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은 남자의 시체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중얼거렸다.


"네가 그랬지. 잘못을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혼잣말을 하던 그녀는 옆구리에 찬 단검을 꺼내들었다.

드래곤의 발톱으로 만든 단검에 시릴 정도로 푸른 마력이 모여들었다.

여인은 그 단검을 왼손으로 잡고 남자의 심장에 깊숙이 찔러넣었다.


"나한테 이런 상처를 남겨놓고, 혼자 편해지려고?"


강대한 마력이 남자의 몸에 파고 들면서 내부에서부터 부수기 시작했다.

차갑게 식은 피가 밀려 나가면서 남자의 몸을 적시고 바닥에 끈적한 웅덩이를 만들었다.

굳어버린 근육이 속에서 터지면서 남자의 피부가 들썩였다.

감은 눈꺼풀 속 안구가 터지며 투명한 물이 흘러나오다가 곧 붉게 물들어 피눈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안 되지. 절대 안 돼. 누구 마음대로."


여인의 마력은 남자의 몸속을 남김없이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아주 작은 한 조각까지 훑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나의 흐름이 방해받았다.

커다란 바퀴가 굴러가다가 작은 개미 한 마리를 밟은 정도의 방해였지만 여인은 그 감각을 놓치지 않았다.


"잡았다."


여인은 곧바로 비어있는 오른손의 손톱을 세워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정확하게 심장이 있는 곳을 파고 든 오른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부여잡은 그녀는 그것을 터트릴 기세로 주먹쥐었다.

펌프질된 피가 손이 파고든 구멍을 통해 울컥 쏟아졌다.

쏟아지는 피는 남자의 몸을 덮었다가 단검을 타고 그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곤죽이 되어버린 육체와 섞인 그녀의 피는 마나의 흐름을 방해했던 무언가를 찾아 붙잡았다.

피를 통해 남자의 영혼을 붙잡은 여인은 곧바로 그것을 자신의 심장과 묶었다.

강대한 마력의 근원에서부터 강제적으로 마나를 주입받은 남자의 혼은 순식간에 비대해졌다.

곧 그것은 원래 혼의 크기를 넘어 그것을 붙잡았던 여인의 마력까지 뿌리칠 정도로 커졌다.

그러자 너무나도 큰 충격에 녹아내렸던 그의 신체도 그 혼의 형태를 따라 속에서부터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죽었던 몸이 회복되면서 혼을 붙잡는 그릇이 되자 남자는 다시 되살아났다.


"커헉, 크흐억, 허으윽!"


부활과 동시에 온 몸이 녹았다가 다시 되돌려지는 고통을 마주친 그는 숨도 쉬지 못하고 몸을 뒤틀었다.

세상의 법칙을 뒤트는 마법을 시전한 여인은 극심한 탈력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몸에 난 구멍을 메꾸었다.

극심한 고통에 기절조차 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남자를 본 여인은 그의 심장에 박힌 단검을 쥐었다.

그리고는 온 무게와 힘을 실어 손잡이가 살에 닿을 정도로 밀어넣으며 남자의 몸 위에 누웠다.

남자의 몸을 뚫고 들어간 칼날은 너무나도 간단히 바닥까지 박혀 그의 몸을 고정시켰다.


"끄으윽!"

"너도 알고 있겠지만,"


여인은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몸에 마력을 흘려보내며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나는 너에게 최선을 다 했어."


남자의 몸에서 고통 때문에 쏟아져 내리는 땀이 사라질수록 여인의 몸은 피로 때문에 땀에 젖어갔다.

남자의 몸을 회복시킨 여인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몸을 들어올렸다.

땀에 젖어 그녀의 얼굴과 남자의 얼굴에 들러붙은 여인의 긴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드리워져 둘을 작은 방 안에 가두었다.


"그러니까, 너도 나에게 최선을 다해야 해."


여인은 남자의 몸에 박힌 단검을 뽑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어 기절한 남자의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원래는 둥글었던 남자의 파란 눈동자는 여인의 눈과 같이 용족 특유의 세로로 길죽한 눈동자로 바뀌어 있었다.

남자의 영혼이 자신의 것과 결속되었음을 확인한 여인이 미소지었다.


"내가 널 사랑했다는 걸 잊기 전까지."


모든 일을 마친 드래곤은 자신의 권속에게 입을 맞추고 그의 위에 다시 누워 잠들었다.