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민.


보통 개척자들이나 표류민의 후손들로 이뤄지는 사람들로 내가 가장 경계하고 있는 부류다.


사나운 짐승은 총과 덫을 이용한다면 쉽게 잡을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머리를 써 덫을 피하고, 협공을 통해 화력의 열세를 뛰어넘을 수 있다.


그러니 내가 가장 경계할 수 밖에.


나는 숨을 죽이고 내 앞에 움집과 오두막의 중간정도에 위치하는 건물을 살폈다.


그렇게 한 10분 쯤 노려보다 보니,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생각보다 건물이 많이 작네?"


내 허리정도 까지 오는 촘촘한 목책은 둘째 치고, 건물이 전체적으로 많이 낮다.


인간이 아닌건가?


합성 생명체?


끼이익-


내가 고민하고 있을 사이, 오두막에서 문이 열린다.


"누, 누구야......여, 여기 있는거, 다, 다 아니까 저리가!"


날붙이를 든 작은 소녀가 나왔다.


겁먹었는지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자신의 날붙이를 위협이라도 하려는 듯 붕붕 휘두른다.


"..... 인간이 아니네?"


소녀를 관찰하다 머리위에 달린 둥근 귀를 보았다.


저건 '랫맨'이라 부르는 녀석들의 특징이다.


노동용으로 개발된 녀석으로 몸집이 작고 재빠르며 번식력이 뛰어나 한번에 3쌍둥이, 5쌍둥이를 출산한다.


아마 녀석도 600년 전에 버려진 랫맨들의 후손이리라.


"누, 누군지는 몰라도....나한테 걸리면 다 조각조각 찢어줄거야!"


랫맨 소녀는 자그마한 날붙이를 붕붕 휘두르며 한 껏 소리친다.


"갸릉? 갸릉!"


"잠깐만, 가을아. 매복이 있을 수 있어."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태새인 가을이를 붙잡았다.


매복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저 녀석은 미끼고 안에 원거리 무기를 가진 녀석이 주위를 노려보고 있을 수 있다.


저 오두막인지 움집인지 모를 구조물은 작게나마 창이 존재하니까.


랫맨 소녀가 시선을 끌고, 안에 협력자가 목표물을 쏠 수 도 있다는 거다.


그냥 물러나기엔, 현재 내 거주지와 가까운 녀석이라 충돌할 때가 언젠가 온다.


지금 담판짓는게 현명한 선택이겠지.


"말이 통해."


랫맨들은 인간의 언어를 발음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갸름도 가능하긴 한데, 말 못하는 가을이가 이상한건가?


여튼 중요한건, 녀석과 대화할 수 있고, 그렇다면 말로 풀어갈 수 도 있다.


랫킨이 특별히 호전적이라 모든 것을 때려죽이는 종족은 아니니까.


"갸르르르르....."


"가을아, 잠깐만 기다려봐. 좋게 해결할 수 도 있어."


금방이라도 용수철 처럼 튀어나갈 가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아, 나는 지나기던 여행자다. 그쪽과 싸우고 싶지 않다. 대화로 해결할 수 있겠나?"


"흐이익?!"


소녀는 기겁한듯 내 쪽을 바라본다.


뭐야, 자기가 말했는데 왜 겁먹어?


일단 혹시나 안에 있을 매복을 대비해 몸을 땅바닥에 바싹 붙였다.


저것도 방심을 유도하는 작전일 수 있으니까.


".....아니야, 침착하자. 모,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녀석의 말은 믿을 수 없다! 모, 모습을 드러내라!"


"모습을 드러내는 즉시 공격당할 수 있지 않나? 공격하지 않을 것을 보장할 수 있나?"


"어, 어차피 나 말곤 없다!"


멍청한건가?


방심을 유도하는 건가?


"갸릉. 갸르릉."


"거짓말 하는거 아니라고?"


"갸릉."


가을이가 자신의 코를 가리켰다.


아, 가을이는 후각이 뛰어났지?


"알았다. 그럼 모습을 드러내겠다."


소총을 견착한체 몸을 일으킨다.


"히이이익?! 느, '늑대족'이랑, 인간?!"


쨍그랑-


녀석은 우리의 정체에 당황했는지 날붙이를 떨어트렸다.


뭐지?


"먼저 공격하지 않는한, 우리도 공격하지 않겠다. 대화가 가능한가?"


상태가 이상하다.


"어, 어떡하지?! 분명 이대로라면 납치 당해서 인간의 씨받이가....."


"괜찮나?"


"흐에에에엑?! 이, 인간이 말을?!"


"아니 인간이니까 말하지. 그래서 대화할 수 있겠나?"


"저렇게 긴 몽둥이라면 당장 도망쳐도 단번에.....아아....이대로 씨받이 노에가......."


아니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녀석이네?


"저기 대화를....."


"저기!!!"


녀석은 나를 확 째려봤다.


"갸르릉!"


"히에에에엑?!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가을이의 그라울링 한번에 다시 눈이 깔린다.


"잠깐만 가을아. 그래서 무슨 말을 하려 했지?"


"저......그게.....어, 어차피 씨, 씨받이 노예로 쓰일꺼, 아, 안아프게 해주세요....."


그말을 하며 그대로 바닥에 바싹 엎드리는 랫맨 소녀.


나는 정신이 대략 멍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