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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창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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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 창출 - 2


며칠 전까지만 해도 몬붕은 이 사건에 휘말릴 이유가 없었다. 아마란지 씨가 솔피 씨와 우연히, 어쩌면 계획적으로 마주쳤던 그때가 시작이었다. 

   

   

“별 건 아닌데, 그냥 편하게 들어.”

   

아마란지 씨는 정말로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자기 계획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 상담 센터라는 곳, 알아보니까 몇 달 단위로 외장하드를 수백 개씩 사들인 이력이 있다. 그 자그마한 센터에서 대량의 데이터를, 인터넷도 사용하지 않고 처리해야 할 일이 있을까? 거기에 경비업체에 들이는 비용도 이상하리만치 많은 수준이고. 자기 고객들로부터 무언가 데이터를 캐내서 뒷구멍으로 팔아치우는 게 아닌가 하는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정식 압수수색이 개시되기 전에…쉽게 말해, 좀 두들겨 놓을 건데, 그걸 도와 달라고 부탁하려고 한다.”


“그게 말이 되나? 드라마에서 봤는데, 그런 식으로 뭐 수집한다고 해도 써먹지도 못하던데.”

“그것도 예외가 있기 마련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사람 기억을 빼낼 수 있는 놈들을 법으로만 붙들어맬 수는 없지 않겠나? 더 큰 사건이 터지기 전에, 필요하다면 약간의 무력을 좀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거지.”

   

솔피 씨의 시선이 이쪽으로 끌려왔다. 

   

“그래서 나한테 이 이야기를 하는 거야?”

“믿을 만 한 사람이니까. 누구 죽어나가는 정도만 아니면 상관없을 거다.”

“거 참, 내가 깡패도 아니고.”

   

아마란지는 교묘한 뉘앙스로 솔피 씨의 한구석에 몇 년쯤 잠들어 있던 무언가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분명 누구 죽어나가는 정도만 아니면 상관없다고 했다.”

   

아마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둘 사이의 모종의 협의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한 술 더 떠서 당일 몬붕을 데려와 계획을 거들게 하는 것까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야기가 끝났다. 아마란지 씨는 본인에게 이야기하는 쪽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나, 오히려 깊이 알지 않는 것이 본인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을 거라는 설득에 넘어갔다. 

   

“당신 진짜 제정신이 아니구나. 따라온다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열어 놓은 창문으로는 빌딩 사이를 휘젓는 새벽 찬바람이 휘몰아쳤다. 슈린은 날개 달린 서큐버스이면서도 비행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새벽에 빌딩 사이로 바람이 휙휙 불어 대니 버티기 쉽지 않았다. 아마란지 씨는 비교적 여유 있는 자세로 벽에 매달려, 발로 5층 창문을 건드리고 있었다. 두어 번 두들기고 나서야 안에서 창문이 열렸다. 창문은 근사하긴 했지만 여닫기 불편한 크기인지라 실용성은 떨어졌다. 건물을 지은 사람이 이 창문으로 누군가 비집고 들어올 줄은 물론 몰랐겠지만, 어쨌든 사람이 들어오기에도 참 좋은 크기였다. 슈린은 창틀에 좀 쌓여 있던 먼지를 한 번 뒤집어쓰고 열심히 털어냈다. 

   

“그냥 정문으로 들어오면 안 됐어?”
“저번에도 설명했는데, 누가 알아보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하나? 그러면 이 새벽에 온 이유가 없지. 계획대로만 하면 된다.”

“솔피 씨, 당신도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에 넙죽 오케이를 해 버리면 어떡해? 거기다 엄한 사람도 끌어들이고. 대책없다, 정말.”

   

창문이 또 끼익 소리를 내며 닫히자, 외풍에 흔들리던 커튼이 다 얌전해졌다. 

   

“아무튼, 일단 시작했으면 확실하게 끝내고. 몬붕 씨도 잘 챙겨. 혹시라도…”

“그래, 무슨 이야기 하려는지 알겠다.”

   

   

몽롱한 정신 탓에 분명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커튼 너머에서 수군대는 소리에 몬붕은 신경이 쓰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서는 기계가 마지막 안내를 내뱉었다. 

   

“1분 남았습니다. 남은 1분 동안,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면서, 손발을 천천히 움직여 경직을 풀어 주십시오. 그 다음…”

   

커튼을 젖히고 솔피 씨가 몬붕의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펄럭이는 커튼에는 나머지 두 사람의 형상이 잠깐 보였다. 솔피 씨는 몬붕의 오른손을 감싸 쥐었다. 오른손이 맥없이 늘어지자 깍지 낀 손을 꽉 조였다. 몬붕이 통증에 움찔하며 시선을 돌리자 간단한 임무가 내려왔다. 

   

“몬붕, 할 일이 있다. 두 번 설명 안 할 테니 잘 들어. 이제 다 끝났으니까 자연스럽게 로비로 나가서, 바람 좀 쐰다고 밖으로 나간다.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돌면 은색 커버로 닫혀 있는 차단기가 있다. 그걸 열고 스위치를 내려. 알겠지? 급하게 할 필요는 없다.”

   

몬붕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고 몸을 일으킬 생각이었다. 솔피 씨는 기기에 적힌 남은 시간을 보더니 1분이 끝나자마자 몬붕의 한쪽 팔을 잡아서 확 일으켰다. 

   

“자, 출발. 어서.”

   

몬붕은 처치실에서 나서 조용한 복도를 통과했다. 상담실, 화장실, 창고와 전산실이 저쪽 갈림길 끝에 오밀조밀 박혀 있었다. 몬붕이 처치를 받는 사이 로비에 들어온 손님 몇 명, 그걸 카운터에서 받고 있는 직원 한 명, 그리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는 직원이 두어 명. 그 중 한 명이 꼬리가 흔들리는 기색을 감추며 안내를 했다. 

   

“네 고객님, 로비에서 잠시 기다려 주시겠어요? 데이터 처리를 하는 데에 시간이 조금 걸려서요.”

“아, 저는 잠시만 바람 좀 쐬려구요.”
“네, 그러세요.”

   

처치실에 모여 있는 셋은 침대를 감싼 커튼을 하나씩 걷어 혹시 누가 있지는 않는지 확인했다. 다행히도 여기 남은 것은 셋뿐이었다. 슈린은 처치실에 남고, 아마란지는 로비 쪽을, 솔피 씨는 전산실을 맡기로 되었다. 경찰 본대가 오기까지는 길어야 십오 분 남짓. 차단기가 내려가고 불이 다 꺼지면 그걸 신호로 행동을 개시할 예정이었다. 

   

   

   

자동문이 열리고 몬붕은 세 발짝 내딛었다. 대리석 깔린 바닥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 발짝 정도 앞 벽에 슈린 씨가 말한 은색 커버가 있었다. 탕, 하는 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내부가 드러났다. 일렬로 늘어선 스위치 중 맨 왼쪽의 빨간색 스위치가 눈에 띄었다. 전체전원. 위에 작게 쓰인 글씨를 읽고서 몬붕은 스위치에 손을 올렸다. 묘한 불안감이 손끝으로부터 스며들어 왔다. 

   

   

“작년에 이 건물 소방 설비 점검을 같이 나왔지. 병신 같은 하자가 있더라. 소방 설비 전원이 끊어지면, 예비 전원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불 난 줄 알고 사이렌이 울려. 전원부가 고장이 났는데, 그걸 다 갈아치우는 것보다는 과태료 물고 말겠다고 하더라고. 진짜 싸가지…”

   

아마란지 씨가 긴장을 좀 풀겠다고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탁, 혹은 퍽, 하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동시에 실내는 한순간에 먹구름으로 가득 찬 바깥과 똑같은 색으로 변했다. 

   

“…진짜로 안 고쳤나 볼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님과 직원들이 동요하기도 전에 사이렌 소리가 실내를 찢어 놓았다. 

   

“부, 불이야!!”

   

슈린이 계획되었던 대로 소리를 질렀다. 로비 쪽은 통째로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귀한 새벽에 이곳을 찾았다가 날벼락을 맞은 손님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계단 쪽으로 달려나갔다. 

솔피 씨는 전산실 앞에 섰다. 소란을 감지하고 전산실 문이 열렸다. 경비원 옷에 꽤 든든하게 차려입은 몬스터 아가씨 두 명이 문을 열자마자 솔피 씨와 눈이 마주쳤다. 솔피 씨는 눈앞의 얼굴에다 일단 주먹을 처박았다. 

   

“아-아악!”

   

비명소리가 사이렌에 파묻혔다. 나가떨어지는 상대편의 허리춤에서 봉을 빼들었다. 묵직한 느낌이 들기에 안성맞춤. 휘두를 만한 좌우 공간은 없었다. 솔피 씨는 뒷사람이 상황을 파악하고 무언가를 꺼내는 모습에 자세를 숙였다. 크게 두 걸음을 내딛어, 뒤로 튕겨나가고 있는 상대를 오른쪽 어깨에 들쳐 업었다. 도검이 칼집에서 뽑혀 나오는 마찰음이 작지만 선명하게 들렸다. 

솔피 씨는 오른쪽 어깨에 실린 짐짝을 앞으로 내밀며 한 걸음을 뻗고, 다음 순간 왼손의 봉으로 상대의 오른손을 후려쳤다. 꽤나 거세게 후려쳤음에도 손은 칼을 놓치지 않았다. 다음 순간 칼이 매섭게 찔러들어와 쓰라린 감각과 함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솔피 씨는 오른쪽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경비원을 앞쪽으로 집어던지다시피 떨어뜨렸다. 반항할 것이 분명해 오른쪽 어깨를 한 번 내리찍었다. 

   

버둥거리다 풀려난 경비원이 솔피 씨의 오른쪽 다리를 붙들고 늘어짐과 동시에, 위에서 아래로 칼이 날아들었다. 쇠몽둥이는 칼날을 막아냄과 동시에 손잡이 쪽으로 내달려 그 질량으로 크로스가드를 내리찍었다. 검을 들었던 양손이 잠깐 아래로 꺾였다. 상대가 한 발 뒤로 내딛으며 저릿저릿한 오른손 대신 왼손으로 검을 쥐려는 순간, 쇠몽둥이가 왼손을 후려쳐 벽에 처박았다. 대리석으로 근사하게 장식된 벽체에 금이 갔다. 검은 튕겨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검을 집어들려던 솔피 씨는 오른쪽 허벅지에 강렬한 통증을 느꼈다. 바닥에 널브러져 다리를 붙들고 있던 자가 어디서 단검 하나를 빼들어 처박은 것이었다. 순간 마음이 흔들림에, 좁은 공간에서 횡으로 휘두르던 몽둥이의 궤적도 흔들렸다. 서 있는 경비원의 아직 멀쩡한 왼쪽 어깨를 후려칠 계획이었던 몽둥이는 약간 위로 틀어져 대신 경추를 강타했다. 반작용으로 몽둥이는 지나갔던 궤적을 부드럽게 되돌아왔다. 솔피 씨의 발치에서는 아직도 저항이 있을 모양이었다. 몽둥이로 후려치기에는 너무 가까이 달라붙어 있었다. 솔피 씨는 땅에 나뒹굴고 있는 칼을 의식하기도 전에 붙잡았다. 상대를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는 위치에 칼을 꽂아 넣었다. 칼끝은 대리석 바닥까지 닿았다. 

   

저항은 사라졌다. 왼손에 들었던 몽둥이를 저쪽으로 대강 던졌다. 쇠파이프가 대리석 바닥에 닿는 소리가 요란했다. 예상 이상의 저항이 들어왔고, 필요 이상의 대응이 화답했다. 솔피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깐의 난투 동안 다시 닫힌 전산실 문 너머에서, 혹시 또 다른 저항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양손으로 검을 감아쥐었다. 칼끝으로 문짝을 살짝 긁어 홈을 냈다. 양손을 일거에 내질렀다. 검은 문짝을 간단히 관통하고 그 너머 허공을 향했다. 무언가가 찔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칼을 뽑고 칼로 낸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은 조용해 보였다. 찌르기를 두어 번 더 하고 나서야 솔피 씨는 안전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한편 아마란지 씨는 로비로 나섰다. 직원은 로비로 들어온 적 없는 사람이 튀어나온 것을 보고 꽤 빨리 상황 판단을 한 모양이었다. 

   

“다, 당신들 누구야, 경찰 부를 거예요!”
“경찰? 내가 경찰이다. 당신이 여기 책임자인가?”

“으…으, 그런데요. 지금 이게 무슨 행패에요?”

“요즘 사납게 구는 사람들이 워낙에 많아서, 우리도 이판사판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저기 칼 든 아가씨들하고 모르는 사이라고 하지는 않겠지?”

   

아마란지는 엄지로 한 차례 칼부림이 났던 뒤편을 가리켰다. 직원은 그쪽으로 시선을 보내더니 돌려놓지 않았다. 뚱한 표정을 한동안 하다가 한 마디를 내뱉고는 입을 다물었다. 

   

“변호사 부를 거예요.”

“그러시든지. 그리고 거기 뒤에서 눈치 보고 있는 양반들, 이쪽으로 와서 앉든지 서든지 하시오.”

아마란지 씨의 등 뒤에서, 머리통이라도 후려칠까 고민을 하고 있던 직원 둘이 서로를 한 번씩 쳐다보더니 슬금슬금 앞으로 나왔다. 그 둘을 또 뒤에서 쳐다보고 있던 슈린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을 뒤에 두고도 태연한 저 깡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저것도 체셔족의 날카로운 감각의 일부일까, 슈린 씨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슈린 씨, 슈린 씨! 이리로 좀 와 봐.”

   

아직도 오른손에 피투성이 칼을 들고 있는 솔피 씨가 손짓을 했다. 슈린은 반죽음이 되어 있는 두 사람을 건드리지 않도록 나름 조심하며 전산실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깔끔했다. 솔피 씨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도어락 달린 무슨 김치냉장고만 한 금고가 하나 있었다. 

   

“저거, 들고 나갈 수 없겠어? 당신 힘 세잖아.”
“벽에 붙어 있어서 도저히 안 되겠는데. 비밀번호도 걸려 있고. 혹시 인간들이 자주 쓰는 비밀번호 같은 거 생각나는 거 없어?”

   

“거기 옆에 붙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아?”

솔피 씨는 고개를 저었다. 


“인간들이 자주 쓰는 비밀번호라…”

   

도어락에는 숫자와 알파벳을 입력할 수 있는 자판이 달렸다. 

0000. 삑삑 하는 소리가 날 뿐 열리지 않았다.

1234. 삑삑. 1111. 삑삑. 그러다가 슈린은 예전에 몬붕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뭐라고 했더라. 

1q2w3e4r.

   

어처구니없게도 삐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금고가 열렸다. 슈린은 자기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서도 터무니가 없어서 웃었다. 나름 머리를 굴린다고 굴려 봤던 솔피 씨도 실소를 흘렸다. 

   

“이딴 비밀번호로 열린다는 게 말이 돼?”

솔피 씨는 대답 대신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묵직한 금고 문짝을 열었다. 여러 층으로 된 내부는 손바닥만 한 외장하드로 가득 들어찼다. 

   

“아마란지가 맞췄네.”

“여기 뭐가 붙어 있는데, 이름 써 놓은 거 아니야?”

   

슈린은 금고 안쪽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모르는 이름이 하나씩 끄집어내져 차례차례 바닥에 쌓였다. 솔피 씨도 혹시 아는 이름이 나올까 거들었다. 이걸 뒤져도 되는지 묻지는 않았다. 묻는다고 해도 슈린이 답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테니.

슈린이 손길이 멈췄다. 

   

“뭐 찾았어?”

“찾았지. 비네스트리오 아마란지. 이 밑에는 남자 이름 같은데, 누굴까?”

“본인한테 물어보면 알지 않겠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슈린은 뻗어오는 손을 물리쳤다. 솔피 씨가 마주친 슈린의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이 묻어 있었다. 창밖에서 경찰차와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져 왔다. 

   

“거기 둘, 슬슬 퇴근하시지. 유혈이 낭자한 현장에서 경찰들이랑 첫만남을 하고 싶은 게 아니면.”
“아, 알겠어~”

아마란지가 방 밖에서 이쪽에 큰 소리를 쳤다. 솔피 씨는 일어났으나 슈린은 오히려 더 바쁘게 금고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신, 나갈 때 저기 환자들 좀 침대에 눕혀 봐. 병원은 보내야 될 거 아니야.”

“방금까지는 눈 하나 깜짝 않더니 이제 와서 챙기는 척은.”

   

솔피 씨는 가볍게 투덜거리면서도 널브러진 경비원 둘을 업어 침대에 한 명씩 눕혔다. 보기 좋은 꼴은 아니었다. 찝찝하기도 하고, 긴장이 풀리니 칼 맞은 자리가 지독하게도 쓰라렸다. 하이고 죽겠네,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아파 죽겠네. 너도 뭐라도 거들어라.”

“내가 이쪽 맡을게.”

   

슈린은 바퀴 달린 침대 하나를 붙들고, 잽싼 손놀림으로 이불 안쪽에 디스크 몇 개를 집어넣었다. 통각에 신음하는 이름 모를 경비원을 태운 채로, 침대는 바퀴에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1층 문이 열리자 수많은 시선이 엘리베이터 문 안에 꽂혔다. 슈린은 수많은 시선을 뚫고 걸었다. 구급차 뒷문이 열리고 몇 사람이 신속히 달려나와 침대를 이어받았다. 환자는 구급차에 실렸다. 

   

사이렌 소리가 하나 늘어나고, 피투성이 침대와 슈린만 남았다. 엘리베이터가 한 번 왕복하고, 이번엔 솔피 씨가 침대를 끌고 나왔다. 피투성이 침대가 두 개가 됐다. 솔피 씨도 자상을 입은 탓에 구급차에 탑승했다. 슈린은 여러 시선이 다시 자신을 향하는 것을 알았다. 

   

“자, 무엇들 하고 있나. 빨리 끝내야 들어가서 쉬지. 잠이 덜 깼나들?”

   

아마란지가 건물 어딘가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몬붕을 데리고 내려왔다. 슈린에게 향하는 시선을 흩어 놓으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물었다. 

   

   

“금고 비밀번호는 어떻게 알아냈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번호야. 아마 당신 남자친구도 좋아할걸?”
“그래서, 뭐였는데.”

   

슈린은 웃었다. 아마란지의 말을 빌리자면 싹바가지 없게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아마란지가 슈린을 보고 사기꾼이라고 했던 말이 맞았던 것만큼. 

   

“영업비밀.”

“하여간 뭐 하나를 똑바로 얘기해 주는 걸 본 적이 없어.”

   

아마란지는 차량 문을 열더니 정복 외투를 꺼내 걸쳤다. 옷이 날개라고 할까. 각이 번듯히 잡힌 옷을 걸치니 시시껄렁한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인상을 주었다. 아마란지 씨는 어깨를 한 대 툭 치고 이제 올라가 봐야겠다는 인사를 남겼다. 슈린은 오른손을 흔들었다. 아마란지 씨의 뒷모습이 건물 안으로 천천히 멀어지고, 건물 안에서는 사람 몇 명이 내려와 어지럽게 정차된 경찰차를 한 대씩 주차하기 시작했다. 

슈린은 전화를 걸었다. 바퀴 달린 침대에 걸터앉았다.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