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드드득


그녀들의 하체 아래에서 들려온 기묘하고 불길한 소리에, 두 이형의 여성은 그들과 마찬가지로 이형인 아이를 붙잡고 벌이던 실랑이를 잠시 멈췄다.



"아."


".....!"


"하?"



세 암컷은 발 밑에서 발견한 참상에 대해 저마다의 감상을 내보였고,



"아,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집주인인 남자는 그녀들의 발 밑에 바스라진 플라스틱 잔해를 보고 비통한 비명소리를 내질렀다.


그러고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무릎을 꿇은 채 잔해물이 되어버린 플라스틱 조형물 조각 앞으로 가더니, 그대로 고개를 떨구었다.


이윽고, 얼마 안있어서 그의 경악은 분노로 바뀌었고, 그 자신에게 있어선 불청객일 뿐인 세 명의 여인들에게 고래고래 악을 쓰며 분노의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씨발년들아! 다 나가! 다 나가라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야! 여기가 너네들 비늘바퀴들 부화장인줄 알아? 어? 좀 나가! 꺼지라고! 왜 날 내버려두질 못하는데!?"



처음에는 그 남자의 갑작스러운 정도를 넘는 분노에 당혹감을 느꼈지만, '고작 장난감' 따위가 망가졌다고 울부짖는 이 남자가 못마땅하게 느껴진 용인의 여인은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질렀다.



"하? 당신이 뭐가 잘났는데? 남의 새끼를 함부로 가져가놓고 뭐? 고작 장난감 하나 망가졌다고, 성을 내? 그깟 장난감이 뭔데? 당신 어린얘야? 그까짓 장난감 따위가 내 아이보다 중요해?"



두 사람의 분노는 서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고, 당장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이 분노가 쌓인 그녀는 순간적으로 생각해서, 지금 이 남자가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거나 덤벼오기라도 하면,


그때야 말로 이 손으로 직접 묵사발을 내주겠노라고, 그렇게 벼르고 있었다.



"……제발, 나가라고……. 내버려 두라고……. 나를……오오…오오오오오오!"



그렇지만 그녀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남자는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플라스틱 잔해물 아래에 꿇어앉아 웅크려 오열하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예상과는 다른 반응에 당황해서 순간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망설였던 그녀였지만 곧 그 남자의 장난감이 망가졌다고 오열하는 한심한 모습은 다른 방향으로 분노를 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번에야 말로 말로 쏘아붙여 결판을 내겠노라 생각하고 숨을 크게 들이켰으나,



"당신, 나랑 얘기 좀 해요."



자신과 방금 전까지 실랑이를 하던 뱀 여인이 자신의 팔을 붙잡고는, 자신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그대로 문 밖으로 끌고가려 했기에, 그녀는 끝내 마음속에서만 들끓던 분노의 말을 내뱉지 못했다.


용 여인에게 있어서, 딱히 그녀의 힘이 뿌리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의 단호한 모습에 순간 압도되어 그대로 끌려갔다.



"너도 일단 같이가자."



뱀 여인은 눈치를 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던 이형의 아이를 끌어안고, 그렇게 세 여인은 방 안에 오열하는 남자를 내버려 둔 채로 집 밖으로 나왔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게 뭔데?"


"그쪽, 평소 이기적이단 말 자주 듣지 않아요?"



용 여인은, 뱀 여인의 갑작스러운 쏘아붙이는 방금 전까지 실랑이를 하던 그녀의 말투에 잠시 잊고 있었던 분노가 되살아남을 느꼈다.



"뭐야? 너도 뭐가 중요한지 구분이 안돼? 어떻게 고작 그까짓 장난감 부쉈다고, 아이를 잃은 내 슬픔이랑 비교할 수가 있어? 저 남자한테 마음이라도 있어? 그렇다고 두둔하는거야? 두둔할 것을 두둔해야지, 저런 애새끼같은 남자를―"



화마처럼 타오르는 분노가 뱀 여인에게로 옮겨갔지만, 그녀는 주눅들지도, 그렇다고 딱히 화를 내지도 않은 채, 단호한 어투로 용 여인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말을 이었다.



"솔직히, 저도 평소 저 남자 행실이 어른이 덜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있어요. 그렇지만 정말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나요? 저 남자에게 저 장난감이 장난감 이상의 가치가 있을거라곤 생각해줄 수는 없으신가요?"


"무슨 소리를 하려는건데, 대체? 그럼 네년의 딸년이, 이딴 무뢰배같은 남자한테, 납치당해서, 고통받아도, 그딴 소리나 찍찍 싸지를거야? 어?"


"……저 아이가 정말 당신의 딸이라고 쳐요. 그렇다면 당신도 소중한 것을 잃었으니 알 수 있지 않나요? 가족, 생명, 가치, 돈, 장난감……, 이런 구분을 다 내려 놓고, 그저 '소중한 것'이라고 봤을때, 그렇게 해도 당신은 저 남자의 슬픔을 이해할 수 없나요?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것은 똑같은데도?"


"그건 또 무슨……,"



용 여인은 처음으로 말문이 막혀, 갈곳 잃은 분노를 팔짱낀 손으로 초조하게 자신의 팔뚝을 붙잡는 것으로 간신히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정말로 이 아이가 당신의 아이이고, 당신이 이 아이를 데려가려든 어쨌든, 지금처럼 저 남자한테 잘못을 저지른 상태로는 당신도 제대로 이야기를 하기 힘들거라 생각해요."



뱀 여인은 여기서 잠깐 한숨을 내쉬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저 남자를 이해해달라는 것은 아니에요. 당신이 이해해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러니, 일단 나중에 다시 찾아오더라도, 지금은 저 남자를 저대로 내버려 둬주지 않겠냐는 거에요. 저도 오늘은 손 뗄테니까요."



손을 뗀다는 말에 마냥 먼 산을 보며 멍하니 있던 아이는, 자신이 안겨있는 뱀 여인의 어깨를 강하게 쥐었다.


눈치채기 힘든 작은 동작이었지만, 한시라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용 여인은, 그 모습을 눈치채고 마음이 상하기라도 했는지, 침울해져서 그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좋아. 당신 말은 일단은 저 남자를 진정될때까지 내버려두라는 거지? 가급적이면 저 놈의 '소중한 것'도 배상해주고? 그래야 나도 당당하게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테니까? 알겠어. 그렇지만 다음에 왔을때는, 무조건 내 딸 다시 데려갈꺼고, 그때가선 너도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조용히 돌려 보내도록 해."



뱀 여인도도 그녀의 입장이 있었기에, 다소 억지스러운 그녀의 제안을 쉽게 수긍할 수는 없었지만,


당장의 혼란을 불러 일으키기만 할 뿐인 싸움을 중단한다는 눈 앞의 목표는 달성했기에, 굳이 쓸데 없는 말을 해서 다시 싸움을 벌이지 않도록 말 없이 몸을 돌렸고,


상대도 그녀가 자신의 제안을 쉽사리 수긍하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는지 말 없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사이좋게 동시에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고는 각자의 방향으로 갈 길을 갔다.



"아, 그런데 말이지."


"네?"


"당신은 이제부터 어쩔 생각인데. 내 딸을 데리고선."


"…후우. 일단 아무것도 모르는 얘까지 괜히 애꿎은 싸움에 휘말리면 안되니까, 저 남자가 진정할 때 까지 잠시 밖에서 데리고 다니다가 먹을거라도 사서 그때쯤 화가 풀렸길 기도하면서 돌아가야죠 뭐."


"그런가. ……너도 이상한 남자한테 콩깍지가 씌여서 고생이 많아."


"…!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그건 그렇고 그 인형 나름 비싼걸텐데, 계좌번호 불러주시겠어요?"


"뭐? 하이고, 내가 아무리 이기적이라도 너희들 같은 서민 간을 빼먹을 정도로 이기적이진 않아. 그냥 그 물건 이름만 알려주면 배상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



뱀 여인은 남자가 사무실에서도 종종 그 피규어의 상품 페이지를 몇번이고 들락날락 거리는 것을 보아왔기에, 대충이나마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다.



'정말……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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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무실에 있는 컴퓨터로 '고작 장난감'에 대해 알아보던 용 여인은, 그것에 대해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벌어지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몇번이고 공중제비를 돌았다.



"뭐? 고작 장난감 따위가 80 KRG나 한다고? 미친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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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품절? 한정판? 장난쳐, 지금? 고작 장난감 따위로 명품처럼 구는 이유가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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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 미친거 아냐? 80 G 짜리를 왜 200 G 에 파는건데? 원래 가격의 두 배를 넘었잖아! 이게 말이 되는 소리라고……하? 팔린다고? 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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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눈 앞에서 몇번이고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잠시나마 딸을 잃은 슬픔을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밤은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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