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중에 편의는 자의식이 없는 인형이 돌봐준다. 이런 인형들은 상당히 예전에 개발되었지만, 유지보수 및 생산이 상당히 까다로운 탓에 대량으로 운용하는 곳은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곳 외엔 말 그대로 엄청난 부자나 사용 가능하다. 애초에 비교도 안될 정도로 더 까다로운 인형도 있지만, 애초에 인형이란 물건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그나마 흔히 볼 수 있는 인형은 비교적 투박한 외형에, 상당히 제한적인 기능이 붙어있는 종류가 전부다.

  "..목이 마르군."

  "지금 드실 수 있는 음료는, 바다의 꿀, 하늘의 열매 과즙, 태양의 은혜..."

  "아니, 물이면 돼. 시원한걸로. 얼음은 없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얘는 대화 못해?"

  "응? 그렇단다. 지능이 높은 편은 아니라서 간단한 주문만 가능하단다. 그나저나 이런 물건이 여기선 대량으로 운용되는 것인가?"

  "네. 축제 기간 동안 모든 방마다 하나씩 있어요."

  "정말 궁금해지는군. 이런 비싼 몸을 이렇게 운용 가능한 부자가 이곳에 있다니."

  "편하게 생각하세요. 여긴 환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니까요."

  "..축제에서 심각한 얘기를 꺼냈네. 즐길 줄 알아야겠어."

  아이들은 각자 좋아하는 음식을 집어와서 먹고 있다. 기특하게도 모두 고기와 채소를 적절한 비율로 가져와서 같이 먹고 있다. 반찬투정이 없는 아이들이 손이 덜 가서 좋긴 하다. 예전에 아이들을 돌봤을 무렵에는 반찬투정을 하지 않는 아이가 없었으니까.

  "고기가 엄청 많네, 부위별로 가져왔어?"

  "응! 너무 고기만 먹으면 느끼하니까, 같이 먹을 반찬도 많아!"

  "..아무리 그래도 술은 안된다 얘야."

  "뭐야?! 다시 줘! 아저씨는 몰라도 우린 아저씨보다 나이 많거든!"

  "더 크면 먹게 해주마."

  "아? 앞으로 얼마나 크라고?!"

  "적어도 키가 내 턱까지는 와야지."

  "되는걸! 으으응..!!!!"

  "..오카. 너무 그렇게 힘 빼지 말거라.."

  "힘...안..들어..!!"

  녹청색의 털을 가지고 있는 오카가 술을 마시려고 해서 잠깐 집어 들었다. 키에 대한 반발로 오카만의 특징적인 긴 꼬리를 바닥에 세워서 열심히 내 턱까지 키를 키우려고 한다. 어떻게든 닿으려고 귀까지 빳빳하게 세워서 턱에 닿으려고 하는데, 긴 사각형 꼬리가 그걸 버틸 수..아 넘어졌다.

  "으...꼬리를 더 단련해야겠어!"

  "에휴, 그거 줘요 아저씨."

  "보프구나, 치우려고?"

  "내버려둬요. 어차피 취하면 자기가 책임질거고, 생각보다 아저씨만큼 술에 약하지도 않아요."

  "역시 보피! 너도 마실래?"

  "아니, 그나저나 이거 벤의 섬광이잖아. 이건 어디서 구했어? 찾아봐도 없던데."

  "쟤가 줬어. 말하니까 있다더라고."

  "이 독한 술을 마시고도 멀쩡하다고?"

  "그야...우리가 보기보다 나이가 많기도 하니까요. 대부분 잊어버리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저 작은 몸으로 저 독한 술을 버틴다고?"

  "...못 믿겠으면 직접 보시면 되겠네요."

  "..가름이 보면 뭐라 하겠군."

  "글쎄요?"

  오카는 일단 개과 동물이다. 강아지라고 부르면 상당히 화를 내니 늑대라고 하는 편이 좋긴 한데, 저렇게 먹으면서 옆에서 크리스티나가 머리라도 쓰다듬으면 꼬리를 흔들면서 좋아한다. 그냥 개처럼 보이지만, 존중은 해줘야겠지.



  밤은 생각보다 훨씬 푹신하게 보냈다. 침구라고 해야 할까, 바닥이 생각보다 엄청 푹신한 것이다. 걸어 다닐 때나, 앉아 있을 때는 단단한 바닥이지만, 누우면 거대한 솜이불이라도 된 것 마냥 푹 들어간다. 그 위에서 애들끼리 뭉쳐서 유사 이불로 쓸 수 있기도 하고. 실내 온도가 높은 것도, 낮은 것도 아니어서 혼자 잠들어도 편하지만, 다같이 모여서 잠을 자니 생각보다 훨씬 안락함이 늘었다.

  "오늘은 귀가인가?"

  "네. 저녁에 집에 돌아갈 예정이에요."

  "그럼 오늘은 어디로 가나?"

  "애들이랑 또 놀아보실래요?"

  "...아니, 사양하겠어. 거대한 진자에 30명을 각 마디마다 묶어두고 날 제일 밑에 태웠으니, 좋은 느낌은 전혀 들지 않더군."

  "재밌는걸 타셨네요."

  "적어도 열차를 타고 수직하강하는 것보다는 낫긴 했어. 많이 어지러운 것을 빼면."

  "그 열차는 철도가 무한으로 생성되니까요. 궤도도 예측 불가능하죠."

  "분명히 한 지점에 멈춰있는 상태인걸 알아도 떨어지는 관성을 느낄 수 있었어. 굉장한 물건이지. 아이들이 아주 좋아했어."

  현실적으로는 저런 놀이기구들은 짓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이곳은 가능했다. 심지어 그 거대한 진자는 각 마디마다 최소 10m는 되었으니까. 저런 수직 구조물을 이리저리 휘둘리게 할 정도로 엄청난 재질은 없다. 한번만 기동이 가능한 것도 아니고 수십 수백번 기동하는 물건을 저렇게 만들다니...자연스럽게 몸서리가 쳐졌는지, 크리스티나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걱정 마세요. 오늘은 편하게 돌아갈 생각으로 거대한 식물원으로 갈 예정이니까요."

  "식물원? 이런 곳에?"

  "생각한 만큼 이 근처에 숲이 없어요. 있어도 위험하죠. 안전한 산책을 위한 곳이에요."

  "아이들은 좋아하나?"

  "아주 좋아하죠. 다들 편안해 하고 말이죠."

  "그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언제 출발하나?"

  "아침은 드셔야죠?"


  거대한 놀이공원과 도시를 뒤로 하고 식물원으로 길을 떠났다. 캘시는 길이 익숙한 듯 하며, 아이들도 더 놀고 싶다거나 하는 의견을 보이지 않았다. 실은 오른손을 꼭 잡고 걷고 있다. 이따금 머리를 팔에 비벼대는데, 왼손으로 쓰다듬어주면 좋아한다.

  "식물원은 어떤 곳이니?"

  "응? 말 그대로 식물원이야. 평소라면 절대 못 볼 애들도 많고, 피지 않는 것들도 전부 펴있지."

  "크기는 얼마나 거대하니?"

  "꽤 커. 내가 있는 힘껏 뻗어봤지만, 끝과 끝이 닿지는 않았어."

  "..그런데 꽤 화려하구나?"

  "내가? 글쎄? 평소랑 같지 않아?"

  "...그런가?"

  늘 보던 캘시의 모습과는 다르게, 식물원으로 향하는 순간부터 꾸미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꽃의 위치부터, 색 배합이나 잎의 넓이까지 계속 손을 보고 있다. 저렇게 화려하게 꾸밀 정도로 누군가 만나는 것일까? 다른건 몰라도 평소랑 확실히 다른 것은, 꽃이 말 그대로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것이다. 몇 송이 보이지 않던 꽃이 머리부터 줄기까지 쫙 깔려있다.

  "언니는 비슷한 사람들이랑 만나러 가니까 꾸미는거에요."

  "비슷한? 식물원이니 관리인도 캘시랑 비슷한 사람인가?"

  "언니는 후천적이지만, 거기 관리인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났고, 관리인 말고도 거기 지내는 사람들도 전부 그렇죠."

  "그래서 경쟁이 붙었다는 거니?"

  "어...음...경쟁이라고 해야 할까..언니가 적어도 비웃음 당하고 싶지 않아서 저러는 건데, 정작 본인 말고는 아무도 신경 안 써요."

  "말해주지 그랬니?"

  "말은 진작 했죠. 아마 믿을 생각도 없어 보이는 데다가, 만나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꾸미고 올까 궁금해 하는 편이라."

  "좋은 인형이 되었구나."

  "그렇죠. 본인은 전혀 신경 안 쓰고 있지만."

  꽃과 잎만 저렇게 화려하게 바뀌었나, 그것도 아니다. 직접 줄기를 짜서 옷도 바꿔놨다. 염색도 바꿔가면서 하고 있고, 드레스 양식도 점점 화려하게 바뀌고 있다. 저러다 옷에 먹히겠는걸?



  날씨가 따뜻해지고 있다. 해가 슬슬 중천에 오를 시간일까? 근처에 흐르는 물 소리를 들으면서, 다같이 점심을 먹고 있다. 식물원은 진작 도착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도착한게 아니라 처음 발을 뗄 때부터 식물원이었다. 부지가 엄청 넓어서 가장 끄트머리는 식물원이 아닌 것처럼 꾸며진 것이었다. 문득 장미정원은 식물원 내부일까 외부일까 궁금해졌다. 그나저나 이 열매는 무슨 열매길래 맛이 빵이랑 비슷하지?

  "생각보다 과즙이 많아서 목이 메이지도 않네."

  "아저씨는 식물원 처음이야?"

  "설마 이런 곳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지."

  "배고프면 더 먹어도 괜찮아."

  그리고 우리에게 이런 열매를 대접하는 분은, 관리인인 유씨다. 복슬복슬한 흰털에 어울리지 않는 새빨간 휘어진 뿔을 가진 양? 염소? 아니면 다른 무언가시다. 본인 말로는 배고픈 것은 절대 참을 수 없다는 모양이다. 그래서 자기가 관리하는 곳은 유달리 식용 가능한 식물들 위주라고 한다. 오죽하면 근처에 있는 잎도 따서 한번 만 뒤에 씹으면 생각보다 고소한 맛이 나면서 씹히기도 하는? 과자가 된다. 절대 식물이라고 믿겨지지 않는 식감이다. 분명히 따고 말 때까지만 해도 부드러웠는데, 말고 입에 넣자마자 단단해지는 신기한 잎이다.

  "전에 봤을 때보다 이뻐졌네?"

  "그럼! 난 언제나 계속 이뻐진다고!"

  "이건 직접 짠거야? 손재주도 좋은걸?"

  "왜? 하나 줄까? 금방 만들어줄게."

  "음...아냐. 나중에 필요하면 말할게. 지금은 괜찮아. 이대로 집에 가는 모양인가 봐?"

  "맞아. 여길 거쳐서 가니까, 저녁에는 도착하겠지."

  "아이들이 피곤하지 않을까?"

  "내가 있으니까 괜찮아."

  본인 나름의 경쟁심은 가지고 있어도, 꽤 친한 친구인 것 같다. 졸졸 흐르는 물 소리를 배경삼고, 어디선가 울리는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조용히 귓가에 들리고 있었다.

  "아저씨 이거 마셔봐."

  "이건 뭐니? 읏..차가..!"

  "저기 물 속에 있던 과일이야. 꼭지를 따면 안에는 즙이 한가득이야!"

  "시원하게 마시려고 저렇게 개량해둔 과일이야. 이름이...코디악이었나?"

  "과일이란 것이 전혀 믿겨지지 않는군! 과즙인데도 이렇게 깔끔하다니!"

  "칭찬 좋은걸? 아무리 그래도 식물이 자체적으로 차갑게 되는 녀석은 거의 없으니까, 처음부터 물 속에서 자라게 했지."

  관리인이 아니라 연구원인가? 아니면 이 식물원은 관리인의 권리가 생각보다 엄청 넓나? 굉장히 탐나는 과일이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가 맡은 지역은 특유의 개성을 살린 식물원인가?

  "거기다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으니까, 맛있고 배부르고 살도 빠지는 좋은 애들이지."

  "허...탐나는 과일이군."

  "정확히는 과일이 아니라 채소지만. 열매가 달긴 해도, 열매만 쓰는 애는 아니니까."

  "몇개 가져가도 되겠나?"

  "괜찮아. 하루만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니까. 대신 심어서 키우려고 하면, 상당히 까다로운 관리가 필요하니까 그러진 말고."

  넓은 부지와 식물의 배치 정도, 근처에 필요한 수원과 지력의 유무까지. 간단하게 키울 열매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도 탐나는 것은 사실. 이런 물건이 퍼진다면 상당한...그래서 퍼지지 않는 것인가, 우리와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은 아주...많으니까.

  "요즘도 털에 먹을거 넣어두고 다녀?"

  "응? 요즘은 안 그래~다들 커져서 넣고 다니기가 힘들거든~"

  "그래? 근데 이 삐져나온건 뭐야?"

  "아앗..!!"

  "안 그러긴 개뿔~"

  "아, 근데 개뿔 진짜 있다?"

  "뭐?"

  "전에 봤거든. 분명 강아지였는데, 뿔이 있더라고."



  지금 상상 이상의 어려움에 처했다. 비교적 따뜻한 구역에 왔는데, 이곳은 식물과 곤충계열을 키우는 곳 같다. 일종의 번식장인가? 해를 입히는 벌레들은 없지만...여기 있는 거의 모든 벌레들이 날아다니는데, 아이들이 빤히 보다가 쫓아가는 통에 관리가 무척 힘들다. 심지어 어떤 벌레는 생각보다 큼직한데다가 말 그대로 한번 뛰면 나무 위까지 거뜬히 날아? 아니 뛰어오른다. 그걸 쫓아가는 아이들을 잡을 수가 없다!

  "얘...얘들아...제발 모여다오..."

  "우와...하늘로 돌아다니는 애들은 나도 도저히 손 쓸 방법이 없는데?"

  "엄마도 엄청 고생이야."

  "미안해...하필 도착한 시간이 좋지 않아서 일에 휘말려버렸어. 내가 어떻게든 책임은 질게!"

  원인은 이 분이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다. 진짜 '사람'이다. 이곳에 어떻게 왔는지는 몰라도 이 구역의 관리인이니, 능력을 인정받아 이곳에 머물 수 있는 사람이겠지.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은, 한창 벌레들에게 영향을 주는 식물을 만들고 있었는데, 상당한 활동성 증가의 효과를 가진 꽃이 지천에 피는 바람에 주체를 할 수 없어진 아이들의 체력이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애들의 흥분이 가라앉기 시작할 쯤이면...

  "일단, 캘시가 좀 도와줘야 해. 그리고 이것과 이거.."

  "어...피우기 엄청 싫은 애들이네. 내가 뻗어버리는거 아니야?"

  "괜찮을거야! 정 안되면 내가 여기서 재워줄게!"

  "...해야 하나?"

  "해야지 언니. 지금 상황이..."

  "아저씨가 뻗기 직전이네."

  "미안하다.."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게 말 그대로 괴물들을 뭉쳐 놓은 것처럼, 엄청난 힘과 속도로 돌아다니는 애들을 잡으려 뛰어다녔지만, 소리도 듣지 않고 돌아다니는 애들을 막을 방법이 딱히 없었다. 거기다 몇몇 애들이 벌레를 잡아먹기 시작하면서 사태가 점점 커졌다. 그나마 조금 웃긴 장면 중 하나는, 조금 커다란 곤충이 있는데, 멋지고 큰 뿔을 가졌다. 그 곤충과 일대일로 맞붙은 애가 있다는 것이다. 서로 비등하게 싸우는 장면은 꽤...장관이었다. 상황이 이렇지만 않다면 그냥 두고 싶지만, 내 힘으로 어떻게 해볼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피곤하군..."

  "나도..."

  다들 집에 돌아왔을 무렵엔 죄다 지쳐 쓰러졌다. 아무리 활발하게 움직여도, 없는 체력이 추가로 늘거나 하진 않으니까. 그 덕에 나, 크리스티나, 캘시를 제외한 모든 애들이 전부 누워있다. 그나마 관리를 하려고 했던 보프마저 중간에 휘말려서 뛰어다녔으니...

  "후후..가끔은...이런 때도 있죠.."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 먼저 씻지 그러나."

  "네...그래야겠어요."

  "이런 축제는...정말 가끔이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