게 잠깐의 작별을 전하고 혼자가 된 방에서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인류동맹의 황제와 마족연합의 마왕이 결혼과 임신을 발표한 시점은 이 세계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당장은 두 분의 선언에 양 진영이 혼란에 빠졌지만황제와 마왕의 의지는 확고했다두 분의 지시에 따라 양 진영에는 평화조약이 빠르게 맺어졌고황제가 다스리는 제국과 마왕이 다스리는 연합은 평화합병이 진행되었다양측 실무진들의 뼈가 깎이는 노력 끝에 양국은 평화적으로 연합제국이 결성되었다외부적으로는 규모가 더 컸던 마족연합에 제국이 가입하는 형태였지만 법이나 제도는 제국에서 사용되던 것을 따왔으며신생국가의 군주도 제국의 황제가 맡았다.

 

 연합제국의 초대 황제와 황후는 역대 황제 부부 중에서도 가장 금슬이 좋았으며가장 많은 자식을 본 부부로 기록되었다또한 내정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여 연합제국을 크게 성장시켰으며건국 이후 여전히 남아있던 인간과 마족 사이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중재했다후세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연합제국의 가장 위대한 황제이자 성군으로 초대 황제 부부를 칭송했다.

 

-어느 시골의 오두막에 쓰인 낡은 책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