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랄 같네 진짜! 혀 안 깨물게 조심해!”

 

 마리는 고민 없이 창문을 열고 리안의 팔을 잡은 뒤 밖으로 집어 던졌다. 

 

 “아니 지금 뭐하신! 으아악!”

 

 그리고 자신도 곧장 뛰쳐나가 공중에서 리안을 잡은 다음에 바닥에 무사히 착지했다. 아무리 마족이라고 해도 도무지 따라할 엄두가 나지 않는 묘기에 린세와 란펑은 얼이 나갔다. 

 

 “저랑 같은 종 아니신 거 같아요.”

 

 린세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착실히 기절한 만홍을 업고 창밖으로 몸을 내던졌다. 린세 역시 무사히 착지하여 먼저 달려가는 마리의 뒤를 따라갔다. 

 

 “얘들아? 나는? 나는 어떻게 하라고? 난 너희처럼 못하거든?”

 

 란펑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눈을 딱 감고 창문부터 밖까지 이어지는 얼음길을 만들었다. 무섭고 다리가 떨려서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급박한 상황에서 찬물 더운물을 가릴 순 없었다. 

 

 “꺄아아!”

 

 얼음길에 올라탄 란펑은 주체 못할 속도로 미끄러져 추락하듯 내려갔다. 그런 란펑을 따라 총알이 몇발 스치고 지나갔다. 

 

 이대로 지면을 미끄러져 간다면 무사히 다른 일행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얼음길이 끝나는 지점엔 비바람에 날아온 자재가 가로막고 있었다. 란펑은 공포에 제대로 생각할 겨를이 없는 와중에도 간신히 얼음길의 끝에 돌출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나 좀 잡아줘어어어어어어어!”

 

 이윽고 바닥까지 내려온 란펑은 얼음길의 끝에 있는 돌출부로 인해 허공으로 사출되었다. 평생 바닥에서만 지낸 란펑이 허공을 나는 순간이었다. 

 

 폭풍우의 사이로 마치 날개를 퍼덕이듯 소매를 휘저으며 란펑이 날아왔다. 

 

 “거 참 번거롭네!”

 

 란펑이 추락하기 직전, 마리는 란펑을 허공에서 잡아 한바퀴 돌려 힘을 분산시키고 그대로 앞으로 집어 던져 무사히 착지시켰다. 10번 하면 12번은 실패할 짓이었으나, 란펑의 삶에 대한 간절함이 기적을 일으켰다. 

 

 “죽는줄 알았어.”

 

 “안 죽었으니 뛰어!”

 

 넷은 일제히 뛰어갔다. 일행을 향해 총알 세례가 날아들었으나 비때문에 흐려진 시야에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인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벌집이 되어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빨리! 바다가로!”

 

 그렇게 되기 전에 일행은 바닷가에 다다랐다. 그리고 깎아 지르는 방파제의 아래에 혼란을 틈타 항구로 다가온 한 척의 배가 기다리고 있었다. 

 

 “뛰어내려요!”

 

 마리는 먼저 란펑을 배 위로 집어 던졌다. 

 

 “으아아아앙!”

 

 그리고 자신은 리안을 업은 후에 뛰어내렸다. 

 

 배가 흔들리긴 하였으나 마리는 무사히 착지했다. 먼저 떨어진 란펑은 먼저 배에 있던 남성이 받아서 내려주었다. 

 

 “고마워.”

 

 “별말씀을.”

 

 뒤이어 만홍을 업은 린세도 무사히 착지했다. 

 

 “출항!”

 

 “좀 살살 해달라고!”

 

 란펑은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착실히 파도를 일으켜 배를 움직였다. 

 

 “다들 총 안 맞게 안으로!”

 

 천장만 철로 된 배에 납으로 된 폭우가 내렸다. 선체 여러 곳과 천장이 총알에 만신창이가 되었으나 배가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뒤늦게 세르방트 경비정이 추격을 시작하였으나 파도를 이용해 암초의 바다마저 무시해버리는 배를 따라잡을 방법은 없었다. 

 

 일행을 태운 배는 무사히 세르방트 구역에서 벗어났다. 

 

 

 할게니우스의 영해에 들어서 폭풍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추격도 더 이상 오지 않았다. 한숨 돌린 일행은 각자 적당한 곳에 걸터앉으며 긴장된 몸을 진정시켰다. 

 

 “다친 사람 없지?”

 

 넝마가 된 배에 비해서 일행의 상태는 양호했다. 아직도 의식이 없는 만홍을 무릎에 뉘인 린세도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있으면 일어나실 것 같아요.”

 

 배는 잔잔히 북쪽으로 흘러갔다. 내리쬐는 햇볕에 푹 젖은 몸은 순식간에 말라갔다. 

 

 “어떻게 알았지?”

 

 “아마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거예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한스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그 한스라는 놈. 더 나아가서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리안은 작게 한숨을 쉬며 난간에 걸터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콜로딘에서 몇 없는 장애물 없이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장소에 복잡한 마음도 조금은 진정되었다. 

 

 “저희는 세르방트 연방국무부 산하 특수 정보 수집 기관, 줄여서 SIA의 요원입니다. 저희는 주로 시아라고 불러요.”

 

 비에 옷이 젖어 몸에 달라붙자 평소엔 잘 드러나지 않던 리안의 단련된 신체가 드러났다. 

 

 “이상하다고는 생각 했어. 그냥 공무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유능했거든.”

 

 갑작스럽기는 하였으나 그간 보여준 리안의 모습을 생각하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믿기 어려운 건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거기가 뭐하는 곳인데?”

 

 마리의 질문에 리안은 대답하는 대신 린세를 보았다. 리안에게 다른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린세와 만홍은 아니었다. 이름도 모르는 타국의 사람에게 함부로 자국의 비밀을 말할 수는 없었다. 

 

 리안의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곧장 이해한 린세는 눈을 감고 귀를 막은 후 입으로 길고 크게 소리를 내었다. 리안은 그 사이에 란펑과 마리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설명을 마쳤다. 

 

 “허, 생각보다 대단한 놈이었잖아?”

 

 “그럼 그 한스라는 사람이 그렇게 유능한 것도 이해가 되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우리 진짜 큰 일에 발을 들이민 것 같네.”

 

 어느 나라든 특수한 임무를 수행하는 비밀조직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런 이들이 하는 일이 잡다한 일거리일 수는 없었다. 

 

 “그런 신분이니까 마족이랑 교제했다고 그렇게 난리가 나는 건가?”

 

 “그건 아니예요. 뭐 그 탓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마리 씨랑 사귄 거로 징계를 받은 건 표면적인 이유고, 실질적인 이유는 계획의 전에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서겠죠. 그것 때문에 더 큰일이 나긴 했지만요.”

 

 국가 중요시설인 항구에 마족이 침입하여 인간을 납치해갔다. 세르방트 입장에선 국가 위신에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사안이었고 가뜩이나 마족과의 교제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이번 일은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먼저 얘기나 좀 해줬으면 이럴 일 없었잖아?”

 

 “이렇게까지 하실 줄은 몰랐죠. 그리고 일 자체도 이렇게나 꼬일 줄은 몰랐고요. 원래 3일이면 해결될 일이었어요.”

 

 “아으! 진짜! 그러니까 그걸 말해달라는 거라고! 갑자기 사라져선 연락도 하나 없고, 항구에 가니까 징계라는데 가만히 있게 생겼어?”

 

 “요원이 자기 임무를 막 말하고 다닐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아셨으면 그냥 가만히 있으셨겠어요?”

 

 “그건 모르는 일이잖아.”

 

 “그러지 않을 지도 모르는 일이죠.”

 

 둘은 으르렁거리며 서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배가 파도를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불편한 침묵 속에서 란펑이 작게 한숨을 쉬곤 말했다. 

 

 “요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생각한 나머지 최악의 결과가 나왔다는 거네. 리안? 상황설명을 좀 해주겠어?”

 

 “후. 어떤 걸 해드리면 될까요?”

 

 “향후 전망 같은 거.”

 

 “한스는 집요한 녀석입니다. 분명 쫓아오겠죠.”

 

 “그리곤?”

 

 “죽일 겁니다. 전부.”

 

 분위기가 이전보다도 냉랭해졌다. 그러나 란펑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어갔다. 

 

 “그건 내가 있는 한 못해. 여차하면 부르첸스카도 부르면 돼.”

 

 “부르첸스카가 누군데?”

 

 “내 술친구.”

 

 “그거 도움되는 거 맞아?”

 

 “충분하지.”

 

 하나씩 불안을 안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란펑은 매우 여유가 있는 태도였다. 괜히 불안해하는 것이 바보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육지에 닿으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겁니다. 한스가 아무리 막 나가도 다른 나라의 땅에서까지 대놓고 활동하진 못할 거니까요.”

 

 “동감이야. 그 한스라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해도 다른 나라와 전쟁하는 것까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진 않을 테니까.”

 

 이야기가 일단락되고 모두 잠시 숨을 골랐다. 란펑은 평온히 난간에 앉아 수평선을 바라보았고, 마리와 리안은 서로 말할 게 많은 듯하였으나 당장은 참는 눈치였다. 

 

 린세는 만홍의 상태를 살피고 무사하다는 거에 안심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선원 둘은 그 모습을 보다가 배의 조작에 집중했다. 

 

 배는 조용히 나아가 어느덧 항구가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란펑은 생각을 마쳤는지 난간에서 내려와 린세에게 다가와 말했다. 

 

 “린세, 아직 발 뺄 수 있을 때 빼도록 해. 이대로 할게니우스 구역에 도착하면 곧장 너네 구역으로 가. 얘네가 아무리 막 나가도 타국의 외교관까지 건드리진 않을 거야.”

 

 린세 역시 지금이 이 일에서 물러날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쯤은 이해하고 있었다. 리안이 갇혀 있던 것도 마족과 교제해서가 아님이 밝혀졌고, 린세가 리안에게 아무런 빚이 없음이 명확해졌다. 비록 발을 담가버리기는 하였으나 아직 발목 정도였다. 일을 남겨두고 간다는 약간의 찝찝함만 감수하면 됐다. 

 

 “그렇게 해야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만홍이 있었다. 여기서 린세가 빠지지 않는다는 건 만홍 역시 휘말리게 된다는 걸 뜻했다. 그저 상관을 잘못 만났을 뿐인 아전에겐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고작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무고한 사람 한 명의 운명을 담보로 잡기엔 린세는 너무 정이 많았다. 

 

 “가기 전에 샤오란펑님이 어떤 신수신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그래도 남겨두고 가는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린세는 아무런 미련도 없이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본 란펑의 능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출중했다. 육체적 능력이 인간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 상황을 모두 손바닥 안에 두고 있을 정도로 뛰어남은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린세는 여기서 조금 더 믿고 싶었다. 이대로 발을 빼는 것이 절대 민폐나 책임전가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신앙이 안 들어오니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벌써 잊혔구나. 참 덧없는 걸.”

 

 그러나 린세의 요청을 들은 란펑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린세는 그 표정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진 못했지만, 뭔가 좋지 못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들어나 봤을 지 모르겠네. 현무라고 말이야.”

 

 현무.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린세는 온 몸의 털이 거꾸로 솟아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현……. 무? 백호님. 반란세력? 혁명? 플라워무스. 아아…….’

 

 린세는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눈이 흔들렸다. 그리고 이내 차마 란펑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선을 돌렸다. 마치 재판관의 앞에 선 죄인이 된 기분이 되었다. 

 

 플라워무스 가문은 백호를 제외한 다른 신수들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가지고 있었다. 설령 거기에 린세의 기여는 없다고 해도 그 가문의 일원으로서 가문의 유산을 이어받는 이상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원죄였다. 마치 부모를 져버린 아이와 같았다. 

 

 “좋지 않은 쪽인가 보네. 그건 미안한걸.”

 

 “아뇨! 그런 불경한 뜻은…….”

 

 “괜찮아. 지금의 탄트라에서 내가 어떤 의미일지는 대충 알고 있었으니까.”

 

 린세는 더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던 것들은 전부 아무래도 좋은 일들이 되었다. 린세는 무슨 말을 해야 란펑에게 저지른 불경을 용서받을 수 있을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린세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배는 어느덧 할게니우스의 해변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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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재계약 시즌이라 너무 바쁘다


재계약은 지네가 하는데 왜 내가 바쁘냐고...


얼추 마무리 되는거 같으니까 또 힘내서 써야지


늦어져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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