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숙한 동굴
동굴 밖은 겨울이 지나가고, 이제 봄이 찾아오는 가운데, 여전히 동굴 천장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며
하얀 입김을 내뿜으며
사람의 수십 배나 커 보이는, 드래곤이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있었다.
“…………”
알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지, 이제 막 300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궁금한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다.
그리고
누가 찾아오지 않을 이 동굴에, 누군가의 발소리와 함께, 조심스럽게 눈을 뜨니
눈앞에 작은 불빛과 함께, 동물의 가죽을 뒤집어쓴 작은 무언가 보였다.
“아….”
말을 했다.
내 발톱만 한 작은 것은, 나에게 놀란 듯이 뒤로 넘어지면서 벌벌 떠는 모습이다.
“사… 사사사사… 살려주세요…….”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쳐다봤을 뿐인데 저 작은 것은, 나를 보면서 살려달라 외치며 잔뜩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그저 조심스럽게 발톱으로 넘어진 작은 것을 일으켜주며, 자세히 모습을 관찰했다.
[ 너무 작아 ]
어떻게 이렇게 작은 생명체가 있을 수 있는 건지, 의문이 들면 들수록 관심이 생긴다.
뭘 작은 것은 뭘 먹을까?
어떻게 걸어 다니는 거지?
저 불빛이 나는 것은 또 뭐고?
어째서 나를 보고 이렇게 놀란 걸까?
왜 동물의 가죽을 저렇게 입고 다니는 걸까?
내 머릿속은 온통 저 작은 것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며, 아주 살짝 움직여서 다가갔다.
“으… 으아아아!! 오, 오지마!!”
내가 움직이자 작은 것은 마치 정말로 겁에 질린듯한 모습과 함께,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 왜 저렇게 겁먹지? 나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
[ 내가 너무 커서 그런가? ]
안 그래도 딱 잘 때 빼고는, 여기서 움직일 때마다 동굴이 많이 흔들리니, 저 작은 것이 겁먹을만하다.
“으… 으으??”
-뿌득!! 뿌드뜨드득!!!
“어…?”
잘 됐는지 모르겠지만, 거대했던 내 몸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저 작은 것과 똑같이 크기로 줄어들었다.
“아, 아니… 대체 이게 무슨….”
“………!”
그냥 몸만 줄어들었는지, 목소리는 안 나오지만 별 상관없다 싶었다.
그저 저 작은 것에 관심과 흥미가 생겼을 뿐이며, 이제 내 모습에도 저 작은 것이 놀라지 않으니, 거침없이 다가갈 뿐이지만
“자자자자, 잠깐만!!”
“그… 아, 알몸으로 오지 마시고… 이, 이거라도 걸치세요….”
갑자기 저 작은 것이 입고 있던, 동물 가죽을 내 어깨에 걸쳐줬다.
대체 왜 가려준 것인지 모르겠고, 저 작은 것은 왜 얼굴을 저리 붉히는 거지?
“저, 저기…… 왜 그렇게….”
이제는 완벽히 날 무서워하지 않는다.
역시 덩치 때문에 그랬던 게 확실하고, 이제 내가 그렇게 궁금하고 의구심이 들게 만드는, 저 작은 것에 이것저것의 정체를 알아갈 시간이다.
“자자자… 잠깐!! 왜왜왜!! 왜 다가오시는 건데요!!”
또 뭐가 문제인지, 저 작은 것은 얼굴을 잔뜩 붉히면서, 이번에는 큰 소리로 도망치려 하지만, 그래 봐야 내 동굴 안
어딜 도망가도 소용없을 거다.
***
인간이라….
정말 대단한 생물이다.
처음 들어보는 생물이지만, 그토록 짧은 수명으로도 이렇게 많이 발전해오는 것도 신기하고
이 검은색 덩어리도 엄청 맛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조금 더 검은 돌멩인 줄 알았지만, 입안에 넣으면 쉽게 부서지면서 녹아내릴 때, 엄청 달콤한 맛이나 중독될 지경이다.
“그럼…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
오늘도 날 만나러 와줬고, 이제 또 어디론가 가려는 작은 것
“그… 빨리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저만 이렇게 떠드는 건 별로 재미없고….”
“그리고 처음 만났을 때 놀라기는 했지만, 그래도 나름 괜찮으신 분이에요.”
“여기까지 오는데 조금 많이 힘들지만, 그래도 이것저것 이야기해줄 생각에, 매번 힘내서 오니깐”
“다음에 왔을 때 서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해준, 작은 것은 또다시 원래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살짝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저 작은 것이 먹을 음식이 구하기 쉽지가 않다.
워낙 산악지형이라 험악하고, 계절에 거의 상관없이 밤만 되면 눈이 내리니, 작은 것이 견디기 힘든 것도 어쩔 수 없는 거다.
그저 나도 저 작은 것에 맞춰서, 이야기를 해주려고 매번 노력하지만, 아직 제대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답답하지만
그래도 다음번에는 꼭 성공할 거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
“돼… 돼… 됐… 다!”
드디어 수십 번 연습한 끝에, 그 작은 것과 다르게 여린 목소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목소리가 나오는 것에 만족해하지만
저 멀리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하나… 둘… 넷…… 열…?
작은 것의 발소리가 꽤 많이 들려오면서, 동굴의 입구 부분을 쳐다보니
동물의 가죽이 아닌, 딱딱한 철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있는 작은 것들이, 여럿 들어왔다.
냄새도
크기도
분위기도
전부 다른 형태의 작은 것들이, 내 거처에 들어오면서 무언가 막대기를 하나둘 꺼내 들었다.
“무… 무… 어야….”
그 작은 것과 다르게, 내게 살기를 띠고 있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는 와중에, 모두가 나를 향해서 달려들기 시작했다.
“죽여라!!”
“드래곤을 잡아서 왕국의 평화를!!”
“우리 왕국을 지키기 위해서!!”
처음 느껴보는 살기에, 그저 너무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했지만….
저 뒤에
동물 가죽이 아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이 여기까지 걸어온 것도 모자라, 목에 커다란 무언가를 차고 있으면서
달려있어야 할 팔이 잘린 상태였다.
“……아, 아아…….”
작은 것을 부르려고 소리쳐봤지만
작은 것은 눈에 생기를 잃은 채로, 내게 자그마하게 입 모양을 보였다.
[ ㄷㅗ… 마ㅇ… ㅊㅣ세요…… ]
저 모습에 속이 뒤집힐 것 같다.
눈앞에 지금 살기를 뜨고서, 나를 향해서 무언가를 들고서 다가오면서도, 더 이상 참지 못할 것 같다.
기껏 목소리를 들려주려고 노력해왔는데
기껏….
기껏….
기껏….
“너희들이 망쳤어.”
***
갈가리 찢어버렸다.
불태워 죽여버렸다.
발톱으로 찍어 눌러버렸다.
내게 살기를 들이밀던 놈들을 죽여버렸다.
그것도… 처음 다른 생물을 죽여봤다.
내 손에 피가 잔뜩 묻어있는 채로, 내 발아래에 흔적이라고는 찾기 힘들 정도로, 수북이 쌓여있는 와중에
그래도 저 작은 것에게 피해가 안 가도록 싸웠다.
작은 것은 이런 내 모습에도, 처음 날 만났을 때처럼 도망치지 않으며, 여전히 몸을 휘청거리면서 서 있으면서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ㅁ…ㅣ 아ㄴ해…요…….”
“겨ㄹ국… 다ㄹㅡㄴ 사람… 한ㅌㅔ… 드ㅋㅕ어요….”
“그, 그… ㄹㅓ니… 도ㅁㅏㅇ… 쳐ㅇㅛ…”
“또… 또… ㅇㅗㄹ거예요….”
팔이 없고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작은 것은 내게 도망치라 말한다.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
내 몸에 살포시 기대오면서, 작은 것의 숨통이 끊어지고 말았다.
조심스럽게 발톱으로, 툭툭 건드려도 일어날 생각 없이
방금 죽인 것들과 똑같이, 완전히 움직임을 멈춰버렸다.
“아… 끄… 아아아아…….”
아까와 다르게
가슴이 타들어 간다.
무언가 가슴을 찢어버리는 듯한 통증과 함께,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
-쿵!!
-쿵!!
-쿵!!
동굴의 벽을 마구 치면서, 이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을 잊고 싶지만, 그럴수록 아무런 반응 없는 작은 것의 모습이 들어와
더욱더 내 가슴을 찢어놓는다.
[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
[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
[ 작은 것과 웃으면서 나도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
[ 나도… 나도……. ]
[ 처음부터 작은 것… 너를 알지 못했으면, 이런 기분은 느끼지 않았을 터인데…. ]
[ 너가 지금 너무 원망스럽다 ]
[ 대지를 가르고 하늘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금 나는 너무나도, 작은 것 너를 원망스럽게 생각하고. ]
[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만, 너는 그래도 일어날 생각이 없구나 ]
[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내 목소리는 두 번 다시 이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을 거다. ]
[ 그저…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어라 작은 것…. ]
이런 반응에도 여전히 일어날 생각 없던 작은 것을….
입안에 넣어버렸다.
턱을 움직이면
바로 작은 것이 찢길 것 같지만, 최대한 조심하면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내게 처음 들어왔던 경치와 다르게, 동굴 밖은 수많은 빛이 보이면서, 나를 향해서 무언가를 던지기 시작하지만
전부 소용없는 짓이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다 쓸어버리고 싶지만, 지금은 입안에 있는 작은 것에 집중하며
날개를 펼치며 저 하늘을 날았다.
작은 것은 매번 내게 이야기를 해줄 때, 자신은 한번 하늘을 날아보고,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걸 즐거워했고
이렇게 운이 좋게 날 찾아왔다고 말한 게 떠올랐다.
[ 아… 보이느냐 작은 것…… 그대가 말한 여행 중 이렇게 넓고 파란 풍경을 본 적이 있느냐…. ]
아무도 나를 방해할 사람 없이, 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까지 올라갔다.
[ 너가 죽었다 할지라도, 내가 말로 말해주지 못한 경치를 너에게 보여주며 마지막에는……. ]
[ 나도 곳 그곳으로 따라가마 ]
-드래곤은 말 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