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2화


(자동반복)



" 제자야… 자니? "


" 아니오, 일어나있습니다. "


" 잠시 들어가도 되겠느냐? "


들어오십시오. 사내가 허락하자 장짓문이 열려 벼루에 먹을 갈듯 어두캄캄한 검은 하늘이나 유달리 광택이 나는 별들 사이로, 휘황찬란하게 빛이나는 푸르른 달빛이 내뿜어져 그 인영(人影)의 모습이 드러났다.


푸르른 창백하고도 신비로움이 감도는 은빛 아래, 하이얀 속곳을 입어 조금 쌀쌀한지 볼이 복숭앗빛으로 달아오른 채 다소곳이 옆으로 앉은 스승님이 매우 아름답게 보였다.


스승이 들어오는데 누워있을 순 없던 사내는 이부자리에서 일어나 정좌를 한다. 방으로 들어와 맞은 편에 다소곳이 앉은 스승의 속곳 차림에 유난히 시선이 가 어디에 눈을 둘 지 몰라 고개를 떨군다.


" 나는 개의치 않으니 편하게 있거라. "


" 허나 스승님. 어찌 이 찬 바람에 얇게 오셨습니까. "


" 왠지 네 얼굴이 보고 싶어지더구나. "


그러셨습니까. 그리고 그 후 스승과 제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찾아온 이유에 대해 알 수 없었기도 하나, 한 밤 중에 침소에서 아무렇지 않게 대화할 만큼 무신경하지도 않았다.


반대로 스승은 제자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나, 그것을 꺼내야 할지 말지를 망설였다. 밤 중에 잠이 안 와 산책이라도 하려던 것이, 어느새 제자의 방 근처를 지나고 있어 아무 생각 없이 들른 것이다.



" 아직도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더냐. "


길지도 짧지도 않은 침묵이 흐른 끝에 스승이 입을 열었다. 제자가 그녀를 찾은 이유는 복수하고자 였기에, 지금도 그러한 마음이라면 그를 떠나 보내는 걸 막을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 그것만이 저의 원동력입니다. 그것 말고는 제게 살아갈 이유가 없습니다. "


사내는 덤덤히 말을 하였으나, 그 눈에는 증오심으로 불타는 이글거리는 불꽃이 잠재되어 있었다. 스승은 그러한 제자를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 살아갈 이유가 없다라…. "


그녀는 제자의 그 말을 곱씹었다.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말에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탈태를 시도하기 전 까지 그녀는, 저주로 인해 죽는다 하여도 아무런 미련을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과거의 배신 이후로 이성도, 무술혼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 완전히 끊어버린 그녀는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갈 뿐인 허름한 무관의 여인이었을 뿐이다.


" 나 또한, 살아갈 이유가 없었단다. "


그러나, 그런 먼지 쌓인 무관의 문을 두들긴 사내가 있었다.


처자도 아닌 사내가 찾아와 대뜸 무술을 가르쳐 달라니, 좋게 들릴 리가 만무했다.


" 기억하나? 내가 그대에게 복수는 의미가 없다고 한 것을. "


허나 그는 몇 번을 쓰러지고 내쫓기더라도 눈을 부릅뜨고 무술을 배워야 한다는 각오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에게도 악에 받친 눈을 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떠올리고는, 조금씩 마음이 열려 그를 제자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던 와중 가르칠 맛이 있어 무술혼이 다시금 눈을 뜨고, 그가 위험할 때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다치지 않고 막을 수도 있던 것을 조바심을 내 독침을 맞아버렸다.


" 다시는 무술을 하지 않으리라. 그렇게 다짐했건만, 나를 바꾼 건 그대였어. "


그 후 그가 스승을 살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음을 알자. 죽고자 했던 마음이 사그라들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져갔다.


탈태에 성공해 살아났다. 살았다는 것에 기쁨도 안도감도 그다지 없었는데, 반로환동으로 회춘하게 되자 제자에게 헐벗은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러워졌다.


" 그런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준 것은, 바로 너였단다. "


" 스승님…. "


자기 가슴에 손을 얹어 싱긋 웃어보이는 여스승. 사내는 스승의 진심어린 말에 형용하기 어려운 따스한 기운을 느꼈다.



사내는 자신이 지금껏 해온 것을 되새겨 보았다. 복수를 위해 무의 길을 걸었으나. 스승님이 다친 후 스승을 살리기 위해 무림초출을 하고, 그로 인해 만난 이들을 떠올렸다.


" 스승님이 쓰러지셨을 때. 저는 제 자신을 한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


정파와 사파의 대립, 무림의 기준이자 정형이기에 보수적이고 권위에 찌들어 아랫것을 무시하고 텃세를 부리는 정파. 사도이지만 그 속에 자유로움이 있고, 그 탓에 막나가는 이들이 많은 사파.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고통받는 민중.


" 제 목적만을 생각한 바람에, 스승님이 다치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거멓게 탄 숯 마냥 속이 거뭇하게 물들고. 정신을 잃으신 동안 눈물을 흘렸습니다. "


누구는 복수를 위해 무기와 무(武)를 갈고 닦았으나 목적과 수단이 바르지 못해 끝이 좋지 아니하였고, 정세가 혼란한 와중 그 혼란을 틈 타 제 잇속을 챙기려는 이와, 혼란을 바로잡아 모두를 이끌 귀감이 되는 자, 가진 건 없어도 도와준 사내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이 등 다양한 자들을 만났다.


" 제 손이 닿지 못해 동생은 떠나고 말았지만, 스승님 마저 잃을 순 없었습니다. "


동생을 잃어 절망한 사내 처럼, 스승 또한 절망했으나. 인(仁)과의 연(聯)을 통해 그 응어리를 풀고 새로운 삶을 찾아갈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 스승님이 무사히 돌아오신 날. 어찌나 기뻤는지 모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모습에 조금 당황했긴 하오나, 그날 처음으로 저는 무를 익혀 다행이라고 여겼습니다. "


그 때의 기분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인지 가볍게 웃는 제자.



" ……어땠느냐? "


" 예? "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 멍청하게 되묻는 그.


" 그 때… 처음으로 본 내 모습은, 어땠는지 묻는게다. "


새침한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는 그녀.


" 어땠냐니, 그것은…. "


말로서 표현하기에는 약간의 부끄러움과 적절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말을 돌리는 제자.


적당히 듣기 좋은 말로 넘어가기에는 여스승의 표정이 진지했음을, 눈치가 부족한 그라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 무척이나, 아름다우셨습니다. "


" …그리고? "


" 그리고… 이불로 슬며시 몸을 가리셨을 때가 귀여우셨습니다. "


" 응큼한 것. "


푸훗. 가벼이 바람을 뱉으며 키득키득 웃는 스승. 부끄러운 속내를 털어 얼굴이 벌개진 제자는 놀리기 좋은 쑥맥 그 자체였으리라.


" 나는 될 수 없겠느냐? "


상체를 사내 쪽으로 기울여 가까이 다가가는 그녀. 몸이 숙여진 탓에 옷이 아래로 쏠려 중력을 받아 풍만한 두 덩어리 사이의 골이 더욱 깊어져 보인다.


" 무엇이… 말입니까? "


" 네가 살아갈 이유 말이다. "


" …………. "


제자가 의중을 떠보자 직구로 회답해, 말문이 막힌다.


여동생을 잃고 남은 것이라곤 복수하고자 하는 의지 뿐인 사내에게, 삶을 새로이 시작할 계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즉, 이것이 고백임을. 그는 깨달았다.



" 저는… 반드시 복수를 해야만 합니다. "


노골적이지 않게, 돌려서 거부 의사를 내밀었다. 아직 복수를 포기할 순 없었다. 복수를 하다 죽을 수도 있었다.


" 나는 복수를 하지 말라고 하진 않았다. "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녀 자신은 그의 의지를 막을 명분도 생각도 없다고 하였다.


" 그저… 아무것도 없는 삶에, 미련을 남겨보자고 하는 것이지. "


" 미련, 말씀이십니까? "


그래. 여스승이 고개를 끄덕인다.


" 죽고자 하는 것 보다. 살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한 힘을 내지. 너는 분명, 아무런 미련도 없이 떠나갈 녀석이니 말이다. "


실제로도, 스승이 짚어주기 전 까지 사내는 그러한 마음가짐이었다. 복수만 이룰 수 있다면 싸우다 죽더라도 미련은 없다고.


" 네 녀석은, 좋아하는 이성은 없느냐? "


" 전혀 없습니다. "


" 그렇다면 잘 됐구나. "


여스승은 그리 말하며, 속곳을 풀어 헤치기 시작했다.


" 스, 스승님? "


제자가 당황하여 말리려 했으나. 감히 손댈 수는 없어 그저 멍하니 옷매무새가 사락, 풀려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 …어떻느냐? "


" …………. "


안 그래도 얇디 얇은 천 너머로 봉긋하게 보이던 굴곡이, 그 천이 사라지자 어여쁘게 자리 잡은 둥그런 과실이 그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어 사내는 말하는 것도 잊은 채 눈을 떼지 못했다.


" 내가 나이 좀 먹었기로서니, 여인을 앞에 두고 입을 다무는 건 조금 부끄럽구나. "


" 그,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다. 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습니다. "


이글거리는 시선을 통해 그가 어떻게 보고 있을지 대략은 짐작한 그녀이다만. 그래서일까, 되려 그가 넋 놓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어쩐지 쑥쓰러워져 소매로 슬며시 가슴을 가려, 농을 던지자. 그제서야 정신이 든 사내는 솔직한 감정을 말했다.


" 정말이냐? "


" 정말로. 참말입니다. "


치켜뜬 눈으로 재차 묻는 말에 다시금 진지하게 동의하는 그. 약간은 기분이 좋아진 스승이 방긋 웃으며 히히 웃자 제자 또한 같이 웃었다.


" 허나 스승님, 어찌 옷을…. "


어쩌다 웃는 지경까지 왔으나, 당황스럽기는 여전하여 진의를 묻는 사내. 스승 나름의 고백은 있었다만, 진도가 너무 빠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 한 가지. 소원이 있다. "


" 소원… 말이십니까? "


" 내 과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느냐? "


" 전에, 무술대회에서 만난 고수에게 얼핏 들었습니다. "


듣기로는 스승님은 사랑하는 사이던 이성이 있었다 한다. 그와 함께 무림에서 맹위를 떨치고, 주변에서 천생연분이라며 응원하던 시절에. 그와 트러블이 생겼다 한다.


둘 다 고수의 경지에 올라 강함이라면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나, 둘 사이간 강함의 우위는 여스승 쪽이 한 수 위라는 평이 자자했다.


" 세간의 평가에 관심없고, 내게는 그의 강함을 잘 알고 있으니 아무래도 좋을 평가였다만. 그에게는 달랐나 보더군. "


처음에는 그렇지 않다며 여스승이 부정하고, 그자 또한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의견이 쉽게 뒤집히지 않자 자존심이 긁혀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그는, 조금씩 강함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신체 단련은 이미 극에 달해 더 높일 수가 없어 오의를 개발하거나 다양한 문파의 무술을 익히기 시작하더니, 그럼에도 부족한지 사술에 까지 손을 펼쳐대었다.


" 사술에 손을 댄 것을 알고서 그를 말리기 위해 찾아갔다만. 이미 그는 변해도 너무 변하고 말았어. "


신체를 강화하기 위해 기이하게 변해버린 모습. 타락하여 탁해진 눈. 그리고 그녀를 향한 증오심이 깃든 눈빛과 표정 까지.


" 그를 이해하려 했으나 오히려 나를 모욕하더니 공격해 와, 격전 끝에 물리치는 데에 성공했네. 하지만 차마 죽이지는 못해 도망가게 두고, 나는 실연과 동시에 무술을 그만뒀지. "


그것이, 스승의 과거의 전말이었다.


" 그렇다면 혹시, 저번 습격은…. "


" 그래. 그자가 바로 그였다네. "


" 하지만 저번에 그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


" 그러한 사술에 까지 손을 댔으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설마 그대의 여동생이 휘말렸을 줄이야. 따지고 보면 그때 그를 죽이지 못한 내 잘못이기도 하네. "


사내의 우연과 스승의 우연이 서로 겹칠 거라 생각치 못해, 뒤늦게 알게 되었으나 기묘한 운명을 느낀다.


" ……스승님 잘못은 아닙니다. "


" 고맙구나…. "



그 후로 잠시간의 침묵이 흘러, 각자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달빛만이 일렁일 때. 문득 스승이 꺼냈던 말이 떠올랐다.


" 스승님. 그러고보니 무슨 소원이 있으십니까? "


" 으, 응? 내, 내 소원 말이더냐? "


" 분명 그렇게 말씀하셨잖습니까. "


" 아… 아하하. 그, 그게 말이다…. "


묘하게 손을 꼼지락 거리며 뜸을 들여 대답하기를 망설이는 그녀.


제자가 의문스레 쳐다보기를 몇 십초. 홍당무 처럼 빨개진 얼굴이 되어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연다.


" 나, 나와 교접하지 않겠는가!? "


" 예에? "


힘들여 소원의 내용을 말했건만 어벙한 소리로 화답하는 사내. 스승은 당황하여 나선모양으로 도는 동공을 한 채 떠뜸떠뜸 횡설수설 말을 잇는다.


" 아아니, 그게! 옛날 일을 겪은 뒤로는 이성과는 척을 지내고 살았다보니, 크게 미련 있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자로서 경험도 하지 못한 채 죽는 건 역시 좀 아쉽달까? 그, 그대도 알지 않나? 사내라면 무릇, 자손을 남기는 게 미덕이라는 거! 미련이 없다면, 만들면 되지…… 않나…… 싶어서……. "


말을 하면 할 수록,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되어 자신이 없어진 그녀는. 점차 목소리가 줄어들더니, 이내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내다 거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웅얼거렸다.


' 귀여우시다. '


처음에는 당황한 사내였으나. 비록 연애는 커녕 여자를 만나 본 적도 별로 없는 사내가 이런 야심한 밤에 헐벗은 상태로 정직하게 교접하자는 말 까지 하게 만들어놓고, 이를 수치 줄 만큼 무정하진 않았다.


" 좋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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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몬붕이들 보고 야스 써와달라고 했을 텐데?

아무도 안 써오니까 개연성 맞추려고 전개 짜다가 분량 오버해가지고 야스는 다음화로 넘김.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다. 그러니까 야스가 보고 싶다면 야스씬과 복수물까지 너희들이 "써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