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기를 당했다.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당했다.


요즘은 기술이 하도 발전해서 조금만 확인하면 안당하는 그런 행성부동산사기에 당한 병신 호구다.


"....... 그리고 아직 살아있지."


무인행성, 아니 정확히는 법적으로 인간으로 취급되는 인간이 없는 행성에 떨어진지 하루.


희망을 가득 품고 챙겨왔던 온갖 개척물자는 소형 운석이 내가 타고온 우주선의 엔진룸을 박살냈을때 다 잃어버렸다.


비상식량이 10일치가 탈출포드에 있지만, 고작 10일치 밖에 안남은 거기도 하다.


내 손에 남은거는 에너지 충전형 소총 한자루, 태양전지 소형 하나 대형 하나, 다용도 플라즈마 커터, 야전삽과 나이프 한자루, 아직 거처로 쓸 수 있는 탈출 포드와 다양한 기능이 내장된 무선 단말기 하나.


많은 것을 잃어버렸지만, 목숨을 잃진 않았고 임시로나마 버틸 수 있는 물자들이 있다.


무인행성에 홀로 내버려진 것 치고는 상황이 좋다.


"갸르릉!"


"너도 있었지?"


"갸릉!"


"그래, 그래. 착하지."


"갸르릉....."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부비적 대는 야생의 갸름 소녀.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나에게 강력한 호의를 품고 있다는 걸 눈치채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내 위에 마운팅 포지션으로 올라탔음에도, 계속 볼을 부비기만 했으니까.


그 뒤로는 나도 녀석에게 마음을 어느정도 열고 대하려고 노력한다.


지금같은 상황에선 내 편 한명이 아쉬운 상황이니까.


"오늘은 주위를 탐색할거야."


"갸릉?!"


"여유가 된다면 사냥이나 체칩도 할거고."


"갸르르릉!"


갸름소녀는 신난듯이 꼬리를 마구 흔들어댄다.


팔짝 팔짝 뛰는걸 보면 돌아디는 걸 좋아하나 보다.


"근데, 너 내 말 알아듣는거냐?"


"갸릉! 갸릉!"


알아듣는거 같다.


언어 이해능력을 극대화 하는 유전자가 녀석의 원본 모델에 있다고는 하지만, 6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열화되거나 소실되지 않았다는건..... 상당히 신기할 따름이다.


아니면 이 녀석이 특별한건가?


"아, 너 이름은 뭐니?"


"갸릉?"


"이름은 모르는건가?"


"갸릉."


이름이 갸릉인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이름 지어줘도 될까?"


"갸릉!"


뭐가 됬든 좋다고 끄덕이는 녀석.


"음....갸름은 좀 성의 없고....갸릉이?"


"캬아아악!"


그래, 이건 너무 개같긴 하네.


"그럼 가을."


녀석이 매일 갸릉, 갸르릉 거리는 어감에 가장 비슷하지만 사람이름 같게.


"갸릉?!"


"가을로 좋은거야?


"갸릉!"


"좋아, 넌 가을이다."


"갸르릉!"


녀석은 자기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꼬리를 격렬히 흔들며 내 볼을 햝는다.


늑대꼬리를 단 미소녀가 내 볼을 햝는다니 기분이 묘했다.


"갸르릉!"


"자, 자, 이제 그만. 탐색하러 가야지."


나는 가만히 놔두면 언제까지고 볼을 햝으려는 가을이를 떨어트렸다.


오늘은 탐색과 식량 획득에 힘써야 한다.


이 주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알고 있다.


계절은 봄에서 여름 사이.


운석이 내 우주선의 엔진룸을 박살내기전, 내가 설정했던 좌표에 떨어진 것일태니.


연 최대 기온은 26도, 최저는 -5도, 기후는 온대기후, 사계절이 존재하고, 습도는 낮은 편이다.


동쪽으로 5km 정도 거리에 바다가 존재한다.


지형은 언덕이 좀 있으나 평지고, 온대림이 조성되어 있다.


"온대기후랑 온대림은 맞는 거 같은데?"


주위에 있는 나무들의 잎이 넓적하고, 지금의 기온이 포근한 것으로 볼때 맞는 거 같다.


그럼 동쪽으로 5km 가면 나온다는 바다가 있는지만 확인 해보면 된다.


원래라면 신형 인공위성도 개척장비에 들어갔기 때문에 GPS를 쓸 수 있었겠지만..... 그놈의 운석때문에 망가졌으니 직접 확인을 해야한다.


"바다로 가자."


"갸르릉!"


소총과 나이프, 플라즈마 커터와 소형 태양전지, 약간의 비상식량을 챙긴다.


단말기에 내가 원래 떨어졌을 좌표를 입력하고 나침반 기능을 사용해 동쪽 방향을 확인한 후, 걸음을 옮긴다.


"갸르릉~ 갸르릉~"


"그렇게 신나?"


"갸릉!"


"그래, 바다로 가자."


우리는 바다(예정)로 가는 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낙옆은 불쏘시개로 쓸 수 있으니 괜찮고... 야생 과실수는 없나? 아니면 딸기 덤불이나."


"갸릉?"


"아, 별거 아니야."


나는 걸으면서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확인한다.


식생도감에선 군데군데 산딸기 덤불이 있을거고, 다래나 머루, 매실과 살구나무가 자란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찾기 힘드네.


어쩌면 제철이 아닐 수 도 있다.


이곳의 야생종이니 좀 변했을 수 도 있고.


중간중간에 지도를 확인하고, 주위를 살피며 걷는다.


"갸릉? 갸르릉!"


"어, 어?! 왜 그래?!"


"갸릉! 갸릉!"


갑자기 가을이가 내 손을 붙잡고 끌고간다.


뭔가를 발견한 건가?


"갸릉!"


"이건....."


가을이는 덤불이 가득한 언덕위로 나를 끌고 가서는 어서 엎드리라고 했다.


그 덤불에 엎드려 가을이가 가리키는 곳을 본다.


"움막?"


거기엔 목책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있다.


조금 원시적이라고 할법한 목책 울타리는 내 허리의 반정도로 둘러져 있고, 그 울타리 안에 목제 오두막이 보인다.


분명 자연적으로 생길 수 없는 구조물이며 600년 전 이곳에 있었던 생명 공학 단지의 흔적으로 볼 수 없는 흔적이다.


즉 저기에 원주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